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 1호가 찍은 외나로도 사진. 아랫부분 네모 친 곳에 우주센터가 건설된다. 윗부분 네모 안은 조감도.
그로부터 12년 후인 1970년 2월11일, 미국과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참패한 일본이 람다-4S-5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오수미(大隅)’로 명명된 무게 23.8㎏의 위성을 고도 335~5151㎞의 타원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은 1965년 11월26일 디아망(Diamant)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무게 42㎏의 A-1 위성을 쏘아 올린 프랑스에 이어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네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위성 발사 두 달 후인 1970년 4월24일 중국은 고비사막 부근에서 장정(長征) 1호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173㎏ 무게의 동방홍(東方紅) 1호 위성을 고도 256~436㎞의 타원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해 다섯 번째 우주 진입 국가가 되었다.
한편 일본·중국과 경쟁해온 영국은 1971년 10월28일 블랙 애로 우주 발사체를 발사해 66㎏의 프로스페로(prospero) 위성을 547~1582㎞ 궤도에 진입시켜 여섯 번째 성공국가가 되었다.
그 뒤를 인도와 이스라엘이 이었고 지금은 아홉 번째 자리를 놓고 브라질·이라크·북한·한국이 경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앞선 나라는 브라질인데 브라질은 1997년과 1999년 자체 제작한 우주발사체에 실어 위성을 발사했으나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라크는 브라질보다 10년 앞선 1989년 12월5일 45㎏의 타뮤즈(Tamouz)를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1998년 8월31일에는 북한이 무게 50㎏으로 추정되는 광명성 1호 위성을 탑재한 3단의 백두산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서방 국가에서는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졌다). 발사 후 백두산의 1단과 2단은 성공적으로 떨어져나갔으나, 3단과 광명성 1호는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다(추정). 그로 인해 광명성 1호는 잠시 발신음을 보내다 3단과 함께 북태평양으로 추락했다.
9위를 놓고 다투는 나라 중에서 가장 처진 것이 한국인데 한국은 아직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경험이 없다.
[제2장|‘한국의 NASA’ KARI의 역할]

저궤도위성(위)이 남북으로 지구를 도는 사이 지구는 자전하므로, 저궤도위성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내려다 볼수 있다. <br>반면 고고도 위성(아래)은 적도 상공에 떠서 지구 자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므로 지상에서 보면 항상 같은 위치에 떠 있는 정지위성이 된다.
NASA는 행정기관인 ‘국(局)’이지만, KARI는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차 KARI가 독립 행정기관으로 발전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KARI가 이미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서 국가사업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월30일 과학기술부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의 외나로도에 우주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는데, 이 사업을 맡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KARI이다.
미국의 우주개발을 지켜본 사람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1969년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케이프 커내버럴(일명 케네디우주센터) 기지나 1999년 12월21일 한국의 아리랑 1호 위성을 탑재한 토러스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반덴버그우주센터를 기억할 것이다. KARI가 외나로도에 짓겠다고 한 우주센터는 한국의 케이프 커내버럴이나 반덴버그가 될 것이다.
2005년 외나로도 우주센터 완공과 함께 KARI가 독자 개발한 KSLV-Ⅰ우주발사체에 실어서 쏘아 올릴 무게 100㎏ 정도의 위성은 지구를 남북으로 회전하는 이른바 ‘저궤도 위성’이다. 저궤도 위성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내려다볼 수 있어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군사 목적의 정찰위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 미국의 군사용 정찰위성은 대개 해상도15㎝의 정밀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화소(畵素, pixel)’라고 하는 작은 점으로 상(像)을 만든다. 해상도가 15㎝라는 것은 가로 세로 15㎝인 물체가 한 개의 화소로 찍힌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화소로 찍힌 것은 형상을 분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