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일부 재벌 마약복용 소문 사실이다”

마약수사 비밀정보원의 증언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mairso2@donga.com

    입력2005-05-23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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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정수사가 대부분인 마약수사에서 정보원들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마약거래 정보를 수사기관에 알려주는 이들은 때론 위장구매자로 나서 현장수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정보원 A씨가 들려주는 마약수사의 비밀.
    한마약수사검사는 “마약수사에는 정보원의 협조가 필수다. 그런데 정보원 관리도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며 수사비 부족을 호소했다.

    그의 말마따나 마약수사에서 정보원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대개 과거에 마약을 복용했거나 거래에 관여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정보원 노릇을 한다. 마약세계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는 이들은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마약거래 정보를 빼내 수사기관에 알려준다. 때로는 위장 구매자로 나서 현장수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마약수사의 성패는 그들이 수사관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의 신빙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들의 신분은 철저히 가려져 있다. 드러날 경우 향후 정보활동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물론 신변에 위협이 닥치기 때문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마약수사정보원 A씨를 만나 마약수사의 속사정을 살펴봤다.

    A씨는 예전에 마약거래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적이 있다. 실형을 살았는데, 그의 말로는 ‘억울하게 뒤집어쓴 사건’이라고 한다. 출소한 후 우연히 마약수사관들과 연결됐고, 기꺼이 정보원이 됐다. A씨는 “마약을 뿌리뽑는 데 앞장서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에겐 생업이 따로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데, 자신이 꼭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정보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정보활동 대가로 검찰에서 받는 돈은 없다. 이를테면 자원봉사인 셈이다. 지난 1년 동안 그의 정보를 토대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 사건만 10여 건에 이른다.



    위장구매자로 판매자 접촉

    A씨는 마약세계에 몸담고 있거나 그쪽 사정을 잘 아는 위치에 있는 주먹계 또는 유흥업계 ‘후배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그들 중엔 이른바 건달이 많다. 그는 취득한 정보 중 신빙성이 높은 것만 수사관들에게 알려준다.

    “정보를 무조건 받아들일 수는 없다. 신뢰도가 낮은 정보를 바탕으로 무턱대고 수사를 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통 신빙성이 50%가 넘는다고 판단되면 수사를 시작한다.”

    수사가 시작되면 A씨는 표면에 나서지 않고 뒤로 숨는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 마약거래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A씨는 중국에서 ‘물건’이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구매자로 위장해 마약을 팔겠다는 사람과 접촉했다. 물론 수사관 몇 명이 일행으로 꾸며 따라붙었다. 처음 만난 장소는 남한산성.

    “물건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처음 만났을 때 저쪽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또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그 계통에 있는 사람을 데리고 나갈 때도 있다.”

    해외 밀반입 마약류는 선박이나 항공기 화물로 위장한다. 운동화 밑창 또는 농산물이나 목각 속에 감추는 방법은 전통적인 수법이다. A씨에 따르면 운동화 밑창을 이용하는 경우, 한쪽에 50g씩 담을 수 있으므로 운동화 한 켤레에 100g을 들여올 수 있다.

    A씨는 판매자를 여러 차례 만났다.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술을 사는 등 향응을 베풀었다. 그 과정에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한 술집에서 주인이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고 마약거래자들이라고 짐작해 경찰에 신고한 것. 인근 경찰서에서 경찰관들이 달려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A씨와 수사관들은 진땀을 흘렸다. 판매자 앞에서 신분을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하면 공들여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판이었다. 그 탓에 경찰관들과 몸싸움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 와중에 경찰관들에게 슬쩍 귀띔했다. “작전중이다!”

    내막을 알게 된 경찰은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한 후 돌아갔다. 다행히도 판매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A씨에 따르면 은밀히 공작수사를 하다 보니 가끔 그런 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판매자는 A씨를 믿게 됐다. 거래가 임박했을 때 A씨는 판매자에게 현찰 5000만 원이 든 가방을 열어 보였다. 그 돈은 물론 검찰의 공작자금이었다.

    “마약 판매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선 늘 현찰을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 꺼내 보여야 한다. 큰 거래에는 한번에 1억 원을 들고 나가기도 한다. 그들은 수표는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로지 현찰 거래가 있을 뿐이다.”

