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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明堂 찾아 남몰래 이장하고 大權 도전!

대선주자들의 ‘정치風水’ 천태만상

  • 김두규 < 우석대 교수·풍수학자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明堂 찾아 남몰래 이장하고 大權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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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용히 조상묘 이장한 한화갑·김덕룡
  • ● 王氣서린 명당 이장으로 대망론 펼치는 김종필
  • ● 충청도 자미원 명당권에 가족묘 있는 이회창
  • ● 조상묘에 계룡산 백호 바람 불어오는 이인제
  • ● ‘거북이 바다를 바라보는’ 명당에 자리한 김중권 부모묘
지난해 11월 말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한화갑 민주당 상임고문. DJ를 오랫동안 보좌해온 비서 출신인 한고문은 ‘신중한 언행’이 트레이드 마크다. 2001년 초반 이후 민주당 소속 대선 예비주자들이 너도나도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히고 발빠른 행보를 할 때도 한고문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전해인 2000년 8월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로 당선돼 탄탄한 당내 기반을 보여준 그였지만 내내 특유의 ‘조용한 움직임’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행보를 보여준 것은 2001년 6월 이후부터. 한고문은 이 시점부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펴나가면서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켰고, 차기 대선은 창(昌)대 반창(反昌)의 다자간 대결구도로 갈 것이며, 자신은 보스인 김대중 대통령이 말리더라도 출마할 것이라는 등 대선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신중하고 조용한 행보를 보이던 한고문이 갑작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변신한 시점이 그의 부모 묘소를 이장한 시점과 묘하게 겹친다는 것. 양자는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어떠한 함수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고문이 목포 하당에 있던 그의 부모묘를 어딘가로 옮겨간 것은 2001년 6월경의 일. 대부분의 하당 마을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뤄진 일이었다고 한다. 한고문측 관계자도 이장 사실만 확인해줄 뿐 정확히 언제, 무슨 이유로 이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급하게 옮겨가느라 그랬는지 땅 수습도 제대로 안돼 있는 하당의 한고문 부모묘 터는 10여년 전에 조성됐다고 한다. 원래 남의 땅인데다 땅 주인이 평당 몇만원도 하지 않을 땅값을 평당 몇십만원이나 요구해 한고문 집안에서 불가피하게 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그 자리에 학교가 들어서기 때문에 묘를 파갔을 것이라는 소문도 들렸다. 그러나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흘러나오는 얘기들은 아니었다.





자미원 명당을 찾아서


기자 일행은 목포 현지에서 한고문 조상묘의 파묘(破墓) 흔적을 확인한 후 어디로 조상 유골이 이장됐는지 계속 추적작업을 벌여나갔다. 서울의 풍수사들을 상대로 면담과 인터뷰를 한 결과 한고문의 부모 유골은 전라도 목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충청도의 어느 명당 터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다음은 어렵게 찾아낸, 한고문 부모 묘 이장 작업에 일부 관여한 한 지관의 말이다.

“한고문 집안은 파묘에서 운반, 이장 작업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각기 달리 고용하는 등 비밀리에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느 지점에 이장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마지막 이장 작업에 관여한 지관의 경우 아예 입을 막기 위해 일을 끝내자마자 미국으로 보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고문 조상묘 이장지와 관련해서는 서울의 이름 있는 지관의 도움으로 충청도의 자미원(紫微垣) 명당을 찾아갔다는 소문만 무성히 들릴 뿐, 더 이상 추적은 불가능했다.

도대체 자미원 명당이란 무엇인가. 원래 자미원은 동양의 천문학에서 나온 이름으로, 하늘의 상제(上帝)가 거처하는 별자리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서 자미원이란 말이 풍수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조선조 세종 때 당시 풍수사였던 문맹검이 한양 도성, 즉 경복궁을 자미원에 해당되는 천하의 길지라고 칭한데서다.

이후 자미원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조 말 흥선대원군이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충남 예산 가야산 자락의 명당에 쓰고 나서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더욱더 욕심을 부려 자미원 명당을 찾아나섰다는 야사에서다.

이곳에 명당을 쓰면 조선의 국왕이 아니라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권력자, 즉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보다 더 막강한 권력자가 나온다는 전설이다. 그러나 흥선대원군도 그 자미원 자리를 찾지 못하였고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찾으려 하였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몇해 전 풍수로 세상을 들썩거리게 만든 육관 손석우씨도 이 자미원 명당 얘기를 꺼내며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부추기기도 했다.

아무튼 자미원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대략 그 범위는 점점 좁혀져 당진 이남과 홍성 이북이라는 것이 현재 통용되는 정설이다. 대동여지도를 찾아 추적해보면 금북정맥이 일월산(560m)→오서산(791m)→가야산(678m)→팔봉산(362m)으로 이이지면서 서해바다 안흥진으로 흘러가기까지 그 지맥의 어느 부분이다. 모두 1000m도 안되는 산들이지만 평지에서는 대단히 높은 산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과연 한고문의 부모는 자미원의 명당에 안치됐을까? 풍수에서는 선조의 명당 기운을 얻으면 후손이 잘된다는 발복 사상이 깊숙이 배어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사실판단 여부를 떠나 명당을 쓰면 잘될 것이라는 강한 신념체계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일종의 최면효과라고나 할까.

한고문이 부모묘를 이장한 후 명당 발복 사상에 힘입어 대권 도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지난해 11월 서울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대규모 후원회를 열고 대선후보 경선출마 선언을 하는 자리에 경북 봉화 현불사의 설송스님이 참석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설송스님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한 이후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즐겨 찾아 가르침을 청하는 예언자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설송스님의 후원회 참석 자체가 대권도전을 선언하는 한고문에게 ‘정신적 힘’이 된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명당 풍수 논리 역시 최소한 심리적 위안 정도는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풍수도참적 예언 이야기는 우리의 독특한 ‘정치(政治) 풍수’ 문화 역사에서 숱하게 보아온 바다.

1995년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지관 손석우씨의 말을 들어 ‘대통령을 보게 될 자리’인 경기도 용인으로 가족묘를 옮긴 후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풍수 얘기는 요즘도 살아 숨쉬는 신화(神話)다.

이러한 신화는 더 거슬러 올라가 1846년 흥선군 이하응이 당시 지관 정만인의 말을 듣고 ‘2명의 천자가 나올 자리’라는 충남 가야산 명당터로 조상묘를 옮긴 사건과 그 모티브와 진행 과정이 거의 유사하다. 그로부터 20년이 채 안돼 흥선군의 아들(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그 손자(순종)도 황제가 되었으니 정만인의 예언된 풍수설은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이 남연군 묘에 대해서는 대원군의 기를 꺾기 위해 독일인 오페르트가 묘를 파고 정기를 끊고자 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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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 < 우석대 교수·풍수학자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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