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정치인과 여자연예인, 그 묘한 관계

밥자리가 잠자리로… 돈·인기 위해 몸던진 스타들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3-07-29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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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과 여자연예인, 그 묘한 관계
    “언니, 출출한데 자장면이나 먹고 갈까?”“그러지 뭐.”1990년대 초. 서울 남산에 위치한 H호텔 지하 2층의 사우나에서 오전 시간을 보낸 두 명의 여성 연예인은 탈의실을 빠져나와 한 층 위에 있는 중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깎아놓은 듯 아름다운 얼굴로 동료 연예인들조차 선망하는 톱스타 A씨와 성격파 연기자로 널리 알려진 중년의 탤런트 B씨. 두 사람은 자장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이들의 맞은편 테이블에는 당시 정권 실세 중의 한 사람인 ‘그 분’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 분’은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눈인사를 보냈다. 잠시 후 ‘그 분’은 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합석합시다”라고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 모두 초면이었지만 ‘그 분’의 제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TV 뉴스나 신문지상에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름이 오르내리는 ‘그 분’과 교분을 쌓아서 나쁠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자장면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이들 세 사람은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다. 음식값은 B씨가 지불했다.

    며칠 후 ‘그 분’은 A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제의했다. 그동안 연예계 활동을 통해 정치권의 위력을 피부로 느끼고 있던 A씨는 전화를 받고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제의를 수락했다.

    식사 만남이 곧 ‘은밀한 만남’으로 발전되리라는 A씨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서너 차례 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가지면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자 ‘그 분’은 슬며시 A씨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분’은 A씨와 처음 대면한 장소인 H호텔의 L사장에게 스위트룸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극비리에 부탁했다. 이후 호텔 객실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했던 두 사람은 A씨의 아파트로 장소를 옮겨 종종 거사(?)를 치렀다.

    A씨의 몸을 탐닉하던 ‘그 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톱스타인 C씨와도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C씨는 A씨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데뷔 연도(1980년대 초반)와 스타로 발돋움한 시기가 비슷해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A씨는 ‘그 분’과의 관계를 C씨에게 발설하지 않았다. C씨 또한 ‘그 분’과 A씨 두 사람이 보통 사이가 아님을 눈치채고도 ‘그 분’의 접촉을 허락했다. A씨에게는 ‘그 분’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비밀에 부쳤다.



    나중에 ‘그 분’이 자신과 C씨를 오가며 양다리를 걸친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서둘러 ‘그 분’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이 과정에 A씨와 C씨 두 사람 사이는 금이 갔다. 두 사람은 지금도 TV 드라마와 CF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다.

    용돈은 줬지만 큰돈은 안준 ‘그 분’

    이 사건을 두고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그 분’이 당시 유력 인사가 아닌 보통 사람이었다면 연예인에게 ‘합석하자’는 말을 건네지 않았을 테고 A씨도 ‘그 분’의 합석 제의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A씨와 C씨 두 사람 모두 ‘그 분’을 만난 속셈은 같았을 것이다. 이런 연예인의 속성을 모를 리 없는 ‘그 분’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은 셈’이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연예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연예 관계자가 정치인과 연예인 사이에 다리를 놓아 만남이 성사되는 경우와 달리 ‘그 분’은 직접 톱스타에게 접근해 ‘작업’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권력 실세가 되기 전에는 연예인과 거의 접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은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돈 안 되는 사람’으로 통한다. 재벌이나 졸부와 달리 정치인은 돈 없이도 연예인을 손쉽게 품에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가 성립되는 데는 정치인의 ‘배경’을 십분 이용하려는 연예인의 비뚤어진 인식도 한몫하고 있다.

