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집중취재]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北 비대칭 군사전략 vs 南 국방개혁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12-21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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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취재]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12월7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 주재로 전군지휘관회의가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산화한 병사들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우수한 공군과 해군과 포화들을 소유한 적들과 싸우는 특수한 조건에서 전투를 수행할 줄 몰랐습니다…적 후방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는 것은 적의 참모부와 후방을 습격하여 적 후방에서 제2전선을 조직함으로써 적의 퇴로를 절단하여 적에게 공포와 당황을 초래케 하는 것입니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던 전쟁이 유엔군의 강한 반격에 밀려 실패의 기세가 완연하던 1950년 12월21일, 중국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한숨을 돌린 북한 수뇌부는 산간오지인 자강도 별오리의 한 시골집에서 조선노동당 2기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한다. 적군이 지척에까지 와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열린 회의가 패인 분석에 초점을 맞춘 것은 자연스러운 일. 훗날 ‘별오리 회의’로 기록된 이날의 논의를 주재한 김일성 수상은 위에서와같이 그간 얻은 전략적 교훈을 정리했다.

    북한이 ‘총량적으로 세력 격차가 확연한 상대에 맞서기 위해 누구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한방을 추구하는’ 비대칭전(Asymmetric Warfare) 전술을 꾸준히 발전시켜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사실상 김일성이 1930년대 중공군 휘하의 유격대 활동기간 익혔던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7년 보천보 전투와 1940년 마에다 토벌대 격파에서 기습과 매복을 무기 삼아 막강한 화력의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김일성은 비정규전의 위력을 뼛속 깊이 각인했고, 이는 두고두고 인민군 군사전략 사상의 한 축으로 작동한다.

    특히 대규모 전차부대를 앞세워 신속하게 종심(縱深)을 돌파하는 소련식 물량 위주 정규전 전략이 실패한 뒤, 북한은 기존의 전력구조에 이러한 비정규전 요소를 강화하는 이른바 ‘배합전략’을 완성한다. 여기에 1980년대부터 남북 간에 경제적 격차가 벌어지고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원조가 중단되면서 재래식 군사력의 축적이 불가능해지자 비정규 전력 혹은 비대칭 전력에 대한 강조는 유일한 선택으로 떠오른다. 수도권을 노리는 장사정포는 물론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장거리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등은 모두 이 시기에 개발됐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극단적인 방식으로 증폭됐다. 최근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북한 특수전 병력 12만에서 20만으로 증원’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사시 후방에 침투해 전략적 타격을 노리며 유격전을 벌일 이들 비정규전 병력은, 8만이라는 병사를 새로 수급한 것이 아니라 전선을 감당해야 할 기존의 정규전 지상군 편제를 수정해 구성한 것이었다. 2009년 2월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은 15개 지상군 군단급 부대 가운데 2개 기계화군단을 2개 기계화사단으로, 1개 전차군단을 기갑사단으로, 1개 포병군단을 포병사단으로 각각 경량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북한 군사전략과 전력구조의 무게중심이 전면전 대비태세에 구멍이 뚫리는 한이 있더라도 비정규전 전력을 강화한다는 방향으로 완전히 옮겨왔음을 의미한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은 또 하나의 사례다. 당시 포격에 동원된 북한군 122㎜ 방사포는 당초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에 대비해 서부전선에 배치된 것이었다. 한국군이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는 휴전선 대신 지형적으로 자신들의 전력이 강할 수밖에 없는 서해 도서를 택해 국지도발을 감행한 것은 이러한 비대칭 전략의 노골화를 보여준다. 전면전을 위해 준비한 전력배치를 흔들어가면서라도 국지도발을 감행하겠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상황변화는 먼저 미국 측이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2009년 9월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전통적 의미의 전면전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전이나 비대칭 위협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2월8일 열린 한미 양국군 합참의장협의회는 “북한이 전면전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지만 비대칭 전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모색할 것”이라고 결론내리기도 했다. 쉽게 말해 대규모 병력이 전선에 늘어서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6·25식 전쟁은 사실상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변화가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010년 12월9일자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연평도 피격 이후) 서해 5개 도서지역에 배치된 전력을 더욱 보강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잠수함으로 천안함을 공격하고 빠지는 북의 게릴라 공격을 경험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재래식 대칭 전력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전 장관의 칼럼은 “지금이 그러한 개혁을 위한 가장 좋은 시점”이라며 끝을 맺는다.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피폭 당시 한국군의 전면전 대비 지상전력은 사실상 무용지물이었지만, 상황변화에 반응해야 할 한국군의 움직임은 둔하기 짝이 없다. 역대 정부에서 계속해온 국방개혁 논의가 뚜렷한 결과물 없이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군 고위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그 의미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육군 1·3군 사령부의 분리 편제가 통합방안이 나온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게 대표적인 경우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국방개혁에 관한 논의는 계속돼왔다. ‘군의 경영적 효율화’를 추구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초기부터 강도 높은 개혁을 주문했고, 이어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설치돼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과감한 민간분야 아웃소싱과 혁신적인 전력구조 재편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이야기도 속속 흘러나왔다.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탄력적인 비대칭전 대응능력을 갖춘 ‘선진정예강군’을 만들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거치면서 이러한 방향설정은 오히려 무뎌지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논의 주제 자체가 효율화 방안에서 대비태세 점검으로 옮겨간 데다 안보 강화가 지상명제가 되면서 ‘군을 흔드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해졌다는 것. 개혁 작업의 전면에 서 있는 한 당국자의 말이다.

