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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아시아 | 일본

도쿄발 세계공황의 불길한 전주곡

  • 채명석 < 자유아시아방송 도쿄 특파원 >

도쿄발 세계공황의 불길한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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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신용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신용등급을 AA로 격하시켰다. 이는 선진국 7개국 중 가장 낮은 등급이다. 또다른 신용회사 무디스의 평가는 더 인색하다.
‘저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O.1)’이 출판된 1987년 이후 일본인들은 일본경제가 머지않아 세계경제를 제패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2년 뒤 출판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은 일본인들의 그런 자만심을 더욱 부추긴 책이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저팬 애즈 넘버 원’보다는 ‘차이나 애즈 넘버 원’이 더 널리 회자되고 있다. ‘21세기는 일본의 세기’라는 말 대신 ‘제2의 패전’과 같은 말이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는 더 심금을 울려주는 말이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경제대란설’도 일본경제의 급격한 퇴조와 침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올초에도 경제대란설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경제전문가에 따라서는 그것을 ‘3월 대란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4월 대란설’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경제대란이 도래하는 경로에 대해서 경제전문가에 따라 약간씩 견해 차이는 있지만, 일본경제가 올 봄 대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예측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경제전문가는 거의 없다.

‘일본경제 대란설’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거품경제가 붕괴된 후 ‘잃어버린 10년’, 즉 1990년대의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그같은 대란설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일본경제가 ‘최악’의 기록을 무수히 갱신한 작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금융시스템 불안이 고조된 1998년 4∼6월 기 이후 마이너스 행진이 시작돼 작년 12월에 발표된 7∼9월 기에도 연율로 환산하면 마이너스 3.1%를 기록했다.





무디스의 낮은 평가


일본 정부의 국채발행 잔고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간 GDP에 필적하는 414조엔에 달할 전망이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체의 채무잔고를 합하면 GDP의 1.4배에 해당하는 666조엔에 육박하고 있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경기대책이란 명목으로 10년간 10회에 걸쳐 136조엔에 달하는 재정자금을 퍼부었으나 경기가 되살아나기는커녕 날로 악화된 결과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작년 후반 일본의 이같은 재정악화를 이유로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AA로 격하시켰다. 이는 선진국 7개국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다.

또 다른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사의 평가는 더 엄격하다. 무디스는 작년 말 일본의 국채에 대해 대만과 슬로베니아의 국채보다 더 낮은 등급 판정을 내렸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작년 미국에서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9월17일 9504엔41전까지 하락하여 거품경제 붕괴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후 미국 증권시장의 반발에 힘입어 연말에는 힘겹게 1만엔대를 회복했다. 그러나 7, 8할대의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는 고이즈미 정권이 등장한 이후 주가가 오히려 5000엔 가량 하락한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보도에 따르면 재임중 갖은 실언으로 지지율이 1할대에 머물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가 작년 9월 1만엔대의 마지노선이 무너지자 고개를 한참 갸우뚱거렸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재임중 고이즈미 총리의 높은 지지율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지지율밖에는 못 얻었지만 주가는 1만5000엔대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완전실업률도 작년 11월 시점에서 5.5%를 기록하여 사상 최악의 상황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전세계 IT산업 불황의 여파로 일본의 IT관련산업에 대량 감원선풍이 불었다. 예컨대 컴퓨터업계 선두주자인 NEC는 세계적인 반도체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1999년 이후 1만5000명 감축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NEC는 IT 불황이 날로 심각해지자 4000명을 추가로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컴퓨터회사인 후지쓰는 작년 여름 1만6400명의 사원을 감원하고 4700명의 사원에 대해서는 직장내 부서를 배치전환시킬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가전업계에도 매서운 감원선풍이 불었다. 도시바의 1만7000명 감원, 히타치의 1만8000명 감원, 마쓰시타 전기산업의 1만명 배치전환 발표가 바로 그것이다.

도산 건수도 과거 최악의 기록에 접근했다. 데이고쿠 데이터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11월 부채총액이 1000만엔 이상인 기업이 도산한 건수는 전후 최악인 1851건에 달했다. 작년 연말까지의 누계 도산건수는 1984년의 2841건에 이어 전후 두번째로 2만건을 웃돌게 될 것이라고 데이고쿠 데이터뱅크는 예측하고 있다.

대형기업의 도산도 줄줄이 이어졌다. 대형 유통 체인점 마이칼이 작년 9월 도산한 데 이어, 12월에는 중견 건설업체인 아오키건설이 도산했다. 작년에 도산한 상장기업은 모두 10여 개 이상이다.

도산 예비기업도 상당한 수에 달했다. 작년 말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주가가 100엔을 밑돌았던 상장기업이 200여 개, 액면가를 밑돌았던 상장기업도 50여 개에 달했는데, 이런 기업들이 바로 도산 예비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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