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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도사’김대균의 TOEIC 200점 끌어올리기 비법

  • 김대균 < YBM시사영어사 어학원 강사 > hankeol@chollian.net

‘토익도사’김대균의 TOEIC 200점 끌어올리기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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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3학기 때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첫 강의를 한 곳은 서울대 부근 신림동의 고시촌이었고, 과목은 타임독해였다. 첫 달 수강생은 한 명이었다. 당시에는 공부도 하면서 돈을 벌자는 생각에 큰돈을 기대하기보다는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과목을 택했다. 첫 수강생이 입소문을 냈는지 다음달에는 수강생이 13명으로 늘어났다.

1990년대 초는 토플(TOEFL)의 시대였다. 토플 강의는 수많은 학생들이 들었지만 토익은 대중적 인지도가 거의 없었다. 토플 강의 외에는 토플에 수반된 어휘와 독해강좌가 그 다음으로 잘 되었다.

타임을 1년 이상 강의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우고 느꼈다. 무엇보다 ‘수입은 실력 순이 아니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대학원 입시가 끝나면 학원 강사들은 서울대 문제를 빨리 구해와서 문제 풀이를 해줘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 한 달에 고정급 50만원 정도를 버는 내게 몇몇 고수입 토플강사가 밥을 사주면서 서울대 문제의 정답을 “같이 생각해보자”고 했다. 서울대 대학원 입시 문제는 쉬운 듯하면서도 까다로운 데가 많았는데, 나는 그들의 강의준비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수입은 그들이 몇 배로 많았고, 나는 그저 ‘학문의 즐거움’에 자족하면서 안빈낙도해야 했다.

그러자 나대로 무언가 판단을 내려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세어학당, 서강대, 숙명여대에서 우선 토플 수준의 어휘로 강의를 시작해 본격적인 토플강의로 전환해갔다. 타임 강의를 손에서 놓게 되자 비로소 수입과 실력의 비례관계에 어느 정도 만족하게 되었다.

1995년 무렵부터 토익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토익 강의를 했을 때는 테이프를 유연하게 돌리면서 강의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영어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표현을 정리해 나갔다. 청취력과 독해력을 균형있게 안배하면 기본적인 강의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강의의 기본 철학이 ‘재미있고 유익하게’였기 때문에 팝송을 자주 틀어주고 가사도 해설해줬다. 이 강의는 대학 강의에서는 그런 대로 호응이 있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토익에 전념하게 된 것은 1996년 YBM 시사본원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이곳에서 나는 또 한 번의 문화충격을 겪었다.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수강생은 한 반에 1명인 곳도 있었고 2명인 곳도 있었다. 많은 반이라야 10명을 가까스로 넘었다. 초창기에는 하루 9시간을 강의하고 한 달에 120만원 정도를 받았다. 이곳의 강의에서도 처음에는 비슷한 틀을 유지했다. 교재 진도를 나가면서 지루할 때쯤 팝송을 틀어주고 몇 가지 표현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수강생이 자꾸 줄었다.

이유를 찾아보니 연세어학당에서 똑똑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틀 잡힌 강의법이 직장인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수강생이 찾아와 “제가 영어책 덮은 지 5년 됐습니다. 잘 부탁합니다”고 할 때는 도대체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또한 나 스스로도 ‘토익같이 쉬운 과목을 가르치면서 뭘 따로 준비할 필요가 있겠냐’는 자만 때문에 토익을 거의 치러보지 않았다. 그래서 수강생에게 절실하게 다가가는 강의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수강생들은 시험을 보고 강사는 시험을 보지 않고서 시험 다음날 ‘시험 쉬웠죠?’라며 강의를 시작하는 강사를 수강생들은 신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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