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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눈으로 본 정치

이부영 열리우리당 의장 취임 한 달

당권파 달래고 비주류 어르고… ‘모래성’ 성주의 애타는 정치곡예

  • 글: 윤종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kmas@donga.com

이부영 열리우리당 의장 취임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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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장의 중재 역할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 그의 취임 직후 당내 국보법이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는 폐지론자와 무조건 폐지해선 곤란하다는 개정론자가 대립하는 형국이었다. 전임 신기남 전 의장은 물러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공개적으로 “국보법을 확실히 폐지하겠다. 천정배 원내대표와도 얘기를 끝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고, 이에 맞서 관료 출신을 중심으로 한 온건론자들은 공개적인 모임을 수차례 가지며 개정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장은 취임 일성으로 “국보법 때문에 국가안보가 지켜진다고 믿는 상당수 국민과 여론의 목소리를 충분히 고려해 개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국보법은 반드시 정리돼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는 있었지만, 폐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당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상당한 신중론을 표방한 것이었다.

이후 노 대통령이 국보법 폐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당 분위기는 일순간에 폐지론으로 기울었지만, 이 의장의 신중한 행보는 그치지 않았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과 최기문(崔圻文) 경찰청장, 박신(朴信) 기무사 참모장 등 공안관련 기관장들을 9월초 잇따라 당사로 불러 의견을 듣는 한편 9일에는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회장단을 만나 설득과 의견청취를 병행했다. 이 의장은 이들의 목소리를 9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야 뭘 걸 게 있어야지 걸지”

이 의장이 이들을 꾸준히 만나 다독이는 사이 천정배 원내대표는 9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국보법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질서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 한나라당과 우리 사회의 일부 수구세력이 이를 이념논쟁으로 몰고 가는 것을 강력히 비판한다”며 강성 발언을 토해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두 사람의 견해차가 불거진 것이란 해석도 나왔으나, 사전 조율에 따른 강온(强穩) 역할분담이란 풀이가 더 우세하다. 이날 의총 직전에도 두 사람은 접촉을 갖고 국보법 처리 방향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의장의 이런 행보 때문인지 당내 관료 출신을 비롯한 이른바 실용주의 그룹도 이 의장에게 괜찮은 점수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초 이 의장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정당대회에 다녀온 정통 외교관 출신 정의용(鄭義溶)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 의장을 다시 보게 됐다. 재야운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 쪽으로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는데, 상당히 생각이 유연하고 부지런하더라. 도와드려야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의장 체제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이 의장이 ‘힘’과 ‘욕심’을 스스로 거두는 것을 전제로 당권파와의 원만한 관계가 형성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 이 의장이 취임 당일 당 중진들이 모두 모인 회의석상에서 “내년 1, 2월에 있을 전당대회까지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임시 지도부의 소임을 다하겠다. 당내에 이런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 의견을 수렴해서 순탄히 전당대회를 치르고 당 지도부를 안착시키는 역할을 하겠다”고 몸을 낮췄기 때문에 평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발언 직후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 의장 중심의 단결을 외치기도 했다.

이 의장은 자신의 당권 승계 문제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던 8월18일 오후에는 자신에 대한 당권파의 비토가 만만찮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내가 비판적이었다는 게 그렇게 부담이었다면 앞으로 잘 감안해야겠다. 의장직을 승계한다면 당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당권파의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려 애쓰기도 했다.

이 의장의 한 측근도 “이 의장이 계파를 거느리고 있거나 대권이나 당권에 욕심을 드러내는 상황이었다면 의장이 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당내외 온갖 세력으로부터 견제와 반발이 심해 당을 온전히 이끌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진 게 별로 없다는 점이 거꾸로 당을 안착시키고 불협화음이나 잡음을 해소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 후원의 밤’ 행사가 끝나고 이 의장과 친한 재야 및 언론계 인사들이 함께한 자리에서도 이 의장은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는 데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했는데, 당신은 무엇을 걸 거냐”는 물음에 “나야 뭐 걸 게 있어야 걸지”라고 대답해 가진 것과 던질 것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천정배 원내대표 중심의 원내와 이부영 의장 중심의 당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점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 의장 취임 후 3일 만인 8월22일 천 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과거사 조사기구 구성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원할 경우 국회 밖에 과거사 조사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다음날 이 의장은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과거사 조사기구가 국회 밖에 구성될 경우 이를 주도해갈 세력이 없어 기능이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국회내 조사기구 구성을 주장했다. 이 의장의 발언은 원내대책회의 결정 이전의 당 방침이었다.

혼선이 일자 이 의장은 서둘러 “어제(22일)는 일요일이어서 원내 상황을 보고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입장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단순한 시간적 갭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다”고 진화했다. 의장 취임 초기의 일이지만, 이는 서로 결이 다른 이 의장과 당권파 간의 의사소통 부재, 당내 보고채널의 미작동 신호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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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종구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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