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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기르는 즐거움을 아십니까

  • 박은경 < 자유기고가 >

난초 기르는 즐거움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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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오키드(orchid)’인 난의 명칭은 그리스어 ‘orchis(고환)’에서 유래됐다. 이는 난초의 덩이뿌리가 마치 남성의 고환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인서 소장은 “난의 형태미를 보면 식물 중 인체와 가장 많이 닮았다”면서 “뿌리가 남성 성기를 닮았다면, 꽃이 핀 것을 자세히 관찰하면 여성의 성기 모양과 흡사한 것도 있다”고 설명한다. 감상의 경지가 이 정도에 다다른 애란인이나 초보 난 애호가를 구분하지 않고 우여곡절의 사연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산채(야생란 채집)’와 ‘경매’다.

“탐란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엔 경험자들이 말하는 변이종 밭뙈기에 대한 동경도 많았지요. 줄창 다리품을 팔고 다녀도 산반(잎 전체에 빛살무늬가 있는 난을 말함) 한 촉 만나질 못한 다음에야 만만한 핑계감이 장소 탓일 수밖에 없는 게 초심자들의 공통된 심리일 것입니다. 심심찮게 하는 질문이 채란지 안내요청이고 채란요령에 관한 질문들이니 그 답답한 마음이야 제가 경험해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란 경력이 붙는다 해도 연이은 공탕 행진은 피할 길이 없는 것이 산채인들의 숙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농협난우회 한 애란인의 경험담이다.

애란인들에 따르면 최근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탐란에 나서고 무차별적으로 난을 채집하는 바람에 예전처럼 야생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 가운데 변이종이나 희소가치에 따라 천정부지로 값이 뛰는 난을 전문으로 채취해 파는 ‘산채꾼’들이 있다. 한편 곳곳의 국토개발로 야생란이 서식할 수 있는 야산이나 산들이 많이 깎여 나간 것이 채집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흔히 종류별로 난의 자생지를 알려주는 ‘정보리스트’가 애란인들 사이에 많이 나돌지만 그것마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명산(난이 자생하기 적합한 산)에 명품이 난다”는 말은 옛말이라는 것. 때문에 채란에 나선 사람들이 명산이 아닌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희귀한 야생란을 발견하면 그 기쁨은 몇 배로 커지고, “난 봤다”는 외침이 산삼 발견에 비유된다.

이희배씨는 관음소심의 향에 반한 뒤 혼자 책을 파고들며 독학으로 난을 공부했다. 당시 주말이면 그는 밤열차를 타고 전국으로 산채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초창기에 전라도 정읍이나 장성 쪽으로 많이 갔습니다. 서울에서 밤열차를 타고 새벽 4시경에 장성에 도착하면 여관에 들러 잠깐 눈 붙인 뒤 택시를 대절해 무작정 나섭니다. 시골길을 달리다 산세를 보고 차를 세우죠. 난은 산세가 높은 곳 외에 야산에서 자라는 것들도 있어 이름 없는 시골동네 산까지 구석구석 안 뒤진 데가 없습니다. 한번은 어느 야산에 내렸는데 나중에 택시기사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려니까 그 동네 지명을 모르겠더라고요.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아저씨 간첩이냐고 되물어요. 시골동네 뒷산을 어슬렁거리다 간첩으로 오인 받아 경찰에 잡혀간 적도 여러 번입니다.”



‘소심(춘란의 일종)’ 채집까지 6년이 걸렸다는 이씨의 말이다.

“춘란은 중투, 복륜 등 꽃과 잎의 색깔과 무늬에 따라 여러가지 변이종이 있습니다. 그중에 소심을 꼭 채집하고 싶은데 유독 이게 눈에 띄질 않아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라도 광주 근교 어등산에서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때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감격에 겨워 동행했던 지인과 그날 밤새도록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다는 그는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술회한다.

