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호

승진경쟁 없애야 교사가 산다

<교육개혁>

  • 입력2005-04-14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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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진경쟁이 난무하는 교육풍토 속에서는 참된 교사가 설 자리가 없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인사나 환경이 변해야 한다.
    중학교에서 11년째 아이들을 가르쳐 온 최운문(37) 교사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승진이냐 아이들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선 것이다. 고민 끝에 최교사는 교육전문직(장학사, 연구사)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최교사가 교육전문직 시험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장학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교육전문직이 되면 남들보다 교감·교장을 몇 배나 더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감 승진의 경우 겉으로는 현장 교사나 교육전문직이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정기인사 때 교감 발령을 내는 것을 보면 교육청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전문직 출신 교장에게서 근무평정을 잘 받은 교육전문직 혹은 교육전문직 출신 교사가 90% 이상 교감직을 차지한다.

    이 또한 교장승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 교사 출신 교감은 교사 때 얻은 연구점수와 부가점수를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 전문직 출신 교감은 전문직 때 얻은 연구점수, 경력, 부가점수가 점수로 환산되어 현장 교사 출신보다 7점 이상 앞서기 때문에 교사 출신 교감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30대인 최교사의 인생 목표가 확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교사처럼 교육전문직을 택해 일찌감치 승진가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차선책으로 근무평정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연수 및 시범학교 연구프로젝트, 대학원 진학, 상 타기, 특수학교 근무 등에 혈안이 된다. 30대부터 시작되는 승진 경쟁에 50% 이상의 교사들이 뛰어들어 벌이는 승진 각축전으로 인해 학교현장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초등학교 4,5학년의 담임교사가 승진점수가 달린 연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두 달씩 교실을 비우고, 50대 후반의 원로 교사가 교감 승진을 앞두고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섬으로 벽지로 떠도는 풍경도 수십년째의 관행이다.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는 교사들의 근평(勤評), 그 근평을 위해 교장에게 종속당하고 금품을 바치는 등 로비를 하는 일부 교사들의 부끄러운 행동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0%는 교장이, 50%는 교육청이 매기는 교감의 평가를 위해 교장에게 목을 매고 교육청으로 뛰어다니는 상당수 교감들의 넋 빠진 행동, ‘물’ 좋은 지역으로 옮기기 위해, 혹은 교육장 승진을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교육감 집 문전을 넘나드는 부패한 교장들의 모습 등이 지면에 오르내린 지도 이미 오래다.

    50% 교사들의 승진 경쟁은, 승진에 뜻이 없거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남은 50%의 교사들에게 불안감과 의욕상실을 가져온다.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참교육을 하고, 잘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인성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사가 설 땅이 없다.



