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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승용차와 하사금을 줬다”

안익태 프란체스카 박근혜의 청와대 파일

  • 정리·특별취재팀

“박정희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승용차와 하사금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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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19 직후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 전대통령은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 귀국을 원했으나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64년 11월 박정희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내 정부의 선처를 호소했다. 이 전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죽을 경우 유해를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게 해달라는 탄원이었다. 이 전대통령이 사망한 것은 1965년 7월. 그때까지 그는 군사정부가 구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한 정쟁법(정치정화법) 1호 대상자였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남편이 죽은 지 한 달 후 모국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그의 귀국이 추진된 것은 1960년대 후반. 1967년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한 유양수씨(동자부 장관, 유원건설 회장 역임)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귀국을 제의했으나 여사는 “아직 때가 아니다”며 완곡히 거절했다. 유대사는 박대통령에게 여사의 귀국 지원조치를 건의했다. 그즈음 국내에서는 ‘운암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기념사업회는 이박사의 유산 문제와 프란체스카 여사의 귀국을 추진했다. 박대통령은 1969년 가을 이화장 수리, 유산 반환 등 여사의 귀국에 필요한 조치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1970년 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마침내 귀국을 결심한다.

이번에 공개된 청와대 사료 중에는 당시 프란체스카 여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편지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각하.



각하께서 이화장 수리를 위해 30만원을 하사해 주신 것을 매우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필요한 보수공사가 완료되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하의 후의에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또한 각하께서 이박사의 유산을 반환토록 지시해 주신 데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이 반환조치로 인하여 우리들의 집이 보다 더 안락한 곳이 될 것입니다. 저는 5월 중순경에 귀국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각하께 깊은 경의와 사의를 표하면서. 프란체스카 리. 1970.3.17

이 서한을 받고 나서 박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프란체스카 여사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할 것을 지시한다.

비서실장 앞

김성곤 의원과 상의해 ‘프’ 여사 귀국에 대하여 이화장 내부 수리와 귀국 후 생활보조 문제에 대하여 협조를 하시오. 1970. 3.25

프란체스카 여사는 그해 5월 망명길에 오른 지 10년 만에 귀국한다. 한 달 후 여사는 박대통령에게 한번 더 감사의 편지를 띄운다.

각하,

저에 대해서 각하께서 보여주신 관심과 후의에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저는 특히 각하께서 매달 500,000원의 보조금과 저의 개인용으로 크라운차를 지급해주신 너그러움에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것이며 각하께 깊은 경의와 찬사를 올리고자 합니다.

각하께서 저를 위해서 과거에 해주셨으며 지금도 해주고 계시는 일에 충심으로부터의 사의를 표하면서, 프란체스카 리. 19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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