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독인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다. 원숭이는 하루에 바나나 두 개만 먹고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공산당이 사막을 장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래 품귀 현상이 벌어진다. 통일 전 동독과 서독에선 이처럼 사회를 풍자하는 유머가 유행했다. 동독에서 활동하던 서독 정보 요원은 시중 유머를 수집해 보고했다고 한다. 유머로 동독 사회의 변화상을 가늠했다는 것. 자동차 강국인 독일에는 자동차 유머도 많다. 신흥 자동차 강국이자,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어느 나라 못지않은 한국에도 기지가 번뜩이는 자동차 유머가 많다. 자동차 유머를 통해 자동차 세상을 들여다본다.
‘어른이 4명 탈 수 있으며 짐도 실을 수 있다’는 점이 유일한 마케팅 포인트였으나 공산주의국가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던 차량이었기 때문에 마케팅이 필요 없었다. 30년간 모델을 바꾸지 않고도 300만대를 팔 수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연료가 불완전 연소돼서 움직일 때마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이 차는 ‘트라반트’라는 정식 명칭보다 ‘트라비(Trabbi)’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다. 연료탱크 용량은 마티즈(35L)보다 훨씬 적은 25L수준. 서독 부자가 4500cc, 5000cc 메르세데스 벤츠와 스포츠카 포르셰를 몰고 다니는 동안 동독인은 이런 차를 타고 다녔다.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드는 독일에서 트라비가 안 씹혔을 리 없다. 통일 후에도 트라비는 유머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지금 당장 중고차 시장에서 트라비의 값을 두 배로 올리는 비결은? 정답. 연료탱크를 꽉 채운다.
세계 최고 자동차 유머로 떠오른 트라비
세계 최고 자동차 유머 소재를 제공한 트라비.
중동의 한 석유 부자가 동독을 방문하던 중 주문하면 10년 뒤에 배달된다는 ‘트라반트’라는 차의 존재를 알게 됐다. ‘롤스로이스도 이보다는 제작기간이 짧을 텐데…’, 이렇게 생각한 부자는 물건을 보지도 않고 차를 주문했다. 트라반트 제작사는 차를 산 사람이 갑부라는 사실을 알고 인도 순서를 무시하고 방금 생산된 트라반트를 부자에게 탁송했다.
컨테이너가 도착하자 부자는 차를 자랑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렀다. 컨테이너 뚜껑이 열리고 안에서 트라반트가 나오자 친구들이 부자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와, 이 차를 받으려면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하는구나. 그래서 회사에서 너에게 종이로 만든 미니카를 먼저 보내준 거군! 근데 이거 봐! 이 모델, 운전도 할 수 있나봐.”
한 서독 사업가가 동독을 방문했다.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몰고 동독에 들어서자 비가 오기 시작했는데, 그만 와이퍼가 고장 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즉시 인근 카센터로 차를 몰았다. 카센터 직원은 “동독에서는 벤츠 부품을 구할 수 없다”며 “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고쳐보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서독인 사업가가 카센터를 다시 찾았을 때 벤츠의 와이퍼는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동독에서 어떻게 벤츠 와이퍼 모터를 구하셨죠?”
사업가가 묻자 카센터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못 구했어요. 그래서 그냥 트라비 엔진을 끼웠어요.”
트라비 유머의 압권은 ‘아우토반의 트라비’다. 이 유머는 세계 각국에 수출돼 각국의 저성능 소형 차량으로 이름을 바꿔 유행을 탔다. 국내의 경우‘티코’로 이름이 바뀌었다.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서 트라비가 고장으로 섰다. 트라비 운전자가 길 한가운데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는 모습을 본 포르셰 운전자가 트라비 앞에 차를 세웠다.
“차가 고장 났나 보죠? 끈으로 묶어서 제 차로 정비소까지 견인해 드리겠습니다.”
포르셰 운전자의 제안에 트라비 운전자는 “고맙다”고 반겼다.
트라비 운전자는 “제 차는 시속 100km를 넘게 달리면 안전에 문제가 생기니까 천천히 달려야 한다”고 부탁했다. 포르셰 운전자는 “알겠다”고 했고 “혹시 내가 너무 밟는 것 같으면 뒤에서 경적을 울려 달라”고 당부했다.
포르셰 운전자는 자신의 차로 트라비를 끌면서 길을 출발했다. 포르셰와 트라비가 나란히 2차로로 얌전하게 가고 있는데, 바로 옆 1차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페라리가 시속 250㎞의 속도로 포르셰를 지나쳐갔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포르셰 운전자. 뒤에 트라비가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순간 잊고 1차로로 바꿔 타고 페라리를 쫓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트라비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라고 경적을 울려댔으나 흥분한 포르셰 운전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포르셰는 마침내 페라리 뒤까지 바짝 쫓아가 페라리에게 비키라고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근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의 눈에 이 광경이 들어왔다. 아르바이트생은 즉시 전화로 방송사에 알렸다.
