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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황제’ 김운용 날개 꺾인 30년 신화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태권도 황제’ 김운용 날개 꺾인 30년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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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엄운규 부원장은 “나는 합의문에 대해 보고받은 적이 없다. 9월3일에서야 합의문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 김회장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김회장은 ‘합의문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만일 김회장이 합의문을 보고받고도 그런 인사를 했다면 잘못이다. 하지만 김회장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임윤택 사무차장도 “합의문은 모른다. 11월 세계대회를 준비하려다 보니 실무자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경험이 많으니까 불러들인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때부터 태권도계에서는 임윤택 사무차장과 김회장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으며, 여기에 김회장의 아들 정훈씨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정훈씨는 김회장이 곤욕을 치른 솔트레이크시티 추문의 당사자이기도 해서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정훈씨가 실질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E-TKD사는 2001년 3월 세계태권도연맹, 대태협, 국기원 등 김회장이 이끌고 있는 3개 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 사업권을 따낸 일도 있다. 또한 국기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정훈씨가 김회장의 지원으로 국기원 이사에 임명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정훈씨와 관련된 루머들은 김회장의 도덕성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겼다.

2001년 10월21일. ‘운동연합’은 국기원에서 첫 집회를 열고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임윤택 사무차장은 100여 명의 젊은이를 동원해 시위대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운동연합측이 “태권도를 망친 김운용 엄운규 임윤택 송봉섭을 처단하라”고 외치면, 정장차림의 청년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집행부를 장악하기 위해 교수나 학생들을 선동하는 특정인은 물러가라”고 맞섰다.

10월22일. 태권도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김회장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많은 태권도인들은 이날을 계기로 태권도계의 내분이 진정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어렵게 만들어진 자리에서 김회장은 또 한번 결정적인 패착을 두고 말았다. 태권도인들의 정서와 크게 어긋나는 발언들을 쏟아낸 것이다. 11월5일자 ‘태권도신문’은 기자회견 내용을 대서특필하면서 김회장의 ‘돌출발언’을 제목으로 올렸다.

“다 밥먹고 살게 해주고 태권도과를 만들어 교수도 시켜주고”



“내실을 구상중인데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똥물이 튀는 바람에”

“임윤택씨는 죄인도 아닌데 사무직원 쓰는 것까지 궁시렁거려”

한마디로 태권도인들의 문제제기를 무시해버린 셈이다. 다함께 잘해보자고 설득해도 모자랄 판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대꾸한 거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태권도계의 반발은 커지고, 1주일 뒤 김회장은 생애 최대의 치욕을 겪게 된다.

10월29일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파크텔 3층 회의실에서 대태협 전체 이사회가 열렸다. 김회장이 입장하기 전부터 설전이 벌어질 만큼 분위기는 긴장돼 있었다. 다급해진 김총재가 이사회 진행을 포기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나자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일부 사범들은 김회장의 차량을 에워싸고 태권도계에서 물러나라고 소리쳤다.

김회장은 10월31일 제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연맹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총재에 재추대됐다. 하지만 이번 총회는 다른 때와 달랐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무엇보다 차기 세계대회 장소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나타난 유럽세의 결집현상을 주시하는 사람이 많다. 세계연맹 김철오 사무차장은 “김회장이 안팎으로 고전하는 것을 보고, 유럽 국가들이 자신감을 갖는 듯했다. ‘한국에는 ‘포스트 김운용’이 없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대로 가면 주도권이 유럽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제주도 총회 직후 김회장은 조심스럽게 대태협 회장직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쳤다. 김회장은 이종우 엄운규 부원장, 이금홍 세계연맹 사무총장 등과 함께한 자리에서 “내년 1월에 총회가 있으니까 그때까지 이부원장과 엄부원장이 잘 맡아달라. 총회 때까지 좋은 사람을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부원장은 거부의 뜻을 밝히고 오히려 세계연맹 부총재직까지 사임했다. 엄부원장도 “나는 지금 퇴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맡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것으로 미루어 김회장은 당시 대태협 회장에서 물러나더라도 누군가를 ‘대타’로 내세우고 싶어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1월1일부터 7일까지 열린 제15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 태권도의 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여자는 금메달 6개를 휩쓸며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지만, 남자는 2명이 우승하는 데 그쳤다. 임윤택 사무차장은 “세계적으로 전력이 평준화된 결과”라고 지적했지만, 김철오 사무차장은 “외국 코치들이 ‘한국 태권도인들의 감정싸움에 왜 한국선수가 희생돼야 하느냐?’고 묻더라”며 판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국가대표 선발전부터 심판판정에 불만을 터뜨려온 용인대와 경희대측도 승부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 대학에서는 이번에 5명이 출전했는데, 금메달을 따낸 선수는 단 1명이었다.

