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私益을 키워야 公益이 살찐다

  • 권삼윤 tumida@hanmail.net

    입력2005-05-03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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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직사회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위기가 심각하다. 견제와 균형, 자유와 책임이라는 말들은 공허하기만 하다. 사회구성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체들이 나서서 공공구조의 혁파를 주도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공공성의 위기’에 처해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이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엄청난 금액이 벌써 연기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또 그보다 많은 금액이 회수 불능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만도 아니다. 그렇게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과 기업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을 내걸고 퇴직시킨 직원들에게 퇴직금 외에 상당한 액수의 퇴직위로금을 지급했다거나, 또 어떤 은행에서는 직원이 은행돈과 고객이 맡긴 돈을 들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나 우리를 실망시켜서만도 아니다.

    그나마 경영실적이 괜찮다는 어느 공기업은 부당 내부거래를 일삼다 수천억 원대의 예산을 낭비했고, 또 다른 공기업은 낙하산 인사에다 방만한 경영이 쌓이고 쌓인 끝에 부도를 내 그 회사를 믿고 거래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을 접해서만도 아니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고위 공직이 자격과 능력이 모자란 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정권 획득과 유지 과정에 도움을 준 인사들에게 적절한 검증절차 없이 맡겨지고, 그런 기관의 직원들은 그것을 빌미 삼아 임금과 복리후생비 인상을 요구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돼 공기업 부실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해서만도 아니다.



    무너지는 공공성



    우리 사회의 버팀목 구실을 해주리라 믿었던 지식인 그룹마저 정부나 기업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평가위원이나 자문위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공익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비판하기보다는 “굳이 기관장의 비위를 건드릴 이유가 있느냐”며 그들의 계획에 동조해주고, 심지어 무리인 줄 알면서도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해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해서만도 아니다.

    정말 이 정도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은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위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교육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쏟아붓고 있지만 여전히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문제점투성이인 교육현실, 연초에 책정된 예산이니 해를 넘기기 전에 집행해야 한다며 멀쩡한 것을 헐었다가 다시 까는, 이제는 연례행사가 돼버린 보도블록 교체공사, 준비가 미처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의약분업을 강행하다 겪은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 그래 놓고도 의료보험의 재정 고갈 때문에 의료보험료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소액 진료를 보험에서 제외, 이를 의료저축제도로 보상받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등 의약분업과 국민의료보험제도의 설립취지를 무색케 만드는 보건복지 행정, 농축산물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해 급기야 농민들이 배추밭과 대파밭을 갈아엎는 사태까지 촉발시킨 농림행정 등 그 예를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유권자들 앞에서는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토해냈던 선거공약도 당선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냐’며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당 총재의 심기를 헤아리는 데는 누구보다 잽싼 모습을 보여주는 정치인들, 국민의 이익을 지키고 게임의 룰이 공정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심판 구실을 해줘야 하는 데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지탄받는 경찰과 검찰, 상업성을 앞세우고 공익성을 저버렸다고 허구한 날 도마에 오르는 방송들…. 능력이 부족하면 도덕적으로라도 앞서야 할 텐데, 우리의 공직사회와 공공부문은 그것마저 실종된 듯하다.

    공공성의 위기가 공직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란 말대로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으니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중화장실 벽에는 으레 ‘화장지와 물을 아껴 씁시다’ ‘사용하신 후에는 반드시 수도를 잠급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도 수도꼭지에선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게 사람이 일을 볼 데인가 싶을 만큼 엉망으로 더럽혀진 경우도 허다하다.

    공원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큼직한 팻말을 세워둔 것만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마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보도(步道)로 노출된 지하철 환기통은 애연가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거대한 재떨이처럼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다른 사람의 신경을 건드릴 정도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고, 예민한 전자기기들이 작동되는 병원이나 비행기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을 사용한다.

