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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6

무슬림 총단결·화해의 축제 라마단

무슬림 총단결·화해의 축제 라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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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5주’의 세번째는 이른바 ‘자카트’라고 하는 종교부금(宗敎賦金)이다. 원래 ‘자카트’는 아랍어로 ‘순결’, ‘정화’란 뜻으로서 무슬림들의 모든 재부는 이 ‘자카트’를 납부한 후에야 ‘순결’하다는 데서 연유한 말이다. 이러한 종교부금은 이슬람의 재부관(財富觀)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모든 재부의 최종 소유자와 주재자는 알라다. 개인의 재부는 알라로부터 잠정적으로 사용권이나 넘겨받았을 뿐, 소유권은 알라에게 속한다. 따라서 그 재부의 일부는 갹출해서 알라가 원하는 일에 써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인 알라에 대한 응분의 보답이다. 그래서 이 종교부금을 무슬림들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종교적 의무의 하나로, 그것도 예배와 더불어 주요한 의무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5행’으로서의 자카트에는 의무적 자카트와 자발적 자카트(쏴다까)가 있는데, 흔히 자카트라고 하면 의무적 자카트를 말한다. 쏴다까는 문자 그대로 자발적으로 내는 종교부금이다. 이러한 자발적 부금은 사원에서 예배할 때나 공중모임 등에서 수시로, 액수의 제한 없이 헌사한다. 일종의 헌금이나 자선금에 해당하는 희사(喜捨)인 셈이다. 비록 자발적이라고는 하지만 돈독한 무슬림들은 그것 역시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카트 못지 않게 성의를 다한다. 쏴다까도 자카트와 비슷한 용도에 쓰인다.

이슬람 초기에는 자카트가 주로 빈민들에 대한 구제용으로서 빈부격차를 줄이고 사회적 대립과 모순을 해결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하여 빈민계층의 호응을 얻었으며 그들을 교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아직 이슬람이 입지를 다지지 못한 초기(메카시대)에는 납부를 자발심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메디나로 성천하여 이슬람공동체를 건설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슬람이 뿌리내리기 시작하고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성천한 다음해(623년)에 무함마드는 자카트를 종교적 의무로 규정하고 구체적인 시행책을 마련했다. 경전 ‘꾸르안(주로 메디나편)’에는 무려 80여 군데에서 자카트를 언급하고 있다.

무슬림들이 통화, 가축, 과실, 곡물, 상품, 매장자산(광산 등) 같은 재부를 1년 이상 소유하면 반드시 일정한 비율의 자카트를 물어야 한다. 납부율은 구체적 대상에 따라 다르다. 예컨대 일반 무슬림들은 연간 수입의 2.5%를, 곡물인 경우 천수답이나 관개답이면 10%, 그외는 5%를, 매장자산은 20%를 납부해야 한다. 미성년이나 정신 이상자, 가난한 자, 노예 등은 자카트에서 제외되며, 이슬람국가에 살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납부할 의무가 없다.



단 이러한 종교인들이 과거에는 인두세를 물어야 했고, 현대에는 조세제도에 따른 세액 부담을 지게 된다. 자카트는 한 해에 한 번씩 내는데, 과거에는 주로 사원이나 종단 같은 종교기관에 맡겼으나, 오늘날은 정부 내에 자카트를 비롯한 종교기금(아우까프)을 전문적으로 관리·운영하는 기관을 두어 거둬들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은 의무성이 약화되어 자유헌납의 형식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시대 순응적인 변화라고 하겠다.

자카트는 가난한 순례자나 결식자, 빈민, 채무 환급 불능자, 가난한 여행자, 새 입교자, 자카트의 관리자 등의 구제에만 사용된다. 사원이나 학교 건설 등에는 사용할 수 없고, 가족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줄 수 없으며, 유산으로 남길 수도 없다. 이와 같이 자카트는 대체로 빈곤한 자들에 대한 구제에 주로 쓰이기 때문에 혹자는 자카트를 ‘구빈세(救貧稅)’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구빈세와는 성격이 크게 달라서 적절한 지칭은 아닌 성싶다.

