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과 위대가 둘이 아니란 것쯤이야 나도 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목사라 한들 어찌 그리 기운찬 일을 시작했을까. 제 발밑만, 제 가족만 껴안고 사는 보통사람의 삶을 뿌리치고 나선 힘의 근원이 도대체 뭘까. 삶의 질, 그 최고 단계가 뭔지 그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고난에 처한 이웃과 아픔을 나누는 마음 안에 강렬한 만족이 있더라는 생의 비밀을 스스로 찾아냈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 입에 뱅뱅 도는 시가 있었다. 장돌뱅이 사생아로 자라 그 상처의 힘으로 글을 쓰는 송기원, 그의 시 ‘교감’을 함께 읽으면 들꽃피는 마을에서 내가 느낀 눈부심이 설명될까. 김 목사의 본질을 포착하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줄까.
터진 입술이 터진 입술을 더듬어마침내 검붉은 멍과 멍끼리 엉키면눈부셔라
밤새 하얗게 지붕을 덮은 눈!
“다친 마음만이 다친 마음을 품어줄 수가 있어요. 영적 지도자란 다른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껴안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에요. 자신의 눈물과 고통을 극복해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눈물과 고통을 이해하고 치료해줄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 우리 들꽃피는 마을 아이들의 상처는 그 자체가 개인적 재산이고 동시에 사회적 재산이에요. 제각기 그걸 성찰해서 깨닫고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와 우리 선생님들이 할 일이지요. 방치되지 않고 사랑으로 극복된 상처는 힘으로 변합니다. 사회도 우리 아이들을 ‘깨달은 자’로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해요.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은 세상을 고치는 영적 트레이너가 될 수 있어요. 그런 날이 꼭 올 거라고 믿습니다.”
나는 은연중 송기원의 시가 김현수 목사가 한 이 말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교회로 찾아든 거리의 아이들
그의 교회에 거리의 아이들이 찾아온 건 지금부터 10년 전 여름이다. 올 여름처럼 그 여름도 열대야가 계속되어 연일 숨이 턱턱 막히게 더웠다. 새벽기도를 나간 목사 부부의 코에 악취가 진동했다. 교회에서 운영중인 공부방에 열두셋 나이의 아이 여덟 명이 뒤엉켜 자고 있었다. 더럽고 꾀죄죄한 옷, 걸레 같은 양말, 다 떨어진 운동화. 냄새의 진원지는 바로 거기였다. 아이들을 깨워서 내쫓았다. 애들은 비척거리며 물러갔으나 밤이면 또 왔다. 가엾은 마음에 때로는 아침을 먹여 보내기도 했다. 아귀아귀 밥을 퍼먹는 애들을 보며 간절히 타일렀다. “다시는 오지 마라. 얼른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집으로 들어가라!”
그러나 애들은 걸핏하면 교회로 몰려왔고 때로는 똥까지 싸놓고 도망갔다. 화가 난 그는 튼튼한 자물통을 네 개나 사서 교회의 셔터문을 잠가버렸다. 10월이 되었다(들꽃피는 학교 개교일이 10월9일이다). 이날 김 목사는 거리에서 자신이 쫓아낸 그 아이들을 또 만났다. 문 잠긴 교회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미 쌀쌀해진 날씨에 한데서 날밤을 샌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얼굴을 안다고 “목사님, 사모님, 밥 좀 사줘요” 하며 애처롭게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