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⑤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3/5
뒷간을 짓고 나니. 살림집도 뒷간과 같이 집이기는 마찬가지. 한번 지어보자.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둥우리를 한번 지어보는 거지. 한데 집을 어찌 지을까? 멋져 보이는 통나무집을 지어? 간단하게 조립식으로 지어? 한국식 통나무집인 귀틀집은? 집 구조는?

그동안 종이에 그린 설계가 얼마나 많은가.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사람 눈에는 집만 보인다. 영화를 보아도 거기 나오는 집의 문은 어떤지, 지붕은 어떻게 했는지 이런 게 눈에 들어온다. 그때까지 남들이 다 지어놓은 집에 들어가 살아보기만 했지, 내 손으로 집을 지어 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고 살아왔다.

공부를 해야 했다. 집짓기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보았다. 집 짓는 곳이 있으면 찾아가 보고 배웠다. 그런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우리가 살던 그 집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낯설기만 하던 집이. 수리를 하지 않고 주인이 쓰던 걸 그대로 살아본 것이 살아 있는 공부였을까.

우리 식구가 이년 동안 살았던 그 집은 마을 한쪽에 있는 집이다. 산골이라 터가 넓지 않아 대추나무 한 그루 빼고는 과일나무 심을 자리 없지만, 네모반듯한 터에 자리잡고 있다. 집은 나무 기둥에 흙벽을 치고, 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은 네 칸 집이다. 서쪽 한 칸은 부엌. 부엌에는 가마솥이 두 개 걸리고. 거기서 불을 때면 가운데 방 두 칸을 데운다. 부엌 쪽에 붙은 안방을 데우고 윗방을 지나 굴뚝으로.

사람만 식구인가 집짐승도 식구지



불을 때서 밥을 해 먹던 시절. 부엌에서 밥 불을 때면 안방은 따뜻해지고, 윗방은 냉기가 가실 정도만 됐다. 안방은 8자 방으로 작지만 네모반듯해 식구들이 먹고 자고 쉬고. 윗방은 큰애들이 지냈겠지. 안방과 윗방 앞쪽으로 마루가 있다. 지내면 지낼수록 마루는 놀라운 공간이다. 집 안과 밖을 이어주고 집 전체를 하나로 모아주기도 한다. 부엌 반대편에 부엌과 대칭이 되는 길쭉한 방이 있다. 거기는 따로 아궁이가 있다. 식구들끼리 살 때는 잘 안 쓰겠지. 한 여름이나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 쓰는 방이다.

네 칸 살림집에 기역자로 잇대어 아래채가 있다. 아래채 끝으로는 대문이 있고. 아래채는 담 구실도 한다. 한 칸은 광. 다음 칸은 소 막(외양간). 그 옆으로 작은 짐승우리가 있고 그 뒤가 뒷간이다.

농사 지으며 살아보니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꼭 필요하다. 시골에서는 사람 사는 집만큼 소중한 게 아래채라는 것도 이때 알았다. 사람만 식구인가, 집짐승도 식구니까. 또 곳간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는 갖추어야 시골집이 되는구나. 살아보면서 알게 되니, 집을 어찌 지을까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곡식들 이삭 나오는 입추(立秋)

여름휴가가 한창인 8월초. 올해 입추는 8월8일. 가을 기운이 일어서는 날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마지막 힘을 쓴다. 한낮엔 너무 뜨거워 일하기 힘들다. 일을 하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옷을 다 갈아입어야 한다. 그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달게 받으며, 곡식들은 영글기 시작한다. 옛 어른들은 무더위에도 자연의 흐름을 읽고 입추라 했으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가. 농사를 지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태풍이 몰려오고. 큰비가 오고. 그 다음날은 논밭에 가기 겁난다. 쓰러지고 꺾이고 곯아빠지고…. 하나하나 애지중지 길렀는데. 논둑이 무너지면 이웃과 말싸움도 하게 된다. 논둑 관리해야지, 김매야지. 고추나 토마토는 익으면 그때그때 따서 저장해야지. 그래도 여기는 산골이라 밤에 덥지 않다. 오히려 서늘해 새벽이면 창문을 닫고 잔다.

논에서는 경사가 벌어지고 있다. 벼에 이삭이 나와 이삭이 팬다. 5월에 모내기하고, 6월 벼 포기가 자라고, 7월 알차기하고, 이제 성년이 되어 자기 씨를 맺기 시작한 거다. 알이 통통한 포기 사이로 이삭이 나온다. 고개를 내밀고 나와 알 하나하나를 펼친다. 그리고는 이밥 같은 연노란 벼꽃을 피운다. 끼니때면 늘 먹는 쌀밥. 내 몸이 되고 목숨이 되는 벼가 꽃을 피웠으니…. 벼꽃이 필 때 손님이 오면 함께 벼꽃 구경한다. 논으로 모시고 가서 벼꽃을 함께 보고. 벼꽃 자랑을 한다.

밭에 가 보면 수수가 좋다. 어느새 저리 자랐을까? 고개를 젖혀 올려다본다. 수수 뒤로 파란 가을하늘이 있다. 내가 심어 기른 작물이 나보다 키가 커서 올려다보는 맛. 이게 바로 수수 키우는 맛이다.

슬슬 김장거리 농사에 들어가야 한다. 아직 무더워 김장이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때를 놓치면 김장거리를 얻을 수 없다. 농사가 모두 그렇지만 김장농사는 더욱 그렇다. 며칠 상관으로 일러도 안 좋고 늦으면 속이 안 차고 만다. 배추는 싹이 여리니 씨를 모종상자에 담아 기른다. 하루라도 물을 안 주면 흙이 마르고,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고 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남아나지 않는다. 어린애 다루듯 조심조심 모를 키우고, 그래도 미심쩍어 한번 더 배추 씨를 넣곤 한다.

무밭을 장만해 무도 심어야 한다. 무는 뿌리 식품이니 씨를 밭에 직접 뿌려야 한다. 벌레가 무라고 봐줄 리 없으니 씨를 넉넉히 넣는다. 그리고 두어 차례 솎아준다. 무는 작아도 커도 모두 쓰일 데가 있으니 조금 넉넉하게 심는다.

3/5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목록 닫기

벼 이삭 나오니 논에서 오리 빼고 무 밭에 씨 뿌리고

댓글 창 닫기

2022/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