    항간에는 A씨가 은밀한 만남의 대가로 ‘그 분’으로부터 큰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들의 관계를 잘 아는 연예 관계자는 “A씨가 ‘그 분은 짠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A씨에게 용돈을 건넨 적은 있지만 큰돈을 준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예인이 정치인에게 쉽게 몸을 허락하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톱스타라고 해도 써주는 방송사가 없으면 말짱 ‘꽝’이거든요. TV에 자주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게 인기라는 거예요. 드라마 출연을 통해 인기가 뒷받침돼야 CF 출연도 가능하구요. 때문에 연예인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방송사에 ‘힘 있는 말’ 한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해요. 또 정치인은 방송관계자에게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연예인의 몸을 탐닉한 값을 치르죠. 한마디로 정치인과 연예인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예요. 과거 연예계에는 이런 사례가 많았는데, 지금도 이런 관계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요.”

    그는 “연예인이 방송 출연을 위해 인맥과 돈을 동원한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연예인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는 최상의 ‘상품’이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과거 이런 형태의 부적절한 만남이 잦았던 이유는 매니저의 활동 영역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엔 톱스타라도 매니저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지 않았다. 스케줄 관리와 운전 등 단순업무만 맡겼을 뿐, 실제 방송출연을 위해 섭외에 필요한 외부 인사 접촉과 계약 등은 자신이 직접 챙겼다. 그 과정에 방송관계자에게 잘 보이거나 힘을 과시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생존의 법칙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연예인들이 정치인뿐만 아니라 재벌가 사람들, 방송사 고위 관계자 등의 성상납 대상이 되거나 그들 사이에서 매매춘이 이뤄진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초 가요계에 공공연한 비밀인 ‘PR비’ 비리로 시작된 연예계 비리 수사는 연예기획사 대표의 공금횡령 적발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연예인의 성 상납과 매매춘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연예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혔다.

    “비밀 보장되니 걱정 말라”

    수사과정에 연예인 성 상납과 관련해 몇몇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연예인이 권력층에 성 상납을 했거나 비밀리에 매매춘이 이뤄지는 것이 사실이냐”는 것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 김영일 의원은 “(연예인의 성 상납·매매춘과 관련된) 민주당 인사 여러 명의 명단을 구체적으로 확보했다”고 주장해 정치권에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의 공식적인 수사결과 발표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당시 한나라당이 지목한 민주당의 C의원은 “얼토당토않은 음모일 뿐”이라며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C의원은 “언론 등에서 가명으로라도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기사를 쓸 경우 명예훼손 등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와 친분이 깊은 정치권의 한 인사는 “C의원이 영화배우 J씨와 밥을 먹을 때 동석한 적이 있다”면서 “상임위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연예인들과 몇 차례 공개적인 만남을 가진 적은 있다. 정치권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좋지 않은 소문으로 확대 재생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K프로덕션의 매니저 Y씨(28)는 “대형기획사가 연예인을 관리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는 연예인과 정치인의 ‘부적절한 관계’ 사례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 관련 사업뿐만 아니라 연예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힘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방송이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과거에는 연예인이 직접 정치인과의 연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요즘은 대형 기획사가 나서서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총대를 메는 것 같습니다. 꽤 괜찮은 ‘상품(연기자)’이 있어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거든요. 정치인을 통해 방송국 인사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는 겁니다.”

    연예인 성 상납과 매매춘 소문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모 대학 연극영화과 4학년에 재학중인 신인 여배우 D양의 얘기는 충격적이다. 그는 “뇌물 형식을 빌린 ‘매매춘’이 연예계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저와 같은 학과에 재학중인 친구가 국회의원이 포함된 정치인들의 술자리에 합석한 적이 있어요. 하룻밤을 같이 보내면 1000만원을 준다는 얘기까지 오갔는데 ‘2차’는 가지 않고 빠져 나왔대요. 친구 혼자만요. 그 친구는 얼굴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진 연기자예요.”

    D양은 친구한테 들은 얘기라며 “2001년 2월경 모델, 탤런트, 정치인이 어울려 질펀한 술자리를 벌였다”고 증언했다.

