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100세인들, 콩 해초 돼지고기 즐긴다

  • 전경수 <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 korancks@snu.ac.kr

    입력2004-11-17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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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수 집안에 태어난다거나 돈 많고 편안하다고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섭생이 중요하다. 제주도와 오키나와에 사는 장수자들은 콩과 콩으로 제조한 제품을 좋아하고 신선한 채소와 해산물을 즐겨 먹으며 삶은 돼지고기도 자주 먹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수 노인들은 어려운 일들을 숱하게 겪어도 낙천적이라는 것이다.
    100세인(centenarians)에 관한 연구는 장수연구의 대표주자격이지만 사실상 어느 정도 센세이셔널한 면이 없지 않다. 100세인이라는 것이 생물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하나의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100세인에 관한 여러가지 형태의 연구보고서들이 출간된 적이 있고, 사회문화적 여건이 나아지면서 장수는 일반적인 경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100세인에 대한 관심도 희소성의 차원을 넘어섰다.

    100세인에 대한 연구는 당사자의 연령을 확인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현재로서는 세 가지가 합치되는 것이 가장 정확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공공기관의 기록, 예를 들면 주민등록번호나 호적의 기록이다. 둘째, 당사자의 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숫자로 된 연령을 말할 수도 있고, 간지(干支)의 인식일 수도 있다. 할머니들은 주로 간지의 동물로 자신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다. 셋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다. 이 세 가지가 합치하는 경우를 대상자의 정확한 나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세계적인 비교를 위해서 나이의 계산법은 만(滿)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100세인이라는 존재는 장수 현상의 일종이다. 장수와 100세를 동일한 궤적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100세인에 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장수 현상이라는 범주에서 고찰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선행 가설은 장수라는 현상이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의 과정과 결과일 것이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기초를 갖고 있는 인간의 수명은 후천적인 문화적 현상에 영향을 받는다. 이 글에서는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장수의 요인을 규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천적인 생활양식이 사람의 수명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생활양식을 구성하는 문화의 개념을 적용하여 장수 현상을 분석하려고 한다.



    첫째, 장수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기술적인 문제들을 파악하려고 한다. 주어진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거기에 적응하면서 만들어가는 문화의 기술적인 측면을 말한다. 주로 음식과 관련한 내용이다.

    둘째,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모여서 살게 마련이다. 즉 조직의 문제다. 함께 사는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인류 보편적인 현상으로 인정되는 것은 가족과 그 주변의 인간관계다. 따라서 100세인들이 인지하는 사회적 관계망이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서 대안을 모색해본다.

    셋째, 삶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관념의 문제도 다룬다. 장수의 개념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회도 있다. 장수의 개념이 존재하는 사회에는 장수를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여러가지 수준에서 마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장수 현상은 낙관적인 삶을 사는 것과 비관적인 삶을 사는 것 사이에 어떻게 관련을 맺고 있는가. 종교의 문제도 장수 현상 탐구에 필요한 부분이다. 100세인들이 살아온 과정에 반드시 포함되는 노동과 여가에 대한 자료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장수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100세인의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고, 사회복지적인 시사점까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제주도는 육지와는 다른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2000년 말 현재 제주도청에서 파악한 제주도의 노인인구에 대한 기초적인 자료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에서 65세 이상의 인구(4만3334명)는 전체인구(54만3368명)의 7.98%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65세 이상 남자(1만3113명)는 남자 전체(26만9126명)의 약 5%인데 반해 65세 이상 여자(3만221명)는 여자 전체(27만3242명)의 11%를 약간 웃돈다.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 중 약 70%가 여자다. 즉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할 때, 제주도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도 배 이상 많다.

    장수라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85세 이상의 분포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85세를 기준으로 한 것은 의학적으로 85세가 넘으면 그 이하의 연령보다도 상대적으로 사망률이 떨어진다는 보고에 근거하고 있다. 제주도의 85세 이상 노인은 3849명이다. 그중에서 남자는 504명, 여자는 3345명이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를 나누어볼 때, 85세 이상자가 산북(山北) 2568명, 산남(山南) 1281명이다. 인구비율로 보면, 산남과 산북의 차이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제주도에서 85세 이상의 인구는 1만 명당 약 71명이다(전국평균으로 볼 때, 제주도가 85세 이상의 생존율이 가장 높다). 그중에서 여자가 86%가 넘고, 남자는 약 14%로, 여자가 남자보다도 6배 이상의 높은 장수율(長壽率)을 보인다.

