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안선 절벽이 아름다운 감추사.
이 짤막한 기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백두대간에 무관심한 사람의 눈에는 단순히 대통령의 생각이 관계부처에 의해 뒤집힌 점이 흥미로울 것이다. 하긴 과거 권위주의 시대였다면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 호사가들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볼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백두대간은 이미 우리가 보살피고 싶다고 해서 마냥 가슴에 품어둘 수 없는 물건이 된 지 오래다. 집안이 어려워지면 가족 모두가 고생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외환위기 이후 이 땅에 들이닥친 거대자본의 인수합병(M&A) 바람은 백두대간의 소유 지분마저 바꿔놓았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강원도 강릉과 동해지역에서 오랫동안 석회석 채광산업으로 재미를 본 기업은 한라시멘트와 쌍용양회. 외환위기 직후 유동성 위기를 겪는 와중에 두 회사의 경영권이 프랑스와 일본으로 넘어갔다. 물론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국내기업을 적극적으로 외국에 매각했고, 외국기업들도 선뜻 한국의 우량기업에 손을 뻗쳤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석회석 채광을 중단시킨다면, 외국기업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다. 여기에 시멘트산업에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들고 강원도 지역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이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선이 아니라면 차악(次惡)이라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점에서 백두대간 일대의 석회석 채광산업은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도를 바꾸는 방식으로는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지난 수년간 거듭된 강원도 산간지역 자연재해에서 알 수 있듯이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 파괴를 넘어 대규모 인명피해를 부른다. 이제부터라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곳을 중심으로 채광하고, 개발지역에서는 반드시 복원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원도의 백두대간은 치유할 길 없는 깊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정동진행 관광열차 안에서

1990년대 이후 청량리역에서 가장 빨리 매진되는 티켓은 강릉행 밤 기차다. 이것은 전적으로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인데, 밤 11시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면 ‘모래시계’의 촬영현장인 정동진역에 이르러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도 있다. 특히 플랫폼 바로 옆에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기차와 해변이 어우러지는 절묘한 분위기로 빠져들 수 있다. ‘모래시계’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은 이곳에서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포즈를 취한다. 드라마에서 부잣집 딸이 위장취업을 했다가 경찰에 쫓겨 도망친 곳이 정동진역 부근의 어촌마을이었고, 서둘러 마을을 빠져나오려다 정신이상자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히는 비운의 현장이 바로 정동진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동진에는 ‘모래시계’의 주인공이 머물던 조용한 어촌마을은 없다.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정동진에는 거대한 투기바람이 불어 이 일대 땅이 대규모로 외지인 손에 넘어갔다. 고기를 잡아서 팔아 먹고 살줄밖에 모르던 사람들은 그곳에 머물 수 없게 됐다. 대신 그 자리엔 대도시 못지않은 유흥단지가 들어섰다. 슬픈 일이다. 개발 자체를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개발의 양상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