    “친구가 잘 알고 지내는 모델 언니가 다리를 놨대요. 하루는 그 언니가 친구에게 같이 가서 술 마시고 놀 데가 있다고 하더래요. 처음에는 정치인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인 줄 모르고 따라갔는데 가보니 말로만 듣던 매매춘이 이뤄지는 술자리였다는 겁니다.

    모델 언니는 ‘눈 딱 감고 하룻밤만 보내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서로의 신분 때문에 비밀이 확실히 보장되는 자리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공공연히 매춘을 강요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전에도 이런 자리를 많이 마련했다’며 ‘너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더래요.

    그 친구는 싫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그 자리를 몰래 빠져나왔다고 해요. 하지만 친구는 ‘그 술자리는 처음부터 흐느적거리는 분위기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어요.”

    정치인과 여자연예인, 그 묘한 관계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가수, 여대생 등과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궁정동 안가의 ‘그때 그 자리’.

    “그 자리에 참석한 정치인의 이름을 알고 있냐”고 묻자 그는 “그 친구는 알고 있다”며 “국회의원도 있었는데 그들끼리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일부는 정치인이고 나머지는 사업가나 재계 관계자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연예인과 정치인의 매매춘은 오래 전부터 세인의 입방아에 올랐다. 예전엔 이른바 ‘비밀요정’이 정치인과 연예인의 매매춘을 성사시키는 노릇을 했다. 가정집을 개조한 비밀요정은 1970∼80년대에 성황을 이뤘는데 서울의 평창동, 성북동, 이태원, 약수동 등지에 몰려 있었다. 이곳을 비밀리에 이용하는 손님들은 주로 정·재계 인사들이었다. 비밀요정의 ‘급수’는 그곳에 어떤 연예인이 나오느냐에 따라 매겨졌다. 연예계의 대모로 통하는 원로 연기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최고의 뇌물은 성 성납”

    “제가 알고 있는 연기자들 중에도 비밀요정에 드나들었던 사람이 여럿 있어요. 비밀요정에서 창녀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몇몇 연예인은 자괴감에 빠져 아예 연예계를 등지기도 했어요. 가난에 찌들고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연예인들이 비밀요정에 많이 드나들었지요.

    1970년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톱스타 대열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연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탤런트 E씨도 비밀요정 출신이에요. E씨는 이혼한 직후 저를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면서 ‘언니, 이제야 고백하는데 나, 비밀요정에 다녔어’ 하고 털어놓더라고요. 비밀요정에 다닌 사실이 뒤늦게 남편에게 알려져 그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났어요. 그는 가난한 부모를 대신해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비밀요정에 드나든 일을 뒤늦게 후회했죠.”

    비밀요정에서 연예인을 조달하는 방법은 피라미드 판매방식과 비슷하다. 비밀요정에 먼저 발을 들여놓은 연예인이 매춘을 할 만한 후배나 선배에게 은밀히 접근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설득해 끌어들인다. 이렇게 해서 매춘 대열에 동참한 연예인은 또 다른 연예인을 끌어들인다.

    “여자를 밝히는 정치인에게 최고의 ‘뇌물’은 연예인입니다.”

    김영삼 정권 때 실세였던 한 정치인의 말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정치인의 뇌물수수 사건은 수시로 발생했다. 그런데 이 정치인에 따르면 직접 돈을 주고받을 경우 검찰 수사망을 피하기 어렵지만 성을 뇌물로 제공한 경우에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연예인과의 매매춘을 선호하는 이유는 얼굴이나 몸매가 예쁘다는 일반적인 이유 이외에도 ‘프로끼리’는 말이 새나가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라고 한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스스로 정치인과의 매매춘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요. 정치인들은 연예인을 품에 안는 순간 알 수 없는 ‘파워’를 맛보죠. 마치 자신이 영웅호걸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는가 봐요.”