    65세 이상 여자는 약 70%인데, 85세 이상 여자는 86%가 넘는다. 즉 여자의 여명(餘命)이 훨씬 길다는 얘기다. 100세가 넘어가면 여자의 비율이 거의 100%다. 제주도청 사회복지과에서 파악한 자료(제주도에서는 100세가 되는 노인에게 ‘天壽牌’를 증정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주민등록증 나이에 따른 것이다. 사실상의 나이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기록이 없기 때문에, 주민등록상의 나이에 따른다. 따라서 사실상 나이가 백세가 되지 않은 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행하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에 의하면, 100세 이상이 총 47명이며, 그중에서 남자는 1명밖에 없다. 인구 10만 명당 100세 이상 비율은, 약 9명 정도다.

    그러나 제주도의 100세인에 대한 직접 면접을 두 번(2001년 봄과 여름)에 걸쳐서 실시한 결과 남자 1명과 여자 30명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제주도의 100세인은 2001년 여름 현재 31명이며, 최고령은 107세고, 인구 10만 명당 100세인의 숫자는 6명 정도로 계산해낼 수 있다.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의 경우는 10만 명당 100세인이 8명이며, 한국의 경우는 4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문서 기록의 연령과 실제 연령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나이의 계산법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세계적인 100세인 연구가 만 나이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나이 계산법은 세는 나이라는 차이점에서 비롯된다. 둘째는 고령일수록 주민등록이나 호적 등에 기록된 나이가 실제와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셋째 100세인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보이니까 당사자와 주변의 사람들이 착오로 기록된 당사자의 나이를 정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100세인의 특징을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의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한다. 그동안 100세인 연구는 100세인의 개인적인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 하나의 흐름이었다. 100세인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갖는 문화적 함의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100세인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사회 그리고 그러한 단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고려해보아야 한다.

    사람의 수명은 생물학적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인 현상과 연계된 문화적인 측면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를 다루는 인류학적 시각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장수지역을 비교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장수 현상에 관한 문화적인 설명과 해석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장수 현상은 21세기에 인간집단이 직면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들 중 하나다. 생명이 연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노인들의 부양문제가 앞으로 큰 사회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노인복지의 문제는 가난하거나 불행한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반드시 직면해서 필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0년 인구주택총조사 집계 결과’에 따르면 2000년 11월1일 현재 65세 이상 노령층은 337만2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7.3%를 차지했다. 1995년 이후 5년 사이 노령 인구는 27.7% 늘어난 반면 15세 미만은 5.8% 줄었다. 1990년에 13% 증가했던 생산 연령층(15~64세)은 지난해 1995년 대비 4.1% 증가에 머물렀다. 인구전문가들은 “평균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20년 뒤에는 생산연령 인구가 즐어들 가능성이 크므로 그 안에 국부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부란 그렇게 쉽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전에 할 일이 자립형 노인인구의 팽창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양에만 의존하는 것은 노인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인구의 노령화 정도를 나타내는 노령화 지수는 35.0으로 1995년의 25.8보다 크게 높아졌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를 15세 미만 유소년 인구수로 나눈 노령화 지수가 15미만이면 연소인구사회이고, 30이상이면 고령인구사회로 분류한다. 1995년에는 고령인구 1명을 청장년(15~64세) 12명이 부양했는데, 지난해에는 9.8명으로 줄었다. 그만큼 고령인구에 대한 부양 부담이 커졌다. 젊은층의 미혼율이 늘어나(25~30세의 55.6%) 늦게 결혼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이혼율이 증가해 독신인구가 늘어나는 것도 노인에 대한 가족의 부양능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동 가능 연령층인 15~64세의 청장년 인구의 증가율은 1985년 14.0%, 1990년 13.2%, 1995년 5.3%, 2000년 4.1%로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앞으로는 100세 노인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누워 있는 상태의 노인수가 급속히 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요양원 시설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따라서 그 기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하는 것이 앞으로 복지사회의 과제다. 활동백세(活動百歲)와 와상백세(臥床百歲)의 구분이 필요하다. 이미 오키나와의 연구자들이 보고한 것처럼 수명은 늘어나는데, 늘어나는 만큼의 숫자가 활동백세가 아니라 와상백세라는 데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건강백세(健康百歲)는 사실상 이상론일 뿐이다. 100세가 되면, 자연적으로 신체의 기능들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노년 인구가 부양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립형 노인의 출현을 목표로 하고, 노인들의 시설의존도를 극소화하는 방안의 강구가 절실하다. 이상에 가까운 건강백세를 발굴하여, 장수문화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방법이다. 모델 케이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제주도 노인들은 “왜 죽지 않는지 모르겠다. 오래 사는 것이 죄다”라고 말한다. 중년부인들도 그러한 얘기를 한다. “오래 사는 것은 죄악이다. 밥만 축내고 자식들에게 짐이나 되고 있다”는 자각을 하는 것이다. 오래 살아서 조상과 후손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강한 오키나와 할머니들의 정신상태가 바람직하다.

