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춘 마을의 남쪽 끝에 위치한 남호. 잔잔한 수면 위로 주위의 경관이 어린다.
황산(黃山)을 둘러본 다음 훙춘과 시디(西遞)를 살펴볼 생각으로 황산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그곳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려 했던 것인데, 결과는 그렇듯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라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나요?”
“택시를 타면 되죠.”
대답은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설마 훙춘과 시디 같은 곳으로 가는 버스가 없을라고… 찾아보면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세한 것은 황산 등정을 끝낸 후에 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유네스코는 2000년 12월 훙춘과 시디를 일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일괄 유산’이란 둘 이상의 지역이나 건축물을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묶어 세계유산 리스트에 올린 것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국사와 석굴암, 강화·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 등이 이에 해당한다.
훙춘과 시디는 명·청 시대에 지어진 남방 특유의 민가들이 모여 있는 전통민속마을이라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이 됐는데, 이런 예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드넓은 중국에서도 윈난(雲南)성의 리장(麗江)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번 찾아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아닌가.
황산 등정을 끝내고 훙춘행 버스편을 알아봤더니 직접 연결되는 것은 없고, 황산 일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툰시(屯溪·일명 황산)를 거쳐야 했다. 다행히 툰시로 가는 버스는 하루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버스는 통합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차주의 사무실 앞에서 떠나기에 출발시간과 출발지점 등을 미리 알아둬야 했다.
중국에서도 드문 ‘일괄 문화유산’
툰시로 가는 버스는 계곡 사이로 난 2차선 길을 따라 꼬불꼬불 달렸다. 다시 말해 이렇다 할 평지가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물소를 동원해 논일을 벌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한가하고 또 푸르렀다. 툰시에 닿은 것은 그로부터 40분 뒤. 요금은 5위안(800원)이었다.
툰시에서 해치워야 할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훙춘으로 가는 교통편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인 여행증’을 발급받는 일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한 지 10년이 훨씬 지났는 데도 외국인의 경우 아직 일부 지역에 한해서는 여행허가증이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훙춘과 시디가 바로 그런 곳인데, 공안국(경찰서) 외사과에서 발급해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에 있는 공안국에서 그 일을 해주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툰시에 닿으면 일단 공안국부터 찾을 요량이었다.
툰시에서 훙춘으로 가는 버스편은 쉽게 알아냈으나, 외사과는 버스정류장에서 너무나 먼 곳에 있어 어떻게 해야 될지 망설여졌다. 그때 젊은 여인 하나가 “훙춘?”이라고 물으며 내 뒤를 따라붙었다. ‘훙춘으로 간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태세다. 경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눈치가 보통이 아닌 여자였다. 또한 끈질겼다.
오랜 여행 경험을 통해 터득한 노하우 가운데 하나는 ‘먼저 덤벼드는 자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상대가 현지의 지리나 정보, 언어 등에 익숙지 못하다는 약점을 이용해 바가지를 씌우려 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대꾸를 않는 게 상책이다. 말을 하다보면 걸려들게 마련이니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따라오든 말든 무관심한 체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 입에서 ‘훙춘’이란 말이 나온 이상 마치 ‘한번 문 먹잇감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치근댔다. 하지만 나 또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 바닥의 베테랑이 아닌가.
나는 그녀를 그늘진 곳으로 데려갔다. 마치 더 이상 다른 선택의 길이 없어 체념한 듯한 투로, “훙춘에 가려고 하는데, 여행 허가증은 어디서 발급받으면 되나요?” 하고 물었다.
“그건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일단 제 차를 타세요.”
“그렇더라도 어디서 발급받는지는 알아야 가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닙니까”
“이셴(헓縣)에서 하면 되니까 걱정 말라니까요. 공안국에 낼 수수료 이외에 200위안만 더 내시면 공안국에서 일을 본 다음 훙춘까지 최대한 빨리 모셔다 드릴게요.”
이미 필요한 정보는 얻어낸 뒤였다.
“200위안이라고요? 버스 요금이 기껏해야 10위안쯤일텐데 200위안이라니, 내 그렇게는 못하겠소이다.”
내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정류장을 빠져나와 기차역으로 갔다. 바퀴 달린 커다란 가방을 질질 끌면서. 처음에는 버스정류장의 짐 보관소에 가방을 맡길 생각이었으나, 짐 관리가 허술해 보이는 데다 밤 10시 이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해서 24시간 열려 있는 역에 맡기고자 했던 것이다. 역에선 값도 싸서 이틀 맡기는 데 2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