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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지취재

아무도 찾지 않는 사형수의 죽음

마약사범 신옥두·정영조씨 체포에서 총살·옥사까지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z@donga.com

아무도 찾지 않는 사형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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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조 등은 1997년 9월6일부터 차례로 하얼빈시 공안기관에 체포됐다. 중국당국이 정씨 일당을 체포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수사당국이 정보를 제공한 때문으로 알려졌다. 대구지검은 신옥두, 정영조 등이 하얼빈에서 검거되기 한달 전인 1997년 7월10일부터 이 사건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씨가 이미 같은 해 6월, 중국으로 도주한 사실이 드러나자 대구지검은 7월25일 인터폴에 국제공조수사를 요청했다. 대구지검은 두 달 뒤인 9월5일 중국 당국으로부터 신씨가 히로뽕을 제조, 밀반출한 혐의로 검거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 사법당국은 중국 공안당국의 사법절차를 밟은 신씨의 인권 보호와 신병 처리를 위해 외교적으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검찰은 1997년 8월20일부터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법무협력관을 파견했으나, 정작 법무협력관은 신씨 사건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11월6일 당시 법무협력관은 “재임 기간 중 신씨 체포사실은 물론 재판진행에 대해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얼빈시 인민검찰원은 1998년에 정영조 등을 각기 마약제조운송판매죄, 위조한 출입국증건 제공죄, 주민등록증위조죄로 기소했다. 하얼빈시 중급인민법원은 1999년 8월12일 형사판결을 내렸다. 한국인 정영조·신옥두를 사형에 언도하고 개인재산을 전부 몰수하기로 판결했고, 백재만은 사형 언도에 2년간 집행유예, 박정열과 박옥화는 무기형, 정익무와 이홍철은 유기형 10년, 박대림과 김해일은 유기형 4년으로 선고했다.

이 판결에 정영조, 신옥두, 백재만, 박정열, 박옥화, 정익무, 이홍철은 모두 불복했다. 정영조는 1차로 제조한 히로뽕을 한국에 갖다 팔았는지 자신은 모르는 일이고 또 만든 히로뽕이 반제품이며, 두 번째는 실패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옥두는 자신은 모든 과정에서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이유, 백재만은 마약을 운송하지 않았다는 이유, 박정열은 마약을 제조·운송하지 않았다는 이유, 박옥화도 마약을 운송하지 않았다는 이유, 정익무는 마약제조에 참여하지 않았고 돈만 넘겨주었다는 이유, 이홍철은 마약 제조에 참여하지 않았고 형량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각기 헤이룽장성 고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다.



이 상소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헤이룽장성 고급인민법원은 합의정(合議庭)을 구성해서 심문, 자백, 기록을 열독하고 피고들을 재차 심문했다. 또 증인들의 실증자료를 확인하고 변호인 의견을 청취한 후 사실이 명확하고 증거가 충분하므로 그들을 기소한 죄가 모두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상소를 기각해 개정심리를 하지 않고, 원 판결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가 신씨의 사형집행이 과연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의 범죄 내용과 마약 범죄를 규정한 중국 국내법이 한국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의문투성이다.

한국정부의 중국 관련 부서 관계자는 “사건 진행 과정에 우리 정부의 잘못이 드러나면서 한바탕 소란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다. 하지만 드러난 것도 해결된 것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죄와 형벌의 적절성 여부가 궁금하다. 중국 정부가 자국인이었다면 신옥두를 사형에 쉽게 처할 수 있었겠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했다.

중국의 마약단속법

이 관계자 뿐만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이 의문은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제7절 ‘마약의 밀수, 판매, 운송, 제조 죄’구절을 보면 명쾌하게 해결된다. 중국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마약의 일종인 아편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뺏긴 경험을 갖고 있어서 마약 범죄에 관한 형벌이 어느 나라보다 엄하다. 중국 형법 제7절 제347조를 일부 발췌해서 옮긴다.

“마약을 밀수, 판매, 운송, 제조했을 경우에는 그 수량이 많든 적든 모두 형사책임을 추궁하고 형사처벌을 주어야 한다. 마약을 밀수, 판매, 운송, 제조했고 다음 각 호의 하나에 해당한 자는 15년의 유기징역,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하고 재산몰수를 병과한다. (1)아편 1000g 이상, 헤로인 또는 메틸벤졸프로필아민 50g 이상 또는 기타 다량의 마약을 밀수, 판매, 운송, 제조한 자 (2)마약을 밀수, 판매, 운송, 제조한 집단의 수모자 (3)마약의 밀수, 판매, 운송, 제조를 무력으로 엄호한 자 (4)폭력으로 검사, 구류, 체포에 항거하였고 그 정상이 중한 자 (5)조직적인 국제마약판매활동에 참여한 자.

아편 200g 이상 1000g 이하, 헤로인 또는 메틸벤졸프로필아민 10g 이상 50g 이하 또는 수량이 비교적 많은 기타 마약을 밀수, 판매, 운송, 제조한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벌금을 병과한다 …(중략)”

신씨의 경우는 하나만 걸려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사항 중에 세 가지나 해당된다. 아편의 경우 1000g 이상, 기타 마약은 50g 이상만 되어도 사형에 처할 수 있게 돼 있으니 그의 사형판결은 예견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한국인이라고 해서 중형에 처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재심 절차는 제대로 밟았을까. 그는 1997년 9월5일 체포된 뒤, 2001년 9월26일 사형당할 때까지 5년여 동안 중국 국내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다. 중화인민공화국 형사소송법 제3편 재판 제4장 사형재심사절차를 옮겨본다.

