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켄(縣)은 우리의 도(道)와 비슷하고, 군(郡)은 똑같은 군(郡), 무라(村)는 면(面)과 유사하다. 지난 5월9일 일본 아오모리켄(靑森縣) 시모키타군(下北郡) 롯카쇼무라(六ヶ村)에는 세찬 비가 뿌리고 있었다. 봄비가 아니라, 구질구질하면서도 아주 차가운, 늦가을의 장대비와 같았다.
한낮인데도 기온은 6℃. 기자는 일본 전역이 한여름일 것이라 생각하고 반팔 티셔츠에 한여름용 재킷만 걸치고 이곳을 찾아왔다. 도쿄(東京)는 서울보다 더웠지만 이곳은 예상 밖으로 쌀쌀했다. 아오모리켄은 쓰가루(津輕)해협을 경계로 홋카이도(北海道)를 마주한 북위 41。쯤에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바람도 매우 거세서, 이곳 저곳에 다소곳이 서 있는 벚꽃과 개나리는 맥없이 꽃잎을 떨구고 있었다. 일본어에 서툰 기자가 어설프게 “사무이데스네(寒いですね·춥네요!)”라고 하자, 마중 나온 일본인들이 “에에, 사무이데스카(예에-. 춥습니까?)” 하며 웃는다. 그들은 점퍼 안에 스웨터까지 입고 있었다.
여섯 개의 마을이 모인 촌락
롯카쇼무라는 신록에 덮여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황량했다. 오죽 특색이 없었으면, 이곳 지명이 ‘여섯 개의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롯카쇼무라(六ヶ村)가 됐을까. 실제로 이곳은 메이지 천황 때인 1889년 4월1일 구라우치(倉內) 등 여섯 개 마을을 모아 ‘롯카쇼무라’라는 행정 단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태평양에 면하고 있어 바람이 아주 세고 겨울도 길어서 농작물 재배에 적당치 않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추위에 강하고 땅 속으로 자라는 당근이나 감자·마·무 따위의 고랭지 채소가 주로 생산된다. 6월까지도 눈을 이고 있는 하가타(八甲田)산 국립공원마저 없다면, 볼 것도 먹을 것도 적은 아주 쓸쓸한 지역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래도 덜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롯카쇼무라는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곳 중의 하나였다. 이곳에는 초등학교는 8개, 중학교는 5개가 있으나, 고등학교는 1개뿐이고 대학은 없다. 따라서 이곳 아이들은 중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현청(縣廳) 소재지인 아오모리 등 대처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농촌처럼 젊은이는 떠나고 노인만 남아, 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곳이 롯카쇼무라인 것이다(현재 인구는 1만1700여 명 정도다).
그런데 최근 이곳에 새로운 볼 것이 생겼다. 1985년 일본원연(原燃·‘핵연료’라는 뜻)주식회사가 이곳에 농축우라늄 공장을 건설하고, 1992년에는 방사성 폐기물(방폐물) 처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MOX 연료(Mixed OXide Fuel·혼합 산화연료)를 만드는 재처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이러한 시설 옆에 들어선 일본원연(原燃)주식회사의 홍보관을 새로운 관광 코스로 방문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설 유치는 갈수록 황량해지던 롯카쇼무라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70년 이곳의 주민 1인당 소득은 전체 일본 국민소득의 64.7%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원연주식회사가 들어선 1994년에는 82.4%까지 따라붙었다. 일본원연주식회사 유치는 이 지역이 안고 있는 두 가지 골치 아픈 문제를 거의 동시에 해결해주었다. 하나는 방금 설명한 지역 발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자력은 통제하지 못할 만큼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원자력은 위험하지만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을 토대로, 소득 증대를 꾀한 롯카쇼무라 주민들의 지혜는 우리에게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인들은 ‘윈(win)-윈 전략’을 선택했는데, 현재까지 한국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원자력 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일본에서는 미쓰비시(三菱)계열의 ‘미쓰비시 원자연료’란 회사와 스미토모(住友)금속 계열의 ‘JCO(일본핵연료변환공장)’라는 회사가 핵연료를 만들어왔다.
한국은 경수로와 중수로만 운용하고 있으나, 일본은 이것 외에도 차세대 원자로라고 하는 ‘고속증식로’를 개발하고 있다. 경수로에서 사용하는 핵연료에는 우라늄 235가 3% 정도 들어가나, 고속증식로용 핵연료에는 20% 정도 들어간다. 일본은 시험용 고속증식로를 운영해 왔는데, 이바라키(茨城)켄 도카이무라(東海村)에 있는 JCO 공장에서는 시험용 고속증식로에 쓰이는 핵연료를 제작했다.
우라늄 235는 일정 농도가 될 때까지는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나 어느 수치에 도달하면 갑자기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이렇게 핵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임계(臨界)반응’이라고 한다. 1999년 9월30일 도카이무라의 JCO에서 임계반응 사고가 일어나, 작업자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은 고속증식로용 핵연료의 제작 날짜가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진 작업자가 제작공정을 무시하고 일시에 너무 많은 양의 우라늄을 집어넣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로 인해 일본 열도가 시끄러워져, JCO는 사실상 해체되었다. JCO가 사고를 일으켰다면 일본원연주식회사의 우라늄 농축공장이 있는 롯카쇼무라의 주민들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롯카쇼무라 주민들로서는 일본원연에 대해 “당장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예상 밖으로 작았다. 그 결과 롯카쇼무라에는 재처리공장 건설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시설이 들어섰음을 알리는 홍보관이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한전원자력연료(주)가 경수로용 핵연료와 중수로용 핵연료를 가공·제작한다. 이러한 기관에서 임계사고를 일으켰다면,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사고와 무관한 기관에 대해서도 “가동을 중단하고 당장 폐쇄하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나 JCO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본 언론은 사실 보도만 하고 더 이상의 선동을 자제했다. 이는 ‘원자력은 규정대로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하지만 일본의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이러한 시설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일본 언론들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폭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판단한 일본 중앙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정부와 기업의 이러한 의지를 이용해 지역 발전을 꾀한 지방자치단체 간의 절묘한 타협이 롯카쇼무라에 들어선 일본원연의 시설들이다. 롯카쇼무라에 일본 원연이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민주적인 타협이라는 지방자치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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