“지금 아우토반에서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포르셰가 페라리를 추월하겠다고 막 경적을 울리면서 쫓아가고 있는데, 포르셰 바로 뒤에서 트라비가 둘 다 비키라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면서 따라가고 있어요.”
이 유머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티코 시리즈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페라리와 포르셰는 그때그때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랜저나 에쿠스, 또는 수입차 등으로 차종을 달리했다.
자동차가 유머 단골소재인 이유
자동차가 풍자 섞인 유머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하나를 최근 발간된 과학 저널리스트 톰 밴더빌트의 저서 ‘트래픽’(김영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동차를 운전할 때 드러나는 인간 본성에 대해 파헤쳤다. 앞에서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복수감에 불타서 욕이 나오고, 길이 뻥 뚫려 있어도 근처에 사고현장이 있으면 길이 막히며, 정지신호에 서 있을 때 옆 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면 심기가 불편해지는 이유 등에 대해 무릎을 탁 칠 만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한다.
밴더빌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동차 운전석에 앉는 순간 사람이 바뀐다. 똑같은 차량이라도 컨버터블 뚜껑을 열고 다니면 운전을 얌전하게 하고, 자동차 트렁크에 스티커를 붙이면 운전이 험해진다. 멀쩡히 밖에서 안이 다 보여도 코를 후비며, 옆 차 운전자에게 부담 없이 욕을 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방음 처리된 철판과 유리가 선사하는 안락함. 1990년대 미국 마케팅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예측한 소비 트렌드 중 ‘코쿠닝(cocooning)’개념에 딱 맞아 떨어지는 생활도구이면서 이면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코드도 숨어 있다.
외부와 물리적으로 단절된 자동차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믿는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은 ‘딱딱한 껍데기에 둘러싸여 나만의 공간을 즐기려는 소비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팝콘의 예언과도 일치한다. 밴더빌트는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누군가에게 욕을 하는 행위는 인터넷 익명 채팅룸에서 욕을 하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자동차는 또 정서적으로 강하게 운전자와 연결된다. 마치 미니홈피를 만들면서 아바타를 꾸미고 대화명을 정하듯 자동차의 디자인과 모델명 크기를 단순히 비싸고 좋은 차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하나의 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 하나의 나’에 지금 내 모습을 투영하지는 않는다.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상징한다. 신뢰성 있는 연구결과가 없기 때문에 검증할 수 없지만 취재차 만난 한 남성의학자는 “성기능이 약한 남성일수록 큰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동차와 사람 사이의 끈끈한 관계. 결국 자동차 유머는 또 하나의 사람 얘기이지만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 차를 통해 갖게 되는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을 다룬다는 점에서 사람이 타인에 대해 갖는 심리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한때 한국에서 대유행했던 ‘티코 시리즈’는 자동차를 매개로 한 인간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티코 시리즈
자동차 유머에서 ‘밥’으로 자주 등장했던 티코.
특히 프라이드 운전자 폭행사건은 한국 사회 특유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프라이드 운전자 폭행사건이 일어났던 1994년은 대우자동차가 1991년 경차 ‘티코’를 내놓은 뒤 한창 ‘티코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잘 달리던 티코가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 이유가 뭘까?
껌을 밟아서.
티코에서 남성이 여성과 사랑을 나누면?
작은 차 큰 기쁨.
티코 운전자가 왼손에 목장갑을 끼는 이유는?
쇼트트랙 선수처럼 코너를 돌 때 창밖으로 손을 뻗어 땅을 짚어야 하므로.
이 밖에도 ‘그랜저가 티코를 뒤에서 들이받았는데, 티코 운전자가 화를 내니까 그랜저 운전자가 그냥 한 대 사준다고 하고 사고를 마무리하더라’, ‘내 차가 티코인데 주유소에 가서 2만원어치 휘발유 넣어달라고 하면 주유원이 비웃더라’는 등 진실을 가장한 얘기들이 나돌았다.
독일의 트라비 시리즈가 체제와 자동차 자체를 비웃었다면 한국의 티코 시리즈는 전형적으로 티코 오너나 운전자를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사회상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유머에서 소형차가 조롱당하는 분위기와 프라이드, 티코 운전자 폭행사건은 서로 무관하다고 말하기 힘들다.
모든 운전자의 ‘적(敵)’, 경찰
모든 운전자가 싫어하는 경찰.