    100세 노인들이 사회적 역할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주도와 한국사회에서 장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와상백세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장수는 죄악이라는 인식이 팽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축복받을 수 있는 활동백세와 이상적인 건강백세를 향하여 장수문화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편안하게 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며 돈이 많아서 부자로 사는 것이 100세로 이끄는 것도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장수의 요인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섭생이 올바르지 못하면 장수하기는 힘들다. 장수의 가장 공통적인 요인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좀더 체계적이고 많은 비교문화적 자료의 수집이 필수적이다.

    세계적으로 장수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북유럽의 나라들과 남유럽과 코카서스 산맥의 지방들 및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그리고 중국의 위구르 자치구인 신장성과 서복의 고향이 있는 산둥성, 일본의 여러 곳과 특히 오키나와에 관한 광범위한 자료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장수와 그에 관련된 요인들에 대해서 몇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100세인의 개인에 관한 자료들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주로 기억, 일, 주변에 대한 관심, 음식, 생에 대한 태도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이러한 항목의 분류는 연구자가 가설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100세인들과의 면접을 통해 집적한 것이다.

    대부분이 할머니들인 100세인들은 가까운 가족들의 제사에 대해서 각별한 관심과 기억을 갖고 있다. 치매현상을 보이는 100세인들조차 기일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있다.

    100세인 할머니들은 시부모와 친정부모 그리고 남편의 기일(식겟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평생 준비했고 참석했던 제사의 날짜에 대해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은 제사라는 현상이 그만큼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일과 장수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일을 하기 때문에 오래 사는 것인지, 아니면 오래 살기 때문에 노령에 이르러서도 일을 하게 되는지의 여부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여기에서 일은 육체적인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일도 포함하는 것이다. 일에 관한 윤리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한다는 인식은 자본주의가 도입된 이후의 문제다. 제주도 100세인 할머니들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 필자의 잠정적인 결론은 일에 대한 윤리가 장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또는 몸과 마음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자신의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100세인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문화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결론으로 유도하는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102세 할머니의 경우, 한번은 괭이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갱이(호미)를 갖다주니, 그것으로 방바닥을 파면서 여기에 고추씨를 심자고 했다. 항상 방안을 돌아다니면서 밭을 매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방안이 밭도 되고 마당도 되는 모양이다.

    2)100세 할머니의 경우, 식구들이 출타하는 경우에는 할머니가 거처하는 방문을 항상 밖으로 걸어 잠근다. 그러지 않으면, 남의 밭에 가서 마늘, 파, 밀감 등을 수확하여 방안에 재어두거나 밖에 나가서 ‘검질(잡초)’을 매기도 한다.

    3)100세 할머니의 경우, 귀와 눈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할머니는 반드시 뒷밭에 나와서 풀을 뽑는다. 풀뿌리까지 완벽하게 제거하는 검질매기를 시작한다. 날씨가 나쁘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은 방안에만 있다가 날씨만 좋으면 반드시 뒤뜰에 나와서 풀을 뽑기 시작한다. 앞마당에 상추와 채소들을 심어놓아도 그것들을 모두 풀로 생각해 뽑아버린다. 할머니는 2년 전까지 귤을 수확했으나,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지면서 현재는 하지 못하고 있다.

    4)101세 할머니의 경우, 2년 전까지는 바늘에 실을 꿰어주면 바느질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95세까지 ‘우영밭(菜田을 말함)’에 있는 채소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집안 청소도 조금씩 했다. 할머니는 평생 일만 부지런히 해왔다.

    5)102세 할머니의 경우, 날씨가 좋을 때는 과수원 안을 돌아다닌다. 95세까지는 검질을 맸다. 96세에 중풍으로 누었다. 97세에 중풍이 멎었고, 그 뒤로는 검질은 매지 못한다.

    6)107세 할머니의 경우, 103세까지는 우영밭의 검질을 맸고, 햇볕을 쪼이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다. 현재 밖으로 나오지 않은 지가 약 5~6년 되었다.

    7)101세 할머니의 경우, 지금도 우영밭의 검질을 매고 있다. 스스로 빨래하며 음식을 만든다.

    8)101세 할머니는 2년 전까지 바느질을 했다.

