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년이라는 인생의 한 구비를 막 돌아섰다. 지난 8월 말 서울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 10월에는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이제 새내기 명예교수로서 강의 책임의 일부도 맡고, 전에 느꼈던 여러 구애와 제약을 떨쳐버리고 학자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학자생활은 보람있는 것이었다. 앞으로도 의미와 보람의 세월을 계획하고 있다. 편집자의 청에 따라 정년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적 역정, 정년의 의미, 장래의 계획, 그리고 학자의 원리에 대한 관견(管見)을 적어보려 한다.
나는 동복오(吳)씨 시조 휘녕(諱寧)의 28세손이다. 내가 태어난 해는 1936년이며 올해로 만 65세가 되었다. 나는 195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법학공부를 했으며 1959년에 법학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창설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해 2년간 수학하고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원에서 처음으로 ‘미국식’ 학문인 행정학을 접하게 되었다. 당초에는 이것이 생애의 직업을 결정하게 될 줄 몰랐다. 더 많은 공부를 향한 계속된 노력이 나를 행정학 교수로 만들었으며 그러한 결말에 대해 나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1966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약 2년 10개월간 피츠버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하고, 1969년에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 취득 후 즉시 귀국해 서울대 행정대학원 조교수로 부임했다.
1974년에는 부교수, 1979년에는 교수 발령을 받았다. 1963년부터 조교와 강사로 근무한 것을 통산하면 서울대학교에 재직한 햇수는 올해로 38년이 된다. 기타의 공직생활 경력을 합친 40여 년간의 봉사를 인정하여 정부가 주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고마운 일이라 생각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추대해 준 것도 내게는 큰 영예다. 이 또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 학기도 강의 거른 적 없어
교수 부임 이래 시종일관 맡아온 강의는 행정학의 기초이론, 조직이론, 인사행정론이다. 20여 년 전부터는 행정개혁론 강좌를 개설해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 분야들을 오래 전공해 왔으며 그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에 추가해 행정사와 인간관리에 대한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나는 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십년간 한 학기도 강의를 거른 일이 없다. 이제 명예교수로서 강의를 계속하고 있으니 연속적 강의경력은 상당 기간 연장될 것으로 전망한다. 강단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아주 크지 않고서는 그런 경력을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의와 연구, 그리고 저술을 학자의 기본 임무라 생각하고 이러한 본업에 충실하려 노력해 왔다.
나의 지난 생애와 장래의 계획을 토대로 나는 스스로를 학자라 분류하고 있다. 언제인가 이승의 인연이 다하고 저승에 가서 전생의 기록을 심사받게 될 것이다. 저승의 심사관이 무슨 일을 하다 온 사람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학자였습니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대답을 한다고 해서 추국(推鞫)을 받거나 문책을 당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 자신에 관한 분류기호의 분명함은 내게 안도감과 긍지, 그리고 보람을 준다.
연구와 교수를 본업으로 해온 지난 세월은 보람의 세월이었다. 그것은 허무와 낭비의 세월이 아니었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와 교수에서 멀리 이탈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으며, 제자들에 대한 애착도 감추지 않았다.
세상의 허다한 잡사에 간여하지 않은 대신 제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결혼식 주례도 양적으로 많이 한 편은 아니지만 성심껏 했다. 학생들 수학여행에도 자주 따라다녔다. 제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반기고 고마워했다.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하는 것을 즐겼다. 아직도 내 주변에는 내가 ‘술친구’라 부르는 제자들이 많다. 그들은 모임의 이름까지 정하고 흔히 집단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정년퇴임을 전후한 각종 기념행사에서 내 고적함을 덜어주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직장생활의 제도에 관련해서는 줄곧 교수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다. 교수에 대한 규제는 학문생활을 교란할 뿐이라는 내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좋은 여건과 자율이 주어지면 바른 교수들은 연구와 교수에 헌신한다. 그러지 않은 나쁜 교수들 때문에 외재적 통제를 강화한다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헛수고다. 어설픈 규제로 나쁜 교수들의 일탈적 행동을 바로잡기는 어렵다. 오히려 품격손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진지한 학문활동을 방해하게 된다.
근래 대학개혁은 ‘좋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나쁜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일반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화시대의 불신관리 메커니즘을 앞다퉈 도입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포스트 모더니티의 사회를 전망하면서 낡은 산업화시대의 도구에 매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학문적 성취도는 59점
지난 학자생활을 돌이켜보면서 내 자신의 학문적 성취도에 대해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자문은 과거의 회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래의 설계를 위한 것이다. 만족스러운 학문적 성취도를 100점이라 하고 커트라인을 60점이라 한다면 나의 성취도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나의 학문적 성취도가 59점 정도라고 자평한다. 이러한 주관적 평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너무 관대하다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59점 정도의 성취도를 믿고 싶다. 이러한 자평은 나를 설레게 하고 나에게 용기와 힘을 준다. 앞으로 1점만 보태면 커트라인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다.