김운용은 물러나지만…

김회장의 30년 아성에 도전하는 세력이 단지 태권도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년 7월 IOC위원장 선거를 계기로 김회장의 국제 스포츠계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선거에서 완패했을 뿐만 아니라, 선거운동 과정에서의 시비와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매너 등은 김회장에게 치명타로 작용했다.

정치권에서도 김회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사롭지 않다. 일부에서는 박정희정권 때부터 정치권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온 김회장의 ‘줄타기’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 김회장의 나이가 71세이니 만큼 이제 은퇴할 때도 됐지 않았냐는 얘기도 있다. 이와 관련 11월6일 남궁진 문화관광부 장관이 체육단체의 구조개편을 시사한 부분은 주목할만하다.

11월15일 오전 11시. 국기원에서는 제10회 태권도 한마당이 열렸다. 태권도 한마당의 본래 취지는 국민들에게 태권도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데 있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잔치판의 분위기는 살벌하기만 했다. 국기원 앞쪽에는 노란 점퍼 차림의 태권도 사범들이, 뒷마당에는 붉은 머리띠를 두른 ‘운동연합’ 회원들이 진을 쳤다. 11시20분 ‘운동연합’ 대표자들이 엄운규 부원장실로 몰려가면서 국기원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운동연합’은 국기원 복도를 점거했고, 임윤택 사무차장은 태권도 사범들을 투입해 ‘운동연합’ 회원들을 끌어내려 했다. 몸싸움을 벌이던 검정색 양복 차림의 청년들은 운동연합 소속 대학생 2명의 목덜미를 잡아챈 뒤 체육관 바닥에 쓰러뜨려놓고 “이 놈들이 경기장에 들어왔다. 빨리 사진 찍고 경찰에 연락하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양측의 세(勢)대결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을 즈음, 사태를 반전시키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김운용 회장이 국기원 측에 대태협 회장과 국기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온 것이다. 곧이어 “물러나는 것은 내 마음”이라고 버티던 엄운규 부원장도 “국기원 이사직 사표를 썼다. 일주일에서 열흘쯤 신변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운동연합’측의 퇴진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인 셈이다.

‘운동연합’이 퇴진을 요구했던 인사는 모두 네 명. 김회장과 엄부원장이 사퇴함으로써 임윤택 사무차장과 송봉섭 회장만 남게 됐다. 이와 관련 ‘운동연합’ 양진방 교수는 “두 사람은 워낙 비리가 많은 사람이라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이미 검찰고발을 해놓았다. 더 추악해지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길 바랄 뿐이다. 태권도 개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임사무차장과 송회장은 ‘운동연합’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임사무차장은 “순수한 학생들을 강제동원해 태권도계를 말아먹으려는 자들의 불순한 음모다. 나를 모함하는 사람들에 대해 법적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송회장도 “나는 절차에 따라 선출된 사람이다. ‘운동연합’이 무슨 자격으로 서태협 일에 관여하느냐?”고 주장했다.

2월부터 시작된 태권도계의 분쟁은 결국 30년간 절대권력을 행사해온 김운용 회장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 태권도가 시련을 딛고 ‘국기’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는 데는 좀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1년 가까이 계속된 싸움은 많은 태권도인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김운용 없는 한국 태권도’. 그것은 태권도인들에게 하나의 실험이며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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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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