    9)100세 할머니의 경우, 최근까지 농사일을 했고, 평생 해녀일을 업으로 했다.

    일을 할 수 있는 자연적인 조건과 신체적인 상황만 허락하면 100세인 할머니들은 자신이 평생 업으로 해온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체적인 조건이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도 할머니들은 일을 한다. 그 일에 대가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 일이 지속되는 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이 곧 100세인 삶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핵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일이라는 것이 100세인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중요한 변수라고 해석하고 싶다.

    일이라는 것이 반드시 육체적인 노동 중심으로만 생각해서도 안될 일이다. 밭일이나 바느질 그리고 물일만이 일이 아니다. 가까이 지냈던 가족들이나 이웃들의 기일을 기억하고 기일이 돌아오면 정성을 들여서 준비하고 방문하는 것도 일이다. ‘조상일’인 셈이다. 마치 오키나와의 할머니들이 매일 새벽 4~5시에 정화수를 떠놓고 깨끗한 수건으로 조상들의 혼백을 모셔놓은 위패를 닦는 일과 대단히 유사한 과정이다. 닦는 시간은 보통 한두 시간씩 소요된다. 더러워서 닦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위하는 일의 과정으로 닦는 것이다.

    100세인 할머니들은 밝은 성격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주변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표시한다. 101세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도 어린아이들과 장난하기를 좋아했다는 것이 이웃들의 평이고, 102세 할머니는 방문한 연구자에게 “개를 사가라”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자가 주스를 선물로 가지고 간 것에 대해서 대단히 미안스러워하고, 자신이 손님 대접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안해한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려는 방문자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도 한다. 어떤 할머니는 말은 하지 않고 수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101세 할머니는 항상 텔레비전을 보고, 특정 프로그램이 나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동래 정씨라는 103세 할머니는 면접자의 성을 물었다. 전씨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정씨로 알아들었다. 할머니는 얼른 “우리 뼈”라고 손을 잡았다.

    김항열 할머니(104세)는 외부인을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평소에 교류가 없는 낯선 사람이 등장했음을 인지하고, 그 낯선 사람을 친척이라고 생각했는지 시집친척인지 친정쪽 친척인지 묻는다. 자신과 관계가 있는 관계망의 두 범주는 시집친척과 친정친척의 두 범주라는 얘기다. 그 두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자 무반응이다. 사회적 관계망의 범주에 대한 할머니의 인지지도가 분명하게 그려진 셈이다. 결혼한 후 가정을 만들어가면서 형성된 친척관계에 대한 생각과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친척관계에 대한 생각이 타인을 볼 때 그려지는 인간관계의 맥락이다.

    윤희춘 할머니(103세)는 눈을 뜨기도 힘들고 숨을 몰아쉬는 상태의 병환중에도 외부인의 등장을 인식하고 외부인에 대해서 자신의 몸가짐을 곧바로 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치맛자락을 밑으로 끌어내리려는 행동은 외부인이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을 들치는 데 대한 반응이다. 그 행동은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두 번이나 이루어졌다. 아들이 할머니의 몸을 일으킬 때는 그러한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과 타인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행동 속에서 사회적 관계에 대한 할머니의 인식을 읽을 수 있다.

    김공 할머니(101세)는 누군가가 외부인이 왔다는 점을 인식하고, 옆에 있는 이웃 부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한다. 몸을 일으킨 할머니는 자신의 앞에 등장한 외부인들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누가 왔는지를 딸에게 묻는다. 손님이 왔으니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어서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한 표현을 하고 있다.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묻는 타인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이와 이름을 얘기한다. ‘나’에 대한 인식이 분명하고, 타인에 대한 예의의 표현을 했다.

    살아가면서 늘 겪게 마련인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데도 100세인 할머니들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107세 할머니에 대한 아들과 며느리의 평가는 “할머니는 스트레스를 느끼는 분이 아니다. 속에 담아두고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 아니다. 큰소리로 야단도 치고, 화도 내고 스트레스는 다 풀고 살았다”고 한다. 요새 이 할머니는 하루에 몇 시간씩 궤에 기대어 앉아서 항상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다.

