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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 기자의 재미있는 자동차 <마지막회>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 나성엽│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cpu@donga.com│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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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는 TV로 생중계되는 1군 경기가 있고, 1군에 미치지 못하는 실력을 가진 2군이 있듯이, 자동차 경주에도 1군 격인 F1 아래로 차량의 종류와 배기량을 달리하는 포뮬러2(F2), 포뮬러3(F3) 등의 하위급 경기가 있다. 프로야구와의 차이점을 들자면, 프로야구 팬들은 각 팀의 순위와 선수 개인의 성적을 위주로 관전하며 선수가 사용하는 신발이나 장비는 부수적인 내용인 반면, F1의 경우 △개인의 성적 △자동차(머신)의 성적 위주로 관전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포츠 신문이나 가십성 인터넷 뉴스를 보면 프로야구에도 온갖 뒷얘기가 있다. 어느 선수가 바람을 피웠다는 둥, 어떤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있었다는 둥, 어느 경기에서 선수들이 집단으로 그라운드로 뛰쳐나오는 ‘벤치 클리어링’이 있었다는 둥. F1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겉보기에는 ‘자동차들’이 서로 먼저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 같지만 자동차는 어디까지나 신발, 배트, 글러브 같은 도구일 뿐. 결국 F1 역시 사람들 간의 경쟁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

전남 영암 F1 그랑프리, 알고 보면 FUN FUN!

싱가포르 그랑프리 코스.

서울에 사는 프로야구 팬이 대구 경기를 현장에서 보기 위해서는 그리 비싸지 않은 교통비만 치르면 되지만, F1은 대륙을 옮겨가면서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큰마음 먹지 않고서는 현장에서 경기를 보기 어렵다. 한국에서 열리는 F1을 놓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도 ‘저렴한 비용’에 현장에서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고막이 손상될 정도인 F1의 굉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영암 ‘F1 코리아 그랑프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역시나 미하엘 슈마허다. 미하엘 슈마허는 2000년대 F1을 혼자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F1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슈마허는 귀에 익은 이름이다. 슈마허는 1994년과 1995년, 2000~2004년 모두 7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슈마허가 소속된 페라리 팀은 2002년 F1 전체 17개 대회 중 15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우승했다. 슈마허가 획득한 승점은 2등과 3등을 합친 점수보다 높았다. 2003년에도 슈마허가 근소한 점수차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4년에도 슈마허의 페라리 팀이 18개 대회 중 15개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F1 최다승인 통산 91승을 기록했으며 한 해 수입이 8000만달러(약 1000억원)를 넘기도 했다. 요즘 마음고생이 심한 골프의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전 종목을 통틀어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스포츠스타였다. 승승장구하던 슈마허는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슈마허가 은퇴하자 F1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유럽을 중심으로 한 F1 ‘광팬’들의 열광은 여전했지만, ‘슈마허=F1’인 지역에서 F1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슈마허는 2009년 7월에 복귀를 시도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그런 슈마허가 메르세데스와 1년간 1000만달러(약 118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올해 정식 컴백하며 전남 영암에도 당당히 선수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F1 대회에는 최대 24대의 F1머신이 출전할 수 있다. 각 팀은 2대의 자동차를 출전시킬 수 있으므로 총 12개 팀이 출전할 수 있다. 지난해 대회의 경우 10개 팀이 참가했다. 각 팀은 4명의 드라이버를 둘 수 있으며 한 경기에는 각 팀에서 2명의 드라이버만 출전시킬 수 있다.

최대 13개 팀 26명의 드라이버가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순위 싸움을 하는, 불세출의 스타 미하엘 슈마허를 탄생시킨 오늘날 F1이 있기까지 F1 대회에는 갖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F1에서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고성능 승용차를 타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F1의 뿌리는 1920~30년대 ‘유럽 그랑프리 모터 레이싱’(European Grand Prix motor racing)이다. 현재 F1 운영 주체인 국제자동차연맹(FIA)이 1946년 경기 규칙을 통일하고 1950년 첫 F1 대회 격인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World‘s Drivers‘ Championship)을 열면서 F1의 역사가 시작됐다. 원래 ‘포뮬러 원’(Formula One·F1)은 경기 규정(Formula)에 부합하는 1인용 자동차라는 뜻이었다. ‘포뮬러 원’이라는 명칭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1950년 대회부터 ‘포뮬러 원’을 공식 경기 이름으로 사용했다.

1950년 첫 대회는 유럽의 6개 그랑프리대회와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 경기를 합산해 우승자를 가렸다. 당시에는 알파 로메오, 페라리, 마세라티 등 명차 강국이던 이탈리아팀이 경기를 주도했고 프랑스의 ‘탈보’(Talbot), 영국의 ‘BRM’ 등이 함께 경쟁했다. 1950년과 1951년 대회에서 우승한 알파로메오 158, 159 엔진은 최고출력 420마력을 냈다. 지금 기준으로 해도 웬만한 양산 차는 따라잡기 힘든 출력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속도전

주로 유럽에서 대회를 진행해온 F1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체 대회의 3분의 1가량을 유럽 외 지역에서 개최했다. 유럽은 겨울에 낮이 너무 짧아 레이싱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주로 여름에 경기가 열리고 유럽 외 지역에서는 시즌 초나 막바지에 레이싱이 열린다. 전남 영암에서 열리는 F1 경기가 10월에 잡힌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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