“제199조: 사형은 최고인민법원이 심사비준한다.

제200조: 중급인민법원이 사형으로 판결한 제1심 사건으로서 피고인이 상소하지 않을 경우 고급인민법원이 재심사한 후 최고인민법원에 보고하여 심사비준을 받아야 한다. 고급인민법원이 사형판결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판(自判)하거나 다시 재판하도록 반송할 수 있다. 고급인민법원이 사형으로 판결한 제 1심사건으로서 피고인이 상소하지 않은 것과 사형으로 판결한 제2심 사건은 다 최고인민법원에 보고해 심사비준을 받아야 한다.

제201조: 중급인민법원이 집행유예2년부 사형으로 판결한 사건은 고급인민법원이 심사비준한다.

제202조: 최고인민법원이 사형사건을 재심사하고 고급인민법원이 집행유예부 사형사건을 재심사할 때에는 재판원 3명으로 합의정을 구성하여 진행해야 한다.”

신씨는 중국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사형재심절차를 모두 거쳤다. 만 4년 동안 시간을 끈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조사과정에 고문 같은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는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현재 고문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공안요원들이 피의자들을 다반사로 고문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공안요원이 직접 손을 보지 않고, 다른 범죄자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가 된 피의자를 구치시설에 수용할 때, 같은 방을 쓰는 범죄자 가운데 최고 선임자에게 ‘교육’좀 시키라고 주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선임자 등 몇몇이 나서서 문제의 피의자를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는 식이다.

변호사 도움 거의 못받아

또 하나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변호사의 조력을 충분히 받았느냐는 점이다. 하얼빈 현장에서 신씨 사건을 맡았던 조선족 변호사를 수소문했으나, 끝내 이 변호사를 만나지 못했다.

다만 신씨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그다지 실력이 없는 변호사였고 그나마도 신씨 사건이 돈벌이에 도움이 안돼 다른 일을 알아보러 몇 달 전에 하얼빈시를 떠나 행적이 묘연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변호사의 행적을 미루어 짐작건대 신씨 등은 변호사의 조력을 거의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자본주의 국가 수준의 변호사 활약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총살형의 비인도성 문제를 캐내보려고 시도했으나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중국에서는 총살형이 흔한 일이었다. 중국의 처형방식은 한국처럼 교수형이 아니라 총살형이다. 과거에는 그 횟수가 지금보다 잦았고 대상자도 많았으며 공개총살 비율도 높았다.

1983년 하얼빈시에서 사형수 70여명을 트럭에 태우고 시내를 한바퀴 돌리면서 구경을 시킨 뒤 무더기로 총살한 사건은 아직도 하얼빈 시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중국의 총살 제도에서 특기할 점은 총살자 가족으로부터 총알값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중국 시민들은 총살형을 어릴 때부터 구경해온 일반적인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 사람들이 총살형의 구체적 집행과정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만큼 공개총살이 잦았고, 특별히 희안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건 내용과 재판과정 등을 확인한 뒤, 신씨 등이 하얼빈 현지에서 거쳐간 현장을 되밟기로 했다. 먼저 히로뽕 제조현장. 중국측 사건 기록에 따르면 이들이 히로뽕을 제조한 현장은 하얼빈시 다오와이취 쑹푸전 사퉈쯔춘 (道外區 松浦鎭 沙子村) 동쪽 2km 지점의 한 3층집이었다. 하얼빈시 중심부에서 지도를 보고 자동차를 달린 지 1시간 정도, 예상대로 제조현장은 시외곽이었다.

하얼빈시의 북쪽을 동서로 흐르는 쑹화강(松花江)이 나왔다. 목적지는 이 강을 건너서 더 북쪽이었다. 겨울 쑹화강은 물이 말라 강같은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강을 건너니 완전히 시골이었다. 간간이 큰 기업들의 여름 휴양소로 쓰이는 건물이 보일 뿐, 논밭과 농촌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조금 더 달리니 시골장터가 나왔다. 닭고기, 거위고기, 돼지고기 등과 갖가지 채소를 파는 농민들이 장터를 메우고 있었다. 차유리를 내리고 사퉈쯔춘을 물으니, ‘저쪽으로 가라’고 손짓들은 하는데, 제대로 알고 하는지 취재차는 비슷한 구역을 계속 맴돌다가 겨우 사퉈쯔춘을 찾았다.

이곳은 철도가 동네 외곽을 지나가고 있었다. 철도 건널목에서 조금 내려오니 동네 이름을 새긴 표석이 있다. 표석에 붉은 칠을 한 음각 글씨로 ‘道外區 松浦鎭 沙子村’이 선명하게 새겨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제조현장을 찾기가 힘들었다. 주민들에게 물어보았으나 4년 전 일이라, 비슷한 집들이 모여있는 구역은 알지만 정확한 집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구역만 가보기로 했다. 제조현장 주변은 옥수수밭이 펼쳐진 가운데 창고 같은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사진 참조). 정확한 집은 찾지 못했지만 이곳이 제조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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