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2월호

서울대 vs 고려대 불붙는 서울시장 선거전

홍사덕 이명박 이상수 김원길 각축, 변수는 고건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2004-11-10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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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지방선거의 승패는 서울시장에 달려있다. 민주당은 서울을 뺏길 경우 수도권에서 전패할 위험에 처해 있으며, 한나라당은 서울을 잡지 못하면 ‘이회창 대세론’에 제동이 걸린다. 여야가 고건 시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1995년 6월27일 실시된 지방자치선거에서 민자당은 광역단체장 5곳을 차지했고, 민주당은 4곳에 머물렀다. 1998년 6월4일 치러진 지방자치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국민회의 후보가 나란히 6곳에서 당선됐다. 겉으로 드러난 성적표만 놓고 보면 1995년은 민자당의 승리였고, 1998년은 무승부였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진정한 승자는 모두 민주당과 국민회의였다. 왜 그랬을까? 바로 서울시장 당선자가 민주당과 국민회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5년의 조순 후보와 1998년의 고건 후보는 지방선거의 승패를 결정한 주인공으로 볼 수 있다.

    2002년 지방선거 또한 예외가 아닐 듯하다.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에도 영호남에서는 지역정서가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충청과 제주에서는 혼전이, 경기 인천 강원에서는 한나라당의 근소한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따라서 서울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중요한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서울을 뺏길 경우 수도권에서 전패할 위험에 처해 있으며, 한나라당은 서울을 잃을 경우 ‘이회창 대세론’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2002년 서울시장 선거가 1995년과 1998년에 비해 힘겨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995년의 경우 조순 후보는 44개 선거구 모두에서 신한국당 정원식 후보와 무소속 박찬종 후보를 앞질렀다.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약세였던 강남·서초에서도 조순 후보는 우세를 보였다. 1998년에도 고건 후보는 46개 선거구 가운데 41개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를 눌렀다. 고후보가 최후보에 뒤진 지역은 강남 갑·을, 서초 갑·을, 송파 갑뿐이었다.



    서울에서 이겨야 대권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우선 2000년 4월 제16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민주당은 서울에서 28석, 한나라당은 17석을 얻었다. 당선자 수는 한나라당이 적지만, 내심 압승을 기대했던 민주당은 서울의 이상기류를 실감해야 했다. 2001년 4월26일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또 한번 상처를 입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낙승했던 은평구청장을 3년 만에 한나라당에게 내준 것이다. 2001년 10월25일 실시된 구로을과 동대문을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은 완패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결과를 보면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가며 승리한 경우가 많다. 1987년 대선 민정당 노태우 당선 →1988년 총선 야당 승리, 1992년 총선 야당 승리→1992년 대선 민자당 김영삼 당선, 1995년 지방선거 야당 승리→1996년 총선 신한국당 승리→1997년 대선 국민회의 김대중 당선 등이 그런 경우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불신에 따른 국민적 심판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최근 정가에서는 이러한 민심의 흐름을 근거로 지방선거 승리가 오히려 대선의 역풍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역대 선거의 경우 패자가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는 관측이다. 6월 지방선거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12월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방선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지방선거를 대권 전초전으로 보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다른 단체장과 비교해 지역정서가 덜 반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 출신의 조순 시장이 이북 출신의 정원식 후보와 부산 태생의 박찬종 후보를 이긴 것이나, 전북이 고향인 고건 시장이 경남에서 태어난 최병렬 후보를 누른 것이 단적인 예다. 조시장과 고시장이 영호남처럼 몰표를 받지 못하고 각각 42.4%와 53.5%의 지지율로 당선됐다는 사실도 서울을 전국 선거의 ‘표본’ 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의미있는 데이터일 것이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유심히 봐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민주당(국민회의 포함)은 두 번 모두 당내후보 대신 영입인사를 내세워 승리했다. 예선보다는 본선에 중점을 두고 선거전략을 짰다는 얘기다. 반면 한나라당은 당내파를 투입했다. 정원식 후보와 최병렬 후보는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각각 김영삼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민주당이 두 번의 선거에서 본선경쟁력을 얼마나 중시했느냐를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오랫동안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었지만, 한번도 출마하지 못한 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1995년, 그러니까 DJ가 정계에 복귀하기 전이었어요. 갑자기 DJ가 나보고 서울시장에 나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에 후농(김상현 전의원)과 힘을 합쳐서 KT(이기택 전의원)를 내쫓고, 둘이서 대권경쟁을 하겠습니다’라고 얘기했죠. 그리고 나서 DJ가 조순씨를 영입하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때 고건씨가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그때 DJ가 정계에 복귀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서울시장을 받는 건데….”

