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골프 홀컵 지름이 108㎜인 이유

[브랜드가 된 신화] 기만책의 대명사 된 ‘트로이 목마’, 계책 달인 ‘오디세우스’

  • 김원익 홍익대 문과대 교수·㈔세계신화연구소 소장

    입력2025-12-1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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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이 목마, 계책 세운 주인공 오디세우스

    • 이타카섬 왕이었으나, 전쟁 뒤에도 10년 방황

    • 왕위 노린 구혼자들 왕비 괴롭혔으나

    • 왕비, 구혼자들 괴롭힘에 “궁술로 왕 뽑겠다”

    • 12개 도낏자루 구멍 화살로 통과시키는 조건

    • 오디세우스 단번에 통과…골프 퍼터 ‘오디세이’ 유래

    • 홀컵 108mm, 구혼자 수 108명에서 따온 것일지도

    골프 홀컵의 지름은 108㎜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추근대던 구혼자의 수와 같다. AI 생성 이미지

    골프 홀컵의 지름은 108㎜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추근대던 구혼자의 수와 같다. AI 생성 이미지

    ‘트로이 목마’라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있다. 마치 유용한 프로그램인 척 가장하고 있다가 사용자의 정보를 몰래 빼가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트로이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계책의 달인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만든 거대한 목마에서 유래했다. 트로이 목마를 본떠 만든 조형물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미국 올림퍼스산 ‘워터 앤드 테마파크’, 고대 트로이로 추정하는 도시인 튀르키예 차나칼레의 히살리크, 독일 앙커스하겐의 하인리히 슐리만 박물관의 목마를 들 수 있다.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전쟁 10년째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트로이의 장수 대부분이 전사했는데, 그럼에도 트로이성은 전혀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스군은 계책의 달인 오디세우스의 머리를 빌린다. 오디세우스는 기만전술로 트로이성에 병력과 함께 잠입할 작전을 세웠다. 우선 건축가 에페이오스가 그리스 크레타섬의 이데산에서 나무를 베어 와 초대형 목마를 만들었다. 

    이어 오디세우스를 대장으로 한 40명의 정예병을 선발해 목마 안에 숨겼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그리스군은 해안에 구축했던 진영을 철거했다. 목마만을 남긴 채 함선을 타고 퇴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기만책이었다. 그리스군은 트로이 해안 앞쪽에 있는 테네도스섬까지만 철수하고, 그 뒤에 함선들을 숨긴 채 어둠이 짙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산드라, 라오콘 트로이 목마 위험 경고했으나

    고대 트로이로 추정하는 도시인 튀르키예 차나칼레에는 트로이 목마를 본뜬 조형물 ‘히살리크’가 있다. 위키피디아

    고대 트로이로 추정하는 도시인 튀르키예 차나칼레에는 트로이 목마를 본뜬 조형물 ‘히살리크’가 있다. 위키피디아

    적군이 물러가는 것을 지켜보던 트로이인들은 날이 밝자 성에서 나왔다. 이들은 그리스군이 주둔하던 지역에서 거대한 목마를 발견하고 놀랐지만, 옆구리에 쓰인 문구를 보고는 고무되었다. 그곳에는 “그리스군이 안전한 철수를 위해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노라”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이인들 사이에서 이 목마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신앙심 깊은 자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아테나가 자신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예언가 카산드라가 목마 안에 그리스군 정예병이 숨어 있다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폴론 신전의 사제인 라오콘도 두 아들과 함께 목마가 위험하다고 경고하기 위해 군중 앞으로 나섰다. 그는 그리스인이 주는 선물은 거저 준대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며 창을 던져 목마의 배를 정통으로 맞혔다. 목마에서 사람의 신음 같은 게 들렸지만 라오콘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가려 아무도 들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리스군의 낙오병 하나가 사로잡혀 군중 앞으로 끌려왔다. 그의 팔은 상처를 입어 헝겊으로 감겨 있었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밀명을 받고 해안에 남아 있다가 사로잡힌 체했을 뿐이다. 그는 잔류 이유를 묻는 트로이인들에게 날조된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저의 이름은 시논이고, 모셨던 장수는 팔라메데스이십니다. 팔라메데스님께서는 오디세우스의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평소에 자신을 트로이전쟁에 끌어들인 그분께 깊은 원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디세우스에게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제게 앙심을 품고 예언가 칼카스를 부추겨 거짓 신탁을 내리게 했습니다. 저를 신들에게 바쳐야 그리스군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저는 제물로 바쳐지기 직전 간수를 속이고 간신히 도망쳤습니다.”

    시논이 절묘하게 꾸며댄 말을 마치자 트로이인들은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팔라메데스 때문에 참전한 것에 앙심을 품고 그를 모함해 죽였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트로이인들은 시논의 결박을 풀어주고 목마를 거대하게 만든 이유를 물었다. 시논은 오디세우스와 함께 만들어둔 각본에 따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스군이 트로이에서 팔라디온상(아테나 여신의 모습을 본뜬 수호상)을 훔쳐 오자 아테나 여신이 분노했습니다. 그러자 칼카스가 목마를 만들어 여신을 달래야 그리스군이 무사히 귀환할 수 있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는 목마가 트로이 성안으로 옮겨져서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조만간 그리스의 도시가 트로이의 공격을 받아 함락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마를 그렇게 거대하게 만든 것입니다.”