    “근본적인 한계는 천안함 사건 직후 만들어진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예비역 출신 인사들과 대통령의 후보 시절 참모 출신 학계 인사들을 안배하는 형태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들 참여인사들이 각자 자신이 제시한 어젠다를 최종과제에 반영하느라 애쓰면서 통일성 있는 콘셉트를 가진 개혁과제 구성은 오히려 힘들어졌다. 미래 한국군을 위한 일관된 철학 대신 갖가지 아이디어의 집합체에 가까운 모양새가 됐다.”

    점검회의는 9월3일 30개 개혁과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추진위는 이러한 총론을 바탕으로 각론에 해당하는 71개 과제를 설정해 12월6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를 다시 국방부가 검토해 실행방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당초의 전체적인 윤곽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하나씩 추가된 복잡한 논의단계를 거치면서, 실질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토론만 거듭하는 사이 이명박 정부는 벌써 출범 3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이들 개혁과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탄력성 있는 자원배분보다는 기존의 전력구조에 최근 부각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하는 조직과 무기체계를 덧붙이는 형식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점검회의에서 제시한 이른바 ‘능동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개념에 입각해 정밀유도무기 전력을 강화하고 특수전 전력을 증강하는가 하면 서해북부합동사령부를 창설하는 방안만 봐도 그렇다는 것. 특히 군 복무기간을 조정해 현재의 지상군 병력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은 강도 높은 효율화·합리화를 강조하던 초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다. 이런 식으로는 국방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담만 늘어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물론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도 있다. 육해공군의 합동성 강화를 위해 합동군사령부를 창설하자는 방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는다. 작전권과 인사권을 함께 부여함으로써 ‘작전권은 합참의장, 인사권은 각군 참모총장’으로 나뉜 현재의 이원화된 지휘체계를 일원화하겠다는 것. 합동군사령관(대장)은 육해공군이 돌아가면서 맡도록 돼 있다. 이를 통해 각군 이기주의와 지상군에 편중되기 쉬운 자원배분에서 탈피해 탄력적인 전력운용을 도모하자는 취지다.