    출산 이후 잠시 연예활동을 중단하고 있는 30대의 톱스타 F씨는 6년 전 연예계의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너, 도지사님이 밥 한끼 대접하고 싶다고 하는데 시간 되니? 지난번 지방에서 치러진 행사에 네가 참석해줘 고맙다며 도지사님이 너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주선해달라고 부탁하더라”.

    F씨는 이후에도 두 차례 더 그 도지사가 식사에 초대한다는 전갈을 받았지만 “예정된 스케줄 때문에 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깜찍하고 발랄하다는 소리를 듣던 F씨였다. 도지사가 자신에 대해 “연기력도 좋고 예쁘다”며 호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경우 ‘밥자리’가 ‘잠자리’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도지사의 초대를 정중히 거절한 것이다.

    연예인들은 비록 1990년대 들어서는 달라졌지만 1970∼80년대에는 권부 실력자들이 부르면 이유를 불문하고 달려가야 했다. 궁정동 안가에서의 만찬 초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안가의 존재를 세인들이 알게 된 것은 1979년 10월26일. 안가는 안전가옥이란 말 그대로 국민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은밀한 집’으로, 각종 대책회의를 하면서 음모도 꾸미는 곳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비서실장, 경호실장, 정보부장 등 당대 권부의 핵심 인물들과 술자리를 벌였고 그 자리에 유명 여가수와 묘령의 여인까지 동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입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안가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궁정동 안가의 절정기는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청와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삼청동, 궁정동 일대 1만940평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자그마치 12곳의 안가가 있었다. 그중 한 안가는 30평 크기의 온돌방에 외제가구와 더블침대까지 갖춘 침실과 응접실, 부속실, 주방까지 딸린 초호화판 시설이었다.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30평짜리 온돌방과 더블침대가 왜 필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1970년대 중반 뚜렷한 이목구비와 서구적인 몸매로 남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모 여대 출신의 톱스타 G씨도 궁정동 안가에 마련된 만찬에 여러 번 초대됐다. 1980년대 초반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 그는 당시 최고권력자의 몸 시중을 들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필자와 만난 그는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고인이 된 분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서 “짐작하던 일이 일어났었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장성한 딸을 둔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며 그 이상은 얘기하지 않았다.

    “부르면 두말 없이 가야 한다”는 전통은 박정희 정권이 막을 내린 후에도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인기가수이자 CF모델로 활동한 H씨는 신군부가 출범한 1980년대 초반 궁정동 안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다.

    “그날 저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예정돼 있었어요. 조연출을 맡은 사람에게 제 순서를 물어보자 그는 ‘오늘은 잡혀 있지 않는데…. 취소됐어’ 하면서 묘한 웃음을 짓더라고요. 무대에서 리허설을 하던 동료가수들도 그 이유를 안다는 듯 조연출과 비슷한 표정이었어요. 조연출은 ‘너의 일을 봐주는 선생님이 저간의 사정을 잘 알 테니 연락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연락했더니 ‘시키는 대로 해라. 오늘 저녁에 중요한 행사가 있다. 분홍빛이 감도는 한복을 준비해 두 시간 후에 만나자’고 하시더라고요. ‘몸단장을 깨끗이 하라’는 말과 함께.”

    ~옵소서, ~이옵니다, 각하

    그는 이러저러한 행사에 가본 경험이 있어 선생님의 말뜻을 어느 정도 이해했지만 그날은 뭔가 특별한 행사가 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방송출연까지 취소할 정도라면 ‘혹시 궁정동 안가에 불려가는 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자 선생님께서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다. 넌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모두들 귀여워하실 거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잠시 후 머리가 단정하고 샤프한 인상에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가 차 문을 열어줬어요. 밖은 아직 훤한 초저녁이었는데도 밤 풍경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진하게 선팅을 한 차에 올라탔죠. 자하문 길을 따라 달리다가 우회전을 하더니 바리케이드 앞에서 잠깐 멈춰 섰어요. 하지만 바리케이드는 쉽게 열렸고 또 다른 장애물이 차를 막았지만 검문 한번 받지 않고 무사 통과했죠.”

