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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 올해 정년퇴임 교수 3인의 ‘나의 삶, 나의 학문’

40년 ‘지적 편력’의 종착역, 자립적 자본주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40년 ‘지적 편력’의 종착역, 자립적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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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아시아의 근현대사는 민족주의자와 민중주의자들의 기대를 외면했다. 나는 1980년대 이래 사회주의 제국의 몰락과 북한이라는 ‘기괴(奇怪) 공화국’의 존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비판 자체가 미래의 이상적 사회를 보장한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저항적 민족주의를 가진 세력들이 저항운동을 하는 한, 해방이니 민주니 평등이니를 주장함으로써 진보적 계급으로 보이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아시아적 전제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우리의 현실인가.

나는 1980년대 중반 이래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종래의 나의 생각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 그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 인식은 미래에 대한 꿈은 현실이 아무리 가혹해도 현실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실천되어야 그 장래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꿈은 공상이지 진정한 미래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관점은 역사학 연구를 하는데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역사과정에서 미래를 발견하는 것만이 미래의 현실적 실현을 위한 보장이 아니겠는가. 역사학은 미래의 싹을 구체적으로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크게 문제가 됐던 두 가지의 연구가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 후기의 ‘자본주의 맹아론’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시대의 ‘민족자본론’이다. 두 가지 모두 매우 중요한 연구분야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는 동아시아적 민족주의라는 이념에 의해 윤색되어 그 논의가 매우 관념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만약 자본주의 맹아론이나 민족자본론이 현재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의 관련 아래 논의된다면 매우 논리정합적인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사 연구에서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는 매개항으로 이용되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런 논의의 논리적 결함으로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자본과 민족이 아무런 매개 없이 직접 결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자본’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어디까지나 자본이고, 민족은 어디까지나 민족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축적의 조건이 반드시 민족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근대사에서 ‘예속자본’이나 ‘매판자본’ 개념이 출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현상은 결국 학문의 자기파탄을 초래했다. ‘자본주의 맹아론→민족자본론→한국자본주의론’의 논리적 연쇄는 매우 순조로운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여기에 저항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근대사 연구는 민족주의라는 강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과거에도, 또 오늘날에도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근대사 연구가 그렇게 된 데 대해서는 남을 탓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 스스로 그러한 연구경향을 주도해온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스스로의 연구태도에 대해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내 전망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 현실의 역사과정 속에서 점점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새로운 史觀 정립

나는 한국 자본주의가 외국자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1970년대 말경에는 외환위기로 붕괴되리라 전망했다. 1979년의 10·26사태는 한때 내 전망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직후부터 한국 현대사에 대한 나의 전망이 빗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졌다.

1980년대 초반, 광주학살과 폭압적인 군부독재체제를 겪던 당시에 한국경제의 기본적 취약점인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국제수지도 개선되었다. 경제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한국경제의 전망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한국경제가 자립적 자본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하여 국내외적으로 긍정적인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4년 일본 도쿄대 경제학부로부터 객원교수로서 한국경제사를 강의해 달라는 제의가 왔다. 그래서 이듬해부터 도쿄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1985년 말에 도쿄대 경제학부장에게 “올해에는 강의를 하느라고 일본에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가 없었다”고 했더니 1986년에는 도쿄대 정식교수로 발령했다. 그래서 1985년 3월부터 1987년 2월까지 꼬박 2년간 도쿄대 경제학부에서 한국경제사를 강의했는데, 그때의 당혹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도쿄대에 머물렀을 때만큼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시간에 단 한번도 자신있게 강의를 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일본어로 강의를 해야 했던 까닭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한국 근대경제사 강의 내용이 세계적 보편성을 결여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라면 역사 해석에서 다소 비논리적인 점이 있어도 민족주의적인 국민감정에 호소하면 그런대로 강의가 이뤄지지만, 외국인들에겐 그러한 비논리가 통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도쿄대에 있던 2년 동안 가르친 것보다는 배운 게 더 많다. 가장 크게 깨달았던 바는 민족주의를 갖고서는 보편적인 학문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의는 한국에서 준비해간 교재로 했기 때문에 강의에 있어서 나의 학문적 입장이 바뀐 것은 없었으나, 이미 그때부터 종래의 한국 근대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관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관을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줬던 세계사적 동향은 한국경제의 자립적 자본주의로의 발전과 사회주의 제국의 경제적 정체였다.