    라오콘 죽는 우연 겹쳐 트로이 입성 성공한 목마

    오디세우스가 심어놓은 그리스군의 첩자 시논이 말을 마쳤지만, 트로이인들은 아직도 그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들의 의심을 싹 가시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바다에서 아주 큰 뱀 두 마리가 육지로 기어오더니 목마를 조심하라고 경고하던 라오콘의 아들 둘과 라오콘을 친친 휘감아 죽였다.

    1506년 로마에서 발굴된 고대 그리스의 라오콘 군상의 복제품. 바티칸 박물관

    1506년 로마에서 발굴된 고대 그리스의 라오콘 군상의 복제품. 바티칸 박물관

    라오콘에게 뱀을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아폴론이었다. 아폴론은 예전에 자신의 신전에서 아내와 사랑을 나눈 라오콘을 하필이면 이때 응징한 것이다. 하지만 트로이인들은 라오콘이 아테나에게 바친 목마에 창을 던져 벌을 받은 걸로 생각했다. 트로이인들은 성벽 일부를 헐어내고 목마를 트로이 성안으로 옮겼다. 저녁이 되자 트로이인들은 승전을 축하하고 자신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아테나를 기리며 밤새 잔치를 벌인 뒤 곯아떨어졌다. 

    그사이 그리스군 함선은 유유히 달빛을 받으며 트로이 해안으로 돌아와 성에 신호를 보냈다. 시논이 재빨리 목마로 다가가 배 밑에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줄사다리를 타고 목마에서 내려온 정예병들은 잽싸게 성문을 열어 그리스군을 성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렇게 트로이는 함락됐다.

    지금도 ‘트로이 목마’는 일상생활에서도 아주 흔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올해 1월 미국 의회는 ‘틱톡’을 중국판 ‘트로이 목마’로 규정하고 사용 금지 조치를 내렸다. 틱톡의 운영사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미국 내 다른 기업에 매각하지 않는 한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통해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중국에 넘긴다는 의혹 때문이다. 결국 9월 25일 바이트댄스는 오러클, 실버레이크 등 미국 기업에 지분 45%를 넘기며 ‘트로이 목마’라는 오명을 벗었다. 

    화살 한 발로 12개 구멍 꿰뚫은 오디세우스

    트로이 목마 작전의 입안자인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신화에서 계책의 달인으로 유명하다. 그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후 귀향길에 10년이나 바다를 방랑한 후에야 비로소 그가 다스리던 이타카섬에 도착했다. 

    트로이전쟁이 끝난 뒤 모든 장수가 집으로 돌아왔건만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깜깜무소식이었다. 이타카섬에서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구혼자가 궁정으로 몰려와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자신들 중 하나를 선택해 결혼해 달라며 추근댔다. 그들은 모두 오디세우스 휘하에 있던 신하의 아들로 총 108명이나 되었다. 

    구혼자들은 날마다 궁전에서 잔치를 벌이며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하지만 남편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던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의 집요한 등쌀을 피하려고 당시 궁전 밖 농장에 살고 있던 노령의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완성하면 결혼하겠다고 핑계를 댔다. 낮에 구혼자들이 볼 때는 수의를 짰다가 저녁에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수의를 풀면서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그 속임수도 결국 구혼자와 눈이 맞은 시녀의 밀고로 3년 만에 들통이 났다. 페넬로페는 어쩔 수 없이 그들 중 하나를 남편으로 정해야 했다. 

    페넬로페는 기발한 남편감 선발 시험을 내놨다. 오디세우스에겐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면서도 갖고 가지 않을 정도로 아꼈던 무기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명궁수 에우리토스의 아들 이피토스가 그와 친구가 된 것을 기념해 선물로 준 명품 활과 화살이 들어찬 전통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심심할 때면 하인들을 시켜 농기구 창고에서 끝자락에 구멍이 뚫린 청동 도끼 12자루를 궁전 마당에 일직선이 되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놓게 했다. 그러고는 멀리서 명품 활로 화살을 날려 정확하게 12개의 도낏자루 구멍을 뚫는 놀이를 했다. 

    페넬로페는 평소 거실 벽에 걸려 있던 바로 그 명품 활과 전통을 구혼자들 앞에 던지며 그것으로 남편 오디세우스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을 새 남편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인들이 농기구 창고에서 도끼 12자루를 가져와 궁전 마당에 세워놓았고, 구혼자들은 활시위에 활을 얹어 시위를 당기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활대가 휘어지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귀향한 오디세우스도 궁전에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나의 마법으로 볼품없는 거지 노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구혼자들에게 자신도 한번 활을 쏴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활과 전통이 오디세우스의 손에 건네졌다. 오디세우스는 손쉽게 활에 시위를 메긴 뒤 화살을 날려 12개의 도낏자루 구멍을 꿰뚫으며 큰소리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화살이 12개 구멍을 꿰뚫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골프 장비 브랜드 ‘캘러웨이(Callaway)’는 이 일화를 바탕으로 골프 퍼터의 이름을 ‘오디세이’라고 지었다. 신화 속 오디세우스가 구멍에 화살을 넣은 것처럼, 구멍에 공을 넣는다는 의미다. 최근 골프를 좋아하는 선배에게 이 얘기를 하다가 그로부터 정말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골프의 홀 컵 지름이 108㎜라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구혼자 숫자와 일치한다. 하지만 필자는 그 숫자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이렇게 상상했다. 혹시 페넬로페의 구혼자 108명이 화살로 뚫어야 했던 도낏자루의 구멍 지름도 108㎜가 아니었을까. 물론 1800년대 영국에서 파이프를 잘라 홀을 뚫는 공구를 사용했는데, 이 파이프 지름이 108㎜였다는 등 다양한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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