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시는 방법도 특이하다. 색을 보고, 향을 맡고, 그 뒤에 비로소 입을 댄다. 혀에 닿는 첫맛과 입속을 가득 채우는 맛, 삼킨 뒤 머무는 맛을 구별해 느낀다. 잔을 비우고 나면 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군 뒤 새 잔을 채운다. 이렇게 석 잔을 마신다. 술의 참맛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스스로 만든, 나름의 주도(酒道)다. 술 회사의 술 감정사에게나 어울릴 법한 이런 방식으로, 그는 술이 품고 있는 매력의 100%를 빨아들인다.
허씨가 직접 만들어 붙인 자신의 직함은 ‘술 품평가’. 이전까지는 드러내놓고 이렇게 자칭한 사람이 없었으니, 그는 ‘대한민국 1호’ 술 품평가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엔 ‘술 기행가’라고 했어요. 좋은 술 찾아 세상 곳곳을 여행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술에 대해 점점 알게 되고, 평가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그때부터 술 품평가로 바꿨습니다.”
여행길에서 술을 만나다
그의 본업은 여행작가다.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때는 ‘샘이 깊은 물’이라는 그럴듯한 잡지의 기자였다. 전통 문화가 낡고 시대에 뒤처진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 알리던 교양지다.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샘이 깊은 물’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술 품평가’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의 삶을 바꿔놓은 건 잡지발행인이던 고(故) 한창기씨다. 한글, 잡지, 한옥, 판소리 등 한국 문화 전반에 해박한 식견을 갖고 있던 그는 기자들을 문화전문가로 키웠다. 일일이 글쓰기를 가르쳤고, 넉넉하게 취재할 공간을 배려해줬다. 하지만 5년간의 직장생활은 파국으로 끝났다. 기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던 그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한창기씨는 그에게 문화적 심미안을 선사한 스승이면서 동시에 직장생활을 마감하게 한 존재다. ‘세계 최고의 직장’이라고 생각하던 곳을 떠나며 그는 “이제 자유롭게 글 쓰고 여행하며 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한 여행작가의 길에서 술을 만났다.

허시명씨가 고두밥과 누룩, 생수를 섞어 술을 빚고 있다.
“그보다는 호구지책이었다고 하는 게 맞지요. 프리랜서 여행작가는 잡지사에 기획안을 내고, 그게 채택돼야 연재를 합니다. 주제를 잘 잡는 게 중요해요. 한 잡지사에 낼 아이템을 정하려는데 아내가 술 얘기를 꺼냈어요. ‘남자들 다 술 좋아하잖아. 시사지에 술에 대한 여행기를 기고하는 거 어때? 전국을 돌며 지역 명주를 소개하는 거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이거 되겠구나’ 싶었지요.”
▼ 원래 술을 좋아하셨어요?
“아니요. 완전히 문외한이었지요. 아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많이 마시지도 못했어요. 집안 내력이 술을 못합니다. 큰형은 맥주 한 잔 마시고도 목욕탕에서 쓰러지고 아버지는 아예 주무시는 스타일이에요. 저도 많이 마시면 그냥 잠을 잤지요.”
그는 어린 시절 호기심에 술을 입에 대봤다거나, 인사불성으로 취해 ‘사고’를 쳐본 기억도 없다. 대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술에 대한 첫 ‘추억’을 만든다. 과 친구들과 계룡산 신도안으로 답사여행을 떠났을 때다. 낮에는 지역 방언을 채집하고, 밤이 되면 집 앞으로 실개울이 흐르던 민박집에 모여 주인 할머니가 내주는 밀주를 마셨다.
“부드러운 보름달 빛이 도는 노르짱한 막걸리였어요. 진짜 맛있었지요. 그때가 제 삶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계절은 한창 봄이고, 내 인생도 봄날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