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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21세기 한국을 위한 교육 · 복지 · 기업문화 개혁론

평등화교육에서 차별화교육으로

<중등교육>

  • 이은협 (일산 백석고 교장)

평등화교육에서 차별화교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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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준화된 교실에서 학력이 우수한 학생, 보통인 학생, 아주 부진한 학생, 미술만 하려는 학생, 글만 쓰려는 학생, 바둑을 잘 두는 학생 모두를 앉혀 놓고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 교육할 것인가?
교육은 한 나라의 존망성쇠를 좌우한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인적자원이 유일한 재산이기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렇게 중요한 교육이 정책의 실패로 급격히 붕괴되고 있다. 교실붕괴의 주범은 준비 안된 여건에서 성급하게 도입한 열린교육과 수요자중심교육, 고교 평준화 등의 시행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 교육개혁위원회는 1996년 5월31일 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누구든지 원하는 공부를 아무 때나 원하는 곳에서 할 수 있다’는 취지 아래 몇 가지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시행되는 것이 없고 부분적이거나 미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모두 여건 조성없이 환상적인 이론만 가지고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

한 예로 1974년 도입한 고교평준화와 1997년 도입한 열린교육, 1998년 이해찬 장관의 교육개혁 등이 모두 준비되지 아니하고 여건 조성없이 한탕주의 밀어붙이기식 발상으로 추진돼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작용만 초래하고 마침내는 교육의 붕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열린교육의 이름 아래 ‘공부를 안 해도 대학 간다, 시험은 안보고 대학 간다. 자율학습, 보충수업도 필요 없으니 하지 말아라, 모의고사도 보지 말고 많이 놀게만 해주라’고 했던 학생들이 이제 대학입시를 눈앞에 둔 현재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의 학력을 평가해 보았더니 전년도 졸업생에 비해 평균 25~30점이 떨어졌다. 2000년도 수능시험이 변별력을 잃어 사회와 교육계의 지탄을 받자 관련부처는 2001년에는 난이도를 높여 지난해보다 평균 17~28점 정도 낮도록 어렵게 출제한다고 발표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학력이 높은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를 쉽게 내고 공부를 안하고 놀게 한 학생들에게는 아주 어렵게 시험 난이도를 높이겠다는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수능시험 문제를 어렵게 내고 현재 고 3학생들의 학력이 전년도 학생들보다 30점 정도 낮다고 하니까 벌써부터 재수생과 대학교 1학년 재학생 중 상당수가 다시 수능시험을 보겠다고 야단들이다. 이상만 가지고 준비 안된 상태에서 시행한 교육개혁 정책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혼선을 거듭하며 많은 착오와 오류를 낳았다.

교육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교육자를 무능교사, 체벌교사, 촌지교사 등으로 몰아 붙이면서 원로교사 1명을 퇴출시키면 젊은 교사 2.5명을 채용할 수 있다면서 앞 뒤 안 가리고 65세 정년을 일시에 62세로 단축하여 교원의 사기와 명예를 추락시키고 자존심을 상하게 하여 일시에 3만여 명이 넘는 교사가 퇴직을 했다. 교육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고 교육의 기둥을 허무는 일을 정부가 생각없이 단행한 것이다.

사실 일선 학교에 부적응 교사, 부적격 교사 등 정말 무능한 교사도 있다. 개혁을 하려면 이런 교사를 물러나게 했어야 한다. 정년 단축도 1~2년 연차적으로 했으면 교육이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결과로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 부족 사태가 일어나 정년퇴임교사, 명퇴교사, 채용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자격증만 가진 분을 기간제 교사(강사)로 모시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부적응, 부적격 교사는 그대로 남아 있고 교사는 부족하다. 보충수업은 폐지되고 자율학습도 못하게 하고 모의고사도 못 보게 하니까 방과 후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려간다. 내신성적제도는 중·고등학교에서 모두 ‘수’ 주기라는 성적부풀리기 현상을 낳았으며 변별력 없는 수능시험은 학력을 떨어뜨리고 입시 혼란만 가중시켰다. 하향평준화는 평등 아닌 평등을 얻은 대신 개개인의 특기 적성이나 수월성을 무시한 교육을 하게 했고 교실을 놀이터나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교실 붕괴의 원인과 실태

이 모두가 교육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현장을 잘 모르는 외부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인 탓이고 탁상에서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적 이론만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도 공교육 위기를 통렬히 반성한다며 교육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이라고 했지만 역시 이상적인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여겨진다.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최선의 약이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밀턴 프리드가 말했듯이 교육은 교육부가 없어야 제대로 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7차 교육과정도 제대로 시행하려면 서울시에서만 6100여 개의 교실이 더 필요하고 교사도 현재보다는 적어도 30%~40% 정도 늘려야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실시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면 학교에는 이름만 걸어 놓고 지금보다 조금 변형된 상태로 운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최근 2~3년 사이에 교실이 붕괴되고 교육이 무너졌다고 학자들과 신문 방송이 걱정을 해왔다. 교사의 권위가 상실된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멋대로 장난치고 소리 지르고 잡담하고 엎드려 자고 수업 외의 딴 짓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녁에는 모두 학원에 가서 밤 늦게까지 공부한다. 그 이유는 학원에서는 수준별 반 편성이 되어있고 적당한 통제가 이루어지니까 공부할 맛이 난다는 것이다. 청소년개발원에서 교사, 학생 24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교사 87%, 학생 71%가 학교 붕괴현상이 있다고 했다. 평준화 교실의 실태는 자갈, 모래, 흙을 뒤섞어 놓아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와 같다.

이 세상에 각기 소질이 다른 학생들을 한꺼번에 모두 잘 하도록 지도할 교사는 없다. 축구 잘 하는 학생은 축구장, 농구 잘 하는 학생은 농구장에 가서 운동할 수 있도록 지도 교사와 코치를 배치해 주고 다른 여건도 갖추어 주어야 하듯이 교실 안에 있는 다양한 학생들의 소질, 욕구, 특기 적성을 고려하여 지도하려면 모두가 잘 할 수 있도록 이에 걸맞은 교실과 지도교사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

평준화된 교실에서 학력이 우수한 학생, 보통인 학생, 아주 부진한 학생, 미술만 하려는 학생, 글만 쓰려는 학생, 바둑을 잘 두는 학생 모두를 앉혀 놓고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 교육할 것인가? 바둑반을 만들어 놓고 학생보다 훨씬 실력이 모자라는 교사가 지도하고, 축구부를 만들어 놓고 국어교사를 배치해서야 되겠는가?

평준화로 다양한 학생들을 한 반에 편성해 놓았으면 40~50명 학생들의 수준과 특기와 적성과 요구에 따라서 교육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아무런 대책 없이 모두 다 잘 지도하라고 하면 누군들 할 수 있겠는가? 한번 잘못 들어선 길인 줄 알면 즉시 돌아오거나 다른 길을 택해야 함에도 한번 들어선 길이니 끝까지 가야한다는 식의 밀어붙이기 교육개혁은 엄청난 시간의 낭비이고 경제의 낭비이며 종국에는 실망과 좌절과 함께 파멸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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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협 (일산 백석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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