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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 횡포, 노동자 고통을 이제야 알겠다”

‘재벌의 나팔수’ 공병호의 대변신

  • 이나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byeme@donga.com

“오너 횡포, 노동자 고통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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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습니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티즌 입사 자체가 성급한 결정이었던 겁니다. 회사를 옮길 때는 대주주의 평판이라던가 사업 발전가능성 같은 걸 아주 면밀히 따져봤어야 하는데 전 그러질 못했어요.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워낙 강한 데다, 직감대로 움직여 실패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방심한 거죠.

하지만 그때의 변신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그로 인해 열정이 식은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짧으나마 경영수업도 쌓았으며, 마침내 지금처럼 제게 딱 맞는 길을 찾는 데도 성공했으니까요.”

그가 찾은 새 길이란 ‘자영업’, 그러니까 공병호경영연구소장으로서의 삶이다. “이전부터 왜 우리나라에는 경영이나 경제 분야에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드물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마이클 노박이나 피터 드러커, 프랑스의 기 소르망이나 자크 아탈리, 일본의 사카이야 타이치 같은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연, 집필, 기고, 경영자문을 업으로 삼는 1인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공소장은 증권전문 케이블채널인 한경와우TV에서 ‘공병호의 독서대학’을 진행중이다. 몇몇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곧 30~40대 직장인의 자기관리에 대한 책을 발간할 예정. 요즘은 전환기의 40~50대 가장을 위한 글을 자주 쓴다. 강연과 기고 스케줄도 빡빡한 편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참 선견지명이 있긴 한가보다, 언젠가 방송 쪽으로 나설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2년 전부터 치아교정을 시작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하며 교정기를 끼운 치아를 슬쩍 내보였다.



공소장과 대화를 하며 재삼 확인한 것인데, 그는 자기암시와 자기확신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으리라. 세상살이에 있어서도 어딜 어떻게 건드리면 어떻게 풀려나가리라는 감이 대단히 빠른, 한마디로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솟아날 듯한’ 대단한 자신감의 소유자였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패를 겪더라도 ‘미래를 위해 오히려 더 잘된 일’이라는 식으로 상황을 합리화할 줄 알기 때문이다. 공소장도 마찬가지여서 벤처에서의 신고(辛苦)는 벌써 다 잊은 듯 자못 희망에 부푼 모습이었다. 인터뷰중에도 그는 여러 차례 “지금의 내 상황을 실패란 이름으로 낙인찍지 말아달라.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공소장이 벤처업계를 떠난 건 올해 7월말이다. 마지막 직위는 코아정보통신 사장이었다. 지난해 말 인티즌과 코아정보통신간에 합병 시도가 있었다. 가격이 맞지 않아 M&A는 무산됐지만 공소장이 코아정보통신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양사간 협력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쪽으로 합의가 됐다. 한편으로 증권가에는 합병 시도 과정에서 공소장이 주가조작에 개입해 수억 원의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M&A 직전까지 가봤으니 벤처에서 겪을 일은 다 겪으셨군요(웃음). 근데 주가조작이니 뭐니 말들이 많던데 어떻게 된 겁니까.

“허, 주가조작이라니 말도 안됩니다. 무엇보다 저한테는 인티즌 주식이 없어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입니다. 합병설로 한때 주가가 뛰었으니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악성 루머를 퍼뜨린 거죠. 그리고 전 도덕주의자입니다. 제 브랜드 파워라는 게 어디까지나 도덕성에서 나오는 건데 제가 그걸 그렇게 쉽게 훼손하겠습니까.

M&A로 말씀드리면, 그거 참 할일이 못됩디다. 머니게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지요. 제가 코아정보통신으로 가게 된 것도 내막을 알고보면 좀 그래요. 대주주인 권사장 측과 코아정보통신이 합병을 추진하면서 약정서를 교환했는데 권사장 쪽에서 일부 사항을 위반한 겁니다. 근데 코아정보통신에서, 문제 삼지 않는 대신 공사장을 보내달라, 그렇게 나온 거예요. 결국 3월부터 코아정보통신 사장으로 일하게 됐죠. 분쟁 해결을 위해 이 한몸 던진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왕 옮긴 자리, 열심히 해보겠다고 여기저기 영업하러 다니며 고군분투했는데 코아정보통신 사주가 회사를 덜컥 소프트뱅크코리아가 운영하는 M&A펀드에 넘겨버린 거예요. 고용인에 불과했던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외이사·집단소송제 필요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공소장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적지 않은 좌절감을 맛봤다고 했다. 공소장이 “이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선언하는 이면에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 기업의 실상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보아버린 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공소장은 “이제 다 용서했다”면서도 “참 별 인간들을 다 만났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물이 아닌 머니게임으로 돈을 벌고 거래를 하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실 전 그 ‘아사리판’에서 몸 하나 무사히 빠져나온 걸 하늘의 도우심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기극에 휘말리지 않고 끝을 낼 수 있었던 게 천운이란 거지요. 저한테 요구되는 일들을 보며, 이거 까딱하면 범법자가 되겠구나, 마음도 많이 졸였습니다.”

