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이싱 중간에 타이어를 교체하는 장면.
비뚤어진 욕망 ‘크러시게이트’
세상 어느 조직 어느 사회에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암투가 F1에도 존재한다. 미하엘 슈마허가 F1을 사실상 ‘지배하던’ 2002년. 이해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1위를 달리던 루벤스 바리첼로(Rubens Barrichello)가 마지막 몇 바퀴를 남기고 같은 팀 소속이던 미하엘 슈마허에게 1위를 양보했다. 이와 유사한 행위는 같은 해 US그랑프리에서도 일어났다. F1에서 사상 최악의 비신사적인 행위로 꼽히는 이른바 ‘크러시게이트’는 2008년 11월 싱가포르 그랑프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싱가포르는 현재 한국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해 싱가포르는 사상 처음으로 F1 그랑프리를 개최하면서 관광상품화하기 위해 서킷을 도심에 설치했다. 또 F1 대회로서는 유일하게 조명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야간에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야간, 도심 경기라는 특색은 이 대회에서 벌어진 승부조작으로 빛이 바랬다. 대회에 참가한 프랑스 르노팀의 드라이버가 같은 팀의 유력한 종합 우승 후보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양보’ 수준이 아닌 고의로 사고를 낸 것. 르노팀의 드라이버 넬슨 피케는 “우승이 유력했던 같은 팀 동료 알론소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내라는 지시를 감독에게서 받고 그대로 시행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르노팀은 수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으며 긴축경영을 강조하는 카를로스 곤 회장이 팀의 예산을 줄일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승이 유력시 되는 알론소가 예선에서 좋지 못한 기록을 내 결선에서 뒤처진 자리에서 출발하게 되자, 같은 팀의 다른 드라이버가 사고 수습인력이나 구급차가 즉시 오지 못하는 후미진 코스에서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이었다.
F1에서는 사고가 나면 경기를 중단시키고 사고 순간의 순위를 유지하게 한 뒤 사고 수습이 끝날 때까지 경기장을 빙빙 돌게 한다. 이렇게 되면 경기 전 예상했던 연료 소모량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피트스톱을 하게 되고, 피트에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에서 규정을 지키지 못할 경우 벌점을 받는 등 돌발 변수가 많이 생긴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알론소가 1위에 올라설 수는 있었으나 르노팀은 FIA로부터 자격 정지 유예 처분을 받았다.
‘크러시게이트’로 인해 싱가포르 그랑프리의 격은 크게 떨어졌다. 이듬해인 지난해 두 번째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열렸지만 관중석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영암 대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회 운영 못지않게 참가자들의 페어플레이도 중요한 이유다.
F1에도 ‘그린’ 바람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속속 하이브리드 차량과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대량의 연료를 소모하는 F1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F1이 1년간 18, 19개 대회를 치르면서 머신들이 소모하는 연료는 점보기 한 대가 서울에서 영국까지 가는 데 필요한 연료량과 비슷하다.
이에 대해 F1 관련업체들은 “F1 대회가 오히려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반박한다. F1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브리지스톤의 우메모토 구니히코(梅本邦彦·56)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는 “F1 대회를 통해 개발되는 고연비, 친환경 관련 신기술이 결과적으로 연료소모를 줄이고 지구 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브리지스톤은 F1대회 타이어 제작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최근 연료 소모량을 줄여주는 친환경 타이어를 개발해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다. 같은 양의 연료로 보다 먼 거리를 주행해야 유리한 F1 경기의 특성상, 엔진 메이커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연료 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차량 디자인과 엔진의 기능을 개선하고 있으며 경기가 끝나면 이러한 신기술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구입하는 차량에 적용된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F1 그랑프리. 영암 대회에서 슈마허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을지, 아니면 슈마허를 대신할 또 다른 스타가 뜰지, 또 어떤 새로운 신기술이 선을 보여 수년 후 내가 구입하는 차량에 옵션으로 장착될지, 혹은 스캔들이 벌어질지…. 이 모든 것이 고막을 찢는 굉음과 비호처럼 움직이는 메캐닉에 더해 경기의 즐거움을 주는 ‘펀’(fun)한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