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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론이 뿌린 비극의 씨앗 대평원의 잔치는 끝났는가

아르헨티나의 운명

  • 이강원 < 시인, 수필가, 주 아르헨티나 대사부인 >

페론이 뿌린 비극의 씨앗 대평원의 잔치는 끝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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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외채, 두 집 건너 실업자, 서서히 대량학살을 당하고 있다고 비명 지르는 빈곤층, 그리고 국가위험도 세계 챔피언 획득이 그들이 보여주는 오늘의 모습이다. 이런 자신의 추락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헨티나의 겉모습은 여전히 천연하고 아름답다.

스페인어로 은이라는 뜻이라서 그럴까. 아르헨티나의 빼어난 자태와 풍부한 자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남북 4000km, 동서 1000km로 세계에서 여덟번째, 한반도 14배의 면적이다. 왼쪽 옆구리에 안데스산맥을, 다른 한쪽에는 대서양을 품고 있다. 그러니 그속에 담겨있는 다양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북서쪽에는 사막과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6980m)와 그 연봉들, 북동쪽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이며 세계 자연 유산 유적지인 이과수폭포와 열대 우림, 중부지방의 광활한 대평원 팜파, 그리고 남쪽에는 대초원과 만년설의 빙하가 버티고 있다. 한 나라가 마치 미니 세계지도를 품고 있는 듯한 천혜 조건이다. 무한한 지하자원,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 풍부한 목축, 다양한 관광자원은 누가 보아도 입에 군침 돌게 하는 풍요로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을 여행해보면 ‘신이 지구를 빚을 때 아르헨티나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다’는 것이 한눈에 느껴진다. 북쪽의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왼쪽어깨를 맞대고 있는 칠레, 오른쪽의 우루과이가 입을 비죽 내밀 정도의 특혜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곳 사람들은 신도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래머, 화가 후안 미로, 첼리스트 요요 마, 시인 타골, 소설가 유진 오닐과 앙드레 말로 등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매혹되었고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비토리오 가스만(Vittorio Gasman)은 이 지상에서 천국은 바로 아르헨티나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러면 이런 빼어난 조건으로 세계 5등의 자리까지 차지했다가 꼴지 그룹으로 추락할 때까지 과연 경보의 종은 울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몸이 썩어 들어갈 때까지 너무 오랫동안 키워온 고질병이 눈귀를 모두 막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과 군사혁명, 만성적 재정적자, 과다한 외채, 미숙한 경제정책 운용, 도려내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번진 부정 불감증, 그리고 페론의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엉켜서 생긴 이곳만의 고질 병! 지난 70년 동안 여러 번 발병했지만 병이 도질 때마다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고 마치 치료된 양 착각에 빠져 지냈다.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더니 이곳의 현사태를 보면 절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우리나라가 4년째 중환자실에 누워있지만 그나마 목숨부지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명의를 만나면 회복할 가능성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작은 집안경제도 빚이 늘어나면 쓸 것 줄이고 더 열심히 일하는데 이 나라는 곳간에 쌓여있는 재산 빼다 팔아먹거나 더 큰 빚을 얻어서 꾸려왔으니 말이 됩니까? 여기에 안주해서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내온 우리 국민들도 한심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나라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진단합니다. 출구는 온 국민이 손톱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파야 찾을 수 있겠지요.”

영자신문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헤럴드’의 편집장 마이클이 냉소를 지으며 쏟아놓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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