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2월20일에서 2002년 1월1일 사이.
이 한 여름밤의 열흘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가장 숨가쁘고 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줄줄이 사탕처럼 다섯 명의 대통령이 무대를 오르내렸다. 다섯번째로 선출된 에두알데 대통령이 취임식 날 국가견장과 함께 받은 숙제바구니는 마술을 부리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난제로 그득하다.
아직도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 냄비 두드리는 소리. 바로 하루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무더운 여름 밤거리를 뒤흔들던 소리다.
“이번 냄비시위가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한 것이며 국민은 계속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대통령의 대 국민 연설을 듣고 그대로 냄비 집어들고 거리로 나왔어. 집집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냄비 프라이팬 국자 심지어는 냄비뚜껑까지 들고 나왔지. 처음에는 서너 명이었는데 골목마다 밀려나와 순식간에 몇 십만 명이 됐어.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누에베 데 훌리오(7월9일의 거리) 140m가 좁을 정도였잖아? 아무리 국민의 소리를 못 듣는 벽창호라고 해도 대통령이 그토록 국민의 뼈아픈 고통을 모를 수 있었을까? 그런 지도자는 당연히 물러나야 해.”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마리엘라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그녀는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중산층 시민이다. ‘마리엘라까지?’ 이번 냄비시위의 심각성이 짜르르 전해온다. 빈민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왔다면 이 정부는 소생할 가망이 없는 것이다.
“4년이란 긴 세월을 경제위기의 줄타기를 하면서 누적된 우리의 분노와 좌절감을 정치인들은 짐작이나 할까요? 아이는 네 명이나 되는데 직장은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정말 눈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슈퍼마켓을 약탈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대로 가면 저도 다음달에는 그 무리에 합류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
항공사 직원이었던 호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두드렸다. 이 냄비소리는 바로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비명이다. 참고 참다가 터져나온 절규! 이 소리가 하루만에 대통령의 무릎을 꿇게 해 임기의 반을 남겨놓은 데 라 루아 대통령을 2년 10일 만에 물러나게 했다.
이토록 부글부글 끓어올라온 감정이 폭발할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감지되었다. 특히 지난해 10월의 상·하원 선거는 야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그것은 2등의 승리였다. 1등은 40%를 차지한 거부표와 기권표였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찍을 후보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만화 주인공 이름을 써주었지요. 어느 후보보다도 마음에 들었어요” 하며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실제로 아예 투표장을 찾지 않은 사람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캐릭터, 조크 쓰기, 심지어는 오사마 빈 라덴의 얼굴이 그려진 투표용지도 나왔다. 이는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던진 등골이 서늘한 심판이었다. 넉 달째 월급과 연금이 13%나 깎이는 내핍운동에 묵묵히 따랐던 국민들에게 12월초에 발표한 주 250달러, 월 1000달러로 한정한 은행예금의 일부동결은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에 꽂은 비수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늘어난 것 좀 열거해 볼까요? 빚과 실업자, 극빈자, 국가위험도 수치, 점쟁이와 정신과 의사, 그리고 푹 절은 한숨입니다. 1950년대만 해도 영국까지 넘겨보던 나라가 어찌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울화가 치밀어서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어요.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이니 이는 바로 민중혁명입니다.” 경제학자 로페스까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던 곳, 캐나다와 호주를 따돌리고 세계 7대 강국의 자리까지 차지하며 ‘남미의 진주’라는 명성을 얻었고, 수도를 각종 건축양식과 조각의 박물관으로 꾸며 ‘남미의 파리’라고 불리던 곳, 세계에서 가장 넓은 18차선 도로, 1913년에는 남미 최초의 지하철을 건설하고 자랑하던 나라, 다섯 살짜리까지 지정 정신과의사를 두고 지내고 1년에 수차례 유럽여행과 쇼핑을 즐기던 나라, 바로 아르헨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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