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축적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몇 푼이라도 덧붙는 것이 없으면 은행을 찾지 않는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나 말레이시아 같은 이슬람 나라에서는 웃돈 한 푼 없이 돈을 맡기고 맡는 은행이 가끔 눈에 띈다. 이른바 무이자은행(interest-free bank)이다. 현대인에게는 상식 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종교적 이념에 바탕을 둔 이슬람경제체제의 시범(示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없다.
지금 이슬람세계는 경제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식의 시범에 나름의 기대를 걸고 있다. 근세에 와서 이슬람세계는 타율적으로 서구 중심적인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됨으로써 전통적인 경제체제의 붕괴는 물론, 숱한 경제적 수탈로 인해 민생이 피폐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졌으며 사회적 갈등이 격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경제 재건의 주체인 이슬람 국가들이 속속 출현하면서 경제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제기됐다. 해결 방도는 강요된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이슬람사회의 전통에 부합하는 경제의 자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슬람 국가들은 전후에 보편화한 이슬람 부흥운동의 일환으로 전래의 이슬람 경제체제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경제체제의 수립을 시도하는 한편, 이슬람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이슬람 국가들간의 경제적 협조를 도모키로 했다.
이슬람 경제계에서는 1970년대부터 이슬람 고유의 경제관에 입각해 현실에 알맞은 경제체제의 수립을 모색해왔다. 1976년부터 이슬람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이슬람경제에 관한 국제회의’를 열어 이슬람 경제체제 수립과정에서 제기되는 이론과 실천적 문제들에 관해 논의하고 구체적 대책과 시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슬람경제 연구를 위한 국제센터’ ‘이슬람 은행과 경제를 위한 연수원’ 등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20여 개 대학에 이슬람경제학과를 개설하여 이슬람경제에 관한 연구 및 교육을 줄곧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와 실천과정을 통해 현대의 경제 운영에 대한 이슬람적 논리, 즉 이슬람경제관이 윤곽을 드러내고 부분적으로 정립되고 있다.
물론 다른 종교들도 고리대 금지 같은 경제문제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회윤리 문제로 접근할 뿐, 경제 논리나 체제로까지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현세에서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제반 경제 사항들을 종교적 윤리도덕과 결부시켜 규범화하는 나름의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종교일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생활 전반을 포함하는 신앙과 실천의 복합적인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필칭 ‘정치의 이슬람’이니, ‘경제의 이슬람’이니, ‘문화의 이슬람’이니 하는 것이다.
‘경제의 이슬람’이란 경제에 대한 이슬람적 사고를 말한다. 그런데 경제는 제반 사회현상 가운데서 가장 민감하고 시류를 잘 타며 변화무쌍하다. 이를테면 가장 ‘반(反)전통적’이다. 이러한 경제를 전통적인 종교이념의 틀로 해석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여기에 오늘 이슬람경제관이 안고 있는 고민이 있으며, 바로 이로 인해 논란이 일고 가끔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슬람의 근본이념에서 출발해 현실적인 경제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이슬람식 경제원리들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이 원리들은 생산과 분배, 소비와 유통 등 경제활동의 제반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각이한 형태로 작용하고 있는 경제원리들을 이슬람경제관이란 하나의 개념으로 일원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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