    서울시장을 둘러싼 DJ와 정고문의 신경전은 1998년에도 계속됐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다. 당내에서는 DJ가 서울시장 후보로 한광옥 의원을 내정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이때 정고문은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각하, 한광옥을 점찍은 게 사실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서울시장을 나가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총재님과 또 맞붙는 셈이네요’라고 말했지요. 그때 나는 대통령이 ‘한광옥과 한번 겨뤄보라’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무표정하게 ‘응’ 하잖아요. 그 길로 서울시장 출마를 완전히 접었어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한광옥의 본선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고건 쪽으로 선회한 거죠.”

    고건 시장의 재출마 여부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의 최대 변수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고시장이 확실한 선두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2001년 ‘신동아’와 한길리서치가 서울시민 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고시장은 한나라당의 홍사덕, 최병렬, 김덕룡 의원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특기할 점은 고시장과 홍사덕 의원의 지지층이 겹치는 것으로 나타난 대목. 고시장과의 가상대결에서 40∼50대 표를 많이 빼앗겼던 홍의원이, 민주당의 다른 후보와 붙었을 때는 40대 이상의 표를 되찾아오는 현상이 나타났다(고시장과 홍의원은 각각 46.2%와 39.8%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한나라당 이명박 전의원은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1년 12월 ‘국민일보’ 조사에서는 고시장의 강세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시장은 홍의원을 50.2% 대 33.8%, 이 전의원을 49.4% 대 32.4%로 눌렀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은 정동영 상임고문을 내세워도 한나라당의 두 예비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상수 총무나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를 내세웠을 경우에는 홍의원과 이 전의원에게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일보’ 조사의 특징은 홍의원과 이 전의원의 지지도가 민주당 후보에 따라 엇갈린 부분. 민주당이 고시장이나 이총무일 경우 홍의원은 이 전의원에 비해 근소한 차이로 우위를 보였다. 반면 민주당 후보에 정고문을 대입했을 때는 이 전의원의 경쟁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전의원이 오차범위인 2.2%의 열세를 보인 반면, 홍의원은 10%나 처졌던 것.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의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고시장은 1위를 지켰다. 서울시민 707명에게 ‘누가 서울시장이 되는 게 좋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결과 고시장 45.7%, 홍의원 18.1%, 이 전의원 12.4%, 김장관 4.8%, 이총무 2%로 나타났다. 이 순서는 이총무측이 2001년 12월30일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결국 현 상태에서는 고시장이 가장 앞서나가고 있으며, 그가 출마할 경우 당선이 유력한 셈이다. 하지만 고시장은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고시장은 지난해 ‘신동아’(2001년 8월호)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불출마 의사를 표명한 뒤 수차례에 걸쳐 “임기가 끝나면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가에서는 고시장의 불출마 발언을 대권행보와 연결짓는 분석이 우세했다. 서울시장에 연연할 경우 대권레이스에서 밀리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출마설을 일축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시장은 지인들에게 서울시장 이상의 꿈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정치일정이 확정된 이상, 고시장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제 서울시장 재출마 여부를 확정해야 하는 순간이 임박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시장의 향후 행보에 대한 서울시장 예비후보들의 엇갈린 관측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전의원과 홍사덕 의원은 고시장이 출마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 이상수 총무와 김원길 장관은 고시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습이다. 서울시장 경선참여가 유력한 김민석 의원도 지난해 말까지 “고시장이 최선의 카드”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최근 “고시장의 출마 여부와 관계없이 정치적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고시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최근 기자에게 “고시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권과 서울시장을 놓고 고심했다”고 전하면서 “서울시장에 재출마하더라도 스스로 나서는 모양새보다는 추대되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출마를 선언할 경우 자금과 조직의 부담이 따른다는 점도 고시장의 신중한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한때 ‘이인제 고문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경우 고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서울에서 패한다면 이고문이 무거운 짐을 지고 대선레이스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필승카드’로 고시장을 선택하리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고문측은 “답변할 가치가 없다. 우리는 서울시장을 염두에 둔 연대를 전혀 고려한 바 없다”고 말했다.