    주택가 골목길에서는 주차 때문에 이웃끼리 시비가 붙고, 지난번 폭설 때는 집 앞 골목에 쌓인 눈을 누가 치워야 하는 문제로 주민과 동사무소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기 집을 나서면 모든 게 공공의 것들인데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공공의식 실종현상은 여러 사람이 모여 공통된 목표를 위해 일하는 회사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이라면 근무시간만큼은 회사 일에 열중해야 할 텐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회사 컴퓨터로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동향을 살피고 매매 주문을 낸다.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상사가 따끔하게 지적하는 경우도 드물다. 대개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듯 지나치고 만다.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다 외환위기 직후 미국으로 취업이민을 떠난 배남석씨는 최근에 펴낸 ‘절대로 일하지 말라’는 책에서 “미국에선 근무시간을 도둑질하는 사람은 없으며, 미국인들은 그것을 가게에서 물건을 훔친 것과 같은 짓으로 생각한다”고 전한다. 미국인의 90% 이상이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데도 그렇다고 한다.

    부족한 ‘공공 체험’

    흔히 ‘경쟁력’이라고 하면 사기업의 경영성과나 노동생산성 같은 것으로만 알기 쉬우나, 공공부문의 경쟁력은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 저하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삶의 질도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예산과 공공기금이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엉뚱한 곳으로 낭비되고, 먹을 것을 마음놓고 먹을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며, 게임의 룰조차 공정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곳에서 과연 무엇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지를.

    그런데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개체의 시대’란 자급자족 사회가 아니다. 다양한 사익(私益)들이 때로는 서로 손잡고, 때로는 첨예한 대립을 보이면서 굴러가는 이익지향적 사회다. 따라서 이해관계의 통행이 빈번한 길목에는 성능 좋은 교통신호등을 설치하고 유능한 교통경찰관까지 배치해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므로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화된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가 맞이한 총체적 위기란 공공성의 위기가 촉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 분석이 절대로 필요한 만큼, 우리가 왜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리고 공익에 대해서 왜 이다지도 무관심한 것인지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끼리 살 때는 누가 잘나고 못났는지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와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이익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세계화시대엔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된 데는 물론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공공에 대한 사회·문화적 경험과 그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광장 공원 극장 지하철 공중화장실 경기장 우체국 체육관 병원 박물관 방송국 등 공공을 위한 시설물들이 우리의 삶 가까이로 들어온 것은 대체로 광복 이후로서, 그나마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필요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곳에 있는 것들을 손쉽게 베껴놓은 결과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왜 그걸 만들어야 하며, 그걸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크기와 모양으로 하고 그 비용은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또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해 깊은 검토나 국민적 합의 같은 것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거저 주어진 것이라 여겼고, 자신과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공공의 것도 내 것’이란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상이 눈에 보이는 시설물에 한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제도에서도 당연하게 나타나는데, 그 결과는 아주 심각하다.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국가의 기본 틀이라 할 삼권분립 제도에서도 그런 현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

    삼권분립 제도의 목적은 잘 알려진 대로 국가의 기능을 입법, 사법, 행정으로 나누고 이들간에 견제와 균형이 유지되게 해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는 데 있다. 겉으로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이 제도를 우리는 광복과 더불어 서구식 헌법을 베껴다 국가의 틀을 짜는 과정에 도입했다. 우리가 피와 땀을 흘려가며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그 운용과정에선 늘 문제가 생겼다. 제도와 의식 사이의 괴리,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그것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공짜’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헌법 운용의 역사가 어언 50년을 헤아리건만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가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에는 이러한 공공시설물과 민주주의 제도가 태어난 서구의 역사를 살펴보자. 그러면 개체와 공공, 사익과 공익의 관계, 나아가서는 제도와 의식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수행해왔던 공공시설물은 광장이었다.

    광장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그 원형은 신전이 들어선 아테네의 성소(聖所) 아크로폴리스 아래의 평지에 자리잡았던 아고라(Agora)였다. 아고라는 그저 사람들이 모이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상품들이 그 효용성과 희소성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교환되고 거래되는 시장이었을 뿐 아니라, 철인 소크라테스가 매일 오후면 찾아와 청년들을 상대로 문답법을 벌여 진리를 깨우쳐주려 했던 교육공간이기도 했다.

    정치가들은 폴리스(Polis·도시국가)가 당면한 문제들을 들고 나와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토로했고, 시민들은 그것에 대해 반론을 폈다. 표현욕구가 강했던 시인 미술가 음악가 조각가 연극배우들도 아고라를 찾아와 자신의 작품을 여러 사람에게 선보이고 평가를 받았다. 상품이 교환되고 거래되는 공간답게 대화와 토론과 비판 역시 자유롭게 오갔던 것이다.