    거래 당일, 현장엔 A씨만 나가고 수사관들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대기했다. A씨가 몸에 숨기고 간 소형 송수신기는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대화를 들을 수 있는 장비였다. 수사관들은 A씨가 현장에서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행동을 개시한다. 예컨대 “물건 질이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은 물건이 현장에 나타났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판매업자가 느낄 배신감(?)에 대해 묻자 A씨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여러 번 만나다 보면 정이 드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막상 체포할 때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밖에. 가장 황당한 경우는 판매자가 억울한 심정에 나를 끌어들일 때다. 신문과정에 엉뚱하게도 나를 마약 공급책으로 지목하는 것이다.”

    마약수사의 어려움에 대한 A씨의 설명은 수사관들 얘기와 다르지 않다. 잠복수사, 며칠씩 밤새우기, 검거과정에 따로는 신체 위협….

    공작수사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약속과 달리 현장에 물건을 갖고 나오지 않거나 ‘선결제’를 요구해 돈만 챙기고 물건은 건네주지 않는 경우다. 그 경우, 판매자를 추적해 설령 신원을 파악해도 수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 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판매업자를 잡아도 주범을 잡기는 여간 힘들지 않다. 몇 단계를 거쳐 물건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A씨에 따르면 때로 마약거래 수사는 마약업자간의 경쟁 때문에 덕을 보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시장확보 경쟁의 부산물인 셈이다.

    “이 세계도 정치판처럼 파벌이 있다. 마약시장을 독차지하기 위해 라이벌 조직의 움직임을 수사기관에 제보하는 것이다.”

    A씨는 국내 마약유통 실태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은 1만304명. 그러나 이는 실제 마약복용자 수와는 무관한 수치다. 검찰은 마약복용자가 10만 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한다. 또 대부분의 마약사범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몰려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A씨는 사태를 훨씬 심각하게 본다.

    “통계와 현실은 다르다. 전국 각지의 읍·면·동 단위까지 마약이 번지고 있다. 과거엔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았으나 요즘 적발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마약전과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마약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A씨에 따르면 마약 복용자가 판매자로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약을 오래 복용하다 보면 돈이 떨어지게 마련이므로 마약구입자금을 벌기 위해 판매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약을 팔아 그 돈으로 마약을 사들여 복용하고 돈이 떨어지면 다시 마약장사에 나서는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최근엔 청소년들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약거래에 끼어드는 일도 늘고 있다. 10대 가출소녀들의 마약판매 심부름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부유층의 마약복용 소문

    유흥업계는 예나 지금이나 마약유통의 온상이다. 마약 판매자들은 특히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주부들을 노린다. 자연스럽게 합석한 후 눈치채지 못하게 술에 ‘약’을 탄다. 같은 양을 먹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쾌감의 정도는 다르다.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약이 섞인 술을 마시면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약효가 나타난다. 온몸이 달아올라 남자에게 이끌리는데 한 번 맛을 들이면 끊기 힘들다. 그 후로는 공갈·협박에 시달리며 몸과 돈을 빼앗긴다.

    A씨에 따르면 필로폰 판매책들은 보통 비닐봉지에 10g씩 넣어 가지고 다닌다. 구매자가 나타나면 주사기 단위로 판다. 주사기 하나에 들어가는 양은 보통 1g으로 친다. 하지만 실제로는 1g이 조금 안 된다. 10g을 주사기 13개에 나눠 담기 때문이다. 중독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1회 투입량이 평균 0.03g이므로 이 주사기 하나면 수십 회 투약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중독이 심해질수록 1회 투입량은 점차 늘어난다. 약효 지속시간은 초보자의 경우 7시간,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4시간, 중독이 심한 경우엔 2시간 안팎이다.

    필로폰 10g의 도매 가격은 50만∼60만 원대이고 중간도매 가격은 100만∼150만 원이다. 이것이 소매로 넘어가면 300만 원을 웃돈다. 하지만 이는 ‘정찰가격’이다. 실제 구매현장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므로 1g짜리 주사기가 50만 원에 팔리는 경우도 있다.

    A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마약류의 주종은 여전히 필로폰이다. 필로폰보다 비싼 헤로인이나 코카인은 유통량이 적고, 일부 특정계층만 사용하고 있어 판매책이나 공급책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A씨는 일부 재벌 등 부유층의 마약복용에 관한 항간의 소문에 대해 “다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누가 (마약을) 갖다 주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힘있는 사람들이라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나기 때문에 심증을 갖고서도 선뜻 수사하지 못한다. 또 ‘위쪽’에 선을 대는 업자들은 절대로 자신의 고객을 배신하지 않는다.”

    A씨는 신체 위협을 받은 적은 없지만 전화로는 몇 차례 공갈·협박을 당했다. 주로 “손떼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그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기엔 ‘마약사범 근절에 일조하겠다’는 그의 소신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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