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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도 ‘리스트’도 없다. 더 이상 흔들지 말라”

김우중의 사람들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조직도 ‘리스트’도 없다. 더 이상 흔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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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전사장은 그룹내 최고의 금융전문가로 손꼽히며 김 전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산업은행 국제금융파트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다 대우에 입사, 해외 주요 지사장을 거쳐 1981년부터 10년 넘게 (주)대우 영국 런던지사에서 그룹의 해외자금 조달창구인 BFC(British Finance Center) 관리를 주도했다.

BFC의 금융통(通) 인맥을 일컫는 ‘런던스쿨’의 핵심멤버였던 그는 국제금융 베테랑답게 그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첨단 파이낸싱 기법으로 해외에서 저리 자금을 끌어들여 ‘세계경영’의 젖줄 노릇을 했다. 대우가 한때 마르지 않는 자금줄을 밑천으로 기업들을 잇달아 인수·합병해 재계의 부러움을 산 것도 런던스쿨의 선진 금융 노하우 덕분이었다.

강 전사장과 같이 산업은행 출신인 김태구 전사장은 적자와 노사갈등에 시달리는 산업현장을 동분서주하며 해결사를 자임한 인물. 1982년 대우조선 부사장, 1987년 그룹 기조실장, 1990년 대우조선 사장을 맡아 당시 엄청난 누적 적자와 극심한 노사분규로 열병을 앓던 대우조선을 정상화시켰다. 1991년에는 대우조선과 사정이 비슷했던 대우자동차 사장으로 옮겨 특유의 뚝심으로 경영난과 노사문제를 풀어갔다.

특히 1996년 10월 라노스, 1997년 2월 누비라, 4월 레간자 등 불과 6개월 사이에 소형·준중형·중형 3개 주력 차종을 동시 개발·판매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침체일로의 대우차에 활기를 불어넣음으로써 김 전회장이 자동차를 앞세우고 세계경영에 나서는 터전을 마련했다. 김 전회장이 몇 번이나 ‘훌륭한 사람’이라고 드물게 칭찬한 경영인. 그룹 해체가 경각에 달해 있던 1998년 10월 구조조정본부장으로 발령받아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인 1999년 7월까지 대우의 마지막 해결사로 운명을 함께했다.

장병주 전사장은 공직으로 출발, 상공부, 청와대 비서실, 재무부 등에서 근무하다 1979년 대우에 입사한 이래 20년 동안 수출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상사맨이다. 입사 3년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7년만에 미국법인 대표(이사)로 승진했고, 1992년에는 그룹 기조실 전무에 올라 인사·관리·전략 등 핵심업무를 총괄했다.



외환위기가 찾아온 1998년 (주)대우 사장에 취임, “우리나라 무역흑자를 500억달러로 끌어올려 IMF체제를 벗어나자”고 주창한 김우중 전회장의 수출총력전을 보필했고, ‘나라사랑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그해 (주)대우는 13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내 단일 기업으로는 최고 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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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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