    100세인들이 상식하는 음식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지대하지만, 사실상 분명하게 어떤 음식이 장수음식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00세인들이 즐겨서 먹는 음식들의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러한 상식 수준에서 100세인들이 주로 먹고 살아온 음식의 품목들을 정리해보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제공되는 음식들은 잘 먹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제주도의 100세인들이 평생 주로 먹고 살았던 일상식단은 보리와 조 그리고 고구마와 감자 등이다. 찬거리로서 주로 이용해온 식재들은 채전에서 항상 자라고 있는 신선한 채소들이다. 특히 멜순(청미래덩굴과의 한 종류로서 어린순을 식용으로 함, 표준어는 밀나물)과 콩잎 그리고 상추가 선호하는 채소이며, 일반적으로 신선한 채소는 다 잘 먹는다. 제주사람들은 멜순을 약초로 생각한다.

    반찬 양념으로는 된장을 주로 썼고, 육고기 종류는 돼지고기가 절대적이다. 부유한 집안에 거주하고 있는 107세 할머니는 채소와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인스턴트 식품은 전혀 대하지 않고, 옛날 방식대로 만든 장아찌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호두차와 솔봉을 고아서 만든 솔봉엿도 좋아하며, 쑥으로 만든 엿과 떡을 즐기는 편이다. 102세 할머니는 돼지족발을 즐긴다. 항상 돼지족발을 사오라고 재촉한다. 하루에 세끼 모두 돼지고기국을 먹는다. 지난 9년 동안 음식을 먹은 후에는 잠을 잤다. 할머니는 돼지의 멍얼(콩팥)을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102세의 할머니는 돼지고기를 잘 먹으며, 양배추나 배추를 삶아서 먹기를 좋아한다. 제주도에서는 돼지고기를 구워서 먹는 경우가 없다. 항상 삶아서 먹는다. 돼지고기로 국도 끓이고 수육으로 먹는다. 이것이 동물성 단백질의 주공급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할머니들은 채소를 즐긴다. 멜순, 부루(상추), 배추, 콩잎과 쑥 등이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채소들이다.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며 자리젓이 선호하는 찬거리들 중의 하나다.

    100세인들을 둘러싸고 있는 1차 조직은 가족이다. 제주도의 100세인들은 대부분이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들과 며느리가 주로 보살피면서 사는 경우도 있고, 딸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딸이 주로 보살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거(獨居)인 경우는 없었으며, 공익단체가 운영하는 양로시설에 거주하는 노인이 한 분 있다.

    가족의 차원에서 100세인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100세인이 되는 유전적인 요인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상황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형제자매들의 수명은 장수의 유전적 요인을 밝히는 첩경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가족관계의 문제다. 100세인을 돌보는 가족과 그 가족원들의 생활은 100세인의 존재로 인하여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100세인 자신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제주도의 장수 집안


    31명의 제주도 100세인들이 보여주는 유전적인 장수의 개연성을 살펴본다. 그들의 형제자매 또는 부모의 사망 연령들을 파악해본 결과, 소위 ‘장수집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향이 어느 정도 발견되며, 그러한 집에서는 ‘장수집안’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사례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102세 할머니의 여동생(89세)은 혼자서 시내버스를 타고 자주 찾아온다. 할머니의 오빠가 80여 세에 사망했다.

    2)104세 할머니의 바로 밑 여동생은 102세고, 남동생은 97세로서 모두 생존해 있다.

    3)101세 할머니의 친정 어머니는 94세에 사망했다.

    4)102세 할머니의 둘째여동생이 92세, 셋째여동생은 90세, 남동생은 88세, 막내여동생은 84세로 모두 생존해 있다.

    5)102세 할머니의 둘째언니가 4년 전에 102세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100세 넘어서 사망했다.

    6)101세 할머니의 언니는 89세에 사망했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장수한 기록을 보이는 것은 심층적인 가계조사를 해볼 필요성과 아울러서 유전적인 장수 요인으로 거론하기에 충분한 사례들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제주도 사람들이 장수한다는 기록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이러한 사례들의 신빙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선조 10년(1577년)에 발간된 ‘남명소승(南溟小乘)’에는 제주도에 ‘6, 7명의 100세가 넘는 노인들’에 관한 언급이 있다.

    “이형상 제주목사는 숙종 28년(1702년) 음력 10월29일부터 11월9일까지 제주 삼읍을 순력하면서 양로잔치를 베풀어 조정의 도덕상 의리를 두루 알렸다. ‘120여 세의 사람이 있었는데 숙종 21년(1695)과 숙종 22년 사이에 전염성 열병을 앓은 뒤에 사망해 없어졌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이는 102세가 1인, 101세가 2인, 90세 이상이 16인, 80세 이상이 94인입니다. 세상에서 70세면 이미 드문 나이입니다. 80, 90세 이상은 사람들이 나라에서 복되고 길한 일이라고 일컬었습니다. 하물며 100세 이상이야 어찌 지극히 귀한 나이가 아니겠습니까’(李衡祥 ‘甁窩全書’ 耽羅啓錄抄 第15啓)라고 보고했다.”

