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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가수들 태반은 음치다

음치치료사 이병원이 말하는 한국가요계

  • 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유명 가수들 태반은 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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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사업을 패스트푸드점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탕주의의 장사꾼 놀음으로는 도저히 비틀스와 같은 스테디셀러를 생산할 수 없어요. 요즘 우리 대중가요의 생명력은 길어야 3개월입니다. ‘초로 가요’라고 할 정도입니다. ‘반짝 가요’에 머문다는 거죠. 음반의 생명력이 하루살이보다 짧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다고 보십니까?

“방송 메커니즘 때문이죠. 추잉검처럼 재빨리 단물만 빨아먹고 다른 것을 취하는 것 말이에요. 방송 홍보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가수들이 자신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한 채 방송이 요구하는 표피적 피상적 노래 솜씨만 보이면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래서 외피에만 치중한 나머지 남이 대신 불러준 노래에 립싱크만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거지요. 이러니 가수 중에 음치가 많을 수밖에요.”

그는 가요 비평가가 부족하고 비평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마이클 잭슨에게도 노래선생이 있습니다. 마이클 볼튼이나 셀린 디온 역시 노래선생을 두고 부단히 노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성을 볼 때 음악교사를 별도로 둔다는 게 사치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철저한 프로정신이 없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톱스타는 자신이 왕이고 황제예요. 감히 어느 누구도 얼씬거릴 수가 없습니다. 노래 잘 부른다는 조용필도 단점은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본인도 그러려니와 비평가들도 제대로 지적을 하지 못해요.”



-조용필도 단점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한국에서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조용필을 들고 싶습니다. 가창력, 기교, 성량 면에서 그를 따를 가수가 없다고 보는데 그런 그에게도 단점이 있다고 하니 다소 충격입니다.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견고한 아성을 쌓은 가수를 시쳇말로 ‘뽀개는’ 것은 아닙니까.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와 못 부르는 가수를 구체적으로 구별해 주었으면 합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라기보다 국민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를 따지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 이런 기준에서 조용필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있죠. 다음으로 나훈아, 현철, 태진아, 송대관, 주현미 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젊은 가수들로는 HOT, SES, 핑클 등이 그런 가수이지요. 젊은 가수들 중에 음악성도 있고, 전문성도 갖고 있는 박정현, 박완규, 김조한 등이 대형가수로 클 재목들입니다.”

-국민이 애창하는 대중가요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뭐니뭐니해도 ‘남행열차’죠. 그리고 ‘소양강처녀’, ‘허공’, 현철과 주현미의 노래들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노래들은 우리 정서에 호소하고 있어요. 흥겨운 듯하면서도 가슴을 적셔주는 우수어린 멜로디들이죠. 특히 40, 50대 이상이 좋아하는 트로트는 20, 30대들도 모임에서 즐겨 부릅니다. 어려운 시절, 처해있는 상황이 답답할 때 이런 단순한 구조의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지금도 느끼고 있고, 또 부르기 편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가요는 사회적 환경, 생활수준과 늘 궤를 같이합니다.”

-중년 여성들이 노래방을 많이 찾는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일까요.

“주부들에겐 대체로 독자성이나 독립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노래방에 가면 나만의 특성을 나타내지 않아도 됩니다. 함께 노래부르면서 정서를 공유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만의 개성’을 강조하는 꽃꽂이나 집필, 영어회화 익히기 등을 외면하고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익명문화’에 빠져들어 자신을 묻어버리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다 뒤늦게 친구들을 만나지만 허망한 생각이 들 뿐이죠. 그래서 노래방이 도입된 초기엔 주부들 차지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노래방을 더 자주 간다고 보는 게 옳습니다. 제 사무실을 찾는 음치들도 처음엔 여성이 70%였으나 지금은 남성이 70%입니다. 노래의 효용성을 따질 때 여성보다 남성이 더 절실한 입장이 아닌가 합니다.”

무너지는 음악간 경계

-대중음악의 세계적 트렌드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클래식과 팝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팝이 주는 감흥도 클래식에 버금갑니다. 재즈의 음악적 깊이는 성악 이상이라고 봅니다. 현재 서구에선 클래식 전공자 중에서 재즈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즈는 현대의 고전입니다. 학문적 깊이에서 뿐 아니라 음색에서 단연 고전이 되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대중가요를 부르면 천박하거나 지적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기 일쑤입니다. 지적 허영심이 만들어낸 관념으로 한마디로 허구지요. 대중가요든 뽕짝이든 왜색가요든 좋은 것은 좋은 겁니다.”

이씨는 기존 음악계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음악계의 앙팡 테리블이자 반항아를 자처하는 인상을 준다. 그것은 그의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아보인다. 그렇다면 이병원은 어떤 사람일까.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갈 결심을 한 그는 정규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생각에 학업을 포기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기타를 잘쳤다. 이는 친형 이병형의 영향이 크다. 색소폰 주자 이병형은 ‘라스트 챈스’ 연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학교에 가면 10개가 넘는 과목을 마스터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음악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숙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것을 하려다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하자 당장 먹고살 방편이 막막했다. 그래서 종이가공 공장에 들어가 종이를 나르는 짐발이 노릇을 했다. 음악에 대한 갈증에 목말랐던 그는 그 생활에 곧 염증을 냈다. 종이가공 공장을 그만두고 18세 때 서울 석관동에 기타교실을 차렸다. 보증금 30만원을 주고 빌린 15평짜리 기타연습소가 그의 첫 음악교실인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비틀스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헤이 주드’ ‘오블라디 오블라다’ ‘렛잇비’ ‘예스터데이’ 등의 연주법을 익히기 위해 밤을 새운 적도 있어요. 그때 익힌 기타솜씨가 저의 가장 큰 밑천입니다.”