종교적 의무로서의 ‘5행’의 네번째는 금식(쏴움)이다.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 하는 일이다. 그만큼 알고 싶은 것이 많고, 또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해마다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월 한 달 동안은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먹거나 마시는 것이 일체 금지된다. 담배를 피워도 안되고, 부부관계도 금기사항이다. 대낮에 기온이 섭씨 40~5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는 것은 얼핏 보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일을 거뜬히 해내는 무슬림들을 보노라면 측은하기도 하지만, 한편 거룩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간에 해내기가 벅찬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비록 종교적인 의무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슬람 특유의 융통성과 관용성을 반영하여 임신부나 해산모, 생리중의 여인, 노약자, 환자, 어린이, 정신이상자는 금식에서 제외된다. 여행자에 한해서는 금식을 할 수 없다면 후일로 미루되, 금식을 깬 날짜만큼 따로 해야 한다. 그밖에 입 놀림과 관련해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고는 있으나 대략 이렇게 합의를 보고 있다. 즉 물로 이를 닦거나 입을 헹구는 일, 배우자나 아이들에게 하는 가벼운 입맞춤은 허용한다. 침을 삼키는 문제는 지금까지도 왈가왈부하고 있다.

이렇게 ‘가혹’하리만치 어렵고, 게다가 단식으로 인한 부작용(예컨대 노동시간의 단축 등)도 없지 않은데, 굳이 실천의무로까지 규정하여 결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이에 대한 좋은 대답이 있다. 1958년 이라크에서 군사쿠테타가 일어난 후 감옥에 수감된 한 정치지도자가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금식은 개인적으로 알라에 대한 순종과 그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정신적 훈련이며, 사회적으로는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에 대한 동정과 모든 무슬림들의 연대의식과 동등의식을 권장하는 집단훈련이다.”

요약하면 금식이야말로 무슬림들에게 필요한 정신적 훈련이며 사회적 훈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금식은 개인의 의지를 강화하는 도덕적 훈련이며,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자제력을 키우고 굶주림과 목마름 등을 이겨내는 육체적 훈련이기도 하다. 일부 학자들은 신진대사를 촉진한다는 등 금식이 가져오는 의학적인 효과도 빼놓지 않는다. 요컨대 금식은 여러 모로 유용한 정신적 및 육체적 훈련이다. 불교나 기독교 등 여러 종교들에서 많은 고승대덕(高僧大德)들이 이와 유사한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이치에서일 것이다.

‘10배 보상을 받는 선행’

바로 이 때문에 이슬람교에서는 금식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일찍이 교조 무함마드는 “누가 알라를 위해 금식을 하루 하면 알라는 그의 몸을 불지옥으로부터 70년 멀리하게 할 것이다” 하면서 금식은 알라로부터 ‘10배의 보상을 받는 선행’이라고 강조했다. 아마 이러한 가르침을 깊이 간직하고 있기에 무슬림들은 그토록 어려운 훈련도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리다.

이슬람에서의 금식은 유대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무함마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왕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모세의 명에 따라 금식을 하는 것을 보고 이슬람력 1월10일(아슈라) 하루를 금식일로 정한 바 있다. 그러다가 메디나에 성천한 다음해(623년)에 이슬람력 9월 한 달 동안을 금식월로 선포하고 종교적 실천의무의 하나로 굳혔다. 비록 유대교의 영향을 받아 설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이 똑 같지는 않다. 금식 기간이 자기 성찰과 반성의 계기이기는 하지만 슬프거나 우울한 기간은 아니다. 오히려 무슬림들은 금식월을 축제의 달로 경하하고 있다.

이 한 달은 신성한 달이다. 이 달만 되면 ‘뽑아 들었던 칼을 칼집에 집어넣는다’고 한다. 이 달에는 서로가 말다툼도 삼가며 덕담만 한다. 유난히 인사말이 길고 야화(夜話)가 오손도손하다. 하루의 금식을 깨는 파재식(破齋食, 피트르)은 여러 사람이 사원에 모여 함께 하고, 집집마다 음식을 돌리면서 형제애를 과시한다. 한마디로 평화롭고 즐거운 한 달이다. 이런 달에 뽑았던 칼을 집어넣기는커녕 도리어 결단을 내겠다고 악을 쓰며 더 높이 휘두른다면 그것은 이유 불문하고 무슬림들의 정서를 거슬리는 일이 될 것이다.

