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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⑤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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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시퍼런 잎을 쭉쭉 뻗으며 자란다. 비가 온다니 한 발 앞서 똥거름을 줘야지. 뒷간으로 가서 아래칸 문을 열고 똥장군을 꺼낸다. 장에서 파는 빨간 양동이. 이게 우리 집 똥장군이다. 손으로 들면 번쩍 들린다. 열흘 남짓 식구들 똥오줌 모은 거니 큰 요강인 셈이다. 거름통 바닥에 숯가루를 깔고 똥오줌 눌 때 톱밥을 얹곤 해 보기에 흉측하지는 않다. 어디다 줄까? 잠시 잰다. 집 뒤는 지난번에 주었으니 저 아래 밭에다 줄까. 인심 쓰듯 거름을 부어준다.

뒷간이 따로 있다. 우리 식구가 사는 살림채, 그 옆에 곳간과 닭장이 있는 아래채, 그리고 조금 떨어져 뒷간이 있다. 하루에도 몇 차례 그 집으로 볼일 보러 간다. 뒷간은 이층으로, 사람은 위층으로 드나든다. 아래층은 똥장군이 드나들고.

뒷간에 들어가면 한쪽에 책장이 있다. 물을 쓰지 않으니 습기가 차지 않아 책, 신발 따위를 넣어놓았다. 자리에 앉으면 앞에 책을 펼칠 작은 상이 있어 거기에 책이 서너 권 놓여 있다. 식구마다 한 권씩 펼쳐놓은 거다. 나도 시집 한 권 펼쳐놓고 한두 편 읽는다. 읽다 고개를 들면 반달 모양으로 뚫린 창구멍 사이로 앞산이 보인다. 휘어진 나뭇가지가 만든 창구멍이다.

문득 이 모두가 꿈만 같다. 도시 아파트서 살다 이 곳으로 옮겨와 한동안 마을 빈 집을 빌려 살았지. 요즘은 곳곳에 귀농학교가 있어 준비를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준비 없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마을 어른 한 분이 빈 집을 소개해 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차례로 돌아가셔서 비어 있는 마을 빈 집.

처음 그 집에 가 하루 밤을 잔 일이 떠오른다. 부엌에는 가마솥이 두 개 걸려 있고, 하수도가 없어 물일은 부엌 문 앞 수채에서 해야 하는 곳. 한번도 그런 집에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그날 저녁은 남편이 불을 때서 밥을 해주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까치도 집을 짓는데

농사철은 시작되고. 다른 길이 없어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하고. 그 집에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불을 때서 방을 데우고. 상하수도가 있는 바깥 수채에 헌 싱크대를 놓고 밥을 해 먹었다.

그러니 목욕 한번 하려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물을 떠다 가마솥에 부어 물을 데우고.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붓고. 그 속에 들어가 몸을 씻고. 그 물을 퍼다 버려야 했다. 그 시골집에서 하루 세 끼를 꼬박 해 먹었다. 그뿐인가. 손님은 또 얼마나 치렀나. 도시와 달리 손님이 오시면 하룻밤 자고 두어 끼를 대접할 때가 많다.

귀농 첫해 정말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남편은 ‘도대체 농사로 밥 먹을 수 있을까?’ 하며 새벽부터 밤까지 농사에만 매달렸다. 나는 농사도 농사지만 농사 한 걸로 밥상을 차리는 살림살이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결혼한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건 도시 살림이었을 뿐.

시골 살림살이는 새로웠다. 말로만 듣던, 어떤 건 듣도 보도 못한 살림을 살아야 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한 일이 많다. 처음으로 메주 쑤고. 처음으로 엿기름 기르고, 처음으로 지에밥 쪄서 미숫가루 만들고, 두부 끓이고…. 서툰 솜씨. 가르쳐 주실 어른이 계시나. 하다 보면 엉터리 음식이 되곤 했다. 그래도 타박 없이 잘 먹어준 우리 식구들 덕분에 또다시 뭔가를 벌이곤 했다.

마음이 급했다. 어서 내 집 마련했으면…. 마을에 팔 집이 없나? 집터는 없나? 한 마을이 십여 호 정도로 작은 산골 마을. 결국 새로 집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새 집을 짓고 싶어했다. ‘까치도 집을 짓는데…’ 하면서.

이 곳으로 올 때 장만한 산을 깎아 집터를 하기로 했다. 본디 마을 어른들이 보리농사를 지어 먹던 양지바른 산밭 자리다. 땅 신에게 술 한 잔 따라드렸다. 그리고 집터를 다졌다. 처음 집터를 다질 때는 곧 짓고 싶었지만 1년 이상을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여름 장마를 두 번, 겨울을 한 번 났다. 그때는 길고 긴 기다림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잘했다. 큰비에 자연의 물길은 어디로 흐르는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집을 지을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기다린 끝에 집짓기를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이 바로 뒷간. 집터 다질 때 나온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산에서 갈대 베어 지붕을 얹고, 집터 흙을 이겨 흙벽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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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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