    기원전 507년 클레이스테네스가 민회(民會)의 구성을 평민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개편함으로써 비로소 열렸다는 ‘민주주의(demokratia·인민에 의한 지배)’도 아고라와 같은 열린 공간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니 아고라야말로 민주주의의 산실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장이 필요했던 까닭

    그런 그리스를 정복해 유럽문명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던 로마제국은 아고라를 본따 ‘포로(Foro·영어의 ‘Forum’은 여기에서 나왔다)’라는 것을 만들어 도시 한가운데에 뒀다. 포로는 로마식의 아고라로서 그리스와 같이 시장이면서 동시에 정치와 예술 마당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로마가 시작됐다는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지금도 남아 있는 ‘포로 로마노(Foro Romano)’는 그때의 유적으로, 지금은 늘 여행객들로 뒤덮일 만큼 관광의 명소가 됐다.

    그러나 포로는 아고라와는 사뭇 달랐다. 로마와 속주(屬州)의 각지를 연결하고자 대대적으로 길을 닦았던 ‘길의 제국’답게 로마는 포로에 출입할 수 있는 자격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시민권을 가진 성인 남자에게만 아고라 출입을 허용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로마가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데는 포로의 개방성, 포용성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포로를 통해 공화제(res publicus)라는 또 하나의 민주정을 탄생시켜 민주주의 발전 도정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던 로마가 사라진 후에도 유럽의 모든 도시는 그 중심에다 플라자(plaza), 즉 광장을 뒀다. 그리하여 광장은 서구사회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광장은 그렇듯 만남의 공간이었다. 거기에는 대화와 토론이 있었다. 그들이 남들과 어울려 대화와 토론의 문화를 갖게 된 데는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성과 옥외에서 지내기에 안성맞춤인 기후조건이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됐던 절실한 삶의 문제가 있었다.

    건조지대인 지중해 연안에서는 나무보다는 흙이나 돌로 집을 짓는다. 따라서 벽은 두껍고 문이나 창은 작게 내게 마련이라 집은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다. 그 덕분에 한낮의 찌는 더위와 밤의 냉기, 외부로부터의 위험을 막을 수 있었으니 개인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보호에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서로 힘을 모으다 보면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있는 게 아니던가. 그들은 더 큰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고, 그런 목적에서 도시 한가운데에 아고라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다뤄지는 문제가 바로 공익이었으니 그들의 공익 역사는 그만큼 유구한 것이다.

    그들이 다뤘던 공익 아이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수호와 같은 방위문제였다. 서구사회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국민개병제를 실시하기 전까지는 대체로 용병제를 채택했기에 방위비 부담은 늘 중요한 문제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페르시아제국의 공격을 받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공동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맺었던 델로스 동맹이었다. 그들은 말로만 돕자고 한 게 아니라 재원까지 갹출했는데, 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그렇게 모은 돈을 다 쓰지 못했다. 그러자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남은 돈을 모두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단합을 상징하는 데 쓰자며 파르테논 신전을 축조했으니 그리스 역사에선 토론과 합의, 방위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다.

    空이었던 公

    그들의 처지에서 공동체란 거대한 보험조직 같은 것이었다. 즉 하나의 이익공동체로 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익은 공익과 사익으로 이뤄지되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여서 공익의 확보 없이는 사익도 지켜지지 않으며, 사익의 증대 없이는 공익의 충실화가 쉽지 않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그들의 공익관이었다.

    공익에 대한 논의는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근대에 들어와선 광장이 아니라 ‘대화의 집’이라는 의회(Parliament·‘말하다’는 뜻의 프랑스어 ‘parler’에서 나왔다)에서 행해지면서 그들의 공익수호 노력은 한층 정교해졌다. 그들의 광장의 역사, 대화의 문화를 더듬어보면서 감탄해 마지않는 것은 이미 2500년 전에 서구인들은 개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런 개인들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개인의 자유와 발전은 공익의 확보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개체가 사회의 주인이 되어 끌고 가는 지금과 같은 개체의 시대에 왜 공익과 공공성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분명해진다.

