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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⑪|댓재에서 삽당령까지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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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 뚫고 올라서니 구름바다가 산허리에 둘러친다. 바람에 뭉쳤다가 갈라지는 사이사이 동해도 보이고, 산자락도 보이고. 문득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어제와 다르게 차다. 백두대간에 벌써 가을이 찾아온 모양이다. 다람쥐 뛰노는 산꼭대기, 파헤쳐짐에 상처 입고 신음하는 산허리에도.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해안선 절벽이 아름다운 감추사.

지난 여름 모 일간지에 백두대간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2004년 초 노무현 대통령이 경기도 포천의 국립 광릉수목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백두대간의 훼손을 막기 위해 백두대간에서 석회석을 채광하는 대신 외국에서 수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제안한 바 있는데, 관계부처인 산업자원부와 산림청이 심층 검토한 결과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었다는 내용이다.

이 짤막한 기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백두대간에 무관심한 사람의 눈에는 단순히 대통령의 생각이 관계부처에 의해 뒤집힌 점이 흥미로울 것이다. 하긴 과거 권위주의 시대였다면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호사가들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볼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백두대간은 이미 우리가 보살피고 싶다고 해서 마냥 가슴에 품어둘 수 없는 물건이 된 지 오래다. 집안이 어려워지면 가족 모두가 고생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외환위기 이후 이 땅에 들이닥친 거대자본의 인수합병(M&A) 바람은 백두대간의 소유 지분마저 바꿔놓았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강원도 강릉과 동해지역에서 오랫동안 석회석 채광산업으로 재미를 본 기업은 한라시멘트와 쌍용양회. 외환위기 직후 유동성 위기를 겪는 와중에 두 회사의 경영권이 프랑스와 일본으로 넘어갔다. 물론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국내기업을 적극적으로 외국에 매각했고, 외국기업들도 선뜻 한국의 우량기업에 손을 뻗쳤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석회석 채광을 중단시킨다면, 외국기업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시멘트산업에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들고 강원도 지역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이 아니라면 차악(次惡)이라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백두대간 일대의 석회석 채광산업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도를 바꾸는 방식으로는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 수년간 거듭된 강원도 산간지역 자연재해에서 알 수 있듯이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 파괴를 넘어 대규모 인명피해를 부른다. 이제부터라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곳을 중심으로 채광하고, 개발지역에서는 반드시 복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원도의 백두대간은 치유할 길 없는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정동진행 관광열차 안에서

벌거벗고 신음하는 대간마루, 동해 푸른  파도가 달래주나
8월13일 밤. 청량리역 대합실은 막바지 피서인파로 배낭을 풀어놓을 틈이 없을 만큼 북적거렸다. 청량리역은 서울역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탈(脫)서울’의 쾌감을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경부선과 호남선이 좀처럼 시멘트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청량리에서 떠나는 경춘선과 태백선은 곧바로 자연의 풍광과 만난다. 경춘선은 북한강을 따라 달리며 낭만의 장소를 펼쳐놓고, 태백선은 강원도의 심산유곡과 동해바다의 장엄한 일출을 선물한다. 그래서 추억에 굶주린 사람들은 청량리역에서 흘러간 세월을 더듬고 잊혀진 사람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이후 청량리역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는 티켓은 강릉행 밤 기차다. 이것은 전적으로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인데, 밤 11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모래시계’의 촬영현장인 정동진역에 이르러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다. 특히 플랫폼 바로 옆에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기차와 해변이 어우러지는 절묘한 분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 ‘모래시계’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한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딸이 위장취업을 했다가 경찰에 쫓겨 도망친 곳이 정동진역 부근의 어촌마을이었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오려다 정신이상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히는 비운의 현장이 바로 정동진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동진에는 ‘모래시계’의 주인공이 머물던 조용한 어촌마을은 없다.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정동진에는 거대한 투기바람이 불어 이 일대 땅이 대규모로 외지인 손에 넘어갔다. 고기를 잡아서 팔아 먹고 살줄밖에 모르던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됐다. 대신 그 자리엔 대도시 못지않은 유흥단지가 들어섰다. 슬픈 일이다. 개발 자체를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개발의 양상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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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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