    이상수 총무는 민주당에서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예비후보다. 이총무는 “지난해 11월 고시장으로부터 ‘출마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다”며,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당내 경선을 통해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총무의 캐치프레이즈는 ‘발로 뛰고 가슴으로 듣는 서민시장’이다. 일부에서는 ‘서민시장’을 지향할 경우 중산층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며 수정을 권하고 있지만, 이총무는 자신이 살아온 역정과 정치철학 그리고 사회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서민시장’을 내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총무가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서울 삶의 체험’도 ‘서민시장’ 전략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이것은 서울시민들과 직접 만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행사로 지금까지 주유원, 노숙자 쉼터 봉사원, 프레스공, 환경미화원 등을 체험했다.

    이총무는 지난해 12월18일 ‘포럼 서울비전’ 창립식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그가 서울시장의 꿈을 키워온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 전이다. 이총무는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지방자치위원장으로 지역별 공약을 만들면서 서울시장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사실상 이때부터 이총무의 정치적 꿈은 서울시장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서울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전통과 미래가 함께 숨쉬며, 강남과 강북이 균형있게 발전하는 도시가 돼야 합니다. 또한 국제화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금융·통신·정보 인프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총무는 조순 시장과 고건 시장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두 사람은 시민의 힘을 활용하지 못한 탓에 결국 관료들에게 포위됐다는 진단이다. 이총무는 “서울시장은 중앙정부와 수시로 정치적 타협을 해야 하는 만큼 고도의 정치력을 갖춘 사람이 유리하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원내총무를 지낸 자신이 적임자라는 주장이다.

    이총무는 “서울지역 45개 지구당위원장 가운데 33명이 ‘포럼 서울비전’에 가입했다”며 당내경선에 자신감을 보였다. 거품을 빼더라도 과반수는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게 이총무의 전망이다. 하지만 민주당 서울시지부가 ‘국민경선제’를 도입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총무는 현재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길리서치 조사 결과 이총무는 서울시장 여야 예비후보 5명 가운데 가장 낮은 인지도를 보였다.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잠재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봐요. 이상수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상수가 국가보안법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판사복을 벗었으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구속까지 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서울시민들의 반응이 확 달라질 겁니다. 조순 시장도 3%에서 시작했지만 마지막에는 42%를 얻었잖아요.”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중요한 변수는 대선후보로 출마한 사람이 도중에 서울시장 쪽으로 선회하는 경우다. 실제로 몇몇 후보들은 서울시장 출마를 신중히 검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총무는 서울시민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장을 대권의 징검다리로 활용하거나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저울질하는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어떤 후보든 당내 경선은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민주당 대의원들도 본선에서 이길 사람을 뽑을 것이기 때문에 경선을 통과한 후보가 바로 ‘필승카드’라고 봅니다. 1월만 지나가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구도가 형성될 겁니다.”