    그러나 조상 전래의 땅에 붙박이로 살았던 동양의 농경문화권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같은 동류(同類)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고, 그리하여 의견교환이나 이해조정을 위한 공간이나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 서구인들은 공동체를 상호부조를 위한 조직으로 생각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온갖 지혜를 다 모았다. 하지만 우리는 혼사나 부모의 상(喪) 같은 집안의 대소사를 가족과 친지, 이웃 등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해결하는 전통을 유지함으로써 이해관계가 다른 개인 혹은 집단에게서 아이디어나 힘을 얻는 데는 무관심했다.

    이처럼 혈연과 지연이라는 자연발생적 요소에 매달렸던 탓에 이익지향적이지 못했으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얽어매고 감싸안을 수 있는 열린 공간 또한 마련하지 못했다. 그 시절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적 공간으로는 종묘(宗廟)나 사직단(社稷壇) 같은 것들이 있긴 했으나,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대화나 토론을 위한 공간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만약 공익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최고권력자의 것이었을 뿐 일반 백성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으니 백성들이 보기에 공(公)은 그야말로 공(空)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허약한 공공의식은 이런 역사·문화적 구조에 뿌리를 둔다.

    이는 동아시아에 광장다운 광장이 20세기 중반, 중국공산당이 인민을 주인으로 한다며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키기에 앞서 옛 왕조시대 관청가를 헐고 텐안먼(天安門)광장을 조성함으로써 비로소 등장했다는 사실로도 얼마간 증명된다. 그렇게 태어난 광장도 내용을 보면 시민들의 주체적 행동과는 거리가 있었다. 대화와 참여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사용한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 후 평양과 서울에도 그런 광장이 태어났으나 그곳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와 독재자에 대한 환호는 있었지만 시민문화는 좀처럼 싹트지 않았다. 여의도광장은 그나마 오래 가지 못하고 시민공원으로 바뀌었으니 광장은 아무래도 우리 체질엔 맞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공공의 역사는 이처럼 일천하다. 그런데다 공의 핵심이 되는 공무원제도는 이미 1000년 이상이나 중앙집권제를 유지해 왔다. 중국과 일본은 나름의 봉건제도를 만들어 운영해 왔지만 우리만은 줄기차게 중앙집권제를 고수했다.

    봉건제 아래서 각 영주는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더 많은 세금을 내려고 경쟁하기 마련이라 자기 관할지역의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고, 따라서 주민들의 소득향상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관리(官吏)’란 말에서 ‘관(官)’의 어원이 되는 ‘관(館)’이 창고를 의미했던 데서 중국 관리의 기능을 유추해볼 수 있다면 음식점, 도예공방, 철물점, 온천 같은 가업(家業)을 몇백 년 동안 지켜온 일본에서는 기술 중시의 문화를 읽을 수 있다. 기술은 산업과 상업을 육성시켰고, 이는 주민의 소득과 지역 경제력을 키웠으며, 결과적으로는 영주들이 기대했던 대로 세원(稅源)의 증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중앙집권제를 고수해온 우리는 산업을 일으키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과 상업의 진흥에 무관심했다. ‘사농공상’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사회를 한 가지 색깔로 통일해 다양한 의견과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것은 통치와 관리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백성들을 억압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에 관료는 자신의 임면권자에게 충성의 표시만 확실히 해두면 자리가 보장됐을 뿐 아니라 얼마간 사리사욕을 차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이 임지(任地)는 자신과 연고가 없는 곳인데다 그나마 2∼3년 뒤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기에(순환보직제의 역사 또한 이렇게 유구하다) 지역주민들로부터 점수를 딸 이유도 별로 없었다. 백성은 철저히 착취와 관리의 대상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구조에서 어떻게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윈-윈(win-win) 전략이나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는 동인이 생길 수 있었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중앙집권제의 폐단이 오늘까지 이어져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무원은 임면권자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빠 국민의 편의나 욕구를 살피는 일은 뒷전이다. 순환보직이다 뭐다 하면서 전문성을 기르는 데 소홀하다 보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 힘없는 국민이라고 해서 그걸 모를 리가 없었으니 그들이 공직자를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봤을 리 없다.