나는 65세에 교수생활의 정년을 맞이했다. 학자에게 정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령정년은 규정된 연령까지만 근무하고 퇴직해야 한다는 것을 규정하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규정된 연령까지는 직장생활을 보장하는 신분보장제도이기도 한 것이다.
조직사회의 변화추세에 비추어볼 때 그러한 보장적 정년제도는 점차 적실성을 잃어갈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정년까지의 긴 근무를 보장하는 제도를 지탱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들은 실적기준이 아닌 연령기준에 따라 근무를 중단시키는 것도 반대하게 될 것이다.
여하간 나는 교수의 보장적 연령정년이 있는 세상에서 장기간 교수직을 보장받았다. 그리고 탈없이 정년에 이르기까지 교수생활을 하고 퇴직하게 되었다. 직업분야마다 정년제도의 양태와 그 영향은 다양하다. 교수의 정년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나는 교수의 정년에 대해 내 자신의 관점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교수의 정년은 직장에 관한 것이지 직업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분야의 정년과 다르다. 교수가 정년을 맞는다는 것은 직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라는 직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년을 학자의 본업은 남기고 직장만 떼어내는 계기로 삼았다. 본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는 전기로 받아들였다. 앞으로 학자의 본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여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정년은 강제로 직업적 전기를 마련하는 제도다. 직장을 떠나는 것과 같은 직업상의 변동을 자발적으로 저지르기는 어렵다. 그런 변동을 외재적으로 마련해 주는 정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직업적 침체를 털어내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정년에 의해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어떤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지위보다 학자로서의 개인적 지위와 학계 전체의 구성원이라는 지위가 더 부각된다. 이 또한 적지 않은 이점을 지니는 일이다. 교수의 정년이 학자생활의 종결이나 완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의 생애는 정년 전에나 후에나 이은 자국 없이 계속될 것이다.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은 유능함
그러나 정년이 학자의 생애에 하나의 획을 긋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년은 학자생활이라는 길고도 중요한 한 단계가 대과(大過)없이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판정하는 행사인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했음인지 사람들은 장기간에 걸친 직업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을 축하한다. 오랜 봉사의 공로를 칭송하기도 한다. 훈장 수여, 명예교수 추대, 몇 차례의 기념식, 관련학회에서 열어준 기념세미나, 동료교수들과 친지들이 베풀어준 만찬 등은 나를 들뜨게 했다.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살아왔다. 또한 교수직은 혜택받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한 일이 없다. 학문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부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사람들이 제도로 또는 태도와 행동으로 나의 기여와 공로를 평가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나는 여기서 적지않은 위로를 받고 있다. 나로 하여금 감히 나의 교수생활이 사회 공동체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년 이후의 계획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어떤 현저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년 전이나 후나 나의 일상생활에는 변화가 없다. 강의가 없는 날에는 주로 집에 있고 서재에서 작업하는 일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강의하고, 집필하고, 책 읽고, 텔레비전 많이 보고, 제자들 만나고 하는 일에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직장의 잡사와 직업상의 대인관계에서 벗어나서 훨씬 자유롭고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수년간은 학문발전의 속도에 맞춰 저서들을 개필하고 수정하는 일에 매달려야 할 것 같다. 이 과제가 나를 많이 바쁘게 할 것이다. 정보폭증, 정보과다의 시대에 살면서 급속한 지식변동을 따라가 스스로를 늘 새롭게 하기란 정말 숨가쁜 일이다. 그래도 이 일에서 어느 정도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행정사도 정리하고 인생에 대해 깊이 있는 글도 써보고 싶다.
앞으로 ‘무실패의 개념’에 따라 항상 현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하고 창의적인 일을 도모해 나가려 한다. 그리고 내 자신이 유능하게 남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더 많은 유능한 동지들을 만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근래 절실하게 깨닫고 있는 바는 유능함이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이다. 도덕성조차 유능함의 뒷받침이 없으면 꽃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당분간 변함없을 학자생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인생은 유한한 것이며, 인간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월에 따라 변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고 능률이 떨어지는 것을 인력으로 막을 길은 없다. 이러한 불가피한 현상을 전혀 외면하고 장기계획을 세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장차 생애 주기의 변동에 따라 단계마다의 연착륙 전략을 구사해 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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