    이총무의 자신감은 적극적인 조직확대와 무관하지 않다. 이총무는 1월31일 ‘코이모(코끼리 이상수와 함께 하는 모임)’ 발대식을 가질 예정이며, 한 사람의 이상수 팬이 10명의 지지자를 확보하는 ‘10인대장’을 지구당별로 5명 이상씩 확보할 계획이다.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2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김장관은 “국가사무를 보는 현직장관이 다른 일에 관심을 두는 것은 대통령과 국민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는 이유로 공식 인터뷰를 고사했다. 한마디로 모든 결정은 대통령에게 맡기고, 장관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서울시장 경선에 돌입한다는 것이 김장관의 구상인 셈이다.

    민주당에서는 김장관이 최고위원 출마와 서울시장 경선참여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지만 전당대회 일정을 감안할 때 두 마리 토끼를 쫓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장관과 가까운 한 의원은 “내부적으로 서울시장 경선참여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장관이 다른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은 서울 출신이고, 국정수행 경험을 갖고 있으며, IMF 극복과 건강보험 재정문제의 처리과정에서 나름대로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받았다는 부분이다. 김장관측은 특히 정권교체기에 DJ의 개혁플랜을 직접 입안해서 정책에 반영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김장관의 또 다른 무기는 바로 실물경제에 밝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장관은 기업과 언론사, 국회와 행정부를 두루 거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김장관은 최근 지인들과 ‘경제시장’ 전략으로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장관도 이상수 총무와 마찬가지로 본선 경쟁력 확보가 최대의 숙제다.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김장관은 한나라당 예비후보에 절대 약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 김장관측은 “고건 시장을 시나리오에 넣고 조사한 결과는 무의미하다. 고시장 변수가 사라지면 지지율이 급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장관측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정감과 참신성, 개혁성과 도덕성이 승패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조순 시장과 고건 시장은 민주당의 당세가 좋은 상태에서 선거를 치렀지만, 현재는 여당 프리미엄까지 사라졌기 때문에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게 김장관측의 전망이다.

    김민석 의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시장이 나오지 않고 당내에 경쟁력 있는 후보가 없으며 새로운 대안이 거론될 경우, 출마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일정이 확정된 뒤 김의원은 훨씬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의원은 “당권과 서울시장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되, 서울시장 쪽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서 2월 초까지 결론을 내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의원이 서울시장에 관심을 쏟게 된 결정적 이유는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출마를 권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의원측은 구체적인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복수의 주요한 대선캠프’라고만 밝혔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대권과 당권 서울시장을 엮는 ‘짝짓기’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김의원은 “인위적인 연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당대회를 통해서 단순한 ‘짝짓기’를 넘어서는 커다른 흐름이 형성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의원의 캐치프레이즈는 ‘시대교체론’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물의 출현은 시대적 필연이라는 주장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김의원은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제 서울시는 창의적 균형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젊다는 것은 엄청난 강점”이라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지난해 ‘사단법인 살기좋은나라 문화운동본부’와 ‘한국의 비전연구소’를 설립했다. ‘살기좋은나라 문화운동본부’에는 각계 인사 1000여 명이 가입했으며, ‘비전연구소’에는 10여 명의 대학교수와 연구원들이 있다. 또한 김의원은 1999년부터 국회보좌관과 지방의회 의원, 기업인 등 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젊은한국’의 회장을 맡고 있다. 김의원이 서울시장 경선에 본격적으로 가세할 경우 이들 외곽조직이 큰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동영 고문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됐다. 정고문 자신이 단 한번도 서울시장 출마를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출마설은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것은 정고문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강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지역에서 구청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A씨의 말을 들어보자.