무함마드가 굳이 이슬람력 9월인 이 라마단 월을 금식의 달로 정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달 중에 사람들의 길잡이가 될 ‘꾸르안’을 내렸기”(2:53) 때문이다. 내린 것은 경전 전체가 아니고, “읽어라! 창조주이신 너의 주의 이름으로, 그분께서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라는 알라의 최초 계시다.

이 첫 계시가 내린 그 밤을 ‘권능의 밤’이라고 하는데, 이 밤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밤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날 밤인지는 아직까지 확실치 않다. 하순 마지막 3개의 기수(25, 27, 29일)날 밤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대체로 학자들은 27일 밤으로 보고 있다. 이 밤이 끼어 있는 하순 10일간은 금식월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기간으로 간주하고 있다. 라마단 월의 시작과 끝, 바꾸어 말하면 금식의 시작과 끝은 초승달의 출현에 의해 결정된다. 두 사람 이상이 초승달이 떠올랐다는 것을 확인하면 곧 금식을 시작하고, 마찬가지로 한 달 후에 새 초승달이 떠올랐다는 것을 확인하면 금식을 끝내는 것이다.

이슬람에는 이러한 의무금식 외에 자발적으로 행하는 금식(나팔)도 있다. 자발금식도 그 목적은 의무금식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자의에 따라 이슬람력 1월10일이나 8월15일 같은 특정한 기념일에 하루 이틀 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발금식은 파재절과 희생절 같은 명절 당일이나 이런 명절 뒤 3일 내에는 삼간다.

운석을 신성시하는 메카 참배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종교적 의무는 성지순례(핫즈)다. 어떠한 종교든지 발생지가 있는 한, 그곳이 그 종교의 성지가 되어 신자들, 특히 성직자들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순례하는 것은 상례다. 그러나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종교도 성지순례를 신자들이 수행해야 할 하나의 종교적 의무로 못박고 있는 종교는 없다. 한편, 멀고먼 성지 메카를 순례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탈 것이란 고작 낙타나 말밖에 없었던 옛날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이슬람의 ‘실천5주’ 중에서도 성지순례는 가장 힘든 실천사항이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비록 종교적 실천의무로 규정은 하고 있으나, 건강과 재정 형편이 허용되는 성년 무슬림들이 일생에 한 번만 해도 그 의무를 수행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실천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이슬람에만 그것이 생겨났고 유지되고 있는가? 그것이 갖는 의의는 과연 무엇일까? 누구나가 던지는 질문이다.

먼 옛날로부터 성지순례는 신앙을 중시하는 셈족들의 관행이었다. 이슬람이 출현하기 이전에 지금의 순례지인 메카의 금사(禁寺) 안에 있는 석전(石殿, 카아바, 일명 ‘알라의 집’)은 인근 꾸라이쉬 부족을 비롯한 아라비아반도 유목민들의 성소로서 순례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630년 메카에 무혈입성한 무함마드는 석전 주위의 여러가지 우상들을 제거하고 그곳을 이슬람의 순례성지로 선포했다. 2년 후에 그곳을 다시 찾은 그는 석전을 참배하고 메카 주위의 여러 곳을 두루 돌아보고나서 유명한 고별강연을 했다. 그가 참배하고 돌아본 그 내용이 그대로 순례의 의례와 절차 및 순서로 굳어져버렸다.

무함마드가 순례를 종교적 의무로 규정한 목적은 한마디로 이슬람의 일체성과 유대를 유지·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역설적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어려운 순례가 종교적 의무로 꿋꿋이 지켜져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체성과 유대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이슬람이란 세계적 거대 종교가 갖는 의미를 재삼 음미해 보게 된다.

한 해의 순례자는 19세기 말엽의 5만~15만에서 1990년대는 200만~250만으로, 1세기 동안 약 40배로 늘어났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이 숱한 무슬림들이 꼭같은 의상으로 갈아입고 한 목소리로 알라의 계시를 되뇌면서 그토록 부대껴도 불평 한마디 없이 함께 어울려 행사를 치르고 희생물을 나눠 먹는다. 그들 서로에게 어떤 일체감이나 유대의식이 없었던들, 이 모든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는 이 엄청난 순례는 순례자들 스스로가 ‘범세계적인 무슬림들의 모임을 만듦으로써 정규적인 국제회의’가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으며, 서구 이슬람 연구가인 루이스(B. Lewis)는 유럽세계에서는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순례야말로 ‘가장 중요한 이슬람문명의 요소’라고 평가했다.