    [집중취재]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2010년 12월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실에서 한민구 합참의장(오른쪽)과 마이크 멀린 미국 합참의장이 한미 합참의장 협의회 결과에 대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년까지 현행 430여 명의 장성 수를 10% 줄이고 무기획득사업에 있어 소요검증위원회를 신설하자는 국방효율화 과제도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부대를 감축하거나 편제를 바꾸는 작업이 불가피하고 장교 정원 숫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공개된 방안들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당초 밝혔던 군 구조 효율화·합리화 개념에 부합하는 몇 안 되는 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국방부와 군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이미 연평도 사건 이전부터 군 핵심 관계자들의 기본입장은 “위원회는 자문조직일 뿐이고 개혁의 실행주체는 국방부이므로 제기된 과제의 실행 여부는 군이 판단할 사안”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바구니에 뭘 담을지는 자신들이 결정하겠다는 것. 소요기간이 긴 몇몇 과제에 대해 추진위 측이 대통령 보고 이전에라도 실행방안을 검토하자고 제안하자, 국방부 측은 “전체 윤곽이 확인된 뒤에 한꺼번에 검토하겠다”며 꺼렸다는 후문이다. 한 추진위 관계자는 “그나마 쉬운 과제라고 생각한 3군 사관학교 통합문제 논의가 육사와 3사관학교를 먼저 통합하는 방향으로 튀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초 청와대와 참모조직 일각에서 김태영 당시 장관에 대한 경질설이 공공연히 떠돌았던 것은 이러한 흐름과 관계가 깊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이 “현역을 바로 장관에 임명하니 개혁 수행에 지장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전역 후 몇 년 지난 예비역이나 민간 출신에게 맡겨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 이 무렵이다. 10월19일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안보특보와 협의해 국방개혁을 시간 끌지 말고 추진하라”고 말했다는 소식이나 이희원 안보특보가 국방부 개혁실 관계자들을 만나 “그동안 이렇다할 결과물이 없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이와 같은 청와대의 분위기는 정점을 찍었다. 한마디로 “천안함 직후의 혼선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군 수뇌부를 대대적으로 문책해야 한다는 의견이 “군심(軍心)을 다독여야 한다”는 예비역 인사들의 반론에 부딪혀 성사되지 못했던 7개월 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11월23일 당일의 이른바 ‘확전 자제 메시지’가 전달되는 과정에 김병기 당시 국방비서관을 포함한 군 출신 인사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대통령 본인이 이에 진노하면서 흐름은 강공으로 굳어졌다. 김태영 장관의 사의 수리와 “내가 직접 국방개혁을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이다.

    강도 높은 드라이브에 대해 군 주변의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은 불문가지. 군 당국 인사들이 ‘면제자 출신 안보참모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표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도발 징후를 8월에 미리 알았다”는 국회 증언으로 군 책임론을 증폭시킨 당사자가 지난 5월까지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일했던 김남수 3차장이라는 점을 들어 ‘청와대 음모론’이 운위되는가 하면, 장관 경질을 계기로 주요 지휘관을 물갈이하는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12월14일 물러난 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의 부적절한 재테크 문제가 불거진 과정도 청와대와 관계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명확한 근거 없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불과 6개월 전 임명 당시에도 알려져 있던 재산 문제가 갑자기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고 청와대가 이내 사표를 수리한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육참총장 경질이 주요 지휘관 연쇄인사의 시작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한 관계 당국자는 “대통령의 참모들이 처음 개혁을 압박하던 당시만 해도 대통령 본인의 뜻인지 주변 인사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인지 의심하는 기류가 강했고, 역대 정권이 그랬듯 지나가는 바람에 그칠 것이라는 생각도 많았다”고 말한다. 6·25식 대량 기습남침 상황만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나 작전개념이 몸에 배어있다 보니 ‘다른 형태의 위기’가 주류가 됐다는 인식 전환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 특히 그러한 재정립 과정이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겹치면서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다.

    [집중취재] 거꾸로 재현된 미·소 군비경쟁 표류하는 선진정예강군 건설

    2009년 7월6일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 요코스카 항에서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하루사메 호와 승조원들.