    “서울시장 후보의 경쟁력은 서울지역 25개 구청장의 당락과도 직결됩니다. 현재 민주당의 인기는 바닥이기 때문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전패할 가능성이 높아요. 정고문은 호남표를 결집시키면서도 ‘탈호남’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앵커 출신이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으며, 개혁적이어서 민주당 지지층을 공략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정고문이 서울시장에 출마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선호투표제’로 치러지기 때문에 일단 대선레이스에 가담하면 중간에 발을 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개혁세력 연대론’ 등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정고문은 “기본적으로 나의 길을 갈 것이다. 자리를 놓고 짝을 짓는 것은 내가 걸어온 ‘쇄신의 길’과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민주당이 ‘고건 변수’ 때문에 아직까지 경선구도가 짜이지 않은 반면,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홍사덕 의원과 이명박 전의원의 양자대결로 판세가 굳어지고 있다. 당초 출마를 고려했던 5선의 서청원 의원은 당권 도전 쪽으로 돌아섰다. 다만 서울시 지부장과 중앙연수원장을 지낸 박명환 의원의 행보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박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시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한나라당 경선에 무조건 출마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의원과 이 전의원은 하마터면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맞붙을 뻔했다. 당시 홍의원은 민주당 경선에 출마해 조순, 조세형 후보에 밀려 3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고, 이 전의원은 민자당 경선에서 정원식 후보에게 패했다. 이전의원은 1998년에도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했지만, 선거법 위반(14대 총선 관련)으로 벌금형을 받는 바람에 서울시장의 꿈을 접어야 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은 ‘패자부활전’에서 맞붙은 셈이다.

    홍의원은 서울시장 경선을 준비하기 위해 국회부의장까지 내던졌을 만큼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홍의원은 서울시의 교통 환경 복지 재개발 도시디자인 등을 연구하는 13개의 전문가팀을 운영하고 있다. 토론을 구체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공무원과 전문가를 적절하게 섞었으며, 팀별 인원을 8명 이내로 정해 효율성을 높였다고 한다. 홍의원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되는 순간부터 이 조직을 ‘싱크탱크’로 활용할 예정이다.

    12월 정기국회가 끝난 직후부터 홍의원은 서울지역 지구당위원장들과 연이어 만났다. 홍의원은 예의를 지키는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이 전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고려대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홍의원과 이 전의원의 대결을 서울대(홍의원)와 고려대(이 전의원)의 힘 겨루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이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준표 김기배의원과 김중위 유준상 위원장 등은 고려대를 나왔고, 홍의원과 가까운 김덕룡 최병렬 의원과 진영 김성식 위원장 등은 서울대 출신이다.

    “이 전의원이 총재 주변에 공을 많이 들이고 대의원들까지 접촉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구당위원장들을 만나보니까 반응이 아주 좋더라고요. 이 전의원도 장점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좋은 승부가 될 걸로 봅니다.”

    홍의원은 “한나라당 대의원들이 당선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서 서울시장 후보를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홍의원이 대중적 인지도에서 이 전의원보다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전국구인 홍의원으로서는 당내 기반이나 자금력에서 이 전의원보다 뒤지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또한 민주당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느냐는 문제도 홍의원의 정치적 운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듯하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민주당 후보가 강하면 강할수록 홍의원의 입지는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홍의원과 오랜 정치적 동지관계인 김덕룡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민주당은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고건을 내세울 게 확실합니다. 고건이라는 막강한 상대와 싸우려면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홍사덕이 최선이라고 봐요. 예선에서는 이명박이 더 유리할지 모르지만, 본선 경쟁력은 홍사덕이 훨씬 강할 겁니다.”

    하지만 홍의원의 대중적 인기를 ‘거품’에 불과하다고 보는 지적도 있다. 1995년의 박찬종 후보처럼 이미지에 상처를 입을 경우 회복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홍의원은 “여론조사 자체는 거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민들은 내가 청렴하고 공정하게 살아온 정치인이며, 3김씨가 대한민국을 찢어놓을 때 무소속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의원이 지향하는 서울의 모습은 ‘반듯한 국제도시’와 ‘활기있는 21세기형 도시’다. 이를 위해 홍의원은 가장 먼저 서울 중심에 위치한 용산미군기지를 이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심에서 미군부대를 들어내면 서울이 국제도시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홍의원은 이미 미국의 지도층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며 이 문제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으며, 1월16일에는 서울에서 세미나를 열었다.

