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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과 ‘국두’의 고향 훙춘(宏村)·시디(西遞)

300년 숨결 간직한 禮와 達觀의 건축 미학

  • 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와호장룡’과 ‘국두’의 고향 훙춘(宏村)·시디(西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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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호장룡’과 ‘국두’의 고향 훙춘(宏村)·시디(西遞)

후이저우 민속마을의 골목. 길은 좁고 꼬불꼬불 휘어져 있다.

입장권을 손에 쥔 다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둘뿐. 하나는 좁다란 골목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남호(南湖)라 부르는 커다란 호수로 가는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를 알려면 먼저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할 터, 나는 주저 없이 전자를 택했다.

훙춘을 비롯한 강남 일대에선 골목을 ‘농(弄)’이라 부른다. 농은 꼬불꼬불해 계속 커브를 돌아야 한다. 직선으로 된 길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널따란 벽체와 검은 기와지붕을 뒤집어쓴 폐쇄적인 주택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어 시야는 참으로 좁다.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면 더러 팔작지붕도 있을 법한데, 모두 맞배지붕이라 흰색의 벽체가 더욱 넓게 보인다. 쑤저우(蘇州)와 항저우(杭州), 그리고 상하이 등지에선 기와로 지붕을 얹지만 용마루와 처마선은 휘어져 날렵한데, 여기에선 모두가 직선이다. 그래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경사진 곳에서는 벽체 또한 계단식으로 되어 있다. ‘마두벽(馬頭壁)’이라 부르는 이 계단식 벽체는 우리네 전통 담장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와지붕을 이고 있으며, 높이가 본채 지붕보다 오히려 높다. 그러므로 집은 담장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대문 또한 예사롭지 않다. 사람이 출입하는 문은 좁으나, 그 위에 장식성이 강한 지붕을 얹었다. 그런데 그게 별도의 축조물 형태로 되어 있지 않고 벽체에 조각처럼 붙어 있다. 그 집의 경제력과 신분에 따라 그 형식과 크기, 장식을 달리한다는데, 이것이 황산 일대 후이저우(徽州) 지역 민가 건축의 한 특징을 이룬다.



마을 입구에서 모퉁이를 몇 차례 돌고 돌아 도착한 곳은 반달 모양의 못이었다. 그 둘레로 집들이 들어서 있다. 못의 이름은 ‘월소(月沼)’ 또는 ‘월당(月塘)’. 우리말로 하면 ‘달 못’ 정도가 된다. 생긴 모양에 따라 붙인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곳곳에 원색의 파라솔이 서 있고 그 사이로 오리들이 다니며, 아이들은 스케치북을 펴들고 주위의 경관을 담고 있다. 그들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경관도 볼 만하지만, 실제의 집들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렸다.

‘민박’이란 쪽지가 붙어 있는 집도 있고, 입장에 5각(角)을 받는다고 붙여놓은 집도 있다. 먼저 ‘수지당(樹志堂)’이란 당호(堂號)가 붙은 2층집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를 받는다는 말이 없기도 했지만, 마루와 붙은 정자에 노인 몇 분이 마작을 즐기고 있어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인 듯한 노인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정자는 작으나 거기에는 ‘창금사(創琴?)’라는 매우 어려운 글자가 쓰여 있었다. 현판 주위로는 화려하게 장식된 등(燈)도 달려 있어 섬세한 손길이 거쳐갔음이 절로 느껴졌다.

며느리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벽에 걸린 그림과 글씨, 마루 뒤쪽의 금색 글씨 등을 보여주며 여러 차례 ‘첸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청나라의 황금기를 연 건륭(乾隆) 황제 시대의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훙춘의 역사는 10세기 중엽 북송시대로부터 시작됐다. 난을 피해 남하한 한족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던 것이다. 그때의 이름은 ‘신안’. 남송시대인 12세기엔 ‘훙춘(弘村)’으로 개칭됐고, 명말·청초에 이르는 300년 동안 가장 크게 번창했다. 특히 60년간 제위에 있으면서 청조를 번성시킨 건륭제 때가 전성기로, 그때 이름마저 훙춘(宏村)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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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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