    사정이 이런데 아무리 공중도덕을 지키자, 공공시설물을 아끼자, 공익을 먼저 생각하자고 외쳐본들 어떻게 ‘말발’이 서겠는가. 힘있는 자, 가진 자들은 공익을 내세워 사익을 챙기고, 설령 공익을 챙길 생각이 있더라도 능력이 모자란데 말이다.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그저 교과서 읽어주듯 가르쳐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람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따라서 열쇠는 구조의 혁파에 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구조를 혁파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사람 중심’으로 짜였던 우리의 조직을 ‘일 중심’으로 바꾸면 된다.

    사람 중심이라는 게 인도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구조에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리’에 쏠릴 뿐, 정작 중요한 그 자리에 맡겨진 일에는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사람 중심’이라는 그럴 듯한 표현과는 달리 비능률적이고 비민주적인 제도가 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이 아니라 그 잘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는가. 책상 위에 큼직한 명패를 올려놓고 으스대고 싶어서, 이력서에 굵직한 직책 하나 써넣고 싶어서, 죽은 뒤 자신의 무덤 앞에 세워질 비석에 그럴듯한 감투 하나 올려놓고 싶어서 얼마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던가.

    그러나 막상 그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고 하고 난 뒤의 결과는 어떠했던가. 일을 제대로 하라고 부여한 권한과 예산(사업예산은 물론 판공비, 정보비, 기밀비까지)을 본연의 목적에 사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봐주는 데 급급한 적은 없었던가.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삶은 그런 자리에 오르기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꼴이 됐다. 밖으로 드러난 것은 요란하고 화려했을지 몰라도 자신을 살찌우고 남을 위해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알맹이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개인의 삶이 이러하다면 그런 개인들로 채워진 사회에 대해선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제는 그런 자리가 중요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 그 자리에 맡겨진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위해 밤을 낮처럼 밝히며 분투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 할 그런 때인 것이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면서 정부조직과 공무원 인사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부단하게 지적해오다 중앙인사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광웅 교수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체질을 완전히 바꿔 21세기형 공무원이 되려면 앞으로도 한 세대는 더 걸려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 조직을 지금의 계급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철저한 일 중심의 직무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공적 조직에서 일이란 공익의 창출과 유지를 통해 사회적 부가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을 말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군(軍)이 나라를 잘 지키는 것, 그런 군이 정보와 협상력을 높여 성능이 우수한 무기를 싸게 구매함으로써 예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누구나 마음놓고 거리를 거닐 수 있도록 치안을 유지하는 것, 식품과 의약품을 안심하고 사 먹을 수 있도록 검사를 철저히 하는 것, 교육 내용을 충실히 해 공교육만으로도 자녀 교육은 충분하다고 믿게 만드는 것, 보험과 연금재정이 바닥나지 않도록 미리 방책을 수립하고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일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서비스행정’ 또는 ‘행정서비스’라고 할 때 ‘서비스’란 말의 참뜻이다. 우리는 물건을 살 때 덤으로 얹어주는 것을 흔히 서비스라고 하는데, 행정과 관련해서 이 말을 쓸 때는 절대 그런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군복무를 ‘밀리터리 서비스(military service)’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서비스란 직무이자 일이다. 우월적인 지위에서 국민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직분이자 책임인 것이다.

    중국은 서비스를 ‘복무(服務)’라는 말로 옮겼는데 그들은 서비스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를 충분히 갖고 있는 그들은 행정관청도 ‘복무소’라 부른다.

    중국 공산당은 지금은 대륙을 차지하고 있지만, 1930년대만 해도 국민당 군에 밀려 춥고 배고프고 고달픈 세월을 견뎌내야 했다. 남부에 있던 근거지를 모두 잃은 그들은 국민당 군에 쫓겨 장장 9000km 이상을 걸어서야 겨우 새로운 둥지를 찾게 됐는데, 그게 저 유명한 대장정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런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인민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는 공산당은 살아남을 수도 없고, 그토록 소망하는 대륙통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물고기는 중국 인민이라는 물이 없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다는 ‘물과 고기론’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후 중국 공산당은 인민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서 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대륙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끝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인민을 착취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국민당은 대만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중국 지도부는 그런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부정을 저지른 관리나 부패한 공직자가 발각되면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총살형으로 다스린다. 공익에 반하는 죄를 저지른 공직자들에게 너무 관대한 우리와는 사정이 딴판이다. 우리는 부정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중인 경우라도 사면 혜택을 받아 만기를 다 채우지 않고 출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익지향성의 원칙

    정책을 잘못 입안하고 또 일을 잘못 추진하다 국가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쳐도 형사상, 재산상 책임을 지우지 않는데다 고의적으로 잘못을 저질러도 이처럼 한없이 관대한데, 어찌 잘못이 시정될 수 있을 것이며 또 공익이 지켜지고 육성될 수 있겠는가.