바로 이러한 의의 때문에 무슬림들은 순례를 가장 중요한 실천의무로 간주하고 그 수행을 최상의 영광과 보람으로 삼는다. 순례자의 이름 앞에는 반드시 순례를 수행한 사람이란 뜻의 경칭 ‘핫-즈’자를 붙인다. 이 경칭은 ‘대통령’이란 직함 앞에 놓으리만치 최고의 직함이다. 순례자가 돌아오는 날에는 온 마을이 대축제를 벌이며, 그의 집은 흰 색칠로 단장한다.

순례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규정된 기간(이슬람력 12월8일부터 10일 사이)에 규정된 절차를 수행한 정규적인 순례(보통 핫즈, 일명 ‘대순례’)와 규정된 기간 외에 대체로 규정된 절차대로 행하는 순례(오므라, 일명 ‘소순례’), 임의의 기간에 몇 가지 절차만 밟는 순례(지야라), ‘소순례’를 한 후에 얼마 있다가 ‘대순례’를 행하는 순례(분할순례), ‘소순례’ 이후 곧바로 이어 ‘대순례’를 행하는 순례(연속순례) 등이 있다.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일수록 분할순례와 연속순례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순례자는 세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순례 의지를 가다듬은 후 메카 가까이에서 평복은 벗고 계복(戒服, 이흐람), 즉 바느질을 하지 않은 두 조각의 흰 천으로 몸의 아래위를 가리운 채 성지에 들어간다. 순례 기간에는 머리칼을 자른다든가 손발톱을 깎을 수 없고, 향수를 바르거나 보석으로 치장할 수 없으며, 성관계나 언쟁, 험담을 해서는 안된다. 또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다쳐서는 안되며 희생물을 제외한 어떤 생명체도 죽일 수 없다. 그리고 순례기간 내내 순례자들은 “주여 내가 왔나이다, 명을 받들어 왔나이다”라는 존명사(尊命詞)를 쉬지 않고 되뇌인다. 이 모든 것은 정결한 마음으로 오로지 순례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개 3일 동안에 진행되는 순례(대순례)의 절차는 고정되어 있다. 우선, 메카의 금사(마쓰지드 하람)에 들어서서 석전(카아바)을 중심으로 시계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7번 참배하면서 돈다(톼와프).

금사란 이슬람의 성지 메카의 중심부에 있는 이슬람 제1의 신성한 사원이다. 이슬람 이전에도 이곳은 노천 예배장소였다. 그러나 구조물이라곤 석전뿐이었다. 그러다가 무함마드가 메카를 수복하고 이곳을 금지구역으로 선포했다. 즉 비무슬림의 진입과 수렵, 살생, 싸움질 등을 금지시켰다. 이로부터 금사란 이름이 나왔다.

그간 세 차례의 증수를 거친 이 사원의 총면적은 무려 18만㎡나 되어 5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할 수 있다. 출입구만 해도 64개나 된다. 순례자들은 석전을 참배하면서 석전 안에 놓여 있는 흑석(黑石)에 입맞춤하거나 손으로 만져보고자 한다. 그러나 숱한 참배자들로 붐비다보면 어떻게 할 수 없어 멀리서 손짓만 하기도 한다.

석전(일명 ‘알라의 집’, 바이툴 라)이란 금사의 중정(中庭)에 있는 남북 길이 12m, 동서 너비 10m, 높이 15m의 입방체 돌덩어리를 말한다. 이슬람에서는 가장 신성한 곳으로서 무슬림들은 어느 곳에서나 이 석전의 방향을 향해 예배하고, 순례도 이 석전 주위를 도는 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석전 참배가 곧 성지 순례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다. 흑석은 이 석전의 동쪽 모퉁이에 있는 자그마한 검은 돌덩이다. 검은 면에 약간 붉은 기가 도는 매끌매끌한 타원형 돌인데, 길이는 약 30cm이다. 전설에 따르면 천당에서 떨어진 돌이라고 하여 신성시하는데, 사실은 운석(隕石)이다.