    안가에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한복으로 갈아입은 가수와 서너 명의 낯익은 영화배우가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한복을 갈아입는 H씨에게 한 가수가 다가와 한숨을 내쉬며 “나도 너만 할 때 여기 와서 못 볼 꼴을 많이 봤지. 다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하고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방 한쪽에 위치한 병풍 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당시 인기 있던 사극의 주연급 탤런트 몇 명도 뒤따라 도착했다.

    한 남자가 방으로 들어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행사장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히 교육을 실시하겠습니다.” 순간 실내는 찬물을 끼얹듯 조용해졌다. 그가 “이미 경험이 있는 경우라도 잘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아셨죠?”라고 작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하자 모두들 “예”라고 대답했다. 그는 “한복을 입었을 때는 이마가 훤하게 드러나 보여야 예뻐 보인다”는 설명을 덧붙이면서 “머리가 이마를 가린 사람은 머리손질을 다시 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술잔을 받을 때는 ‘저는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 누구이옵니다, 각하’, 또는 ‘저는 지금 어느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탤런트 누구이옵니다, 각하’라고 자신을 소개하라고 했어요. 대통령이 연예인에게 술잔을 건네면 ‘저는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누구입니다. 제 잔을 받으시옵소서, 각하’라고 응대해야 한다는 교육도 받았지요. 각하와 대화를 할 때는 말 끝에 ‘옵소서’나 ‘이옵니다’라는 표현과 더불어 ‘각하’라는 호칭을 반드시 붙여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호칭 교육이 끝나고 절하는 방법과 앉는 방법, 그리고 식사예절과 웃는 법뿐만 아니라 파트너에게 술 따르는 방법 등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교육을 받았어요.”

    이날 초대받은 11명의 연예인은 대통령이 있는 룸으로 안내되기 직전에는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눈도 멀고 귀도 멀었다고 생각하라. 룸에서 오가는 대화나 이 자리에 누가 참석했는지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말라. 여러분이 만약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밖에 나가서 발설하거나 은근히 자랑한다면 연예계 활동이 끝장난다는 걸 명심해라. 어리석은 행동으로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H씨가 룸에 들어가 보니 대통령 외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위직 인사 두세 명이 앉아 있었고, 다른 참석자들도 신문이나 TV 뉴스를 통해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테이블에는 정갈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참석자와 연예인의 숫자는 같았다. 어느 연예인이 어느 ‘어른’의 파트너가 되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대통령은 친분이 있는 듯 H씨의 선배가수를 가장 먼저 지명했다. 이윽고 참석자들 중 한 사람이 “각하, 이번에는 제가 노래를 부르겠습니다”고 하자 대통령은 “어, 그래? 그럼 해봐. 오랜만에 한번 들어보자”고 했다. 그는 일본 노래로 시작해 샹송과 오래된 팝송 등을 메들리로 불렀다.

    “각하가 남성적이며 호방한 성격이라면 자청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내성적인 스타일에다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 같았어요. 그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각하가 ‘나도 한 곡 할란다’며 눈을 지그시 감고 흘러간 노래를 불렀어요. 각하의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어요. 저도 손바닥과 팔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죠. 그렇다고 한없이 박수를 치는 것도 아니었어요. 몇 번 열심히 치고는 딱 그쳐야 했어요.”

