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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중편소설)

추풍령

  • 서대수

추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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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트럭은 대로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희미한 아침빛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트럭은 한데서 밤을 새운 무슨 커다란 짐승처럼 보였다. 18t짜리 트럭은 앞바퀴 2개, 중간바퀴 2개, 뒷바퀴 8개, 해서 모두 12개나 되었다.

아버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운전석 반대편의 문을 열고 올라가서 연희와 동호의 손을 잡아올렸다. 동생들은 트럭에 올라오자마자 운전석 뒤편의 길다란 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렇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뒷좌석은 우리들 차지였다. 만약 언니가 있었더라면 지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도 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자리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언니도 어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좌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와 언니는 없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까지 합쳐 식구가 모두 6명이었지만 그 가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함으로써 5명으로 줄어들었고, 1년 전에 언니가 집을 나감으로써 다시 4명으로 줄어들었다. 한때는 나마저 집을 나가 3명까지 줄어든 적도 있었다. 만약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나를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4명이 아니라 3명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이다.

밤새 한데서 보낸 트럭 안은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웠다. 아버지도 느꼈는지 히터를 작동시켰다. 올해의 11월 하순은 작년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나는 일주일 전에 강원도 지역에 펑펑 쏟아지던 텔레비전 속의 눈오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젯밤 뉴스에 나오던 일기 예보가 딱 들어맞아 오늘 서울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그것은 나의 탈주를 축하해주는 꽃가루가 될 것이다.

“아빠, 우리도 싸워요?”



아버지 뒤편에 앉아 있는 동호가 물었다.

“아니, 너들은 그냥 가만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왜 우리를 데려가요?”

“너들이 있으면 힘이 되니까.”

아버지가 앞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트럭이 톨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트럭들이 이미 20여 대나 모여 있었고 계속해서 다른 트럭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아빠, 웬 트럭이 이렇게 많이 모여요?”

“응, 싸우러 가기 때문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동호의 질문에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동호가 다시 누구랑 싸우러 가는 거냐고 물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것을 설명할 줄 안다면 집에서 나올 때 벌써 해주었을 것이다. 문득 나는 아버지를 떠나려고 하면서도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차를 트럭 행렬의 제일 앞쪽으로 몰고 가서 세웠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기어 바로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7호찹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다시 아버지는 예, 방금 맨 앞에다 세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있었다.

“아빠,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예요?”

아버지의 통화가 끝났을 때 동호가 물었다.

“응,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야.”

아버지는 공기압력기를 틀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대 주변과 발 밑을 대충 청소했다.

“와, 차가 너무 많다!”

동호의 감탄 소리에 나는 오른쪽 차문의 유리창을 열고 뒤쪽을 보았다. 언제 모였는지 차들이 길다랗게 늘어서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아버지가 받았다.

“아, 사장님. 예예. 고생은 뭘요. 뭐 평생 트럭운전수로 살아갈라믄 어차피 해야지요. 예, 아이들까지 데리고 갑니다. 예예. 그래야 힘이 나거든요.”

아버지를 운전수로 고용한 차주에게서 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아버지와 통화하고 있을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 주고 받던 아버지가 갔다오겠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아빠, 우리하고 싸우는 사람이 많아요?”

“나중에 추풍령 휴게소에서 쉴 때 준태 아버지하고 만날 거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물어봐라.”

동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해준 후에 아버지는 핸드폰에 나타나 있는 시간을 보더니 조수석 앞에 있는 뚜껑을 열고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비록 165cm 정도의 작은 키와 팔자걸음 탓에 밖에서는 엉성해 보이지만,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모습은 늠름해 보였다. 아버지가 기어를 바꾸어넣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클랙슨을 울렸다. 그러자 그 소리를 신호로 뒤쪽의 트럭들이 차례대로 경적을 울려댔다.

트럭 행렬이 고속도로 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지금 부산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젯밤 서울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들려왔던 말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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