    홍의원은 미래의 서울시장은 ‘지도자’보다 ‘코디네이터’가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홍의원 자신도 서울시장에 취임하면 많은 권한을 파트별로 위임할 생각이라고 한다. 홍의원은 고시장의 행정능력을 높이 평가한 뒤 “서울시의 중요정책과 방침은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명박 전의원은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서울과 처음 인연을 맺었을 때부터 서민들의 눈물겨운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헌 책을 살 돈도 없었던 시절 고물상 주인의 도움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등록금을 내지 못해 대학을 포기하려 했을 때 재래시장 상인들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이명박은 없었을 겁니다.”

    이 전의원은 ‘경제시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다. 경제시장만이 서울을 경영할 수 있고, 상처받은 서울을 치유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시장 선거에서 2주일 만에 대역전극을 연출한 공화당 블룸버그 시장은 이 전의원의 ‘이미지메이킹’ 대상이기도 하다. 블룸버그 시장도 이 전의원처럼 기업인 출신으로 경제의 중요성을 홍보한 것이 주효했다.

    “우리 국민의 80% 이상은 경제대통령을 원하고 있으며 서울시도 예외가 아니라고 봅니다. 현대그룹의 신화를 만들었고, 현장경험이 풍부한 저야말로 경제시장의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의원은 ‘준비된 시장’임을 자부하고 있다. 5개월 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정책팀은 벌써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이 전의원은 “당선된 날부터 집무에 들어갈 생각이다. 서울의 문제점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문제를 푸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는 일을 해본 사람이고 청사진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의원은 서울시장의 경영마인드를 강조했다. 11조원에 이르는 서울시 예산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새로운 민간투자를 유치하려면 실물경제 경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전의원은 경선 파트너인 홍의원을 ‘좋은 상대’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전의원은 본선경쟁력 면에서 홍의원보다 자신이 유리하다고 전제한 뒤 “인기보다도 관록과 비전이 중요하다. 인기가 치솟던 박찬종과 달변의 정원식이 연륜을 앞세운 조순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홍의원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전의원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사무총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 ‘불공정 경선’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전의원은 “우리 형제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해왔다. 이상득 의원은 동생이라고 봐주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의원 접촉설과 ‘고려대 출신 담합설’에 대해 이전의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내 얘기에 공감하는 위원장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고려대 출신도 있고 서울대 출신도 있어요. 위원장들은 지역구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위원장들이 저를 좋게 평가한다는 건 그만큼 서울시민들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겠죠.”



    이 전의원이 넘어서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본선 경쟁력이다. 한나라당 내에는 민주당에서 고건 시장이 나올 경우 이 전의원으로는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 전의원은 “고시장이 나오더라도 불리할 게 없다”는 반응이다. 고시장이 전통적 관료라면 자신은 경영자 출신이기 때문에 확실한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명환 의원도 출마선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박의원은 “고시장의 불출마가 확실해지면 곧바로 경선에 뛰어들 것”이라며 “서울시지부장과 중앙연수원장을 거치면서 대의원들을 두루 접촉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의원은 “이제 서울시장은 서울말을 쓰는 사람이 맡고, 영호남 사람은 고향으로 가야 한다”며 일종의 ‘역(逆)지역차별론’을 제기했다.

    서울시장 선거가 접전으로 치러진다면 자민련과 진보정당 후보가 변수로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서울지역 선거에서 자민련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지난해 10월 재보선에서는 진보정당 후보에게도 뒤졌다. 현재도 자민련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 없는 상태다.

    반면 진보진영은 다양한 형태로 서울시장 참여방법을 논의중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에서는 노회찬 이문옥 부대표와 천영세 사무총장이, 사회당에서는 오세철 연세대 교수와 원용수 대표가, ‘제3의힘’과 지역단체가 중심이 된 ‘자치연대’에서는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과 이정우 변호사 등이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진보진영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후보단일화 문제일 듯하다. 지방선거뿐만 아니라 12월 대선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진보인사들의 주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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