    “이런 가수를 키워야 하는 거야”

    H씨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봄날은 간다’ ‘섬마을 선생님’ ‘한오백년’을 구성지게 불렀다. 그는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섬마을 선생님’이라던 한 비서관의 설명을 상기하며 젖 먹던 힘까지 내 불렀다. 노래를 마치자 대통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각하께서 ‘노래는 이렇게 불러야 하는 거야. 그래, 이름이 뭐라고 했나’ 하시기에 다시 제 소개를 했죠. 그러자 각하는 참석자들을 향해 ‘이봐! 당신들. 이 친구 보이지? 이런 가수를 키워야 하는 거야. 엉뚱한 애들 내보내지 말고. 알겠어?’ 하시더라고요. 순간 두 어깨가 으쓱해지더라고요. 각하가 제 노래 실력을 인정해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어요. 저같은 애송이 가수를 각하께서 직접 ‘키우라’고까지 했으니 말이죠. 톱스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어요. 저는 각하의 능력을 믿고 싶었고, 그의 말이 갖는 힘에 의지하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둘도 없이 기분 좋은 만찬이었지만 다른 연예인은 저처럼 기분 좋게 앉아 있지 못한 것 같았어요.”

    초저녁에 시작된 만찬은 밤이 으슥해서야 끝이 났다. 대통령이 먼저 자리를 뜨고 이어서 참석자들이 자리를 떴다. 연예인들은 예절교육을 받던 방으로 되돌아가 비서관이 안내하는 대로 안가에 들어갈 때와 동일한 차에 탑승했다. 연예인들을 다시 내려준 곳은 세종문화회관 뒤쪽의 주차장이었다.

    H씨는 이후에도 두세 차례에 걸쳐 안가에 초대받았는데, 그때마다 참석자들의 면면은 조금씩 달랐다. 어떤 때는 미국인이 있었고, 어떤 때는 흑인과 자리를 함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유럽에서 건너온 외국인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국빈이었고 대통령은 그들을 위해 만찬을 준비했다.

    “저와 같은 연예인들은 그 자리에 가서 흥을 돋워주거나 그들의 파트너가 되어 국위선양(?)을 해야 했어요. 그때 궁정동 행사에 한번 참석하면 일당으로 100만원을 받았는데, 방송국 출연료가 몇 만원이던 시절이었죠. 당시 사립대학교의 한 학기 등록금이 60만~70만원 정도였으니 대단한 돈이었죠. 하룻밤에 노래 몇 곡 부르고 큰돈을 벌 수 있는 데다, 잘하면 스타로 단번에 뜰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자리였기에 몇몇 연예인은 내심 궁정동 안가에서 불러주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1980년대 후반 속세를 떠나 지금은 출가해 비구니가 된 H씨는 소문으로 떠돌던 정·관계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밤 문화’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궁정동 안가에 초대받은 연예인들 가운데에는 ‘그런 일(성관계)’을 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참석한 만찬은 거기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어요. 안가에 초대받은 연예인들은 바깥에 나오면 안가에서 있었던 일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어요. 지금 하는 얘기도 사실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하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3월 취임 직후 12곳의 안가 중 두세 곳을 둘러봤다. 필자는 2001년 2월 모 여성지 인터뷰로 인연을 맺었던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안가를 철거하게 된 배경과 그에 대한 소회를 들은 적이 있다.

    “안가는 일종의 대통령 별채, 고급요정입디다. 방이 좀 큰 곳은 30명 정도 들어갈 수 있고요. 정원도 아주 아름다워요. 그렇게 해놓고 그냥 논거지. 아무나 자기(대통령)가 선택해서 부르고.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탤런트, 가수, 학생들 불러서 놀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김 전 대통령의 친구 중 한 사람은 “다 뜯지 말고 하나만 남겨놓으라”며 농반 진반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열두 개 있으나 하나 있으나 마찬가지”라고 하고는 전부 철거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곳은 악과 부정부패의 상징입니다. 서양식 침대가 있는가 하면 온돌방도 있고, 그렇게 호화로울 수가 없었어요. 재임중에 제가 얘기를 다 들었잖습니까.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사람(여자)들 데려다가 그날 선택을 하는 겁니다. 사람을 매일 저녁 바꾸고 말이지.”