    교사 승진경쟁 참교육 몰아내

    대학서열화 체제 속에서 입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않는 한 결코 입시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교원의 가치를 점수로 환산하여 상위 10%에게만 수석교사를 시키고,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교감·교장제도 등 낡은 교원정책을 뿌리째 개혁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참되게 가르치는 교사는 학교에 남기가 힘들다. 이치가 그렇고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현장 교사들이라면 다 안다. 승진경쟁 구조는 교사들의 삶을 망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미친다. 아이들이 무너지기 훨씬 이전에 교사들이 무너졌으니 무슨 교육개혁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무너지는 이유도 비슷한 이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업일수(연간 220일)와 수업시수(주당 35시간 정도), 중학교 3학년 수학의 난이도가 미국 아이비리그(동부지역 명문대학) 1학년 수준으로 우등생만을 위해 만들어진 어려운 교과서, 어차피 등급과 순위로 1등부터 꼴찌까지 가려지는 입시와 내신, 대학서열화와 학벌이 공고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나머지 과목과는 상관없이 수학과 영어만 잘하면 이른바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입시구조, 국가가 만들어준 교과서와 중간·기말고사 및 수능을 못자리로 하여 아이들에게 선수학습을 시켜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사교육 시장, 꾸준히 쉽게 냈다가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수능을 어렵게 내겠다는 조령모개식 교육정책…. 관료주의가 낳은 정부의 그릇된 정책 속에서 아이들이 노랗게 시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는 지금 아프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교육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GNP 대비 4.8%까지 올랐던 교육재정은 2000년에 4.2%로 떨어졌고, 교육환경 개선에 쓰여야 할 교육세 재원 5조원은 해마다 경직성 비용으로 전용되어 막대한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 결식아동은 무려 20만 명을 헤아리고, 1999년 통계로 51명 이상의 과밀학급이 1만 4562개, 2부제 학급이 253개, 컨테이너 교실이 380개, 붕괴위험 교사가 120동, 수거식 화장실이 3781개, 교사 1인당 학생수 38명 등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책의 실패로 인한 재정누수 현상도 만만치 않다. 7차 교육과정의 졸속운영, 정년단축에 따른 부작용의 여파로 학교운영비와 시설비의 잠식 및 부채 증가 등 바닥을 보이는 교육재정은 교육개혁의 장밋빛 청사진을 무색하게 한다. OECD국가 중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교육환경지표는 오늘날 교육개혁의 목적과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교사는 기능적 입시교육과 승진 경쟁에 매몰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아이들은 입시교육의 고통 위에 이해찬 전장관이 덧칠하기 식으로 부여한 2002년 새 대입제도까지 수용하는 가운데 교실붕괴 현상에 떠밀려가고, 학부모는 넘치는 사교육비에 가슴이 멍들어간다. 학교는 이 사회 최후의 그린벨트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학교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우열반과 나머지 공부로 불리는 수준별과 심화보충수업, 백화점식으로 80여 개의 과목을 깔아놓은 고등학교 교과선택제 등 7차 교육과정은 2000년부터 시작되어 현재 중1까지 시행되고 있지만 막상 학교현장에서 제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다한 수업시수와 수업일수 등 교육과정 개혁 없이, 더 중요한 입시제도의 개혁 없이 그 위에 7차 교육과정만 덧씌운 결과다. 이는 처음부터 전교조 등이 그 부작용을 예측하면서 수차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가 무리하게 도입하여 파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심각한 부작용을 알면서도 시행을 했으니 7차 교육과정은 애당초 그 도입 취지가 나쁜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고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5년에 한 번씩 개정하는 교육과정 제도를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항시 개정할 수 있도록 수정고시(교육부 고시 1997-15호)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면 된다. 교육과정과 연계된 수능과 내신 역시 1년쯤의 경과를 두고 선진국처럼 선발에서 전형으로 가도록 수능을 자격고사로 바꾸고 아이들에 대한 평가를 교사와 학생회가 논의하면서 짜도록 교사들에게 평가권을 돌려주면 된다.

    고교 교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너는 서울대 너는 지방대’ 하면서 대학 대신 선발을 해주는 현행 입시와 내신 체제를 하루속히 타파하지 않고서는 달리 해결방법이 없다. 문제는 개혁으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의해 국가관료가 쥐고 있던 상당부분의 권한을 학교의 학부모, 교사, 학생에게 돌려주는 데 따르는 노파심과 공포감 때문이다. 이것이 교육개혁을 미루는 진정한 이유다.

    학교를 공황에 빠지게 만드는 교원의 승진제도는 부분적으로 수정한다고 해서 고쳐질 일이 아니다. 아예 OECD 국가들처럼 교장승진을 위한 교사들의 근무평정 규정을 두지 않으면 된다.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교장을 초빙하는 영국이나 교사회의 동의를 거쳐 이사회에서 교장을 뽑는 독일은 교장이 학교자치관련법에 따라 교사회, 학생회, 학부모회와 협의하여 공동으로 학교를 운영하도록 학교공영제 개념을 도입하여 교사들이 교장·교감이 되기 위해 목을 거는 일은 없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는 근평과 교장·교감 자격증 제도는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선진국형 교장임용 개념이 담긴 교장선출(초빙) 보직제를 도입하는 등 정상적인 교원정책을 펼치면 교사들이 평생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2급, 1급 정교사 연수처럼 승진 절차를 밟도록 짜인 교원 연수제도도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생활력을 기르는 교육적인 전문 연수로 그 체제가 바뀌게 된다.