    1702년의 양로잔치는 정의현에서 11월 초3일(음력)에 시행되었는데, 80세 이상의 남녀노인 17인과 90세 이상 남녀 노인 5명이 참석했다. 같은 달 11일에 거행한 대정현의 양로잔치에서는 80세 이상 노인 11명과 90세 이상 노인 1명이 참석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제주목에서 양로잔치가 거행되었고, 80세 이상 남녀 노인 183명, 90세 이상 남녀 노인 23명 그리고 100세 이상 남녀 노인 3명이 참석했다. 이상의 숫자는 당시의 사실적인 그림에 의거해 헤아린 것이다. 즉 1702년 제주의 양로잔치에 참석한 남녀 노인들을 연령별로 구분해보면, 80세 이상이 211명, 90세 이상이 29명, 100세 이상이 3명이다.

    이 숫자는 최소한의 숫자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양로잔치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는 실제 숫자보다는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또한 1704년의 ‘남신박물지(南宦博物志)’라는 당시의 그림에도 나타나고 있어서 제주도 100세인에 관한 최초의 공식기록이, 이미 16세기 후반에 약간 그리고 18세기 초에는 체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제주도의 31명 100세인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면서 살아가는 가족들은 자녀들이다. 이미 자녀들의 나이가 70, 80대에 이르렀고, 자녀들 중에서도 특히 늦게 낳은 자녀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자녀들이 이미 노인이기 때문에 자녀들이 먼저 죽은 경우가 많다. 돌보는 자녀들은 아들과 딸이 거의 반반 정도다. 아들의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도 며느리가 직접 100세인 할머니를 모시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고 딸이 모시는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모시는 일이 며느리의 과업이 되는 경우에 할머니들은 긴장하게 되고, 그에 대한 방어메커니즘으로서 “너무 오래 살아서 죄스럽다” 또는 “빨리 죽어야 한다”는 표현을 한다.

    100세 할머니는 “늙은이가 빨리 죽고 싶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할머니 스스로는 “빨리 죽어야 며느리가 고생을 하지 않을텐데”라고 말한다. 면접자에게 수염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할아버지는 몇살입니까?”하고 묻기도 했다. 면접자를 잘 알아보지 못하고 귀가 멀었지만, 제삿날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즉 눈이 어둡고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불편은 있지만 자신으로 인하여 전개되는 가족관계의 문제점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신으로 인해 며느리가 고생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101세 할머니는 딸과 동거하고 있다. 할머니는 “나는 딸이 이렇게 수발을 잘 해주는데, 딸 너는 딸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 며느리와의 관계 때문에 답답하지 않냐?”며 즉 딸의 처지를 걱정한다. 101세 할머니도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딸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을 예정이지만, 자신이 입원을 해버리면, 자신을 간호할 사람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할머니를 간호할 사람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꺼번에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입원을 하지 못하는 사정이 딱했다. 103세 할머니도 딸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78세의 딸이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할머니는 딸의 입장을 걱정한다.

    101세의 노모가 먹을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70세가 넘은 아들이 부엌에서 밥상을 차렸다. 며느리는 아직도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아들이 노모의 밥상 시중을 들기 위해서 집에 잠깐 들어왔다. 102세의 아버지와 97세의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의 나이가 68세다. 그의 가족은 도시로 나가서 살고 있다. 3년 전부터 어머니가 하반신을 쓰지 못하자, 도시로 나갔던 아들이 홀로 집에 돌아와서 부모의 시중을 들고 있다.

    3) 사회의 차원

    1704년의 ‘남신박물지’에 나오는 양로피로연(養老披露宴)의 그림에 등장하는 100세 이상 3명의 참가는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잔치는 분명히 제주목의 관덕정(觀德亭, 제주시내에 현존함) 부근의 목관아지에서 개최되었을 것이고, 노인들이 그 연회장까지 왕림했다는 것은 그만큼 거동이 자유로웠다는 얘기가 된다.

    오키나와의 100세 이상 노인들이 현재 거의 모두 와상상태(臥床狀態)인 것과 비교하면, 제주도의 100세 이상 노인들은 비교적 가사활동이 가능하다. 그것은 제주도의 100세인들이 그만큼 근력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것은 노년기까지 밭일을 했기 때문이다.