    김 전 대통령은 “안가는 과거 대통령들이 재벌과 여자들을 불러들여 술을 마시면서 정치자금을 상납받기도 한 곳”이라며 “한마디로 밀실정치와 공작정치의 본산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임중 안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했다.

    30여 년 동안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연기자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궁정동 만찬 문화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귀띔했다.

    “1970년대의 궁정동 만찬은 흐느적거리고 끈적거리는 분위기로 새벽까지 이어졌다고 해요. 1980년대 들어서는 만찬을 시작하는 시간이 빨라졌어요. 주로 오후 6시나 7시에 시작돼 밤 10시를 전후해 1차가 마무리됐으니까요. 영부인 사별 후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던 박정희 대통령 때와는 달리 엄하다고 알려진 영부인 때문에 밤 늦게까지 음주가무를 즐길 수 없었다는 거죠. 이 얘기는 연예계와 궁정동 안가 만찬에 참석한 적이 있는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정설이에요.”

    “권력 맛은 돈 맛과 여자 맛”

    한 나라의 최고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권의 한 인사는 웃으면서 “영부인”이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그 이상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남편의 부정한 행위를 쉽게 눈감아줄 아내는 없겠죠. 정치판에는 ‘영부인의 성격에 따라 대통령의 음주문화가 달라진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아다녀요. 궁정동 만찬 형태도 영부인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김대중 정권에서 활약한 한 고위 관료가 모 신문사 기자와 마주앉아 했다는 얘기.

    “돈 맛과 여자 맛….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인가봐. 5년 뒤엔 구치소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이대로 살고 싶어”.

    당시 시중엔 이 관료가 한 여자 연예인과 특별한 관계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는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내가 어떤 탤런트와 이런 사이로 알려졌다면서?” 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이었다.

    “그 탤런트는 모 방송사의 사장이 나에게 소개를 해줬다고 하던데, 난 그 탤런트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집사람에게 ‘이러저러한 소문이 떠돌아다니는데 도대체 그 여자 탤런트 얼굴이나 알고 싶으니 TV에 나오면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다니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는 속담이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곳이 바로 정치권과 연예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소문의 진위 여부는 그 고위 관료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작년에 작고한 정주일(예명 이주일)씨는 자서전에서 “연예인의 인기나 정치인의 인기는 그 메커니즘이 똑같다”고 평가했다. “인기가 무섭게 올라가는 것도, 자고 나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도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정치판에는 배꼽 밑의 일은 불문에 부친다는 ‘전통’이 있더라”고 고백했다. 국회의원 생활을 해보니 “그거 하나는 정말 잘 돼 있었다”는 것.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정쟁을 일삼으면서도 ‘바람을 피웠다’ ‘누구랑 잤다’는 얘기는 오히려 무용담으로 받아들인다고. 미국 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정씨는 코미디언이 국회의원이 됐다고 괄시를 받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의 여자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코미디언이 왔느냐”는 눈치를 주면서도 ‘전통’은 지켜줬다는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과 한 여자의 관계를 정치인에게 들려줬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1984년 부산 코모도호텔 극장식당에 3일 동안 출연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그곳에서 공연하던 호주 무용단 중 한 명이 나에게 홀딱 반했다. 오드리 헵번을 빼닮은 호주 아가씨의 생일파티가 무용단원들과 극장 지배인 등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나의 스위트룸에서 열렸다.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슬슬 자리를 피해 결국 나와 그녀만이 남게 됐다. 그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불문에 부치겠다.”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정치인들은 아주 재미있어했다고 기록한 그는 “배꼽 밑의 일을 불문에 부치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회고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각각 국민의 지지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어찌 보면 비슷한 직종의 종사자들이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숱한 소문의 주인공이 돼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모두 국민들에게 별 영양가 없는 ‘안주 제공’을 이쯤에서 중단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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