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일본이 신라를 배격하며 적대시한 사실은 일본왕실 문서에 그 증거가 나타나 있다. 천황가의 법령 주석서인 30권짜리 ‘영집해(令集解)’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고기(古記)’에 전하는 바에 따르자면, 일본천황의 치세 때에 조서를 내려서 묻기를 ‘이웃나라’와 ‘달갑지 않은 나라’는 어찌 구별하는가. 답하기를 ‘이웃나라는 큰 당나라이며, 달갑지 않은 나라는 신라이로다.”(제3권)
이 문서에서 인용한 책 ‘고기’는 서기 738년에 씌어진 역사 기록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문서기록상 ‘영집해’(859∼876년 성립)가 작성된 9세기가 아닌 이미 8세기 초부터 일본은 신라를 배격해온 것이다. 이에 대해 저명한 사학자 오오와 이와오(大和岩雄, 1928∼)씨는 이렇게 지적한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을 ‘귀화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고대 역사책 ‘일본서기’(720년 편찬)에서도 3국(신라·백제·고구려)을 뚜렷하게 구별하고 있다. 3국을 문화의 선진국이라고 인정하고 있지만 단지 백제로부터의 문물 도래만을 강조하며, 달갑지 않은 나라(이하‘蕃國’이라고 칭함)로 취급한 것은 주로 신라였다. 신라를 번국으로 삼은 것은, 통일신라(668년 백제와 고구려를 모두 정복한 시기 이후)가 되기 이전부터 신라를 적국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시대 이후부터는 신라가 한반도의 대부분을 지배했으므로, 신라와 조선과 번국을 일체화하는 해석도 생겨났겠지만,‘일본서기’가 씌어진 무렵의 ‘달갑지 않은 나라(번국)는 신라이로다’는 다분히 신라를 적국으로 여기는 관점에서 생긴 것이다.”(‘新羅蕃國視에 대하여’, 1978)
쉽게 말해 오오와 이와오의 견해는, 백제인 계열의 일본왕실이 신라를 미워한 것은 신라가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킨 데서만 기인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그 이전의 시대부터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삼국사기’에도 나오듯이 신라·백제·고구려가 서로 적대시하며 전쟁을 했기 때문에 백제인 계열의 일본왕실이 신라를 곱게 봤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백제인 계열의 일본왕실에서 본국 백제의 멸망 이전부터 신라를 적대시한 또다른 이유도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은 538년 백제 성왕이 백제인 계열의 왜왕인 킨메이(欽明, 538∼571년 재위)천황에게 백제불교를 전파시킨 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백제불교가 들어가기 이전까지의 일본 땅에서는 신라의 신도(神道)가 왜왕실을 중심으로 국가 종교로서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일본왕실에 백제 불교가 전파됨으로써, 신라 신도와 백제불교는 서로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급기야 신도와 불교의 종교전쟁(587년)으로 비화되고마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