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충청남도를 가르는 아산만에는 높다란 서해대교가 걸려 있다. 밤이 되면 이 다리는 차량의 전조등과 후미등이 내뿜는 불빛으로 인해 거대한 ‘불뱀’이 된다. 한국 해군 최강의 2함대 사령부는 밤마다 불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1999년 11월13일 2함대는, 인천광역시 ○○동에 있던 본부기지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시원스럽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처음으로 2함대를 찾아갔다. 2함대 기지는 허허벌판에 위치해 있었다. 땅은 한없이 넓은데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군부대라면 젊은이들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땅땅-” 사격 소리도 들려야 할텐데 고즈넉하기만 했다. 잔디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평지 곳곳에는 흙이 보였다. 신학기를 맞아 개교하기 위해 한겨울에 막 공사를 끝낸 신설 대학의 어설픈 캠퍼스와 같다고나 할까.
해군은 배 안에 있다
공보장교의 안내를 받아 차를 타고 부두 쪽으로 나가보았다. 정박한 1200t급 국산 초계함인 성남함 근처로 다가가자 비로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인들은 땅이 아니라 배 안이나 배 근처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필승!” 성남함에 올라타자 수병들이 힘차게 외치며 거수경례를 올려붙인다. 근처에 있는 함정에서는 “땅땅” 쇠망치 소리가 울려오고, 마스크를 쓰고 용접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 해군은 땅이 아니라 배 안에 몰려 있구나.’
성남함에는 130여 명의 장교와 수병이 탑승한다. 육군으로 치면 1개 중대 병력에 불과하지만 지휘관은 대대장급이다. 병력은 중대 규모밖에 되지 않은데 왜 중령이 지휘하는 것일까. 이유는 배 때문이다. 해전(海戰)은 어떤 배를 갖고 있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배가 커야, 크고 정교한 포와 미사일과 사격통제장치를 탑재할 수 있다. 큰 배를 가진 해군은 십중팔구는 이기게 마련이다. 군함을 건조하는 데는 t당 1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1200t급 초계함이면 1200억원, 3500t급 구축함을 건조하는 데는 3500억원 정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자산을 관리하기 때문에 해군은 중년의 영관급 장교를 함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배 위에서 그리고 바다로 나가서 훈련하고 작전한다면서, 왜 2함대는 넓디넓은 평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2함대가 품고 있는 평지는 해군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임박하면, 정부는 막대한 전쟁물자를 도입한다. 전쟁물자는 무기만이 아니다. 전쟁은 거대한 소비행위므로 곡물과 석유와 각종 산업체에 투입될 원·부자재의 수입이 급증해, 상업항은 미어터지게 된다. 이러한 때를 대비한 국가 예비항이 해군 군항(軍港)이다. 잔디가 제대로 활착(活着)하지 못해 어설퍼 보일지라도 2함대가 품고 있는 평지는 유사시 한국이라는 태아를 살려줄 탯줄인 것이다.
해군은 ‘백두산함’으로 명명한 단 한 척의 전투함을 가진 상태에서 6·25전쟁을 맞았다. 전쟁 초기 북한 해군은 특수요원을 태운 함정을 부산 쪽으로 침투시켰는데, 백두산함이 이 배를 발견해 격침시켰다. 이후 해군은 이렇다 할 해전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6·25전쟁에서의 해전은 월등한 전력을 가진 미 해군 7함대가 독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한국은 미 7함대에게 해상방어를 의존했다. 한국이 함대를 만든 것은 1986년이다. 이렇게 함대의 역사가 일천하다보니 해군에서는 전사(戰史)가 풍부하고 전통이 살아 있는 명부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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