    스즈키 교수가 처음 오키나와에서 100세인 연구를 시작할 즈음인 25년 전에 오키나와 노인들이 활동중이었다는 것과 비교가 되는 말이다. 살기가 편해지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는 정도에 따라 노인들의 생활이 의타적이 되면서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주의 100세 노인들은 그러한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았다는 얘기다.

    100세 노인들은 오키나와의 연구자들이 정의한 것과 같은 ‘화석(化石)’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인식과 행동의 표현이 분명한 사회인이다. 다만 체력이 약화되어 표현과 행동에 제약을 받고 있을 뿐이다. 체력약화의 원인들 중에는 생물학적인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사회적으로 제약되는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노인을 편안하게 모신다는 주변 후손들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도 있고, 노인이 혹시나 사고를 내거나 당할 것을 염려하여 방안에 가두어둠으로써 비롯하는 문제도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가 복지관계의 숙제다.

    노인의 가족성원들이 개인생활을 위해서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노인관리의 문제는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복지 차원에서 고려할 부분이다. 노인의 보호와 관리로 인해서 개인생활이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그에 상응하는 정책은 노인을 모시기 때문에 행동이 제약되는 사람들을 어떠한 방향으로 도와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의 경제적인 생활수준에 따라서 노인복지가 결정된다.

    여유 시간과 자금이 없는 가정에서 노인의 생활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노인이 있는 집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경우는 가족들이 노인을 혼자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상태다. 생활을 해야 하는 가족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에서도 노인을 돌보느라 가족이 묶이는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향은 노인들을 화석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모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노인들이 보석(社會的 寶石)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그 보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때다.

    필자는 한국 제주도와 일본 오키나와 그리고 핀란드의 100세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장수와 관련된 몇 가지 문화 요인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연구의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술로 집약된 문화적인 요인으로서 음식과 관련한 행위들을 관찰했다. 오키나와와 제주도에서는 장수자들이 모두 콩과 콩으로 제조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예를 들면, 오키나와에서 국은 대부분이 된장을 기본으로 하고, 그 내용물로 두부를 넣는 경우도 있고, 두부를 따로 조리하는 경우도 있다. 두부는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음식물들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식품이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국으로 ‘몸국’이 있다. 된장을 푼 물에 돼지뼈를 삶은 뒤 몸이라고 불리는 해초를 넣어서 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잔치나 초상이 나면 반드시 준비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신선한 채소를 즐겨 상식(常食)하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고야(일본어로는 니가우리, 우리말로는 여주외)와 수세미 그리고 쑥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채소다. 기온의 영향으로 일년 내내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채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모두 쓴맛이다.

    제주도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신선한 채소다. 밭의 경계를 나누는 돌담에 늘어진 멜순을 먹거나 부루(상추)를 먹는 경우에도 그렇고 우영밭(채전)에 심어져 있는 것도 항상 먹기 직전에 딴다. 가정에서 먹기 위하여 수확하는 채소는 곧바로 상에 올린다. 제주도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해초를 소비하고 있는데 이는 오키나와에서 다시마를 무척 많이 소비하고 있는 점과 아울러서 장수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오키나와와 제주도에서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음식은 돼지고기다. 단백질의 공급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의례용으로 필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돼지고기임은 말할 것도 없고, 돼지고기는 오키나와와 제주도에서 모두 장수음식으로 불린다. 돼지고기를 조리할 때도 오키나와와 제주도에서는 비슷한 방법을 쓴다. 양쪽의 주민들은 돼지고기를 굽는 법이 없다. 반드시 삶아서 먹는다. 오키나와의 주민들은 돼지고기를 오래도록 삶는 이유를 돼지고기에 들어 있는 좋지 못한 성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소식(小食)이 장수의 기본이라는 인식도 공통적이다. 소식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다. 필자는 오키나와의 다마구스쿠촌에 거주하는 카미야 노인의 집에서 장수민속지의 작성을 위한 참여관찰을 실시했다. 아침 7시에 사탕수수밭으로 나가서 오전 내내 밭일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귀가하여 오후에는 낮잠을 자고 쉬는 일정이다.

    85세의 카미야 노인은 필자와의 식사시간에 불만을 토로했다. 필자가 식사를 너무 빨리 끝내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필자의 속식(速食)이 카미야 노인을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필자의 속식 습관이 장수에 부정적이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필자는 천천히 먹기 위해서 노력했으나, 카미야 노인의 식사 속도를 맞출 수가 없었다.