    무책임은 무소신, 무능력, 무사안일, 나아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 지금의 우리 공직사회는 이 모든 것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공직사회는 스스로 자정하고 개혁하지 않는다.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누워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정치권도 공무원들이 그렇게 변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은 관료의 힘이 없으면 자생하기 힘든 조직이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자기네 수족으로 삼고자 할 테니 그러하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공직자 윤리강령’이다 ‘공무원 준수사항’이다 하면서 야단법석을 떨어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전시행정이고 슬로건 행정이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하다 해도 무리한 방법을 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미구에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그 일은 개체들이 맡을 수밖에 없다. 개체는 이 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인데다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주인의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계속해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지금 논의되는 전자정부(e-Government)는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이므로 조기에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한 방법일 수 있다. 이것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흡사한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을 앞당기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전자정부나 전자민주주의가 조속히 실현되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우리 사회에 원칙을 정립하는 일이다. 그런 원칙으로 우선 꼽아야 할 것은 이익지향성이다.

    개체의 시대란 일 중심의 이익지향적 사회(interest-oriented society)다. 농경문화의 속성상 우리는 오랫동안 자급자족 지향 사회를 일궈왔기에 이익 지향적이어야 한다면 ‘그게 무슨 소리야’ 할 수도 있겠으나, 이익 지향적이라고 해서 이익만 탐하자는 게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떳떳하게 밝히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노력하자는 것이지, 남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앞세우자는 뜻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빚 없는 가정, 흑자 내는 기업, 공익을 산출하는 공직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고 들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익 지향적으로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방법이 하도 은근해서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고, 설령 그걸 알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어 두고 보기만 했던 것이다. 누구라도 좋은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친인척, 동향인, 선후배, 친구, 과거에 신세 진 사람들을 이런 핑계, 저런 이유를 대며 챙겨주었으니 그보다 더 이익 지향적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개체의 시대에서는 그런 식으로 슬그머니 자기 잇속만 차릴 게 아니라 그것을 꺼내놓고 따져봐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해결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문제를 제기한다고 ‘집단이기주의’라며 비판해선 안 된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는 언행만 삼간다면 자신의 요구를 떳떳하게 표출하는 것을 오히려 권장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는 잠자코 있다가 결론이 난 뒤에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불평불만을 해대는 것보다 그것이 백번 낫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공동의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본 경험이 없는데다 이해관계라는 틀을 통해 그것을 따져본 적은 더욱 없는지라 사회구성원들이 감정표출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합리적인 선에서 주장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것을 중재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이해관계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형식적인 법만 들먹거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얼버무리려 들어 미봉책으로 끝나기 일쑤다.

    최근의 의약분업 갈등과 구조조정 과정에 파생된 노사분쟁을 해결하면서 이를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 정도로 이익을 꿰뚫어보는 눈이 미숙하다. 그런 까닭에 위기관리 능력은 바닥을 헤맨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태가 앞으로 계속 불거질 텐데, 우리의 이런 능력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온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이익을 셈하는 공정한 잣대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같은 전문가들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거기에 합당한 잣대를 들이대기만 한다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정치인 공무원 기업주 그 누구도 법과 회계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

    그들은 특정한 조직에 얽매여 있지 않기에 상사의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지식과 경험, 그리고 직업 양식에 따라 일하는 전문가인데다 개체 시대의 선봉장이기에 우리는 그들이 이렇게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NGO도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정부나 기업 등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어떠한 형태로든 거래관계를 유지하려 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들을 산발적으로 건드리기보다는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효율적일 뿐 아니라 개체들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 정부나 기업이 이들의 활동에 관여하면 개체들의 이익이 지켜지지 않으므로 NG O들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히 개체들의 몫이 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대화와 토론의 문화를 일구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래야만 무슨 일을 추진하더라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고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90년대 초 필자가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근무할 때 사용자측 실무대표 자격으로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했다가 서구 사회의 토론문화가 어떤 것인가를 제대로 경험한 바 있다. 1919년 창설된 ILO는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UN산하 국제기구로서, 회원국의 노사정(勞使政) 대표가 모두 참석하는 총회는 매년 6월 3주간의 일정으로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다.

