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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2001년 1월, 한국의 은행원

일은 두배, 봉급은 절반, 내일은 없음

  • 최희정

일은 두배, 봉급은 절반, 내일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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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은행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퇴출 은행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서도 직원의 절반 이상이 짐을 싸야 했다. 40세가 넘은 직원과 임원들, 그리고 여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울은행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중 구조조정 때 명예퇴직한 유병철 부장(현 세일신용정보주식회사)은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대학 중퇴 후 서울은행에 들어가 30년간 오직 회사를 위해 외길을 달려왔던 그였다. 외환위기 때 다른 지점들의 예금이 속속 우량은행으로 빠져나갈 때도 유부장이 이끌던 서울 왕십리지점만은 오히려 예금이 늘어났을 정도로 고객 관리와 은행홍보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은 물론 은행 내에서도 그가 명예퇴직 대상자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상사로부터 자신이 퇴직 대상자란 사실을 전해들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소리였다.

“처음엔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청춘을 바쳐 일했는데 도대체 나를 자르는 이유가 뭐냐’고 대들어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슨 기준으로 대상자를 골랐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할 수도 없는 일 아니겠어요? 대들다 지쳐 그냥 그렇게 밀려난 겁니다.”

퇴직하고 나서 1년 동안은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다. 돈 문제뿐이 아니었다. 젊어서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해온 그에게 ‘새벽출근’은 30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이었고, 야근은 단단히 중독된 마약이었던 듯하다. 15년 전에는 대장암 수술을 받고서도 퇴원한 다음날 곧장 은행으로 출근했을 정도다.



“도대체 바깥 출입을 못하겠더라구요. 남들이 날 어떻게 볼지 두려웠던거죠. 50평생을 살면서 그때처럼 견디기 힘들었던 때는 없었습니다. 일은 내 삶 그 자체였어요. 요즘 금융대란이니 파업이니 하는 소식을 다시 들으니 ‘또 나 같은 사람들이 다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구조조정도 좋지만 적어도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만은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부 은행원들도 피해자였다. 부부가 같은 은행에 다닐 경우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은행을 그만둬야 했다. 외환은행 직원 P씨의 경우에도 직장동료인 부인이 사표를 내야 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무언의 퇴직 압력에도 시달렸지만 무엇보다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원 중에는 사내 결혼을 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그런데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은행측은 당연한 것처럼 맞벌이 부부 여직원들에게 노골적으로 사직 압력을 넣었어요. 출산휴가를 받아 휴직중인 여직원들에는 복직시기를 늦추게 했죠.”

절반으로 잘린 임금

다행히 P씨의 부인은 퇴직 후 J은행에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녀가 J은행에서 받는 연봉은 1200만 원. 연봉 외에 수당이나 상여금은 전혀 없다. 그녀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정도 은행에 근무하면 대개 2500만 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 것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돈이다. 아이 맡기는 놀이방에 다달이 내는 돈과 교통비 등을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는 장사’다.

“그래도 지금껏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데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다시 불안해지고 있어요. 3년 전 그 난리를 겪었으니 이제는 구조조정도 웬만큼 됐겠지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앞으로는 더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한다니 ‘만만한’ 계약직인 아내는 물론, ‘중참’이 된 저도 하루하루가 불안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하반기에만 3개 은행이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서울은행은 9월 말에 650명을 내보냈고, 한빛은행과 외환은행도 11월에 각각 1100명과 860명을 명예퇴직시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은행원들 사이에는 “떠밀려 나가느니 내 발로 나가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년도 보장되지 않은 은행에서 끊임없이 생계를 걱정하면서 일하느니 아예 명예퇴직금 몇 푼이라도 챙겨서 스스로 은행문을 나서겠다는 것.

9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사직서를 낸 외환은행의 한 여직원은 “내 집처럼 여기던 곳에서 떠밀려 나간다면 얼마나 참담하겠어요. 어느날 갑자기 그런 험한 꼴 당하느니 일찌감치 마음 편히 먹고 나가서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와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은행원들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언제 정리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다. 전 직원의 30% 이상이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정규직원들의 업무량은 외환위기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고, 2년이 넘게 월급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

S농협 경영관리팀 J팀장은 “그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월급쟁이 신세뿐이다”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당연히 직원들의 애사심도 많이 사라졌다. 정리해고 당하지 않으려면 더 기를 쓰고 일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목숨’이 부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농협에 입사한 것은 80년대 말. 첫 발령을 받았을 때는 일하기도 편했다. 정부가 정해주는 금리를 그대로 따르면 됐고 ‘오는 고객 받고, 가는 고객 안 말려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금리자유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농협도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은행들과 경쟁해야 했다. 얼마나 많은 예금을 유치하느냐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성적이 매겨졌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친척과 친구, 친구의 친구까지 끌어들였다. 그러다 자칫 신용대출을 잘못해서 대출금을 떼이면 담당직원이 대신 물어야 했다.

