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터뷰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세계 1위 못할 연구엔 손도 대지 않는다”

  • 글: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팀장 wolfkim@donga.com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2/5
PET는 신경세포의 ‘화학적 움직임’을 감지한다. 예를 들어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세로토닌을 보자. 이 물질은 불안, 충동성, 폭력성, 우울증 등과 연관된다고 다소 막연하게 알려져 있다. 만일 세로토닌이 잘 분비되지 않으면 작은 자극에 대해서도 쉽게 우울해지고 심한 경우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 PET는 세로토닌이 신경세포에서 얼마나 분비되고 다른 신경세포에 어떤 순서로 영향을 미치는지 촬영할 수 있다.

이에 비해 MRI는 신경세포의 ‘정지된 구조’를 정확히 잡아낸다. 세로토닌의 분비가 시원찮아 뇌의 신경세포 구조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제 기본 아이디어는 퓨전(Fusion)입니다. PET와 MRI 영상을 동시에 얻어 구조와 움직임을 한번에 파악하려는 것이죠. 특히 PET는 질환이 눈에 띌 정도로 진전되기 전에 잡아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뇌종양이 생길 때 우선 세포의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한참 지난 후 우리 눈에 보일 정도의 혹이 생깁니다. PET는 바로 혹이 생기기 전에 유전자의 비정상적인 활동 조짐을 미리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조기진단이 가능한 거죠. 또 MRI는 수술을 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종양을 제거하려면 ‘정지된 구조’를 알아야만 정확하게 종양을 도려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의료장비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의 시도다. PET와 MRI가 처음 선을 보인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두 가지를 합쳐서 촬영하겠다는 것은 순전히 조 교수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평생을 이 두 가지 장비 개발에 몰두해온 전문가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두 장비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경비가 예상된다. 운영비를 제외한 기본 장비값만 해도 얼추 100억원은 들 거라는 게 조 교수의 말이다.



“가천의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장비는 물론이고 연구소 건물, 연구원 등 제반 여건을 갖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가천의대에서 그런 투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43세에 컬럼비아대 정교수로 임용

하지만 이 일은 실현됐다. 가천의대와 지멘스는 인천 길병원 안에 ‘뇌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PET와 MRI를 결합한 ‘퓨전영상시스템’를 개발키로 했다. 물론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감행’한 것이다. 가천의대와 지멘스측은 PET-MRI가 개발되면 연간 20억달러 규모의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못지않은 충분한 연구 인프라 제공. 이것이 조 교수가 한국을 택한 한 가지 이유다. 한국에 우수한 학생 인력들이 많다는 점 역시 그의 한국행을 앞당겼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은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에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KAIST)에서 초빙교수로 10여년 활동할 때 미국에서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정열적인 연구의욕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죠.”

1972년부터 캘리포니아대(UCLA) 공학부에서 부교수를 맡고 있던 조 교수에게 1978년 두 곳으로부터 동시에 채용 제의가 들어왔다. 미 컬럼비아대와 한국의 카이스트였다. 컬럼비아대의 채용 조건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컬럼비아대는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과 함께 미국에서 10위 내에 드는 명문이었다. 컬럼비아대 교수 사회의 전통으로 볼 때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정교수 급은 주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을 외부에서 영입함으로써 내부 교수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도록 경쟁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물론 정년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조 교수는 이런 자리에 1979년 43세라는 젊은 나이로 정교수에 채용됐다.

“처음 컬럼비아대에 갔을 때 한 교수가 와서 진지하게 조언하더군요. 이곳은 경쟁이 심하니까 잘해야 될 거라고요. 내가 젊으니까 조교수나 부교수로 온 줄 알았던 거죠.”

컬럼비아대가 조 교수를 택한 이유는 그가 UCLA에서 PET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당시 컬럼비아대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잘 만들어지지 않으면 파킨슨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한 에릭 칸델 교수가 있었다(그는 이 발견으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파킨슨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 팔다리가 불규칙적으로 떨리는 등의 운동장애를 일으키는 난치병이다. 칸델 교수는 자신의 신간 ‘신경과학의 원리’에서 PET 영상을 표지사진으로 장식할 정도로 뇌의 영상촬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당시 600만달러 규모의 연구비를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신청하고 조 교수 영입에 나섰다(하지만 이 연구비 신청은 결국 무산됐다).

2/5
글: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팀장 wolfkim@donga.com
목록 닫기

영구 귀국한 뇌 영상 분야 최고 권위자 조장희 교수

댓글 창 닫기

2021/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