    총회는 주제별 실무회의와 노사정별 분과회의로 이뤄지는데, 해당 의제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이 도출되면 전체회의에 회부돼 ILO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는 절차로 진행된다. 쉽게 결론을 이끌어내는 우리네 토론문화에 익숙한 내 눈에 이런 회의들은 참으로 지루하게 진행됐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데도 의장은 그때마다 발언권을 줬고, 그게 끝나면 다른 대표들을 향해 반대의견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했다. 의장은 참가자 대표들에게 발언기회를 골고루 주고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지 않게 하는 일만 했다.

    처음에는 회의 대표들에게 비싼 호텔비(스위스의 호텔비는 가위 살인적이다)를 물리게 하고선 무슨 회의를 이런 식으로 하나 했지만, 차츰 그들의 토론문화에 익숙해지자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채 쉽게 결론을 내리면 시간과 비용을 다소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많다. 만일 그때 가서 문제점을 시정해야 한다면 앞서 절약했던 시간의 몇 배를 쏟아부어야 할 터이고 금전적 손실도 엄청날 것이다.

    복지천국을 만든 힘

    스웨덴 노사가 1938년에 이끌어낸 살트숀바덴 협정도 재미있는 사례다. 내가 흥미를 느낀 것은 첨예하게 대립하던 노사 대표들이 스톡홀름 부근의 휴양지 살트숀바덴에서 만나 현안을 풀고, 나아가 노사협력의 기본틀을 마련해 그 골격이 지금껏 유지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오늘날 그들이 누리는 복지천국 스웨덴을 만든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말수가 적고 남들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스웨덴 사람들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는 내키지 않는 대화에 적극 나서면서 머리를 짜내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타협점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가슴을 찡하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 약효가 오래 갈 수밖에.

    고대 그리스인들이 공동체를 하나의 보험제도로 보고 동맹체제를 구축한 데 비해 스웨덴을 비롯한 현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명실상부한 보험국가를 만들어 복지천국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 상대방에 대한 신뢰, 합의정신 존중, 이익 지향성 등을 밑바탕으로 해서.

    그래서일까. 서구인들은 술을 마시는 것도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가기 위한 경우가 더 많은 듯했다. 술잔을 받아 들고도 한입에 털어넣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소리지르거나 남에게 실수하는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말보다는 술이 앞서고, 또 술이 어느 정도 거나해지면 정신을 잃는 사람까지 생겨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노래판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말은 더욱 필요없어지니 정보의 교환이나 의사 표현은 설 자리를 잃고 대신 감정 표출만 심화된다.

    회의라는 것도 대개는 지시나 명령이 전달되는 것으로 끝나기 예사다. 각자의 견해를 진지하게 묻거나 참석자들의 머리 속 깊이 박혀 있는 아이디어까지 빼내는 회의다운 회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과정에서, 그리고 경부고속전철사업의 입안과 추진과정에서 값비싼 수업료를 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우리는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자동차 전자 등 업종간 빅딜문제를 충분한 의견수렴이나 깊이 있는 검토 없이 조급하게 서두르다 결국 실패로 끝내고 말았다. 그로부터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서는 의약분업을 추진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과거의 실패 경험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우리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고 외칠 자격이 없다. 말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개체들이 나서야

    우리의 학습능력이 정말 이 정도라면 반성해야 한다. 정부의 실수는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오는데, 그런 실수를 저지른 공무원 집단에는 정치적 책임은 몰라도 경제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실수를 저지르고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인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견제와 균형, 자유와 책임, 이런 말들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체들이여, 그대들의 생업도 중요하지만 공익을 지키는 일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대들의 이익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화폐가치가 떨어지고 주가가 곤두박질친다면 그대들이 지닌 재산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데서 미래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가. 그대들은 이미 그걸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던가. 불행하게도 그걸 지켜줄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그대들 외에는. 만약 그대가 이 사회의 주인이고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가 그 일을 위해 나서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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