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강도 높은 대(對)이란 경제제재 조치는 핵개발 문제뿐 아니라 중국과 이란의 제휴와 결속에 따른 전략적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옳다.
9월에는 동중국해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싸고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국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일본이 중국의 경제적 압박 카드에 굴복함으로써 일단락된 이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중국은 분쟁의 핵심 원인으로 미국의 대중 압박전략을 지목하고 나섰다. 이후 중국은 다시 미·일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댜오위다오 문제를 자국의 ‘핵심이익’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보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정치 파도가 한층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균형추도 함께 흔들리고 있다.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형성되면서 한반도에서도 지각변동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미·중 간 세력균형이 형성돼 남북 간의 ‘균형’이 회복된다면 한반도 분단구조는 새로운 형태로 주조(鑄造)될 수 있다. 즉 군사적·경제적 측면에서 한·미 동맹에 대응하는 북·중 혈맹이 강화되어 분단구조가 새로 강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는 바로 이러한 구도 아래에서 벌어졌다. 이를 통해 한·미 동맹이 강화되고 대북 압박수위를 높여가자 중국의 대미(對美) 긴장 역시 순식간에 급상승했다.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밀착을 과시했다. 장기간의 대북압박과 제재 국면에서 북한은 체제보장을 위해 중국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었고, 중국은 완충지역의 존속과 동해로의 출구 확보를 위해 (내심 탐탁지 않았다 해도) ‘말썽꾸러기’ 북한을 떠안아야 했다. 양측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한층 강화된 상황이다 보니 밀착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혈맹의 회복에도 불구하고 아직 북한이 얻은 것은 별로 없다. 김 위원장은 5월 베이징 회담 당시 대북원조 ‘청구서’를 내밀었지만 중국 측의 미지근한 반응에 발길을 돌린 바 있다. 8월 창춘에서 열린 회담 후에도 지금까지 중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군사·경제적 원조를 받아내지 못했다. 9월말 이래 후계체제 확립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의 어려운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중국은 ‘화끈한’ 지원 모션을 취하지 않았다.
사실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사회주의 대국 구(舊) 소련도 믿지 않았고, 과거의 중국이나 지금의 중국도 믿지 않는다. 중국 또한 아무리 정상회담을 연거푸 두 번이나 했다 하더라도 북한을 무조건 지원할 생각은 없는 듯한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중국이 북한을 대폭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욱 현명한 전략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서해에 미군 항모가 들어오면
북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안보지형을 크게 흔들어대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볼까. 혹은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을 억제해야 할까. 일단 한국이 최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 개최로 최소 21조원 이상의 직간접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쏘나타 자동차 100만대,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65척을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라는 추산이었다. 그런데 잠깐 동안 벌어진 북한의 포 사격으로 이러한 ‘코리아 프리미엄’은 순식간에 날아갔고,‘코리아 디스카운트’만이 부각됐다. 한국의 경제가 얼마나 안보위기에 취약한 구조인지 다시 한 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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