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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 올해 정년퇴임 교수 3인의 ‘나의 삶, 나의 학문’

다시 ‘1만 시간 공부’에 도전하는 희열

이초식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다시 ‘1만 시간 공부’에 도전하는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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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교수로부터 고려대에서 나와 같은 전공의 교수를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럼 내가 가볼까?”라고 말한 지 1주일 후에 고려대 관계자에게서 “철학과 교수 전원의 동의를 얻었으니 총장 면담을 하러 오라”는 통고를 받고 고려대학교로 옮기게 됐다. 나는 그 이전에 여러 대학에 출강한 경험은 있었으나 고려대에서 강의한 적은 없었고 철학과 교수님들도 많이 알고 있지 못한 처지였다. 그렇지만 고려대에 대한 첫인상은 아주 흡족스러웠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동료교수 한 분이 “이게 우리 학교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니 한번 맛보시라”면서 버섯을 선물했다. 그분은 당시 학교 행정을 맡아 내가 고려대로 오는 데 힘을 써주신 분인데, 그 이전에는 나와 안면도 없던 터였다. 나는 얼김에 선물을 받아들고 당황했다. 내가 그분께 선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분이 먼저 내게 선물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선물을 하는 것보다 그 분이 ‘앞으로 수고 많이 해달라’는 뜻으로 내게 선물하는 ‘그림’이 더 멋있게 보였다.

나는 고려대에서 과거의 교육·연구경력을 모두 인정받아 높은 호봉의 정교수로 임명됐다. 또한 당시 다른 학교에서는 처음엔 1년으로 계약했다가 다음 번에는 5년을 계약했는데, 고려대에서는 처음에는 3년, 다음에는 10년을 계약하는 파격을 보였다.

그래서 교수 대접을 제대로 받았다고 느끼던 차에 동료교수의 따뜻한 마음을 읽게 되니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큰 인물을 많이 배출한 학교는 뭔가 다른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고려대 교무수첩을 보면 다른 대학들과는 달리 교원 대부분이 정교수였으며 전임강사나 조교수는 몇 안되었다. 직위와 호봉은 재정과도 직결된다. 그 시절은 교수 임명의 계약제가 교수들을 위협하고 지배하는 도구로 악용되기 쉬운 때였다. 따라서 고려대가 호봉책정과 계약문제에 그처럼 성의를 보인 것은 ‘학교는 최선을 다해 재정을 지원하고 신분을 보장해줄 테니 자유로이 연구에만 몰두하라’는 뜻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학교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된다. 강제로 출근부에 도장을 찍게 하고 승진과 계약제를 들이밀며 직접, 간접으로 위협할 때 느끼는 책임감과는 질이 달랐다.

가령 문과대학 교수들에게 논문을 강요하는 게 요즘은 당연한 것이 되고 있으나 이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논문을 강요하면 논문은 나올 것이며 일정한 수준의 교수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학교 운영으로는 규격화한 중간 크기 정도의 고기를 낚을 수는 있어도 대어를 낚을 수는 없다.

과거의 학교 운영자들이 진급과 계약제를 요즘처럼 활용할 줄 몰랐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들이 나름대로 많은 투자를 하고 통제를 풀어 자신을 공격하는 자유까지 부여했을 때는 무엇인가 크게 바라보는 것이 있었을 것이고, 참고 기다리는 도량도 있었을 것이다. 교육자들에게 자유와 자율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고 타율적인 제재와 지배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것은 진정한 교육을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격이다.

“젊은 교수는 집에 가서 공부나 해”

격렬한 시위로 학생과 경찰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그 시절 다른 대학들은 학생들의 시위 조짐이 있으면 교수들을 대기시키거나 때로는 “어느 교수는 어디에서 시위를 막으라”고 장소까지 정해 주기도 했다. 그때 교수 휴게실에 많은 교수들이 모여 있었는데, 어느 노(老)교수가 젊은 교수들에게 “학교는 보직교수와 늙은이들이 맡을 것이니 당신네들은 모두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고 했다. “젊은 교수들은 자칫하면 학생으로 오인될 지도 모르니 뒷문으로 나가되, 혹시 카메라에 찍힐지도 모르니 웃거나 농담 같은 것은 하지 말고 비장한 표정을 지으라”고 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학생들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시위를 한다고 판단됐을 때 시위를 막기 위해 몇 차례 자발적으로 나선 적이 있었지만, 그런 학교 분위기 때문에 시위가 있을 때는 곧바로 귀가하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고려대 철학과는 다른 학과에 비해 시위에 결코 소극적이지 않았다.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학생들 중에는 나와 의견이 다른 학생들이 많았으나 그들은 교수인 나에 대해 깍듯이 예의를 지켰으며, 사제간의 두터운 정에도 변함이 없어 연구실에 찾아온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곤 했다.