    다음날 카미야 노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필자가 밥을 먹는 모습이 ‘닭이 모이를 쪼는’ 것과 같으니, 그 방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젓가락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입으로 음식을 운반하면서 동시에 입안에서는 부지런히 음식을 씹어서 삼키는 과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가 제안한 방법은 한 젓가락의 음식을 입에 집어넣고, 음식을 씹는 동안에 젓가락을 상 위에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결국 젓가락 운동의 횟수를 줄임으로써 속식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음식이 입과 식도를 통해 위로 내려간 후, 위에서 포만감을 느끼는 것은 음식을 먹은 직후가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라는 것이 생리학자들의 의견이다. 속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음식을 먹기 때문에, 충분하게 많이 먹은 후에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음식을 더 많이 먹게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식곤증을 느끼는 것이다. 소식이 아니라 포식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속식이 포식을 이끌어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속식을 하면 소식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수자들의 가족적 특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렇다할 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족의 구성이 어떠한 경우에 장수자의 존재가 용이하게 될 것인가 하는 과제는 자못 중대한 것이다. 가족관계가 이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도의 노인들은 사망에 이르러서 거동이 불편해지기 직전까지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가사를 자신이 모두 한다.

    자식들과 마당을 공유하면서 안거래와 박거래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박거래에 거주하는 자식이 안거래에 거주하는 노부모의 식사를 준비해준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일이다. 일이 곧 삶이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한다. 서귀포의 부유한 집안의 한(韓) 할머니는 눈도 멀고 앉은뱅이가 되었지만, 날만 개면 뒷밭에 나가서 검질을 맨다(잡초를 뽑는다).

    오키나와의 사탕수수밭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80대의 노인들이다. 노인정에 나타난 80대는 아직도 청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오키나와의 할머니들에게는 그들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 날마다 새벽이면 할머니들은 물동이와 깨끗한 걸레를 가지고 조상들의 위패와 주변을 말끔하게 청소한다. 그곳에 먼지가 묻어서가 아니라 위패와 주변을 닦는 일은 조상을 섬기는 일이고, 조상을 섬기는 일은 할머니들의 몫이라는 세계관이 존재한다. 할머니들로 하여금 죽는 그 날까지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신앙이 있고, 조상숭배라는 신앙과 할머니의 일은 한 덩어리가 되어서 결과적으로 할머니들의 수명을 100세로 이끄는 것이다. 핀란드 탐페레의 그룹홈에 거주하고 있는 마리야 할머니는 하루 일과를 두 시간 걸리는 화장으로 시작한다. 날마다 일로서 하는 화장 덕분에 지금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얼굴과 손등에 주름이 적다.

    오키나와와 제주도에서는 모두 장수를 인간의 복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있다. 오키나와의 카지마야(風車, 97세에 장수를 축원하는 지역사회의 축제)는 장수자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축하행사다.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의 바로미터라는 인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수를 위한 민간요법들도 전해지고 있다.

    제주도와 남해 그리고 일본의 서부(일본의 동부에 비해서 서부가 장수지역이라는 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음)에는 똑같이 진시황의 불로초 사자(使者) 서복(徐福)의 전설이 있다. 장수를 시도하는 신화적인 내용이 민간에 있다는 것은 장수 현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기대는 장수의 동인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100세를 넘긴 사람들의 공통적인 ‘푸념’은 “너무 오래 살았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다. 오키나와에서도 같았다. 그것은 양 지역의 역사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그 푸념은 거짓이 아니고 젊은이들이 수없이 죽어간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의 회한 서린 기억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장수 노인들은 낙천적이다.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로(一怒一老)를 실천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100세인이 된다. 핀란드 얘르밴패에 살고 있는 104세의 아르스카 노인은 1주일이면 3일간 3㎞ 떨어진 맥주집으로 걸어 나가서 젊은이들과 함께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핀란드 탐페레에 사는 104세의 마리야 할머니는 필자를 만난 자리에서 키스를 해주었다. 그리고 기분이 어떠한가라고 묻는 여유를 보였다. 오키나와의 노인들은 세상살이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아키라메루(포기하다)가 생활의 신조다. 마음을 비운다는 얘기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세상살이에 연연해하는 것은 장수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오키나와 노인들의 지혜다.

    100세인들의 인생살이가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얘르밴패의 아르스카 노인은 젊은 시절에 볼셰비키혁명의 와중에는 우크라이나의 민스크에 있었고, 그 뒤로는 적군과 백군의 전쟁 와중에 수년간 감옥살이도 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오키나와의 노인들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의한 양속지배(兩屬支配)를 받으면서 살아왔으며 태평양전쟁이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겨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고, 제주도의 할머니들은 식민지시대의 고난과 ‘4·3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학살사건의 와중에서 아들들과 사위들을 잃는 슬픔을 이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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