흔히 은행원들은 9시30분에 출근해 은행문을 닫는 4시30분이면 퇴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낮에는 창구 업무에 매달리고 근무시간 이후에는 채무자나 대출금 연체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빚 독촉을 해야 한다. 심지어 대출금을 받기 위해 채무자의 집 앞에서 밤샘 잠복근무를 하기도 한다.

J팀장은 “어떻게 해서든 채무자의 연고지를 알아내 불시에 들이닥친 적도 있고, 어느 아파트 공사장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넓은 공사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채무자를 찾아낸 적도 있다”며 “이럴 때는 말이 은행원이지, 형사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왜 검정 스타킹 신었어?”

한 은행원은 “요즘 은행에는 고객만 있지 은행원은 없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고객은 왕’이라는 말은 백번 맞는 얘기지만, 그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친절을 베풀라고 강요받다 보니 더러 짜증이 나기도 한다. 심지어 용역회사에 의뢰해 은행원들의 근무태도를 낱낱이 감시하기도 한다는 것.

“회사에서 의뢰한 모니터들이 고객으로 가장하고 은행에 나와 매일 직원들의 태도를 체크합니다. 요즘 행원들이 워낙 친절해서 꼬투리 잡을 게 없다 보니 여직원이 살색 스타킹 대신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다고 지적받은 경우도 있어요. 손님에게 웃지 않았다고 체크되기도 하고…아니, 친절도 좋지만 고객 앞에서 마냥 히죽히죽 웃고만 있어야 합니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어딘가에 숨어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다니까요.”

용역회사 직원이 모니터하는 시간은 겨우 10분 남짓. 그러나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10분간의 감시를 의식해 창구 여직원들은 온종일 화장실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만지는 직업이라 해도 무엇보다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는 일터였으면 합니다. 자기들 필요할 때 뽑았다가 위에서 구조조정하라니까 합당한 기준도 없이 무 자르듯 약자들을 내모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직원들이 정말 애사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절실합니다.”

제일은행 노동조합이 지난해 9월 전직원을 대상으로 고용안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직원의 70% 이상이 고용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더욱이 이 은행은 회사측에서 성과급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어 직원들의 불안감이 더해졌다. 제일은행 노동조합 정구철 홍보부장의 말.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행원들은 서로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자가 되겠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달리한다’는 성과급제가 얼핏 매력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문제는 능력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겁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제도부터 덜컹 도입하면 결국 상사의 주관적 판단이 모든 걸 좌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의 강도는 더 심해지고, 수치화된 성과가 낮은 직원은 자연히 정리해고되는 거죠. 한마디로 말해 ‘사람’이 없는 은행을 만들겠다는 얘기지요.”

제일은행 본점 복도에서 만난 S씨는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입사했을 때만 해도 제일은행은 국내에서 법인세를 가장 많이 내는 은행이었다. 그래서 은행원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일하고 싶은 은행’ 1, 2위에 꼽혔다. S씨와 함께 입사시험을 치렀다가 낙방한 친구들은 얼마 전까지도 그에게 부러운 눈길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제일은행은 한보사태 이래 대형 부실사건의 단골 주거래은행으로 지목되면서 관치금융이 낳은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결국은 은행도 외국인에게 넘어갔다. 이제 직원들에게는 ‘서구식 경영합리화’를 위한 또 한 차례의 대규모 정리해고 바람이 불어닥칠 전망이다.

“우리 은행이 어려움을 겪을 때 직원들은 월급의 10%를 반납했고, 손해 볼 것을 알면서도 우리 사주를 몇백 주씩 샀어요. 그런데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반이 넘는 직원들이 잘려나갔고, 그나마 그때 살아남은 직원들도 고용불안에 떨고 있어요. 우리처럼 힘없는 은행원들에게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다고 몇 번씩 이런 고통을 준단 말입니까.”

2001년 1월, 대한민국 은행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정리해고다. 그도 그럴 것이 3년 전 구조조정 당시 퇴직한 동료들이 은행문을 나선 뒤 제대로 자리잡고 일하는 경우를 보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퇴직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집까지 날린 사람, 창업을 했다가 말아먹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비교적 잘 된 경우도 근근이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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