전통과 현실의 갈등

참배한 후에는 석전 동켠 가까이에 가서 ‘아브라함의 발자국’이 있다는 곳에서 두 번 궤배를 하고 남쪽에 있는 성수(聖水)인 잠잠 샘에 가서 물을 마신다. 전설에 의하면 이슬람교가 출현하기 이전에 선지자 아브라함의 처 하갈과 아들 이쓰마일이 이곳에 왔는데, 갈증이 난 이쓰마일이 울면서 발로 땅을 굴렀더니 그곳에서 바로 이 샘이 솟아났다고 한다.

지표에서 약 4m 지점에서 솟아나는 이 샘은 수량이 풍부하고 약간 염기가 있기는 하지만 맑고 수질이 좋다. 무슬림들은 이 샘물이 신의 은총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순례시 실컷 마시고 나서는 물을 떠가지고 고향에 가서 선물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천을 이 물에 적셨다가 염포(殮布)로 쓰기도 한다.

이어 금사의 동편,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아비 까비스 산에 간다. 서로 남북으로 상대해 있는 솨파와 마르와라고 하는 두 봉우리 사이(약 420m)를 7번 질주(싸이)한다.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처 하갈이 수원(水源)을 찾기 위해 이 두 산봉우리 사이를 7번이나 왕복했다고 한다. 이것이 이런 질주의식을 갖게 된 유래다.

참배한 다음날에는 메카 동쪽 7km 지점에 있는 미나 계곡에 가서 숙영한다. 그 다음날 역시 메카 동쪽으로 25km 떨어진 해발 228.6m의 지점에 있는 성산 아라파트 산에 가서 각종 행사를 치른다. 이날 행사가 순례행사의 절정을 이룬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담이 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산에서 아내 이브와 재회했다고 한다.

북측에 높이 30m의 라흐마란 돌산이 있는데, 632년 무함마드가 바로 이 돌산 위에서 순례 고별연설을 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하루를 ‘아라파트일’로 정하고 이곳에 묵는다. 이것을 ‘아라파트 체류’라고 한다. 돌아올 때는 메카에서 12km 떨어진 무즈다리파 산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자그마한 돌멩이 몇 개씩을 주워가지고 와서는 미나 계곡 부근의 아끄바 돌산에 세워진 3개의 마귀돌기둥에 대고 마구 던진다. 이 돌기둥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쓰마일(기독교 성경에서는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 유혹한 사탄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돌을 던져 저주를 표한다고 한다.

다음날은 희생절(이드 아드하)이다. 원칙상 한 사람이 양 한 마리나 7명이 소 한 마리 혹은 낙타 한 마리를 잡는다. 네 발 달린 짐승(돼지나 개는 제외)을 제물로 바치는 이 의례는 경전 ‘꾸르안’(37:97-113)에서 이야기하다시피 선지자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다가 대천사 가브리엘의 중재로 양을 대신 바쳤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잡은 고기는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한다. 이것으로 순례행사는 마무리된다. 그제서야 수염이나 손발톱을 깎는다. 또 어떤 순례자는 성이 차지 않아 다시 금사를 찾기도 하고, 멀리 무함마드의 묘가 있는 메디나로 순례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상에서 이슬람교가 종교적 의무로 제시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살펴봤다. 이 ‘실천5주’가 이슬람 전반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란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속에 이슬람교의 신앙이나 제도, 그리고 무슬림들의 가치관이나 생활관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세세한 의식이나 절차 같은 것을 언급했다. 여기에서의 요체는 이러한 구체적인 고찰을 통해 이슬람교와 무슬림 고유의 내면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경전의 계시나 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근거로 하여 1400여 년간 굳어질 대로 굳어진 전통이고 관행이다. 그러나 이슬람사회도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현실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근·현대에 유입된 서구문명이 이슬람사회의 전통 및 현실과 융합하거나 충돌하면서 일종의 아노미(사회도덕적 혼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교적 의무로서의 ‘실천5주’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직장인들은 하루 다섯 번씩의 예배를 잘 지키지 않고 있으며, 종교부금도 현대적인 조세제도에 밀려 변형이 불가피하다. 그리하여 이러한 전통과 현실의 갈등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 이슬람세계의 현실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신행(信行)을 포함해 모든 사회문제의 포괄적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이슬람은 그 고유의 중용사상이나 관용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전통을 끈끈히 이어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신동아 200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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