    이러한 인식은 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정치구조가 과연 ‘비정규전 대비로의 주력 전환’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 대통령의 안보분야 참모로 불리는 한 전문가는 “북한이 전면전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치권이나 여론은 재래식 전쟁을 위한 전력구조를 신성불가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피격 직후 서해 5도의 포병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서부전선의 MLRS(다연장로켓포) 등을 차출해 배치한 것을 두고 ‘서울 방어가 흔들린다’고 비판한 언론만 해도 그렇다는 것.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응해 기존 전력구조를 탄력적으로 변경하는 문제는 자칫 ‘안보 불안 정권’이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어 말을 꺼내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물리적인 시간도 걸림돌이다. 변화된 상황에 맞게 군 구조를 바꾸려면 상당부분 법제화가 불가피하다. 합동군사령부 등 현재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과제조차 국회를 통과하고 필요한 시행령 등을 만들어 실행계획을 준비하는 행정절차를 처리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려운 게 현실. 2012년은 사실상 대통령선거 국면임을 감안하면 강도 높은 개혁추진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011년 하반기의 몇 개월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구조개편이나 지휘체계 혁신은 사라지고 대형 무기도입 예산 증액만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이명박 정부 동안 실질적인 개혁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10배 차이의 균형?

    소련의 붕괴에 관한 미국 보수진영의 설명 중 하나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촉발한 강도 높은 군비 경쟁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이론이 있다. 워싱턴이 이른바 ‘별들의 전쟁’ 구상으로 불린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로 압박하자 모스크바는 이를 따라잡으려 무리하게 시도했고, 결국 취약한 경제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동유럽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내부질서 유지에 실패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정확히 그 반대에 해당한다. 11월말 국회 국방위원회가 의결한 2011년도 국방예산에는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긴급 편성된 ‘서북도서긴급전력보강소요’ 3105억원이 반영됐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F-15K의 2차 사업을 위한 예산 2000억원과 공중조기경보통제기 예산 767억원, KF-16 전투기 성능개량 예산 303억원 등도 추가됐다. 북한은 한 발당 수백만원을 넘기 힘들 것으로 추정되는 122㎜ 방사포 170발로 한국군이 6000억원 이상을 추가로 지출하도록 만든 셈이다.

    물론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북한과의 군비경쟁에서 구(舊)소련처럼 쇠락할 리는 없다. 문제는 현재의 구도가 북측의 도발에 남측이 끌려가는 형국이라는 것. 군 개혁문제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한 군 관계자는 “북한이 이러한 비대칭 레버리지를 이용해 군사력 균형을 맞추는 구도에서는 한국의 체제 우월성이나 압도적인 전력 규모, 10배가 넘는 국방비가 사실상 무의미하다. 새로운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기존의 사고방식을 고집하면 북한의 추가 국지도발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병사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은 방위전략의 기조를 담는 ‘방위대강(大綱)’을 준비하면서 지난 40여 년간 유지돼오던 전력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성하기로 한 바 있다. 적국의 일본 공격을 상정해 본토 곳곳을 고루 방위하고자 하는 이른바 ‘기반적 방위’에서 위협이 있는 곳에 전력을 집중 배치하는 ‘동(動)적 방위’로 전환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위해 일본은 육상자위대 전차를 600량에서 390량까지 줄이고, 화포 역시 600문에서 400문 수준으로 감축하며, 지상병력도 줄일 예정이다. 이렇게 확보된 재원을 잠수함 확충과 차기 주력전투기(FX), 미사일요격시스템 등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한국군이 일본의 기민한 변화로부터 교훈을 얻기를 바라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국방부는 추진위의 개혁과제를 검토해 새해 업무보고에서 최종적인 개혁방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행상황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점검체계를 외교안보수석실에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명박 정부가 군 개혁처럼 민감한 이슈를 추진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다음 기회가 언제가 될지는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독재국가보다 의사결정에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는 ‘민주주의의 역설’로 치부하기에는, 국민과 병사들이 죽어간 현실이 너무 엄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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