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변화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10년 12월9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연평도 피격 이후) 서해 5개 도서지역에 배치된 전력을 더욱 보강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잠수함으로 천안함을 공격하고 빠지는 북의 게릴라 공격을 경험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재래식 대칭 전력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의 칼럼은 “지금이 그러한 개혁을 위한 가장 좋은 시점”이라며 끝을 맺는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폭 당시 한국군의 전면전 대비 지상전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지만, 상황변화에 반응해야 할 한국군의 움직임은 둔하기 짝이 없다. 역대 정부에서 계속해온 국방개혁 논의가 뚜렷한 결과물 없이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군 고위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그 의미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육군 1·3군 사령부의 분리 편제가 통합방안이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국방개혁에 관한 논의는 계속돼왔다. ‘군의 경영적 효율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초기부터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고, 이어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설치돼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과감한 민간분야 아웃소싱과 혁신적인 전력구조 재편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속속 흘러나왔다.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탄력적인 비대칭전 대응능력을 갖춘 ‘선진정예강군’을 만들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방향설정은 오히려 무뎌지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논의 주제 자체가 효율화 방안에서 대비태세 점검으로 옮겨간 데다 안보 강화가 지상명제가 되면서 ‘군을 흔드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졌다는 것. 개혁 작업의 전면에 서 있는 한 당국자의 말이다.
“근본적인 한계는 천안함 사건 직후 만들어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예비역 출신 인사들과 대통령의 후보 시절 참모 출신 학계 인사들을 안배하는 형태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들 참여인사들이 각자 자신이 제시한 어젠다를 최종과제에 반영하느라 애쓰면서 통일성 있는 콘셉트를 가진 개혁과제 구성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미래 한국군을 위한 일관된 철학 대신 갖가지 아이디어의 집합체에 가까운 모양새가 됐다.”
점검회의는 9월3일 30개 개혁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추진위는 이러한 총론을 바탕으로 각론에 해당하는 71개 과제를 설정해 12월6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를 다시 국방부가 검토해 실행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당초의 전체적인 윤곽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씩 추가된 복잡한 논의단계를 거치면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토론만 거듭하는 사이 이명박 정부는 벌써 출범 3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이들 개혁과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탄력성 있는 자원배분보다는 기존의 전력구조에 최근 부각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는 조직과 무기체계를 덧붙이는 형식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점검회의에서 제시한 이른바 ‘능동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개념에 입각해 정밀유도무기 전력을 강화하고 특수전 전력을 증강하는가 하면 서해북부합동사령부를 창설하는 방안만 봐도 그렇다는 것. 특히 군 복무기간을 조정해 현재의 지상군 병력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은 강도 높은 효율화·합리화를 강조하던 초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이런 식으로는 국방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담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물론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도 있다. 육해공군의 합동성 강화를 위해 합동군사령부를 창설하자는 방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는다. 작전권과 인사권을 함께 부여함으로써 ‘작전권은 합참의장, 인사권은 각군 참모총장’으로 나뉜 현재의 이원화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겠다는 것. 합동군사령관(대장)은 육해공군이 돌아가면서 맡도록 돼 있다. 이를 통해 각군 이기주의와 지상군에 편중되기 쉬운 자원배분에서 탈피해 탄력적인 전력운용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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