-범법이라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를 들면 인티즌이 회원제로 운영하는 인터넷 기업이니까 신용카드회사 같은 데서 얘기가 들어와요. 회원정보를 제공해주면 대가를 제공하겠다거나 그런 거죠. 그게 다 불법이에요. 물론 저는 거절했습니다. 어쨌건 그런 류의 일들이 적지 않으니 어떻게 걱정이 안되겠어요. 회사를 사고파는 과정에서도 부정이 끼어들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격을 어떻게 부르느냐부터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자꾸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어떻게 달라졌다는 건가요.

“시장에 대한 제 신념의 큰 줄기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기업인이나 기업운영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전과 많이 다른 생각을 갖게 됐죠. 이전에 저는 기업가란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마디로 기업가에 대단히 호의적이었죠. 지나치게 규제하지 않아도 시장이 알아서 보완해 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인간이란, 사업이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더군요. 무조건 선한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시장은 시장대로 돌아가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이거죠.

생각이 가장 크게 바뀐 게 이사제도에 대한 겁니다. 주식회사란 회사를 ‘공개한다’는 것이죠. 그런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근데 이건 어떻게 된 게 이사들 도장을 아예 받아뒀다가 여기저기 막 찍질 않나…. 주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사업을 해보면 마이너리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뀔 겁니다. (기업) 규제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거고요.

예를 들어, 이전의 저는 사외이사제도가 불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보니 그게 꼭 있어야겠다 싶은 거예요. 또 하나,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집단소송제 같은 것도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회계 말인데요. 이게 정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해요. 이에 대한 감시체제도 강화해야 합니다. 결국 사업가에 대한 시각 자체가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바뀐거죠. 사업가에겐 견제와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의 말 중 마이너리티란 단어가 귀에 콕 들어와 박혔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에게 ‘마이너리티’는 노동자, 혹은 국민이었다. 분명 놀라운 변화였다.

-이제는 대기업을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라 생각지 않는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때는 정말 우리(전경련)가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보니 보통 파워풀한 집단이 아니에요. 몰랐던 거죠.

연구소 시절 저는, 기업가와 노동자는 계약을 통해 맺어진 관계인 만큼 서로 약속만 준수한다면 문제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그 계약이란 게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고 확신한 거죠. 근데 틈이 엄청나게 많더군요. 그나마 대기업이라면 어느 정도 원칙이 지켜지고 있으련만 제가 몸담았던 벤처쪽은 엉망이었습니다. 늘 일에 치여 살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그래서 벤처일 한다는 젊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늘 그랬어요. 좀 쉬어가며 해라, 몸도 생각해라, 대우는 우째 제대로 받고 있나….”

재벌 입노릇 다시는 안해

-앞으로도 글을 쓰고 강연을 하다보면 재벌에 대해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공소장은 여전히 ‘재벌의 입’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옛날의 저는 정말 순진했습니다. 이젠 재벌이니 뭐니, 그렇게 기업가 편에 서서 논쟁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쪽으로의 열정이나 사명감이 사라져버렸어요. 사업을 경험하고 나니 한마디로 동기 부여가 안된달까요. 어쨌건 천만금을 줘도 재벌 나팔수, 그런 건 다시는 안합니다. 이제 제 관심은 글쓰고 강연하는 거예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요, 책 많이 쓸 겁니다. 재벌이 아니라 경제활동하는 보통사람들에게 주목하는 그런 글들이요. 지금까지는 내 창의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어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코아정보통신 사장직에서 물러난 후 다시 조직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요.

“솔직히 한두 달쯤 그 문제를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사실 월급장이가 얼마나 편합니까. 매달 고정된 수입이 없다는 건 두려운 일이지요. 또 연구소나 그런 쪽으로 간다면 아무래도 ‘고향’인 셈이어서 마음이 편할테고요. 하지만 자영업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지금 새로 시작한 이 길은 50년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90세까지는 살 수 있으리라 보는데, 그러니 남은 인생을 두고 할일을 이제 막 시작한 거죠. 서두를 필요가 없어요. 제가 재벌의 입이니 뭐니 하는 데서 CEO를 거쳐 이렇게 홀로서기를 결심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걸 천운이라 생각합니다. 제 자신이 참 대견스럽기도 한데, 어떻게 그 어려운 일들을 겪고 나와 방향전환할 생각을 다 했나, 그것도 나이가 마흔인데, 뭐 그런 데서 오는 대견함이지요.

장사꾼은 장사의 무기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글 쓰고 방송하는 쪽인 것 같고. 자유기업원 소장 하면서도 자기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를 많이 느꼈는데, 기업경영은 거기에 비하면 그렇게 신이 나질 않더라고요. 또 저로서는 처음으로 ‘갑’이 아닌 ‘을’의 인생을 산 건데 별로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원하는 건 역시 영향력인가 봅니다.”

-혼자 일하려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습니다.

“자영업자는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합니다. 제 침대 머리에는 자명종이 3개 있어요. 다이어리도 아주 꼼꼼하게 기록하는 편입니다. 시간은 물론 분 단위까지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실천한 후 저녁마다 평가를 해요. 여전히 새벽 3시에 기상하고 술은 거의 안 마십니다. 담배도 안 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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