    바둑을 잘하는 교사는 바둑전문연수를, 서예에 능한 교사는 서예전문연수를 체계적으로 받아 오후에 실시하는 방과 후 특기적성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적용하다 보면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하는(敎學相長)’ 쌍방향 수업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교·사대의 양성 과정 역시 그에 따라 현행 교육학 중심 교육과정을 교과와 생활지도 중심으로 현장성 있게 규정화할 수 있다. 배워봤자 아무 쓸모없는 외국 교육이론 베끼기에서 학교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하지 않는 교수는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원의 승진제도 개혁은 이렇게 교원정책 전반에 도미노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광복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권위주의적이고 관 주도적인 교원정책은 21세기를 맞이하여 시대에 맞도록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 교사가 바뀌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행정적으로 유능한 교장 1명이 내딛는 백 걸음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100명의 교사가 내딛는 한 걸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

    교육재정 확충과 교육환경 개선

    교육인적자원부가 2001년 예산에 초등학교에 학습준비물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예산 1000억원을 편성했지만 실제 초등학교에서는 여전히 학습준비물의 대부분을 학생들이 조달하고 있다. 교육재정이 여전히 취약한 것이 근본적인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재정 GNP 대비 6%의 확보, 교육세의 올바른 운용, 학교단위 예산회계제도의 내실화 등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고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알다시피 목적세인 교육세는 지난 18년간(1982년~1999년 현재) 총 36조원이 징수되었고 그 용도도 학교시설 개선, 교원처우 개선,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한정적’으로 쓰이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교육예산의 부족분을 보충하는 데 전용되어 왔다. 예컨대 잠식재원으로 전락한 것이다.

    1982년 이후 1999년까지 18년 동안 징수된 36조원의 교육세 가운데 본래 목적대로 쓰인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교육세를 원래 목적대로 쓰도록 한 ‘환특’ 같은 특별법을 영구적으로 연장해야 한다. 현재의 열악한 교육환경과 과대·과밀학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현재 내국세의 13% 수준을 15%로 증액하여 교육예산을 확충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봉급교부금을 보수교부금으로 바꿔 전체 교원의 인건비를 전액 교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초·중등교육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다.

    또한 학급당 인원을 25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 학급당 인원감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다. 미국은 20명에서 18명으로 심지어 메인 주에서는 10명까지 감축계획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17명을 18명으로 늘리려다가 학생들의 저항에 부딪혀 철회했다. OECD 가입국으로 최소한 25명 이하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임기 내 30명이하 감축’ 공약을 파기하고, 2004년까지 ‘35명 이하 감축’(중·고교)으로 오히려 대폭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땅히 7차 교육과정에 쓰일 돈 4조 7000억원을 학급당 학생 수를 감축하는 용도로 전용해야 한다. 7차 교육과정 수정고시는 학교환경과도 맞물려 있다.

    그 동안 주로 대입 중심의 사교육 시장과 비대한 사교육비가 공교육 부실화와 비례했다면 7차 교육과정으로 인해 사교육시장이 초등 1학년생까지 확대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에 따라 공교육 정상화를 향한 여러 방향의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먼저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시장경쟁’ 원리는 사실상 ‘시장’에서조차 제대로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공교육 분야까지 확대하면 우리 교육은 남미 여러 나라와 비슷한 ‘기초학력의 전면적인 저하’로 가게 된다.

    이렇다 할 부존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전국민의 기초학력 ‘저하’는 정말로 국기를 흔드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GNP 6%의 교육재정 확보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세부적으로 학교시설의 현대화는 시급한 과제에 속한다. 학생의 학습기반 마련을 위해 냉난방 설비를 전면적으로 개·보수하고, 급수설비나 학생 휴게실, 탈의실, 급식과 식당설비 등 학생복지 시설을 확충하여 ‘오고 싶은 학교’가 되도록 학교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도서관도 학교당 2000만원 정도를 들이면 완전히 현대식으로 바꿀 수 있는 바, ‘지식기반사회’를 대비하여 컴퓨터 도입보다 우선하여 확충해야 한다.

    학교현대화의 기초인 기본 학습기반 시설이 마련되면 다음으로 과대학교, 과밀학급 해소 사업을 집중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은 단순히 소비적인 예산투자는 아니다. 과대학교, 과밀학급 해소를 위한 사업은 중소 건설업체에게 ‘일감’을 주면서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또한 필요 법정 교원수를 확보하는 것은 취업률 50%에 머무는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도 클 것이다. 교육분야의 재정투입이야말로 확실한 ‘생산적 복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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