경찰이 등장하는 유머에서 대부분 운전자는 피해자로 묘사된다. 운전자 정서가 유머에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한 남성이 회식 자리에서 얼큰하게 술에 취했다. 동료들은 대리운전을 부르라고 했지만 그는 “집이 여기서 가깝다”며 고집스럽게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음주단속에 걸렸고, 경찰은 남자에게 음주 측정기를 입으로 불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순간, 경찰 무전기로 인근 상점에 도둑이 들었다는 긴급 연락이 왔고 경찰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얘기한 뒤 자리를 비웠다.
남자는 계속 기다렸으나 그래도 경찰이 오지 않자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부인에게는 “혹시 누가 찾아오면 남편이 몸살이 나서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잤다고 얘기하라”고 당부했다.
잠시 후, 경찰이 남자의 집을 찾아왔고 부인은 남편이 시킨 대로 “남편이 아파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까 음주단속현장에서 받은 남자의 운전면허증을 내보이며 “주차장에 있는 차를 좀 봐야겠다”고 요구했다.
부인은 “자동차를 볼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경찰은 “꼭 차를 확인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부인은 경찰과 함께 차고 문을 열었다. 차고에는 경찰차가 서 있었다.
한 60대 남자가 수입차 매장에서 BMW 최신형 스포츠카를 구입했다. 차를 인도 받은 남자는 기분을 내기 위해 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차의 성능을 만끽하겠다며 시속 200㎞로 질주했다. 순간 BMW의 백미러에 경찰차가 비쳤다. 경찰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BMW를 쫓아왔다. 남자는 ‘경찰차로는 BMW를 따라잡을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시속 250㎞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곧 생각을 다시 했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러다가 대형사고 나지.’ 차를 갓길에 세우자 곧이어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남자에게 다가왔다.
“제가 곧 임무교대고, 내일은 주말이라 기분 좋게 퇴근하고 싶습니다. 과속을 하며 도망간 정당한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그냥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BMW를 운전한 남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몇 년 전에 마누라가 경찰관이랑 바람나 집을 나갔는데, 난 당신이 마누라를 돌려주러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는 그날 딱지를 떼지 않았다.
정년퇴직한 한 전직 경찰관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의 부인이었다.
“여보, 조심하세요, 지금 당신이 가는 길 부근에 차 한대가 도로를 역주행하고 있다고 뉴스에 나왔어요!”
그러자 전직 경찰관이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한 대라니. 수백 수천대가 역주행하고 있어!”
‘김 여사’가 무슨 죄?
경차 옆에 서 있는 ‘김 여사’.
자동변속 차량의 보급은 어느 순간부터 대유행이 되더니 요즘은 수동변속 차량 주문이 거의 없어 차를 구입할 때 수동 변속기를 선택하면 그제야 공장에서 차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실력이었다. 같은 수동 변속 차량이라도 운전자의 숙련도에 따라 어떤 차는 변속 충격이 거의 없고 어떤 차는 동승자가 멀미가 날 정도로 거칠었다. 운전자의 개성은 시동을 켜고 주행하기 시작해서 주차한 뒤 시동을 끌 때까지 내내 차를 통해 표출됐다.
자동변속기로도 변속 시점 조절이나 ‘킥다운’ 등 변속기로 할 수 있는 웬만한 기술을 흉내 낼 수 있으나 그 맛이 자동차가 사람과 함께 호흡하는 수동변속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운전 실력을 평준화시킨 자동변속기를 앞세워 여성이 ‘남성의 영역’인 운전에 대거 진입하자 남성들은 다른 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정지신호에서 주행신호로 바뀌어 출발할 때 시동이 꺼지면 “초보일거야”“여자겠지”라고 비웃던 멋진 남자들이 이제는 쩨쩨하게 앞차의 속도가 다소 늦거나, 주차할 때 쩔쩔매면 “초보일거야”“여자겠지”라며 비웃는다.
천성적으로 공간 지각능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뛰어나다는 설도 있으나 어쨌든 이 같은 분위기는 유머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 여성이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카트를 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자신의 차까지 불과 십여 미터 남은 거리에 왔을 때, 웬 젊은 남자가 차 문을 뜯더니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전선끼리 부딪혀 시동을 걸고는 차를 훔쳐 달아났다. 놀란 여성은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했다. “어떤 남자가 제 차를 훔쳐 달아났어요!”
경찰이 물었다. “혹시 범인의 인상착의 기억나십니까?”
그러자 여성이 대답했다. “경황이 없어서 인상은 잘 못 봤구요, 자동차 번호판은 외웠어요.”