당국은 학생시위가 좌경화하고 그것이 자생적인 데 그치지 않고 북쪽에 추종하는 것으로 의심했고, 학생들은 “우리를 터무니없이 빨갱이로 몰고 있다”며 반박하는 공방전이 거듭됐다.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충고를 건네곤 했다.

“자네들이 공산당 누명을 벗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학 게시판에 남쪽의 군사독재를 타도하자는 대자보를 열 번 써 붙일 때 한 번 만이라도 ‘우리는 모든 독재정권을 타도하고자 하며, 그것은 남쪽 독재에 한정되지 않고 북쪽의 독재에도 해당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여봐라. 그리고 이쪽 독재자를 비방하는 것과 같은 어법으로 북쪽 독재자도 비방한다면 너희들을 어떻게 빨갱이로 몰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충고가 실현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독재를 타도하자,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자, 북한 동포도 우리와 같은 동포니 증오하지 말자, 하루속히 통일을 하자는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 있게, 그리고 편향되지 않게 주장하는 일인 듯하다. 북한문제 연구가 나의 전공은 아니지만, 나는 북한이 고향이며 그곳에는 아직도 일가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크다.

열악한 처지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접받도록 힘쓰는 것은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로 찬양할 만하다. 하지만 북한 동포를 우리처럼 생각한다면 울산 노동자와 인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돕듯이 함흥 노동자와 남포 노동자들의 권익도 언급해야 할 것이며, 부산과 광주 교원들의 교권을 생각하듯이 의주와 원산 교원들의 교권도 열 번에 한 번쯤은 옹호하고 나서야 형평에 맞을 것이다.

논리경험주의의 매력

나는 지난 20년간 여러가지 악조건에서도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 비교적 좋은 연구환경을 가질 수 있었으나, 이에 부응하는 연구성과를 내지 못해 지금도 빚을 진 느낌이다. 언젠가 그 빚을 갚아보고 싶다. 그래서 정년퇴임식장에서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우선 1만 시간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만 시간을 생각하게 된 것은 조종사인 중학교 때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비행시간 1만 시간을 돌파했다는 사실이 기억나서 그 친구가 하늘에서 보낸 시간만큼을 책상에서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이면 얼마나 될까? 음악을 전공한 내 친구는 “이제 나이가 나이니만큼 공부도 ‘아다지오(Adagio)’로 쉬엄쉬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래서 대충 주당 20시간씩 공부한다고 가정하니 1년(50주)에 1000시간을 공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1만 시간을 공부하려면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나의 유한성을 고려할 때 내가 할 공부는 그동안 해왔듯 과학철학과 연결된 과학기술학에 기여하고 논리교육을 연구,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과학철학과 논리학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학부 3학년 때부터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목회자가 되기 위한 예비과정으로 철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학부 초기에는 실존철학과 노장철학 등에 심취했으며, 현대문명 비판의 철학적 성향에 끌렸다. 하지만 철학사 공부를 통해 다양한 철학적 성향을 알게 된 후에는 과학의 기초를 새롭게 확립하려는 논리경험주의와 현실을 개척하려는 프래그머티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과학기술이 뒤떨어져 식민지 생활을 했고, 그로 인해 그때껏 후진국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철학적 사유도 그 부정적인 측면을 폭로하고 배척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규명하고 이를 우리의 삶에 맞도록 재구성하는 철학이 요구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당시 우리 철학계에서는 적자(嫡子) 취급을 받지 못했던 이 분야의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논리경험주의 철학에서는 새로 개발된 기호논리를 철학함의 도구로 사용하므로 이 논리를 모르면 그 분야의 철학책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논리공부를 해봤더니 고등학교 시절 수학에 취미가 있던 터라 내 적성에도 맞았다.

논리경험주의의 매력은 진리에 관해 논쟁하기에 앞서 참이라고 주장하는 말의 의미부터 분명히 하자는 데 있다. 철학사에서의 다양한 논의나 일상생활에서의 논쟁에서 서로 참이라고 주장하고 아니라고 반박하는데, 이때 서로 주장하는 의미가 다르면 논쟁의 성과를 얻기 어렵다. 가령 유신론과 무신론 논쟁에서 ‘있다는 신’과 ‘없다는 신’의 의미가 서로 다르면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의견이 다른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의인화한 신은 없다’는 무신론과 ‘자연의 조화를 가능케 하는 존재로서의 신이 있다’고 믿는 유신론이 공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논리경험주의의 인식적 의미 기준과 그에 의거한 반(反)형이상학적인 주장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상언어학파나 프래그머티즘과 결부되면서 여러가지 비판의 대상이 됐으며, 나도 철학을 과학의 논리에 한정시키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게 됐다. 과학연구는 과학의 논리와 과학적 지식이론뿐만 아니라 과학의 역사학과 사회학 및 정책학 등으로 확장돼야 하고, 따라서 앞으로 기술철학을 본격적으로 다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환경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은 기술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철학적 음미는 1970년대부터 나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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