산채에 있어 ‘공탕’은 초보자든 경력자든 열에 여덟 번은 으레 겪는 일로 치부해야 한다. 오랜 경험을 쌓은 경력자는 산행을 겸해 여유 있게 산채를 다니는 반면 초보자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나서지만 채란은 쉽지 않다.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오래 난을 기르면 산채의 기대나 공탕의 허탈함에서 비로소 초연해진다.

한편 애란인들에 따르면 ‘경매’ 또한 초보자와 경험자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입을 모은다. 이희배씨는 처음 난을 수집하면서 아내에게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월급쟁이 봉급은 빤한데 그걸 축내 아내한테 핀잔을 들으면서 난을 수집했습니다. 10만원에 산 걸 만원에 샀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많이 했지요. 아내 눈에 그깟 풀 한 포기를 몇만원씩 주고 샀다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나중에 안되겠다 싶어 아내를 난 경매장에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집에 있는 것과 똑같은 난이 몇십만원에 팔리니까 그때서야 우리집에 있는 난이 돈덩어리가 아니냐며 이해를 하더군요. 지금이야 초창기만큼 경매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이씨의 아내는 그날 이후 난을 정성껏 돌보는 ‘관리인’이 됐다고 한다.

“어느 날 기가 막힌 변이종이 경매에 나왔는데 너무 비싸서 살 엄두를 못냈습니다. 빈손으로 오자니 난이 눈에 밟혀 영 발길이 안 떨어지더군요. 다음 번엔 집에서 키우던 난 중에서 품질이 좀 떨어지는 몇 개를 내다 팔고 그 돈으로 경매에 나온 좋은 난을 사곤 했지요. 한 10여 년 지나니까 경매에 놓쳐도 저건 내 것이 아니구나 하고 단념이 되더군요. 여유가 생긴 거지요.”

한우리난우회 이춘호씨의 말이다.

유인서 소장에 따르면 난의 가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한 촉에 몇천원부터 많게는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품종이 귀할수록, 또 희귀한 변이종일수록 가격이 매우 비싸집니다.”

정재동 교수에 따르면 재배종 한국춘란의 경우 꽃을 기준으로 적색·주황·자색·황색 순으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적색 중에서도 부판 배열이 일직선이고 꽃잎이 둥글며 크기가 다소 큰 것이 좋은 것으로 취급된다.

난 꽃은 작은 것에 비해 크기가 클수록 명품으로 꼽힌다. 또 잎에 무늬가 있는 것일수록 좋은 난으로 취급되는데, 이 가운데 잎 가장자리가 녹색이고, 가운데는 투명한 색깔을 띠는 ‘중투’가 제일 좋은 품종으로 꼽힌다. 잎의 무늬가 자라면서 그대로 꽃에 들어오는 것을 ‘복륜’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꽃과 잎의 무늬를 같이 즐길 수 있다. “잎과 꽃에 무늬가 있는 반면 꽃잎에 붉은 선이 없고 설점(입술꽃잎점)이 없는 건 ‘중투화소심’으로 한 촉에 천만원이 넘어갑니다.” 한편 난 경매장에서 ‘희귀종은 부르는 게 값’이다.

난 세계를 보면 꽃이 형편없을 수록 향기가 짙다. 꽃이 아니면 향기로라도 관심을 끌게 한 걸 보면 조물주가 공평한 것 같다는 유인서 소장은 “생활이 각박해지고 급하게 돌아가면서 동양란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차츰 줄어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양란에 비해 꽃이 화려하지 않고 대체로 청아한 느낌을 주는 동양란은 단번에 사람들 눈길을 끌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즉흥적이고 화려함에 길들은 요즘 사람들은 양란에 눈길을 많이 주지요.”

난은 생육환경이 맞지 않으면 꽃을 피우기 어렵다. 때문에 몇 년에 걸쳐 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유소장은 “난은 정성을 주는 만큼 꽃과 향기로 보답한다”고 말했다.

신동아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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