1980년대 중반이면 누구도 아직 사회주의 제국의 붕괴를 확실하게 전망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나는 한국의 장래에 대한 강렬한 관심 때문에 도쿄에서 사회주의 제국의 지식인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사회주의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이론적 무장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만남에서 얻은 매우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도 사회주의 제국의 곤경을 통찰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한국의 장래에 대한 내 전망은 결국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한국경제의 자립적 자본주의로의 발전 전망 또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내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전까지는, 한국경제가 제국주의체제에서는 자립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정부의 근대화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도쿄에서 2년간 수집한 현대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여러 정보에 따르면 세계 자본주의체제에서도 저개발국이 자립적 자본주의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한국경제는 그러한 세계사적 동향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같은 인식전환은 진실로 나를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단순한 관념의 전환으로 끝나는 거라면 큰 문제가 될 게 없지만, 만약 내 생활 전반의 전환을 요구하는 거라면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념의 전환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체계와 나의 인간관계의 재정립을 필연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많은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다. 한국은 선진 자본주의 제국과는 그 발전의 길이 다르다고 하면서도 선진 자본주의가 발전해온 길을 유일한 발전의 모델인 양 가르친다든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운운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전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제시하는 바가 없고, 한국에서는 자립적 자본주의가 현실화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강조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근현대사의 체계를 다시 세우려면 두 가지 인식이 필요했다. 첫째는 한국처럼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저개발국으로서 포섭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오히려 고도성장과 같은, 세계사에서 일찍이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립적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길이 선진 자본주의에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사의 이점

현대 세계사를 제국주의 시대처럼 이해해서는 안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법 질서는 전혀 새로운 세계질서로서 아무리 약소국가라 해도 선진국이 그 주권을 간단히 유린할 수가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비록 경제적으로 저개발국가라 하더라도 경제개발의 내적 능력을 가진 국민이라면 자립적 자본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신흥공업국(NICs)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은 이를 단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 제국은 기본적으로 자생적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을 겪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19세기 후진 자본주의는 영국 등 선진 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발전하기는 했지만, 자국 내에서도 자생적 자본주의가 발전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NICs의 경제 발전은 선진 자본주의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 선진 자본주의를 따라잡는 과정이었다. 때문에 양자는 그 발전의 길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민지나 저개발국에서 어떻게 경제 발전이 가능하냐고 반박한다. 경제 발전이라고 하면 으레 자생적인 것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국 근대경제사 연구를 위해 다음의 두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는 한국 근현대 경제사를 경제성장사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경제성장사는 우선 통계자료의 정리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배제하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조선 후기, 일제시대, 해방 이후를 그 정치·경제 체제 여하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연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갖는 한국 근현대사를 정립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이론은 전통적인 자본주의 발달사가 아니라 후발성이론 혹은 경제 발전의 안항(雁行)형태론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이 선진 자본주의를 따라잡으려는 과정이라면 이같은 연구 방향은 그 타당성이 누구에게나 명백할 것이다.

강단을 떠나면서 남기는 글이라면 신변잡기류가 제격이라고 생각지 않은 것은 아니나 글이 의외로 무겁게 되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평생을 바쳐온 한국 근현대사 연구 방향이 학계에서 아직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

한국 근현대사의 연구 방향은 연구자가 현대 한국의 역사적 과제를 무엇으로 인식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아직도 일제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가장 큰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사 연구의 중심을 일제 침략에 대한 비판에 둬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민족통일이 지상(至上)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통일운동사를 연구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친일 잔재의 청산이나 민족통일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한국이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게 현대사의 중심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제성장사를 역사 연구의 중심축에 놓으려 할 것이다. 나는 자주 민주 통일이라는 현대사적 과제는 경제성장이 이룩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없다고 믿기에 경제성장사를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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