한 여성이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차를 빼다가 차를 망가뜨렸다. 전날 밤 차를 후진으로 세운 것을 깜빡하고 후진으로 차를 뺀 것이었다.
운전자를 포함해 여성 4명이 탄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시속 20㎞로 달리고 있었다.
경찰이 차를 세우고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사모님, 고속도로에서 너무 느리게 차를 운전하셔도 위반입니다.”
그러자 운전을 한 여성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분명히 도로에 ‘20’이라는 속도제한표시 보고 그대로 달렸어요.”
경찰관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거 속도제한표시가 아니라 고속도로 번호거든요? 20번 고속도로라는 뜻입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경찰관이 운전자에게 다시 말했다.
“혹시 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다른 탑승자분들이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죠?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신 것 같은데요?”
여성 운전자가 대답했다.
“아, 방금 245번 고속도로에서 갈아탄 거였거든요.”
현대는 ‘현 다이(Hyun die)’?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지만 자동차 메이커들은 영어권 국가에서 회사 브랜드 때문에 수난을 겪기도 한다. 현대, 기아자동차는 1980년대 중반 해외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 이름 때문에 쓰지 않아도 될 마케팅 비용을 썼다. 현대의 영문표기 ‘HYUNDAI’를 처음 본 영어권 국가 소비자들은 이를 ‘하연다이’ ‘휸다이’ 등으로 자연스럽게 읽었다.
현대차는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TV CF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현대’ 라는 발음을 학습시켜야 했다. ‘하연’, ‘휸’ 등으로 HYUN을 읽는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마지막 ‘다이’는 ‘죽다’(die)를 연상시켰다. 기아차 역시 전쟁에서 ‘전사자’의 약어인 K.I.A.(Killed In Action)과 똑같아 곤욕을 치렀다.
자동차 메이커 이름이 ‘죽다’ ‘전사’ 등으로 통하는 것은 단순한 발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동차 유머 중에는 메이커의 이름을 이용한 것들이 있다. 메이커의 스펠링을 약자로 가정하고 이를 풀어 쓰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유머 중에는 긍정적인 내용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차를 구입한 뒤 고장이 나거나 불량한 부분이 생겨 정비소를 들락거리며 고생한 경험이 있는 운전자들의 해당 메이커에 대한 외침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유머에서 BMW는 과거 ‘Break My Window’로 통했다. 카오디오가 워낙 고급품이어서 유리창을 깨고 오디오를 훔쳐가는 도난 사건이 빈번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비싼 값 때문에 ‘Big Money Waster’(돈 낭비), ‘Broke My Wallet’(지갑털이) 등의 별명도 있다.
이탈리아 메이커 ‘피아트’(FIAT)는 ‘Fix It Again, Tony!’로 통한다. 우리말로 하면 ‘철수야 차 또 고장 났다’ 정도의 의미로 잔고장이 많은 차라는 암시다.
미국 ‘포드’(FORD)도 ‘매일 수리해야 하는 차’라는 뜻의 ‘Fix Or Repair Daily’로 누군가 풀어서 입소문을 냈다.
나름 ‘어울린다’는 얘기를 할 만한 풀어쓰기도 있다.
독일의 명차 ‘포르셰(PORSCHE)’는 ‘Proof Of Rich Spoiled Children Having Everything’이다. ‘싸가지는 없지만 돈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가진 어린아이라는 증거’라는 뜻으로 포르셰 운전자에게 ‘포르셰를 운전할 자격’이 있는지 시비 건다.
포르셰에 이 같은 별명이 붙은 데는 ‘포르셰를 운전하려면 머리가 백발이어야 한다’는 독일 사람들 사이의 속설도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노년에 포르셰를 즐겨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부모가 사줘서 이 차를 타고 다닌다는 것이다.
자동차에는 인간의 위대한 발명과 발견이 종류별로 다 들어 있다. 바퀴, 내연기관, 전기, 철, 유리, 가죽, 고무 등. 자동차 산업은 생산, 관리, 유통, 서비스, 애프터 마켓, 중고시장 등 사실상 경제활동의 전 분야를 관장하는 보기 드문 분야다. 게다가 자동차는 한 사회를 사는 인간들의 지성과 감성 사회성이 응축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요즘 들어 자동차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머가 글이 아닌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대체되고 있다. ‘티코 승용차를 들어 옮기는 아주머니들’과 같이 아무런 논리적 이해력이 필요 없는 사진 한 장, 동영상 한 컷으로 보고 나면 10초쯤 뒤에 기억에서 사라지는 말초 신경의 자극이 과거 체제와 사상을 날카롭게 풍자했던 유머를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