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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신건 국가정보원장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 이수형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ooh@donga.com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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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건 원장 취임 후 국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정원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남 출신인 그가 이끄는 국정원이 내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국민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솜 속에 바늘이 있다.”

중국의 마오쩌뚱(毛澤東)이 생전에 저우언라이(周恩來)를 가리켜 한 말이다. 온화한 겉모습, 하지만 강철 같은 내면을 간직한 저우언라이에 대한 함축적인 묘사다.

법조인들은 지난 3월 국가정보원장에 오른 신건(辛建·60) 전법무부 차관에 대해서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법조계 인물 정보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하고 방대한 규모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오세오닷컴’(www.oseo.com)의 인물정보란에는 신원장에 대해 ‘소탈하고 온화해 부하직원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한 추진력과 칼 같은 기질이 있어 한번 수사를 맡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전한다. 국정원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이나 단호함을 겸비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눈에 안 띄는’ 국정원장

신원장의 국정원장 임명 소식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낸 곳은 한나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신원장 임명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신건 국정원장을 통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국내정치 정보활동을 강화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한 민주계 출신 의원은 “신원장이 전 정권 때인 93년 슬롯머신사건으로 법무차관에서 중도 하차해 한나라당에 대한 적개심이 강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신원장은 그냥 웃기만 했다고 한 법조계 인사는 전했다. 그에 따르면 신원장은 “야당 사람들 중에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긴장하고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잘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안심할 것이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야당의 지인들도 자신의 합리적인 일처리 방식을 잘 알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염려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그의 국정원장 취임에 대해 법조인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히려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예리한 바늘은 부드러운 솜 속에 숨어 있는 법. 신원장의 국정원장 취임 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정원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국정원장 취임 후 ‘음지’로 숨었다. 대통령 주례보고와 국회 정보위 출석 등 불가피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흔한 언론사 간부들과의 상견례 등 ‘통과의례’도 아직 안 거쳤다. 신원장 스스로 취임 직후 직원들 앞에서 “국회출석 등 법에 정해진 자리가 아니면 나서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장은 정보수집과 정세판단 등을 위한 외부인사와의 면담이나 약속도 거의 구내에서 해결한다. 신원장이 외부인사들을 만날 때 주로 이용하는 곳은 국정원 내의 ‘국가정보관’이다. 이 건물은 98년 이종찬(李鍾贊) 원장 시절 신축한 것. 이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국정원 간부나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무실에서 외부 손님을 맞았고 그로 인해 자주 보안문제가 거론됐다. 이 전원장은 이런 논란에 따라 외부 인사들을 위한 면회소 또는 영빈관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가정보관을 지었다.

“국정원장은 심부름꾼일 뿐”

신원장 취임 전까지만 해도 이 건물을 이용하는 간부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만나는 것 자체가 내부인사들에게 노출되는데다 음식도 구내식당처럼 단조롭기 때문이다. 음식은 민간 업체인 P사와 계약을 맺어 위탁운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원장은 취임 후 대부분의 약속을 이곳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중순경 자신의 고교(전주고) 은사와도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이곳을 다녀간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24시간 국정원 내부에서 먹고 자고 일하기 때문에 외부로 나갈 수가 없다”는 신원장의 말을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국가정보관에는 안보전시관 등이 설치돼 있어 외부인사들을 상대로 안보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교육 효과도 거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원장의 ‘음지론’은 그가 국정원 차장 시절부터 지녀온 소신이기도 하다. 신원장은 98년 7월경 후배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에 주인이 둘 있어서는 안 된다. 국정원의 주인은 대통령과 국민이어야 한다. 원장은 다만 심부름꾼일 뿐이다. 심부름꾼은 불필요하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

신원장의 취임 후 첫 ‘작품’은 국정원 후속인사에서 나타났다. 4월9일 단행된 국정원 간부 인사에서는 해외파트를 총괄하는 1차장과 인사 예산을 담당하는 기조실장에 모두 내부 인사가 발탁됐다. 차관급인 1∼3차장과 기조실장 등 핵심 고위직 네 자리가 모두 내부 인사로 채워진 것은 국정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와 같은 인사는 신원장 취임 직후 “국정원의 인사 예산에 대한 여권 핵심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조실장 등 요직에 정치권 인사를 진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 야당정보위원의 분석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 인사에는 ‘실무 중심’과 ‘정치색채 탈색’을 내세운 신원장의 뜻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장이 국정원 내에서 자기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신원장은 99년 6월 국정원 2차장에서 물러난 지 1년 9개월 만에 다시 국정원장으로 복귀하면서 ‘자기 사람’을 단 한 명도 데려가지 않았다. 그는 운전사나 수행비서조차 기존 국정원 인력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신원장을 잘 아는 법조계 인사들은 신원장의 강철 같은 단호함을 잘 나타내주는 면모라고 전한다.

신원장은 특히 인사와 관련해서는 추상 같은 판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새 정권 출범 초기 그는 법무부장관 후보에 단골로 꼽혔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 미리 보험을 들어두려는 검찰 관계자가 많았다. 이에 대해 신원장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그와 가까운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검사들이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한다. 대개 무슨 뜻인지 짐작한다. 물론 나는 정중히 사양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 ‘기억’으로 검찰을 개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가 3월 개각에서 법무부장관 대신 국정원장으로 가는 바람에 그의 검찰개혁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신 국정원 개혁이 어떻게 진행될지가 관심거리다. 일부에서는 신원장 취임 후 첫 인사가 국정원의 ‘소리 없는’ 개혁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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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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