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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 인민들의 진짜 목소리 ‘저 낮은 중국’

  • 글: 장정아 인천대 교수·중국학 jachang@incheon.ac.kr

중국 인민들의 진짜 목소리 ‘저 낮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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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의 혼란스러움은,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오입쟁이 책 도매상 탕둥성(唐東升)은 “‘지도자를 사랑하느니 자기를 사랑하는 게 낫다’는 게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적 결론 중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린 시인 황허(黃河)는 ‘되찾은 자아’에 대해 다르게 평가한다. “신중국이 들어서면서 인민들에게 일거리가 생기고 희망이 생겼지. 그런데 수십 년 세월이 지나버린 지금, 여전히 자기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기일 따름이란 걸 모두 알게 되었지. 공허함이 다시 밀려오지”라고. 그리고는 영혼을 만족시켜주는 건 이제 마약밖에 없다고 되뇐다.

모든 이에게 각자의 역사가 있다

이들의 낮은 목소리가 내는 커다란 울림은, 자신이 거대한 역사와 정치의 피해자임을 소리 높여 역설하는 대신 담담하게 기억을 풀어놓는 데 있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는, 정부의 공식 역사도 아니고 역사가들에 의해 평가되고 해석되는 역사와도 다른, 실제 그 역사를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의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떠한 역사책이나 훌륭한 이론서에서도 보여줄 수 없는 역사의 단면을 풍부하고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늙은 홍위병 류웨이둥(劉衛東)은 세상에 대해 분노하지만,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깊은 애착을 보인다. 인터뷰 도중 그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홍위병 같다고 지적하는 저자에게 그는 되묻는다. “내가 왜 내 과거를 부정해야 하나?”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과 구술(口述)에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글쓰기는 인류학적 전통과 맞닿아 있다. 이름모를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어떻게 사료로서의 객관적 가치를 지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인류학적 역사쓰기는 그 객관성과 역사관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공식 역사에서 억눌리고 침묵을 강요당한 대중의 기억과 목소리를 이끌어내어, 주류 역사에 대항하는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역사가 있다”고 역설하는 라오웨이의 저작은 단순한 인터뷰 기록이 아닌 새로운 역사쓰기의 의미를 지닌다. 책 뒷부분에서 중국 현대사 연표에 인터뷰 대상자들의 개인사를 끼워넣은 역자의 신선한 시도는, 이렇게 개인의 삶을 통과하며 굴절되는 거대한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한중교류의 시작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중국붐 속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노회한 장사꾼, 새로운 중화제국을 꿈꾸는 대륙, 한국 스타에 열광하는 젊은이…. 이 중 어디에도 없던 중국인들을 우리는 이 책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이 만남은 한중관계를 새로이 정립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관심은 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 과열됐을 뿐 실제 살아 숨쉬는 중국인의 모습을 겸허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등한시되었다. 상호이해가 빈약한 속에서 월드컵 때는 양국 네티즌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고, 다시 고구려사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과 당황스러움은 거꾸로, 우리가 숨을 고르고 차분하게 중국인에 대해, 그들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할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눈에 드러나는 한중간의 갈등과 충돌은, 비로소 진정한 한중교류가 시작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것은 더 이상 정부간 교류나 경제교류가 아니라 양국 대중의 만남이요, 살갗이 부딪치는 소리이다. 민족주의적 논리가 부딪치면 갈등은 첨예해진다. 그럴수록 다양한 낮은 목소리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작자 라오웨이의 평범한 말은 다시 한번 힘을 지닌다.

“이제 우리는 하나하나의 구체적 생명 속으로, 그 세포와 살과 핏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동아 200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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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정아 인천대 교수·중국학 jachang@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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