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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21세기 한국을 위한 교육 · 복지 · 기업문화 개혁론

승진경쟁 없애야 교사가 산다

<교육개혁>

승진경쟁 없애야 교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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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진경쟁이 난무하는 교육풍토 속에서는 참된 교사가 설 자리가 없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인사나 환경이 변해야 한다.
중학교에서 11년째 아이들을 가르쳐 온 최운문(37) 교사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승진이냐 아이들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선 것이다. 고민 끝에 최교사는 교육전문직(장학사, 연구사)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최교사가 교육전문직 시험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장학사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교육전문직이 되면 남들보다 교감·교장을 몇 배나 더 빨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감 승진의 경우 겉으로는 현장 교사나 교육전문직이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정기인사 때 교감 발령을 내는 것을 보면 교육청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전문직 출신 교장에게서 근무평정을 잘 받은 교육전문직 혹은 교육전문직 출신 교사가 90% 이상 교감직을 차지한다.

이 또한 교장승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현장 교사 출신 교감은 교사 때 얻은 연구점수와 부가점수를 인정받지 못하는 반면 전문직 출신 교감은 전문직 때 얻은 연구점수, 경력, 부가점수가 점수로 환산되어 현장 교사 출신보다 7점 이상 앞서기 때문에 교사 출신 교감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30대인 최교사의 인생 목표가 확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교사처럼 교육전문직을 택해 일찌감치 승진가도를 확보하지 못하는 교사들은 차선책으로 근무평정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연수 및 시범학교 연구프로젝트, 대학원 진학, 상 타기, 특수학교 근무 등에 혈안이 된다. 30대부터 시작되는 승진 경쟁에 50% 이상의 교사들이 뛰어들어 벌이는 승진 각축전으로 인해 학교현장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있다.

초등학교 4,5학년의 담임교사가 승진점수가 달린 연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한두 달씩 교실을 비우고, 50대 후반의 원로 교사가 교감 승진을 앞두고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섬으로 벽지로 떠도는 풍경도 수십년째의 관행이다. 세계에서 일본과 한국밖에 없다는 교사들의 근평(勤評), 그 근평을 위해 교장에게 종속당하고 금품을 바치는 등 로비를 하는 일부 교사들의 부끄러운 행동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0%는 교장이, 50%는 교육청이 매기는 교감의 평가를 위해 교장에게 목을 매고 교육청으로 뛰어다니는 상당수 교감들의 넋 빠진 행동, ‘물’ 좋은 지역으로 옮기기 위해, 혹은 교육장 승진을 위해 돈 보따리를 싸들고 교육감 집 문전을 넘나드는 부패한 교장들의 모습 등이 지면에 오르내린 지도 이미 오래다.

50% 교사들의 승진 경쟁은, 승진에 뜻이 없거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남은 50%의 교사들에게 불안감과 의욕상실을 가져온다. 오늘날 아이들과 함께 참교육을 하고, 잘 가르치는 데 전념하고, 인성활동을 열심히 하는 교사가 설 땅이 없다.



교사 승진경쟁 참교육 몰아내

대학서열화 체제 속에서 입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않는 한 결코 입시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교원의 가치를 점수로 환산하여 상위 10%에게만 수석교사를 시키고,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교감·교장제도 등 낡은 교원정책을 뿌리째 개혁하지 않는 한 아이들을 참되게 가르치는 교사는 학교에 남기가 힘들다. 이치가 그렇고 현실이 그렇다는 것은 현장 교사들이라면 다 안다. 승진경쟁 구조는 교사들의 삶을 망치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미친다. 아이들이 무너지기 훨씬 이전에 교사들이 무너졌으니 무슨 교육개혁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무너지는 이유도 비슷한 이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업일수(연간 220일)와 수업시수(주당 35시간 정도), 중학교 3학년 수학의 난이도가 미국 아이비리그(동부지역 명문대학) 1학년 수준으로 우등생만을 위해 만들어진 어려운 교과서, 어차피 등급과 순위로 1등부터 꼴찌까지 가려지는 입시와 내신, 대학서열화와 학벌이 공고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나머지 과목과는 상관없이 수학과 영어만 잘하면 이른바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입시구조, 국가가 만들어준 교과서와 중간·기말고사 및 수능을 못자리로 하여 아이들에게 선수학습을 시켜 쉽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사교육 시장, 꾸준히 쉽게 냈다가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수능을 어렵게 내겠다는 조령모개식 교육정책…. 관료주의가 낳은 정부의 그릇된 정책 속에서 아이들이 노랗게 시들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는 지금 아프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교육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GNP 대비 4.8%까지 올랐던 교육재정은 2000년에 4.2%로 떨어졌고, 교육환경 개선에 쓰여야 할 교육세 재원 5조원은 해마다 경직성 비용으로 전용되어 막대한 누적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 결식아동은 무려 20만 명을 헤아리고, 1999년 통계로 51명 이상의 과밀학급이 1만 4562개, 2부제 학급이 253개, 컨테이너 교실이 380개, 붕괴위험 교사가 120동, 수거식 화장실이 3781개, 교사 1인당 학생수 38명 등 차마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정책의 실패로 인한 재정누수 현상도 만만치 않다. 7차 교육과정의 졸속운영, 정년단축에 따른 부작용의 여파로 학교운영비와 시설비의 잠식 및 부채 증가 등 바닥을 보이는 교육재정은 교육개혁의 장밋빛 청사진을 무색하게 한다. OECD국가 중 최하위를 면치 못하는 교육환경지표는 오늘날 교육개혁의 목적과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교사는 기능적 입시교육과 승진 경쟁에 매몰되어 정체성의 혼란을, 아이들은 입시교육의 고통 위에 이해찬 전장관이 덧칠하기 식으로 부여한 2002년 새 대입제도까지 수용하는 가운데 교실붕괴 현상에 떠밀려가고, 학부모는 넘치는 사교육비에 가슴이 멍들어간다. 학교는 이 사회 최후의 그린벨트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학교가 무너지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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