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25일 송두환 대북송금의혹 특별검사가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져 있고 한반도 정세마저 불안하여 사회 분위기가 극도로 어수선한 터에, 국회가 국정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내놓기는커녕 이렇듯 ‘재특검’이니 ‘울트라 특검’이니 하며 이전투구를 일삼는 것은 대단히 짜증나는 일이다.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것이 정치인 사정으로 상징되는 ‘검찰정치’였다면, 이젠 특검을 설치해 대통령과 집권당을 공격하는 ‘특검정치’가 풍미하게 된 것인가.
특검제의 정치학
특검의 탄생배경에는 정치적 시녀로 전락한 것으로 비쳐진 ‘검찰의 실패’라는 원인사실이 존재한다. 많은 문제점과 비판, 미국이 겪은 특검제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특검제가 관철된 데에는 중요한 순간마다 끝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한 검찰의 업보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진자(振子)의 반대쪽 끝에는 특검의 정치적 남용의 폐단, 특검정치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다수당의 위력으로 국회를 지배하게 된 거대야당 한나라당은 특검으로 안 되면 ‘재특검’ ‘재재특검’ 등 무언들 못하겠냐며 강변하는 듯한 태세다. 애당초 집권 자체가 못마땅한, 인정할 수 없는 정권인데 필요하면 언제라도 특검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투다. 대통령은 특검법 수용과 수사기간 연장 거부 등 좌고우면하면서 균형을 잡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오히려 제2의 특검을 예상하면서까지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특검 현안이 정치적으로 왜곡·장기화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다.
이렇듯 우리 시대 특검제의 정치학은 정치적 역학관계의 불균형이라는 병리적 현상으로 구현된다. ‘정치특검’까지는 가지 않을지라도 검찰의 무력화와 특검의 사실상 상설제도화라는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특검정치의 한국적 모델을 완성하는 데 하등 손색이 없다. 정치에 식상한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검찰정치로부터 어렵사리 결별하고 나니 특검정치가 기승을 떠는 양상이 아닌가. 특검정치로 출발한 21세기 한국정치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특검제, 무엇을 얻었나]
특별검사제도는 공정한 손에 의한 진실 규명을 희구한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사건 때 처음 도입되었다. 이번 대북송금 특검은 네 번째가 되는 셈이다(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과 옷로비 사건에 대한 특검은 동일한 법률에 의해 설치되었다). 그 동안 특검제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한다.
전 검찰총장 부인 옷로비 사건(1999년 9월)
당초 옷값 대납요구 소문에서 시작된 옷로비 사건이었으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축소·은폐됐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은 한시적 형태로 특검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헌정사상 최초로 특검제가 도입됐다.
‘한국조폐공사노동조합파업유도및전검찰총장부인에대한옷로비의혹사건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의임명등에관한법률’(제정 1999. 9. 30 법률 제6031호)에 따라 설치된 특검팀은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 이형자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라스포사 정일순씨를 통해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를 상대로 옷로비를 시도했다가 정씨의 1억원 옷값 대납요구를 거부, 로비를 포기한 것이 사건의 본체라고 결론짓고, 정씨의 알선수재 등 혐의를 수사해주도록 요청하는 한편 이형자씨의 허위진술 부분도 수사기록에 포함시켜 검찰이 위증여부를 판단토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