그후 그는 이글스와 맨해튼스의 음악에 푹 빠진다. 그때는 연주가로서 인생을 마감하는 게 목표였다.

“에릭 클랩튼이나 지미 핸드릭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기타 솜씨를 익힌다면 나도 한국에서 대가가 될 거라고 자부했습니다. 특히 저는 서양의 팝을 익히고 한국의 선율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면 서양사람들이 놀라 자빠질 음악적 진폭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 교포 출신의 팝가수 잭 리가 있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동양정신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기타교실만으로 그의 음악적 욕구가 충족될 수 없었다. 19세 때 그는 강원도 홍천강의 작은 섬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섬의 폐가를 보수한 뒤 도 닦는 기분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가지고 간 것은 기타 2대와 LP음반 500장, 오선지, 앰프가 전부였다.

참담한 실패로 끝난 첫 음반

6개월을 음악공부에 빠져 지내다 상경, 곧바로 그룹사운드 ‘미완성’을 결성한다. 그는 기타리스트였으나 싱어보다도 레퍼토리가 많아 노래도 자주 불렀다. 서울 무대는 역부족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주로 지방의 밤무대를 돌며 공연했다. 밤무대 공연을 통해 번 돈으로 24세 되던 해 첫 음반을 냈다. 하지만 ‘밤이 내린 설악’을 타이틀곡으로 한 이 음반은 대중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

“팔릴 수가 없었죠. 대중가요는 혼자 한껏 멋을 내는 게 아닙니다. 판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두지만 대중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홀로 마스터베이션을 한 꼴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밤이 내린 설악’을 불러주었다

단순 묘사로 이루어진 이 곡의 가사는, 듣는 이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 곡을 쓰기 위해 설악산을 집 삼아 수개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그런 가사로 노래가 뜨기를 기대한 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들인 노력에 비해선 졸작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노래가 뜬다고 보십니까?

“우선 메시지가 있어야죠. 시대적 상황과 대중이 공감하는 멜로디, 리듬, 가사를 갖춰야 노래가 뜰 수 있습니다. 음치클리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는 가능한 한 음치클리닉 쪽으로 인터뷰의 방향을 이끌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기회만 있으면 슬그머니 자신의 ‘업장’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 때문인 듯했다.

“국민가요 시대를 맞아서 저는 새로운 직업 장르를 뚫은 개척자입니다. 대학에 음치클리닉 과목을 설치하고 학원을 만들고 지도자 과정을 두어 음치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세계최초일 겁니다.”

이씨보다 먼저 시작한 1세대 노래교실 교사들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난처한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노래교실이라기보다는 동네사랑방이라고 불러야 옳을 겁니다.”

그는 나름의 노래교실 콘텐츠를 개발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자부한다.

“음치는 없다”

“근본적으로 음치는 없습니다. 음악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환경적으로 나온 돌연변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면 어떤 가수보다 노래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노래할 때 미적거리면 음치를 치료할 수 없어요. 내숭을 떠는 사람일수록 노래가 매끄럽지 못합니다. 자신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면 저도 모르게 음치 중병환자가 되고 말아요.

반대로 용기를 내 자신있게 밀어붙이면서 리듬, 박자, 음정을 익히면 누구나 ‘명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음치가 불러도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노래는 많습니다. 서투르고 위태위태하면서 넘어가는 노래는 기름됫박처럼 매끄러운 노래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맛깔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는 음치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 다섯 곡을 들었다. 노사연의 ‘만남’, 주병선의 ‘칠갑산’, 김수희의 ‘남행열차’와 ‘애모’, 그리고 김태희의 ‘소양강처녀’가 바로 그것. 이 곡들은 따라 부르기 쉽기 때문에 노래에 서투른 사람도 구성지게 부를 수 있다. 노래가 쉬우면 용기도 생겨, 음정이 다소 불안하거나 가사가 엉켜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다. 이런 노래로 연습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감이 붙게 돼 어느새 음치를 졸업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들 다섯 노래를 매일 열 번씩 열흘 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부르면 저절로 노래방 명가수 대열에 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추천한 노래 잘하는 법이다.

첫째, 의지와 자신감을 갖는다. 노래 부르는 행위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나도 잘 부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음악을 많이 들어라.

셋째, 음악을 듣되 편집해서 듣는 버릇을 기른다.

넷째, 자신있게 소리를 낸다. 노래를 못한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도 괴상한 소리로 치부하게 된다.

다섯째, 자신의 노래를 녹음해서 듣는다. 자기 목소리와 친해지려면 소리를 객관화해서 들어보는 것이 좋다.

여섯째,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소리를 내본다.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노래를 부르면 제 소리가 더욱 잘 들리며 선명하다. 좋은 소리가 나오므로 목소리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일곱째, 곡목 선택을 잘해야 한다. 편하고 쉬운 노래를 선택한다. 한 예로 북한 가요 ‘반갑습니다’나 ‘휘파람’도 스스로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르기 편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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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 작가·용인대 겸임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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