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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기자가 만난 사람

건국 이후 첫 여성 대법관 된 김영란 판사

“법원·가정, 양쪽 모범생 하느라 눈물 숱하게 떨궜어요”

  • 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건국 이후 첫 여성 대법관 된 김영란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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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장을 받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남편은 선입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지만 시부모 부양 등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는데요. 정확하게 무슨 의미입니까.

“결혼 초에는 이 사람도 ‘남자는 이래야 된다’ ‘여자는 이래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더라고요.”

김 대법관은 남편을 ‘이 사람’이라고 호칭했다. 여성들이 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을 부르는 말은 ‘애 아빠’ ‘남편’ ‘우리 그이’ ‘신랑’ ‘자기’ 등으로 다양하다. ‘이 사람’이라는 호칭을 쓰는 아내는 드문 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들과 딸을 키우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 선입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죠. 그런데 자기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 고치더라고요. 많이 달라졌어요. 옛날 황 위원께서 보셨을 때 하고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나요.

옛날에 여자는 남자의 세계관 속에 들어가 사는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지요. 강 변호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죠. 나는 남자가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 결혼했죠. 남편은 아니다 싶으니까 스스로 변하더라고요.



며느리로서 시부모 모시기가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대가족 제도와 노인 문제도 생각하게 됐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계로 생각을 확대해나갔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편이 ‘우리는 부모 모시는 노하우가 있지 않느냐’며 자기 부모를 모셨으니까 처가 부모도 모시자고 하더군요. 친정어머니도 건강이 안 좋거든요. 그 얘기를 친정식구들한테 했더니 참 고마워하데요.”

-남자들은 편하게 말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가 직접 수발을 들지 않으니까.

“시아버님이 치매를 6년 가까이 앓으셨거든요. 씻고 닦아드리는 일을 여자들은 힘에 부쳐 못하잖아요. 시아버님이 옛날 분치고는 키가 크셨어요. 보성전문 농구선수를 하셨대요. 남편보다 크셨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많이 했죠.”

응접실 벽에 2001년에 찍은 강 변호사의 어머니 이효임 여사의 미수(米壽·88세) 잔치 사진이 걸려 있다. 이 여사는 올 3월에 91세로 세상을 떴다. 인생의 마지막 여로(旅路)에서 2년 반 가량 자리보전을 했다.

“넘어지셨다가 다친 뒤로 골다공증이 겹쳐 누워지내셨죠. 시누이 집이 옆이거든요. 다치기 전에는 시누이 집까지 걸어가셨는데…. 가끔 시누이 집 가다가 길을 잃었지만 이 동네에서는 어머님을 다 아니까 괜찮았어요. 분양받아 10년 넘게 살고 있거든요.”

-시아버님이 치매를 앓으실 때는 어땠나요.

“치매라는 병을 몰라 아버님이 처음에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데 내가 ‘대체 아버님 왜 그러세요’ 하며 화도 내고 그랬어요. 안 그러던 분이 이상한 행동을 하셔서. 그 병을 잘 알았더라면 초기부터 대응을 잘했을 텐데….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시부모를 모시다 보니 노인 문제를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노인도 아이와 똑같거든요. 보호해줘야 하고 외출할 때 모시고 나가야 되죠.”

“점수 따지면 남편은 나보다 나은 사람”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내과의사 겸 의학사(醫學史) 교수인 바론 러너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사망을 계기로 뉴욕타임스에 ‘긴 작별을 위한 계획’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낸시 레이건은 남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후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 러너 교수는 낸시가 한걸음 더 나아가 남편의 병이 진행된 과정과 가족들의 대응을 공개했어야 한다고 썼다. 그래야 같은 병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치매에 걸리거나 거동이 힘들어지면 서구에서는 대개 요양시설에 들어가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부모가 그런 시설에 들어가면 자식들 체면이 깎인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데요.

“아직 우리 부모님 세대는 시설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요. 모셔보니까 가족의 사랑이 필요해요. 치매환자일수록 어린애하고 똑같아지니까요. 어린애가 엄마 찾고 엄마 등에 매달리듯이. 가족만이 그 양반들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딜레마예요.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죠. 우리 애들에게 내가 그렇게 되면 요양시설에 보내고 가끔 찾아온다고 약속하라고 했죠. 그랬더니 애들은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께 하는 거 봤으니까 우리가 모신다’고 말하지요. 부모 마음은 자식한테 짐을 주고 싶지 않은 거죠. 내가 해봤더니 가족의 사랑이 필요해요. 아기 같아져요. 내가 ‘왜 식사를 들지 않으시냐’고 조금 화내면 싫어하세요. 옆에서 노래 불러주면 좋아하시고요.

어머니는 마지막 한 달 정도 거의 곡기를 끊으셨어요.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여드리면 안 삼키고 다 뱉어내시는데 아들이 주면 잡수시더라고요. 그게 가족이 돌보는 것과 요양시설의 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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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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