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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당하는 이창호 9단

이세돌 너무 의식하는 게 문제… 기풍 변화로 故土 회복 노린다

  • 글: 양형모 한국기원 홍보과장 ryuhon@baduk.or.kr

난타당하는 이창호 9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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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창호의 극심한 부진을 놓고 바둑계에서 구름처럼 많은 ‘카더라 통신’이 부유하고 있다. 개중에는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황당한 발상으로 인해 말한 이의 이성을 의심케 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허구한 날 이창호에게 패하는 중국 기사들의 눈물어린 탄원에 중국측에서 외교적 채널을 통해 이창호에게 외압을 가하도록 했다는 설. 하긴 지난해 이창호를 중국 리그에 출전시키기 위해 중국 쪽에선 청와대에 탄원서 비슷한 것을 보낸 일이 있었다.

어쨌든 비교적 신뢰감이 가는 전자의 것들 중에서 대략적인 뼈대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슬럼프는 누구에게나 있다. 결국 단기적인 것이며, 곧 회복될 것이다. ② 이창호도 사람이다. 이제 승부에 지칠 나이도 된 것 아닌가. ③ 이세돌을 위시한 후배들이 강해졌다. ④ 사생활, 특히 여자문제는 아닐까?

이창호 위기설의 초창기만 해도 가장 득세를 보인 설은 단연 ①항이었다. 이창호가 누구인가? 곧 훌훌 털어버리고 며칠 사이에 일인자로서의 면모를 되찾아 보일 것이다. 내가 언제 슬럼프였어? 라는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②항은 좀더 심각하다. 육체적 나이와 승부 나이는 분명 다르다. 나이 오십에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호랑이 노릇을 하고 있는 조훈현을 보라. 그의 승부 나이는 측정불가이다.

승부에 지친 승부사는 더 이상 사냥을 하지 못하는 사자와 같다. 하지만 ② 항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지나치게 비약적이다. 이창호의 육체 나이는 29세. 뭔가에 지치기엔 아직 혈기방장한 나이가 아닌가.



자, 이제 우리는 ③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다. 가장 설득력이 있는 진단이다.

그렇다. 이세돌의 존재는 분명, 최근 바람처럼 일고 있는 이창호 부진신드롬의 최대 사유로 꼽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통계적으로 보아도 이창호의 부진이라는 종양은 이세돌과의 LG배 대첩, 즉 2월과 3월에 걸친 LG배 결승 5번기 이후 심각한 수준의 분열증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창호는 이세돌과 지금까지 꼭 스물다섯 번을 싸워 13승 12패를 기록했다. 둘 간의 대국은 대부분 2000년 이후에 있었던 것으로 1999년의 첫 만남을 제외하면 모두 근 3년 이내의 따끈한 승부들이다.

그리고 이는 놀라운 기록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천하의 이창호를 상대로 스무 번 이상 ‘맞장’을 떠 5할에 가까운 승률을 올린 기사는 이세돌이 유일하다고 보면 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오히려 이세돌 쪽이 8승 5패로 우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이창호는 3월22일 KT배에서 이세돌에게 패한 것을 포함해 근간 4연패의 수모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충격과 공포’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창호는 이세돌에게 패하는 것일까? 두 사람의 입을 빌면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평상심을 유지하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상대방이 평정을 찾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LG배 패배 후 이창호)

“물론 나 역시 국내 1인자를 이창호 9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보다 강한 사람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후지쓰배 우승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세돌)

답이 되었는가? 안 됐지만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여기엔 이세돌의 자신감과 이창호의 겸손함이 혈흔처럼 묻어 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만은, 얼음장에 손을 대듯 선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이창호는 이세돌을 의식하고 있다.’

둘 간의 대결은 2000년 이후 최고의 빅 매치로 여겨져왔다. 기풍도, 성격도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사람은 팬들 역시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광적인 팬들 사이에 벌어진 치열했던 온라인 공방은 바둑사에 남을 만한 화제였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의 이름을 따 ‘창세기(昌世棋)전’이라 불리기도 했던 지난 3월의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5번기로 되돌아가보자.

당시 이창호의 패배는 미국의 대 이라크전 작전명인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때까지 이창호의 국제대회 결승 전적은 16전 15승. 열여섯 번 결승에 올라 열다섯 번 우승을 차지했으니, 과연 패트리어트 미사일 할아버지도 넘보지 못할 적중률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그에게 붙은 별명이 ‘번기(番棋)의 제왕’이었겠는가? 단판승부면 몰라도 세 판 이상의 번기라면, 그 누구도 이창호를 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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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양형모 한국기원 홍보과장 ryuhon@badu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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